후기 입시는 어느 한적한 석조건물에서 치루게 되었는데 이번에도 여지없이 또
눈 튀어 나올 법한 기현상이 벌어 진다. 평소에 듣도 보도 못한 문제들이 내 손에
서 정답으로 술술 나온다. 가관인 것은 국어 문제에서 합격의 감격을 친구에게 편
지체로 전하는 글을 써라 인데 주욱 내려 쓰고 난뒤 읽어 보고 또 읽어 봐도 명문이
다. 마지막 5교시 수학 시간에 드디어 마장이 닥쳐 왔다. 이제껏 본 시험만으로도
이미 합격선을 충분히 넘어 섰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험을 치다 말고 대충 이름만
확인하곤 미 8군 헨리 캠프 후문에서 살아서 어렵게 구한 미제 캔톤 청바지를 갖고
있던 갑자 놈에게서 반 강제로 빼앗아 입은 물 바랜 청바지에 개폼 나는 가죽 점펴를
대충 걸치곤 교수님 앞으로 나아 가서 호기롭게 시험지를 제출하곤 집으로 돌아 왔다.
며칠 지나서 합격자 발표가 다가올 즈음에서야 정신이 번쩍 든다. 주위 친구들 말이
시험이란 어차피 상대 평가인데 네 실력에 그리도 쉬운 문제였다면 다른 이들은 더 쉬
웠을꺼란 얘기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란 생각이 들면서 막급한 후회와 함께 불안
해 지기 시작했다.
기와를 얹은 독립 화장실이 있길래 대충 들어 가선 아직 잘 피우지 못하는 담배 한대를
초조히 들여 마셨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화장실은 여학생 전용이었다. 재래식 화장실
이었는데 삼학년 때 새벽 집합이 있는 날이면 내가 늘 순시를 하면서 벽에 올린 대자보를
감상하곤 했었던 곳이다. 이 곳에서 아마도 내가 최초로 문학의 자그만 기초를 다지지 않
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남자 넘들은 기껏해야 wxy 정도 그리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수준
인데 이 곳에 올리는 대자보는 그 수준과 섬세하고 치밀한 표현력이 에이 더블 플러스다.
발표장 건너 부처님 입상이 보이길래 슬며시 다가 가선 대충 난간에 기대어서 다른 볼 일
을 보는 사람처럼 하면서 곁눈으로 부처님을 바라 보면서 조용히 속삭였다.
부처형! 형과는 별루 안면은 없지만 내가 이런 따라지 학교마저 낙방을 하면 입장이 몹시
난처해 지는데 어째 한번만 봐 줄 수 없으시겠소? 만약 그리 되면 다른건 몰라도 최소한
형을 배신하지는 않을 것이구먼요.
수유리에 있는 누님댁으로 돌아 오니 시골에서 엄니가 수차례 전화를 했다고 해서 어렵게
시외통화를 하니, 모든 걸 용서하고 다 받아 들일테니 다른 맘 먹지 말고 지금 당장 집으로
돌아 오라는 말씀이셨다. 그게 아니라고 아무리 강력히 어필을 해도 이 한마디 뿐이다.
집꾸석에서 책장을 펼쳐 드는 꼬락서니를 본 적이 없는 네 놈이다.
자동차 부품 공장을 창업하기 위해 경주로 내려 가서 대충 사무실과 집기를 구하곤 곧바로
미륵이가 다니는 회사로 전화를 하니 출장중인데 저녁이면 연락이 닿는다고 한다.
해장국이 유명한 팔우정 로터리 어느 주막에서 오랜만에 미륵과 술을 많이도 마셨는데 갑자
넘이 포항에 있는 부대에서 해병 대위로 근무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셋이 오랜만에 만난 곳은 김 유신 장군 산소가 있는 야트막한 산이 수도산인데 이 곳
입구에서 자그만 점빵 겸 간이 식당을 운영하시는 노 부부가 계시는 곳이었다.
미륵과 미리 연락이 되었는지 점빵 뒤로 안내를 한다. 점빵 뒤가 바로 경사가 약한 야산으
로 연결이 되는데 온 산이 복숭아 꽃이다.
대충 평상을 펴고 나니 할아버지께서 백열등 하나를 연결해 주신다. 하늘에도 땅에도 왼통
복숭아꽃이다. 술이 얼큰해 져서 기대고 앉은 복숭아 나무에 머리를 슬쩍만 갖다 대어도 천
계에서 어느 천녀가 꽃가루를 뿌리듯이 화아 하고 꽃잎이 쏟아 지는데 무릉도원이 바로 이
곳이란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린 일배 일배 두 일배 꽃 거꺼 놓고 아예 뒤지도록 무진장 마셨다.
우리 셋이 모이면 아마도 눈에 보이지 않는 기싸움이었을 것이다. 어느 넘인가 인사불성이
되지 않으면 자리를 털고 일어 날 생각을 않는다.
고주망태가 된 채 셋이서 어깨동무를 하고 성건동 아파트 단지 쪽으로 가기 위해서 큰 다
리를 건너면서는 고성방가를 하기 시작했다.
혜에숙아 내 동생아 몸 성히 성히 자알 있는냐? 여기에 있는 이 오빠아는 장교가 아니란다.
학창시절 장기 자랑 시간에 미륵이가 두꺼운 검은 뿔테 안경을 끼고 아주 기묘한 얼굴 표정
과 몸동작으로 이 노래를 부르는 걸 단 한번 보았다. 서울로 오니 모임만 있으면 노래를 하
라고 해서 대충 기억을 더듬어서 멋대로 편곡을 하여 이 노래를 불렀더니 예상외로 반응이
좋았다.
아리랑 잡지 같은 곳에서 펜팔로 연결된 두 남녀의 애절한 사연을 노래한 것이데 부산에 있
는 육군교도소 수감자 신세인 오빠는 장교행세를, 서울 윤락가에서 몸을 팔고 있는 혜숙이
는 대학생 행세를 하다가 오빠가 자신의 신세를 솔직히 고백하고 이에 화답을 하여 혜숙이
가 오오빠여 용서하소서 옷빠여 용서하소서 여기에 있는 이 동생은 학생이 아아니란다.라고
고백을 하는 내용인데 곡과 가사가 무척 재미있다.
연전에 가수 태 진아씨가 사랑은 아무나 하나? 라는 노래로 표절 시비에 말렸다가 원래의
작사자와 작곡가가 미상이여서 표절은 분명하나 법적인 대응은 어려운 일로 판명이 난 적이
있다.
문제의 곡이 내가 혜숙쏭으로 제목을 붙인 바로 이 노래다. 지금은 대학가에서 운동경기가
있는 날이면 응원가로 당당히 제 자리를 잡고 있는 명곡이다.
어느 때 미륵에게 그 노래를 어디에서 배웠냐고 물어 보니 자기도 중학교 다닐 적에 경주
양아치들이 부르는 걸 대충 들었을 뿐이라고 한다. 혜숙쏭의 중창조이신 이 덜삐를 동창들
이 가끔 혜숙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이 것이다.
아파트 입구 쪽으로 비틀거리면서 갠신히 걸어 오는데 장승처럼 우뚝한 두 물체가 우리를
표독스런 눈으로 우리를 째려 보고 있었다.
갑자 보살님께서 먼저 일갈하신다.
내가 갤(제일) 처음 시집와서 어무이(시어머니)한테 들은 말이 뭔 줄 아닝교? 이 친구 셋이
모이면 술이 아예 개구신이 되도록 퍼 마시곤 사흘 밤낮을 퍼드레 진다는 얘기 라예. 대체
알나 아바이가 대 갖꼬 이게 무신 꼴입니까?
미륵 보살은 이젠 지쳤다는 표정으로 연신 낸 몬산데이 낸 몬산데이를 연발한다.
불과 100여 미터 거리에 있는 우리집까지 난 두 걸음 걷고 절 한번 올리고를 반복하면서 어
렵게 어렵게 왔다.
공장 부지 선정을 위해서 사력을 다해서 쫓아 다니던 어느 날 갑짜가 전화를 했다. 사실
은 자기와 단짝으로 친하게 지내던 용짜가 경주 인근에 있는데 한번 얼굴이라도 보러 가자
는 것이다.
동창회도 일체 나오질 않기 때문에 우리가 찾아 가지 않으면 용짜 얼굴을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경주에서 영천으로 향하다 보면 금척 고분이 보이고 조금 지나면 언젠가 소개한 적이 있는
건천 여근곡이 있고 조금만 더 지난 어느 곳에서 용짜는 의외로 약국을 경영하고 있었다.
하편은 그 날 이후 낯짝조차 볼 수 없는 용짜에 대한 이야기가 근간을 이루면서 장편 대하
소설을 끝 맺을까 합니다.
혜숙쏭 중창조 덜삐 합장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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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연사 명적암에서의 하룻 밤 (중편).
어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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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21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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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불교명상음악과 염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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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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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행자
06.02.23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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쥔장님 '하편'을 싣기전에 제가 글 문맥을 끈은것 같아 죄송해요. 것도 별로 덜 반가운 글로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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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쥔장님 '하편'을 싣기전에 제가 글 문맥을 끈은것 같아 죄송해요. 것도 별로 덜 반가운 글로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