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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법, 명강의 ▒▒ 스크랩 ?설오 스님의 티베트 불교 강의
달마 추천 1 조회 122 14.04.16 18:34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설오 스님의 티베트 불교 강의 - 관정(灌頂)과 환생  

 

설오스님(인도 다람살라에서 티베트불교 수행中)

이번 호부터는 현재 티베트의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의 다람살라에서 7년 넘게 티베트불교를 수행하고 계신 설오스님의 글을 몇 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한국불교와는 풍토가 사뭇 다른 티베트불교에 대한 생생한 글을 접하다 보면, 우리 불교에 대한 이해와 관심의 폭 또한 한층 넓어지리라 여겨집니다.

 

관정

관정(灌頂)이란 일체 중생들에게 본래 구족되어 있는 불성의 종자를 본존불의 가피를 통해서 드러나게 하는 의식으로, 티베트불교를 수행하기 전에 제일 먼저 받아야 하는 입문식과 같은 것이다. 곧 스승과 제자 사이에 법을 주고 받는 밀교의식으로, 비유하자면 다른 나라를 방문하기 전에 받아야 하는 비자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관정식을 티베트 어로는 '왕[Wang]'이라 하는데, 곧 '힘을 부여한다'는 뜻으로 수행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는 의미이다.

티베트 사람들은 꼭 수행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관정 의식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열심히 참석한다. 왜냐하면 관정을 많이 받음으로 해서 그 가피력에 의해 이 생에는 악업이 소멸되어 선근이 증장하고, 내생에 다시 태어나더라도 복덕을 두루 갖춘 중생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관정은 누구나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격을 갖춘 린포체, 즉 환생한 큰스님만이 내릴 수 있다. 일단 린포체로부터 관정을 받게 되면 그 린포체와 관정을 받은 사람 사이에는 승승과 제자의 관계가 성립되고, 산스크리트 어로 '삼마야'라고 일컬어지는 비밀한 계율이 지켜져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계율은 관정을 내리는 큰스님을 관정식의 주존(主尊)인 부처님으로 관상하는 것이다.

관정 의식에는 네 가지 단계가 포함되어 있다.

첫째는 화병관정이라 한다. 화병에 물을 담아 손으로 받아마시고 머리와 몸에 바르게 함으로써 몸에 가피를 내려 묵은 업장을 정화하여 자신을 부처의 몸으로 관상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때 관정을 받는 사람은 린포체를 부처님으로 관상하고, 그분의 이마에서 흰빛이 나와서 자신의 이마로 들어온다고 관상한다. 이렇게 하여 무시 이래로 쌓여있던 묵은 악업이 정화되고 분별 망상을 일으키는 무명의 장애에서 벗어나 부처님의 몸과 똑같이 되어 부처님처럼 변화신을 나툴 수 있는 화신(化身)을 성취했다고 관상한다.

두 번째는 진언인 부처님의 만트라를 할 수 있게 하는 어(語) 과정인데, 염주로서 관정을 준다. 이때 관정을 받는 사람은 린포체를 부처님으로 관상하고 그분의 목에서 빨간 빛이 나와서 내 목으로 들어온다고 관상한다. 이렇게 하여 만트라를 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고, 수면상태에서 일어나는 꿈의 장애에서 벗어나 부처님의 공덕의 몸인 보신(報身)을 성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의(意) 관정이라 하는데, 금강저로서 상징물을 삼아 가슴에 대어 준다. 관정을 받는 사람은 린포체를 부처님으로 관상하고 그분의 가슴에서 남색빛이 나와서 자신의 가슴으로 들어온다고 관상한다.

이때 깊은 잠의 어둠에 빠지는 장애가 정화되고 자신의 마음과 부처님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우주 법계에 두루 편만하신 부처님의 법신(法身)을 성취하였다고 관상한다.

네 번째는 문자(文字) 관정이라 하는데, 거울로 상징물을 삼아 배꼽부분에 대어 준다.

관정을 받는 사람은 린포체를 부처님으로 관상하고 그분의 배꼽에서 초록색빛이 나와서 자신의 배꼽으로 들어온다고 관상한다. 그리고 남녀의 애욕에 빠지는 장애가 정화되고 우주의 본질과 하나인 부처님의 법계체성신(法界體性身)을 성취하였다고 관상한다.

이밖에도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무량수불의 가피를 청하는 장수관정도 많이 행해진다.

티베트불교에서 모든 본존수행(석가모니불,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문수보살, 지장보살, 칼라차크라 등 여러 불보살님 가운데 한 분을 주존으로 삼아 하는 수행)을 하기 전에는 관정이라는 일종의 허락의식을 거쳐야 한다.

그러면 이 가운데 얼마 전 인도의 부다가야에서 봉행되었던 칼라차크라 관정에 대해 소개해 본다.

칼라차크라(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본존불의 한 분)는 산스크리트 어로 '영원한 시간의 수레바퀴'라는 뜻을 지나고 있는데, 시간은 불변의 지복을 가리키고 바퀴는 여러 색(色)의 비어 있음을 가리킨다.

이 관정을 받게 되면 시간과 공간과 운세의 장애를 초월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이 관정을 시륜금강(時輪金剛) 관정이라 하는데, 달라이라마가 모든 중생들의 업장을 정화하고 가피를 내리고자 하는 원력으로 전세계에 내린다는 아주 수승한 관정이다.

칼라차크라 관정은 크게 예비관정과 본관정으로 나눌 수 있다. 예비관정 단계에서, 스승은 장소를 청정하게 하는 의미로 보리로 만든 '돌마'에 관정법회에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모든 마구니들을 다 잡아넣는다고 관상하고, 만트라를 염송한 뒤 그 돌마를 관정의식이 거행되는 곳의 외곽으로 내보낸다. 이때 제자들은 마음 속으로 '나에게 있는 모든 장애들도 돌마와 함께 밖으로 다 보내졌다'라고 관상한다.

그런 다음 제자들은 자신의 손바닥에 부어준 물로 입을 헹군 후에 뱉어내는 것으로써 몸과 마음을 정화한다고 관상한다. 그리고 칼라차크라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위없는 깨달음을 성취할 것이라는 보리심을 발하며 스승에게 관정을 청한다.

그러면 스승은 제자에게 계를 주고, 여러 가지 유형의 가피를 내린다. 그 하나가 길상초를 나누어 주는 것이다. 스승은 '옴 바즈라 딕샤나 밤'이라는 진언을 염송하며 제자에게 길고 짧은 두 개의 길상초를 나누어 준다.

길상초는 본연의 순수한 자성자리를 상징하고, 선명한 꿈을 대표하기도 한다. 제자들은 합장을 하고 길상초를 받은 뒤, 긴 것은 침대 밑에 두고 짧은 것은 베개 밑에 둔다. 그리고 잠잘 때 일어나는 꿈의 경계를 관찰한다. 밤은 네 부분으로 나뉘어지는데, 제자들은 마지막 부분에 일어난 꿈의 경계를 세심히 관찰한다.

그러면 내가 직접 체험한, 꿈에 나타난 관정 가피에 얽힌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내가 대만에서 유학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까마까규파의 탕굴린포체(현재 환생자로 유명한 17대 까마바의 스승)가 칼라차크라 관정을 봉행한다는 소식을 한 신도를 통해 들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티베트불교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었지만, 이 관정이 일주일 동안 행해지는 아주 큰 관정이라는 말을 듣고 참석해 보기로 하였다.

첫날 탕굴린포체는 먼저 칼라차크라에 대해 설명해주고, 그 수승한 공덕에 대해 말하였다. 그날 나는 아주 수승한 관정을 받게 되었다는 환희심과 설레임으로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한참을 물끄러미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생시처럼 달라이라마가 나타난 것이었다. 그는 내 몸에서 초록색깔의 뱀을 쭉 뽑아내고는 보병에 있는 우유빛 감로를 머리에 부어 주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 다음날부터 나는 더욱 신심이 나서 열심히 관정의식에 참석하였고, 관정식은 원만히 회향되었다.

그리고 그날 밤, 일주일 간의 벅찬 관정 일정을 마친 나는 너무도 뿌듯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고 다시 기이한 꿈을 꾸었다.

달라이라마가 꿈 속에서 오늘은 네가 내 시자를 해야 할 차례라고 하더니, 자신의 옷을 한 벌씩 벗고는 내게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공양을 짓는 시자 라마에게 검은빛깔의 고기를 나에게 한 접시 내어주라고 하였다. 티베트 수행에서 검은색은 마구니를 항복받고 나쁜 습관을 끊는 분노존의 무섭고 단호한 주법수행(誅法修行, 수행이나 불법에 장애를 일으키는 번뇌나 나쁜 습기, 마구니 등을 항복받는 수행)을 상징한다.

그 얼마 후 나는 인연이 닿아 달라이라마가 있는 다람살라에 가게 되었고, 그 곳에서 버스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따시종에서 암틴이라는 스승을 만나 분노존 수행에 입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칠년이 지난 후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달라이라마의 말을 한국어로 통역할 수 있게 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비단 칼라차크라 관정뿐만 아니라 모든 관정에서 이처럼 불가사의한 가피를 체험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가 있다. 관정의 가피는 관정을 받는 사람의 성불을 향한 원력과 신심이 그에게 본래 구족되어 있는 불보살님의 마음에 계합되어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꿈과 수행

티베트불교에서는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꿈의 경계를 수행의 한 방편으로 사용하는 특색이 있다.

수행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마음 속에 일어나는 생각뿐 아니라 아주 미세한 잠재의식까지도 다 정화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잠재의식마저도 자유자재하게 컨트롤할 수 있게 되고, 결국에는 모든 경계를 다 정화하여 무명 속에 빠지지 아니하고,, 항상 성성적적한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흔히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지자무몽(智者無夢), 즉 지혜로운 사람은 꿈이 없다는 경계는 이와 같이 우리의 잠재의식이 다 정화되어 망상분별이 없는 경계를 말하는 것이지, 깊은 어둠의 잠에 빠져서 죽은 듯이 자는 것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

옛 티베트의 성자 밀라레빠는 이렇게 말했다.

"초저녁에 꾸는 꿈은 낮에 일으킨 망상분별의 반영이요, 자정에 꾸는 꿈은 귀신의 장난이요, 새벽녘에 꾸는 꿈은 미래 암시적인 것이다."

그리고 밀라레빠는 자신의 법을 모두 전수받은 수제자 깜포바에게 한동안 꿈이 맞는 경계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티베트 수행을 대표하는 나로바 육성취법(티베트불교의 4개 큰 종파 가운데 하나인 까규파의 수행법)의 여섯 단계 가운데 세 번째 단계가 꿈수행(Dream Yoga)이다.

첫 번째 단계인 뚬모(배꼽불) 수행에서 힘을 얻게 되면 그 성취의 징조로 한동안 미래 예언적인 꿈을 꾸게 된다. 그리고 나서 꿈의 경계까지도 수행의 한 단계로 끌어들여서 응용하게 되는데, 이때에는 일부러 많이 먹고 따뜻하게 하여 오랜 시간 동안 잠을 자고 꿈을 길게 꿀 수 있도록 방편을 사용한다. 그래서 원하는 내용의 꿈을 꾸고 그 내용을 자유자재하게 바꿀 수 있도록 노력한다.

티베트에서는 꿈수행을 성취한 라마들의 일화가 많이 있다. 그 가운데 나의 스승인 구루 암틴에게 법을 전해준 라긴 쏘댄이라는 분의 이야기를 소개하려 한다.

***************************

라긴 쏘댄은 네팔의 성취자 바수다라를 꿈에 친견하고 야만타카 요가수행(닝마파의 대표적인 수행법 중의 하나)을 직접 전수받아 암틴에게 전수하였다고 한다. 바수다라는 {티베트 사자의 서}를 전수한 것으로 유명한 파드마 삼바바와 같은 시대를 산 훌륭한 성취자였다.

라긴 쏘댄은 꿈에 아름다운 두 여인의 인도를 받으며 큰 사원이 있는 곳으로 갔다. 큰 법당 문에는 황금으로 된 문고리가 두 개 달려 있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바수다라가 높은 법상에 앉아 있었다.

라긴 쏘댄이 인사를 드리니 바수다라는 이렇게 물었다.

"야만타카 수행을 전수받을 생각이 있느냐?"

"예, 법을 전수받고 싶습니다."

그러자 바수다라는 관정과 함께 가르침을 주고는 경전을 하사하였다.

라긴 쏘댄은 경전을 받아 가슴 속 깊이 넣고 문을 열고 나왔다. 그런데 나와서 경전을 다시 꺼내보려 하자 경전이 버터처럼 녹아서 몸으로 모두 스며들어가 없어져버리고 말았다.

라긴 쏘댄은 꿈을 깨고 나서 그 경전의 내용을 다 기억하고, 주석과 해설까지 자세히 달아 방대한 분량의 야만타카 수행에 관한 책을 남겼다. 이 책은 지금도 계속 따시종의 라마들에게 전수되고 있다.

때로는 관정식을 통해서 자신이 어떠한 가피를 입을 수 있는지, 혹은 성취를 할 수 있는지 꿈을 통해 측정하기도 한다.

꿈에 관정 의식의 주존인 본존불이나 스님들을 보게 되거나, 함께 수행하는 도반들이 나타나거나, 꽃과 법구를 보거나, 음악을 듣고 노래를 한다거나, 부처님께 절을 하거나, 흰옷을 입거나, 설산(雪山)등의 높은 곳에 오르면 신구의(身口意) 삼문(三門)의 가피를 입는 징조라고 말한다.

목욕을 한다거나, 빨래를 하거나, 몸에서 피고름 등의 오물이 나오거나, 흰옷 혹은 새 옷을 입는 것은 업장이 소멸되어 새로운 법에 입문하는 징조라 한다.

또 절을 하거나, 만트라를 하거나, 설법을 하는 것도 그 수행을 통하여 말에 힘이 생기고 수행에 힘을 얻을 징조라 한다.

그러면 이와 관련된 밀라레빠의 유명한 이야기와 내가 체험한 이야기를 한 편씩 소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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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밀라레빠는 자신의 가장 훌륭한 세 제자에게 말했다.

"오늘 밤의 꿈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내일 아침 나에게 알려 주어라. 그러면 꿈을 풀이해 주겠노라."

시와외레바라는 제자는 떠오르는 태양이 가슴 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고, 레충바라는 제자는 세 곳의 큰 골짜기에 도착하여 큰 소리로 외치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깜포바라는 제자는 무수한 인종의 사람들을 죽이고 그들의 호흡을 다 들이마시는 꿈을 꾸었다. 그래서 깜포바는 악몽을 꾸었다며 스승 앞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뜻밖에도 밀라레빠는 기쁜 표정으로 깜포바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들아, 그토록 갈망하던 그대의 소망을 성취하게 되리라. 그대는 많은 중생들을 윤회계에서 다 구원하여 해탈케 하리라."

밀라레빠는 레충바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나의 말을 세 번 어긴 인연으로 다시 윤회계에 세 번 더 태어나 훌륭한 불교학자가 될 것이고, 학자로 크게 이름을 떨친 후에 성불케 되리라."

또 시와외레바에게는 이런 예언을 하였다.

"길상한 꿈이기는 하나 서원이 작기 때문에 많은 중생들에게 이익은 주지 못하고 정토에 태어나리라."

***************************

내가 북인도 따시종에 있을 때의 일이다. 나는 구루 암틴으로부터 닝마파의 대표적인 본존요가인 야만타카 관정을 받고 본존불 만트라 수행을 두 달간 하게 되었다.

밀교 수행은 입문하기 전에 반드시 먼저 본존 관정을 받아야 하고 수호 본존의 가피를 얻기 위해서 본존불의 만트라수행을 일정기간 동안 하게 된다.

구루는 미리 수행을 위한 가르침을 주는 과정에서 야만타카 본존불의 가피를 확인할 수 있는 현전가피와 명훈가피, 몽중가피에 대하여 설해 주었다.

암틴의 말 가운데 강한 인상으로 남았던 것은, 수행하는 중에 확실한 가피를 얻었다는 확신을 하게 되면 감사의 예물로 싸인돌마(돌마란 보리가루로 만드는 공양물로, 싸인돌마는 가피의 확실한 징조를 주신 데 대하여 본존불게 감사의 예물로 올리기 위하여 준비하는 돌마공양물을 말함)를 미리 만들어서 잘 덮어두었다가 올리라는 것이었다.

나는 싸인돌마를 조심스럽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받아서 한쪽에 잘 덮어두었다. 싸인돌마 때문에 나는 좀더 긴장되고 조심스럽게 만트라 수행에 임하였다.

외호를 도와준 도반스님도 내가 언제 그 싸인돌마를 올릴 것인지 자못 주의를 기울이고 지켜보았다.

그렇게 한 달 남짓 지났을 때였다. 꿈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타나서는 나를 극락세계를 인도하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할머니는 당신이 쓰신 정토발원물을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신심이 확고하지 못해서 그렇지, 신심만 확고하다면 정토수행법으로도 한 생에 성불을 할 수 있다."

그리고는 법당에 가서 친견할 분이 있으니 따라오라고 하셨다.

법당문 밖에 이르니 안에는 금빛의 찬란한 비단 가사를 수하신 한 분의 부처님과 보통의 스님과는 분위기가 좀 다르고 매우 후덕해 보이는 두 보살님이 비단옷을 두르고 아주 즐거운 분위기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세 분은 왠지 낯이 익은 모습들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잠이 깨었다. 꿈이 너무도 생생하여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세 분은 바로 내가 대만에 유학하고 있을 때 탱화에서 자주 뵈었던 아미타부처님과 관음보살 . 대세지보살이셨다.

티베트불교를 접한 이후, 나는 그 전까지 줄곳 해오던 정토수행을 좀 소원히 하고 있었다. 그래서 본존불께서 꿈에 나타나 흔들리지 않도록 신심을 불어넣어주신 것이라고 여겨졌다.

나는 동이 트기도 전에 싸인돌마를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여느 때보다 일찍 밖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도반스님은 싸인돌마를 올리느냐면서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고 따라 올라왔다.

야만타카 본존불과 극락세계에 계신 세 분의 불보살님께 감사를 드리는 마음으로 돌마공양을 올리자, 마치 극락세계에서 내가 올린 공양물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동쪽에서 비치기 시작한 아침햇살을 받아서 서쪽에서 찬란한 무지개가 선명하게 수직으로 뻗어 하늘로 솟아올라갔다.

영문을 알지도 못한 도반스님은 새벽녘 서쪽에서의 무지개는 처음 본다면서 유난히 환희심을 내었다.

평소에도 이러한 꿈을 꾸게 된다면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징조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좋다 나쁘다 하는 집착이 없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여름에 산에 오르면 이름 모를 갖가지 풀꽃들이 많이 피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듯이, 수행자에게 일어나는 체험이나 꿈의 경계도 무수히 많은 법이다. 그것은 지나가는 한 과정에 불과할 뿐 집착을 일으키면 병통이 된다고 스승들은 항상 말씀하신다.

 

환생

티베트불교를 접하다 보면 환생자로 여겨지는 많은 '린포체'들을 친견하게 된다. 불교의 윤회사상에서 보면 다시 태어나지 않은 중생이 하나도 없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환생자의 개념은 그것과는 다르다.

즉 티베트에서 말하는 환생자는 자신이 지은 업(業)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다시 태어나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오랜 생 동안 수행을 쌓은 사람이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한 원력으로 자신이 선택한 삶의 형태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티베트에서 환생자로 유명한 분은 열일곱 번을 환생한 까뀨파의 까마바존자로 중국사람들은 그를 '대보법왕(大寶法王)'이라 부른다. 그리고 열네 번째 환생하신 달라이라마는 현재 전 세계인으로부터 완벽한 인격체로 추앙받고 있다.

그리고 달라이라마의 스승, 곧 왕사(王師)라 칭해지는 링린포체도 환생자로 칭송받고 있는데, 그는 현재 북인도의 다람살라에 살고 있다. 링린포체는 지난 2월 달라이라마의 친서를 가지고 한국을 방문하여 많은 불자들에게 관정을 주기도 하였다.

티베트에서는 스승과 제자가 서로 시기가 다르게 환생을 하여 서로의 환생을 인도하고 교육하여 옛 모습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예를 들면 어린 달라이라마의 환생자를 스승인 링린포체가 찾아내어 곁에서 모시며 교육을 하고, 나중에 링린포체가 연로하여 죽으면 달라이라마가 그 린포체의 환생자를 찾아 교육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스승과 제자가 서로를 윤회의 길에서 미혹되지 않고 전생의 훌륭한 모습을 회복할 수 있도록 세세생생 책임지고 인도해 주는 것이다.

환생의 원력을 세운 스승들은 대부분 자신이 언제, 어느 곳, 누구를 부모로 하여 태어날 것인지를 유서로 남긴다. 때로는 도반이나 제자들의 꿈 속에 나타나 그것을 밝히기도 한다.

티베트의 이 환생에 관한 부분을 이해하려면, 그것을 소재로 한 영화 '쿤둔'과 '리틀 붓다'를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현재에도 티베트의 환생자라고 일컬어지는 적지 않은 분들이 세계인의 주목을 끌고 있다. 얼마 전에는 서양 국가인 스페인에 환생한 예세라마의 이야기를 미국인 제자였던 신문기자가 책으로 엮어서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다.

그러면 나의 스승과 내가 직접 겪은, 환생과 관련된 신비로운 이야기들을 소개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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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스승인 구루 암틴은 제8대 캄튤린포체를 의지하여 출가하였다. 8대 캄튤린포체와 암틴은 스승과 제자로서 아주 두터운 정을 나누었다.

이윽고 캄튤린포체가 죽고 몇 년 뒤, 암틴은 린포체의 여러 제자들과 함께 스승의 환생자로 여겨지는 아이의 집을 처음 방문하게 되었다.

아이는 이제 겨우 책상을 의지해서 일어설 수 있는 나이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환생자로 여겨지는 그 아이는 전생에 자신이 사용하던 물건들을 모두 알아맞춘 것은 물론이고, 제자들의 이름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심지어 아이는 집 밖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자들이 각각 시차를 두고 부는 잘링(티베트에서 사용하는 나팔과 같은 법구) 소리를 방 안에서 듣고, 누가 부는 것인지를 분간하기까지 했다.

또한 몇 년 후에 아이는 린포체가 종종 하곤 했던 라마댄싱을 재현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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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불교를 접하고도 얼마 동안, 나는 겨우 어머니 젖을 의지해야만 하는 아기에게, 환생자라고 하여 전생의 지위와 재산 모두를 돌려주고 전생에 한 것과 똑같이 존경과 헌신을 바친다는 것이 좀처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유난히 키가 크고 머리를 빡빡 깎은 한 이스라엘 청년이 따시종에 있는 암틴을 방문하였다. 그는 당시 티베트불교를 팔 년째 수행중이었다.

그는 암틴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얼마 전 파드마 삼바바의 성지로 유명한 부탄의 '바로닥창'에 불이 났다고 합니다. 말법세에 불법이 쇠퇴하고 많은 가짜 환생자가 나게 되면 그곳에 불이 날 것이라는 예언서를 읽은 적이 있는데, 혹시 요즘의 많은 환생자 가운데 가짜가 많은 것은 아닙니까?"

암틴은 그 말에 동의한다는 것인지 어떠한 것인지 별 말이 없었다. 옆에서 통역을 하고 있던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였다.

'지금 따시종에서 모든 대중들이 부처님과 같이 존경하고 있는, 이제 겨우 20세밖에 안 되는 캄튤린포체는 어떤가?'

그리고는 뜬금없이 마음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그분이 가짜가 아니라면 오늘밤 내 꿈에 나타나 공양을 받아가실지 모른다.'

그런데 그날 밤, 놀랍게도 캄튤린포체가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는 음식을 공양받고 가는 꿈을 꾸었다.

너무 놀랍고 신기해서 이튿날 구루 암틴께 말씀드렸더니, 암틴은 웃으면서 캄튤린포체가 아이였을 시절 전생의 제자들을 다 기억했던 이야기 등을 들려 주었다.

이처럼 티베트 사람들의 환생에 대한 믿음은 확고하고, 달라이라마 . 까마바존자 . 캄튤린포체 . 링린포체 등 소위 환생자라 불려지는 분들에 대한 존경심 또한 대단하다.

이런 점을 놓고 볼 때, 한국불자들의 환생이나 윤회에 대한 확신은 어떠한가? '업 덩어리' 인 자신의 몸과 그 몸의 인과에 따라 연출되고 있는 윤회에 대한 확신없이 현재의 기복신앙에 너무 치우치고 있지나 않은지 한차례 반성을 해 봄이 좋으리라.

아울러 불교의 참된 가르침이 복을 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실천하여 생사와 윤회의 굴레에서 해탈하는 데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관정과 환생을 중심으로 한국불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고 신비로운 티베트불교의 특징에 대해 설명하였다. 부족하나마 이 글이 한국불자들에게 티베트불교에 대한 이해를 넓혀 주고 신행생활에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이번 호 [법공양]의 글을 마무리한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 출처 문헌

- 월간『법공양』 2546년 4월호

 

 

 

 

 

설오 스님의 티베트 불교 강의 - 귀의와 금강살타 수행  

 

설오스님(인도 다람살라에서 티베트불교 수행中)

귀의(歸依)

법회를 거행하는 티베트 사원에 참석하게 되면 법사는 제일 먼저 귀의의 중요성과 함께 순수한 보리심(菩提心)에 대한 가르침을 설한다.

귀의(歸依)란 불교도와 비불교도, 곧 내도(內道)와 외도(外道)를 구분짓는 관건이다. 어린아이가 무서운 개한테 쫓기어 어머니 품안으로 달려오듯이, 불법승 삼보님만이 두렵고 엄청난 윤회의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구해 주실 수 있다는 확실한 신뢰를 갖고 몸과 마음을 다바쳐 완전히 의지하라는 것이다.

물론 삼귀의는 우리 나라 불자들도 기본적으로 하지만, 티베트처럼 열심히 하지 않는다. 티베트 사람들은 차나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사고의 위험에 직면했을 때에 '귀의금강상사 . 귀의불 . 귀의법 . 귀의승'이라는 귀의문을 간절히 외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운세가 안 좋다고 느끼거나 가정이나 사업상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면 큰스님을 찾아 뵙고 해결책을 상의하는데, 그때 큰스님은 그에게 귀의문을 많이 외우는 기도를 하라고 일러주시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귀의문을 외우며 기도하는 것은 아득한 옛날부터 있었으며, 부처님께서는 수발타라라는 제자의 귀의와 도를 깨달은 인연을 설하시어 이를 증명하셨다.


수발타라는 집이 빈곤한데다 아무도 의지할 사람 없이 외롭게 살다가, 괴로움이 극도에 달하자 석가모니 부처님께로 나아가 출가를 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그가 찾아갔을 때 공교롭게도 부처님께서는 외출중이셨고, 여러 큰비구들은 그가 그곳에 머무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의 과거 인연을 관하여 보았으나 팔만 겁 동안 선근을 심은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두터운 업장에 낙담하여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수발타라는 괴로움이 극에 달해서 성 밖으로 달려나가 막 자살을 하려고 하였다. 그 순간 부처님께서 나타나시더니 그에게 까닭을 물으셨다.

수발타라는 울면서 자초지종을 고하였고, 부처님께서는 그를 제자로 받아주셨다. 그는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깊이 명상하여 7일만에 아라한과를 증득하였다. 나중에 제자들이 그 연유를 여쭈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단지 팔만 겁 동안의 인연만 알고 팔만 겁 이전에 일찍이 그가 선근을 심은 것을 몰랐기 때문이니라.
팔만 겁 이전, 그는 가난하여 나무를 해다 팔면서 살았다. 하루는 산에서 호랑이를 만났는데, 도망칠 곳이 없자 그는 급히 나무 위로 올라갔느니라. 호랑이는 나무둥치를 물어뜯고 흔들어 나무가 부러지려 하였으나 누구하나 구해줄 사람이 없었느니라. 그토록 다급한 상황 속에서 문득 '대각자이신 부처님은 자비력이 있어 능히 모든 중생의 고통을 구제하신다'는 데에 생각이 미쳐 그는 크게 외쳤느니라.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저를 구해주옵소서!'
그런데 놀랍게도 호랑이가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소리를 듣더니 멀찍이 도망을 쳤고, 그는 무사하게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느니라. 그리고 바로 그때 그가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을 외우며 깨달음의 바른 종자를 심었기 때문에, 오늘날 인연이 성숙되어 아라한과를 증득한 것이다."
여러 제자들은 부처님의 이야기를 듣고 크게 기뻐하며 찬탄하였다.

이와 같은 전통 기도법을 이어받아 티베트 사람들은 귀의를 수행과 기도의 일환으로 중요시하고 있으며, 귀의의 철저한 생활화를 통하여 불교도와 외도의 구분을 분명히 짓고 있다.

그리고 티베트불교 수행에 입문하게 되면 제일 먼저 귀의 대예배 10만 번을 하여야 한다. 귀의의 대상을 묘사한 탕카(티베트의 탱화)를 앞에 모셔 놓고 오체투지를 하면서 입으로는 귀의문을 외우고, 마음으로는 '육도의 중생들이 다 나의 어머니'라고 생각하면서, 모두 함께 간절한 마음으로 삼보께 귀의를 하는 것을 관상한다.

이때는 불법승 삼보와 함께 삼근본(三根本)을 귀의의 대상으로 삼는데, 삼근본은 다음과 같다.
① 가피의 근본 : 자신에게 법을 전수해 준 스승과 그 법을 전수해 온 전승조사들.
② 성취의 근본 : 그 법의 수호본존이신 각 파(派)의 본존들
③ 외호(外護)의 근본 : 남녀 호법신인 '타카 . 타키니', 자량(資糧)을 구족하게 하신 재신(財神)들.

이렇게 오체투지를 하며 간절히 삼보님과 삼근본을 향해 진정코 귀의하여 신심이 생겨났을 때라야 비로소 윤회의 고통으로부터 해탈을 이루게끔 하는 불법의 수행에 입문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정 삼보에 귀의함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윤회의 고통을 뼛속 깊이 느끼고 깨달아, '윤회계를 벗어나고야 말겠다'는 간절한 바람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와 같은 마음가짐을 염리심(厭離心), 또는 출리심(出離心)이라고 한다.

윤회의 세계가 고통을 본질로 삼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염리심, 곧 두려운 마음을 내게 된다는 것이며, 그 염리심이 불법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간절한 염리심과 함께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야 말겠다는 결심이 생겨났을 때라야 비로소 진정한 귀의가 이루어지고 수행에 입문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티베트불교에서는 '염리심은 도(道)의 시작이요, 수행자의 머리'라 칭하고 있다.

 

발보리심(發菩提心)

"염리심을 수행자의 머리라고 한다면 보리심(菩提心)은 수행자의 마음이다. 그리고 우리가 도를 성취하고자 하는 목적은 일체 중생을 해탈케 하는 데 있다."

나의 구루(영적인 스승)는 항상 이렇게 깨우쳐 주셨다. 이 말씀은 '나' 혼자만의 해탈이 아니라, '일체중생을 모두 해탈케 하겠다'는 깨달음의 마음을 발하라는 것이다. 곧 과거생에 나의 부모가 아니었던 중생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일체 중생이 나의 부모이자 가장 은혜로운 어머니라는 생각으로 보리심을 발하라는 것이다.

용수보살은 {보행왕정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지구의 흙을 다 부수어 노간주나무 씨앗만한 크기의 환을 만든다 해도 한 사람이 무수한 삶을 되풀이하며 인연 맺었던 어머니의 숫자에는 미치지 못한다."

온 우주에 가득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어머니와 같은 중생들이 윤회의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는데 어찌 방관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티베트불교에서는 무엇보다도 일체중생과 더불어 해탈하는 최상의 보리심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를 수행의 목표로 삼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보리심은 깨달음의 전제이자 뿌리이며, 고갈되지 않는 보물이다.

보리심을 발하는 데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양치는 목자와 같은 발심이다. 양치는 목자는 양들을 다 앞에 보내고 자신은 맨 뒤에 따라가듯이, 일체 중생을 다 성불시킨 후에 자신이 성불하겠다는 발심이다.

둘째는 뱃사공과 같은 발심이다. 뱃사공이 손님을 모두 배에 싣고 함께 강을 건너듯이, 중생과 내가 함께 성불하고자 하는 발심이다.

셋째는 왕과 같은 발심이다. 항상 자신을 만 백성의 위에 놓는 왕과 같이, 내가 먼저 성불한 후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발심이다.

구루는 이 가운데 목자와 같은 발심을 가장 수승한 보리심이라고 설하신다. 하지만 수행성취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중생을 해탈의 길로 인도하는 보살행을 하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라는 경고를 잊지 않으신다.
그것은 마치 두 팔이 없는 어머니가 물에 빠진 아기를 보고 물에 뛰어드는 것과 같아서, 함께 죽을 뿐 서로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력보살의 환생자가 아닌 보통 근기를 지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비와 방편, 공성(空性)과 지혜의 두 팔이 자라날 수 있게끔 먼저 고요한 곳에서 수행을 하여 힘을 얻도록 지도하고 있다. 그리고 본격적인 수행에 앞서 반드시 보리심을 일으키고 자라나게 하는 기도를 한다.

"보리심의 보배를 일으키지 못한 자는 일어나게 하시고, 이미 일으킨 자는 더욱더 자라나게 하소서."

아울러 '일체 중생을 모두 성불시키기 위해 더욱 열심히 정진 수행하여 성불하겠다'는 보리심을 굳건히 발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실제적인 상황에 부딪쳤을 대 보리심을 발한 것과 같은 자비를 베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영적 스승의 구루들은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모든 이익과 기쁨을 남에게 주고, 모든 손실과 고통을 자기 자신이 취하라."

실로 거의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자비이지만, 이 글귀 속에 보리심의 내용이 모두 함축되어 있다. 병원에서 불치의 병으로 죽어가는 환자의 고통과 병을 대신 받는다는 것! 결코 상상조차 쉽지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성불하기를 바란다면 이 가르침대로 수행을 해야만 한다.

티베트불교에는 보리심을 증장시키기 위해 자비심을 기르는 구체적인 수행방편이 많이 있는데, 그 중 가장 널리 쓰여지는 수행법이 '통렌 수행'이다.

통렌 수행은 호흡에 맞추어 행하여 진다. 숨을 내쉴 때는 밝고 흰빛이 나의 몸에서 나와 삼악도에 있는 고통받는 중생들은 물론 육도에 있는 모든 중생들에게 비추되, 그들이 그 빛으로 인하여 행복하고 편안해진다고 관상한다. 또 숨을 들이마실 때는 모든 중생들의 고통이 검은빛으로 나에게 다 들어와서 내가 그들의 고통을 대신 받는다고 관상한다. 이렇게 매일 21번 정도 수행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원한다.

'모든 중생들의 고통은 내가 대신 다 받고, 행복과 기쁨만이 그들에게 충만하여지이다.'

달라이라마는 티베트 명절 법문에서 말씀하셨다.
"우리는 세세생생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살아왔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행복을 얻지 못한 채 괴로워하고 있다면, 자신만을 위했던 삶의 방식이 잘못된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이야말로 그 방법을 바꿀 때가 아닐까?"
진정 자비야말로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소망을 실현시켜 주는 보배이며, 그 축복의 빛은 온 우주에 두루 미치는 것이다.

소걀린포체({티베트의 지혜}의 저자)는 말씀하셨다.
"자비는 동정보다 훨씬 위대하고 고귀하다. 동정은 두려움을 근거로 하고 있으며, 건방진 우월감에 젖은 듯한 느낌이 배어 있기도 하다. 자비심을 기르면 중생들 대부분이 비슷한 방식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고통에 신음하는 모든 중생을 섬기게 된다. 또한 우리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고, 어느 누구보다 우월하지 않음도 알게 된다.
따라서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사람에 대한 첫 반응은 단순한 동정이기보다는 자비심이어야 한다. 그를 존중해야 하며 감사의 마음까지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고통이 우리에게 자비심이라는 거룩한 선물을 준 것이고, 영적인 깨달음에 가장 필요한 자질이 계발되도록 도와준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자비의 보리심에는 상대적 보리심과 절대적 보리심이 있다.
성불의 경계인 구경각(九竟覺 : 완전한 깨달음)을 증득하게 되면 공성을 체득하게 되고, 그 공성(空性)의 텅 빈 우주로부터 자비심은 저절로 넘쳐 나온다. 한낮의 태양이 만물을 두루 비추듯이 온 법계에 두루 미치는 자비, 곧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닌 동체대비(同體大悲)에서 우러나온 자비가 절대적 보리심이다.
반면 중생들이 부처의 본래면목을 회복하고자 육바라밀 등의 자비행을 실천하여 보리심을 단련해 가는 것은 상대적 보리심이다.

다람살라에는 손과 발이 문드러지고 코가 없는 문둥병 환자와 거지들이 가족 단위로 거리에서 구걸을 하고 있다. 티베트 사람들은 초하루와 보름, 그리고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이면 그 문둥병 환자나 거지들에게 동전과 먹을 것을 준비하여 나누어주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사무량심(四無量心)

발보리심과 함께 수행의 전제가 되는 마음이 사무량심이다.
성불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일체법에 자성(自性)이 없음을 깨달아 공성을 증득해야 하는데, 그러한 공성(空性)과 지혜를 깨닫기 위해서는 반드시 보리심을 증장시켜야 하는데, 이 보리심은 사무량심을 통해서 증장되는 것이다.

사무량심은 자(慈) . 비(悲) . 희(喜) . 사(捨)의 네 가지 한량없는 마음이다. 이 넷을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자심(慈心) : 고통은 크게 없으나 행복을 얻지 못한 중생들을 자애하는 마음.
비심(悲心) : 병이나 어려움 속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중생들에 대하여 불쌍히 여기는 마음.
희심(喜心) : 이미 행복을 갖춘 중생들에 대하여 함께 기뻐하고 그 행복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
사심(捨心) : 일체 중생 누구에게나 불평등한 마음을 버리고 평등한 마음으로 대하는 것.

사무량심을 다시 설명하면 이렇다.
자심(慈心)을 냄으로써 다른 이를 해치고자 하는 마음이 없어진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사라지듯, 자애로운 마음은 자연히 중생들에게 해를 끼치고자 하는 마음을 없어지게 하는 것이다.
비심(悲心)을 냄으로써 중생들을 해치는 직접적인 행위를 하지 않게 된다.
희심(喜心)을 냄으로써 중생들을 질투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이 사라지게 된다.
사심(捨心)을 냄으로써 중생들을 일체 중생들에 대하여 애착하거나 싫어함이 없이 평등한 마음을 성취하게 된다.
이상의 사무량심은 곧 청정심으로, 성불에 이르게 하는 복덕을 가장 빠르게 쌓는 길이라고 한다.

아울러 티베트불교에서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방식으로 사무량심을 익혀야 보리심을 낼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첫째, 중생들이 다 행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을 낸다.
둘째, 중생들을 다 행복하게 해주어야겠다고 맹세한다.
셋째, 중생들이 다 행복하기를 기원한다.
넷째, 중생들이 다 행복할 수 있도록 가호를 내려 달라고 부처님 전에 간청을 한다.

이와 같이 티베트불교에서는 자 . 비 . 희 . 사의 무한히 넓은 마음을 하나씩 깊이 새기면서, 그 마음을 반복하여 일으킬 때 진정한 보리심이 일어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생기차제와 원만차제

티베트불교 수행은 크게 생기차제(生起次弟)와 원만차제(圓滿次弟)의 두 단계로 구분짓고 있다. 차제는 행법(行法)이라는 뜻이며, 이 두 차제는 모두 깨달음의 지혜를 얻기 위한 방편이다.

생기차제는 본존불에 대한 관상과 진언을 통하여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는 인(因)을 심게 하는 수행이요, 원만차제는 스승의 가르침을 통하여 그 자리에서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 하게 해주는 수행이다. 이 둘을 우리식으로 풀이하면, 원만차제는 여러 단계를 거치지 않고 가장 원만한 깨달음에 이르는 돈오(頓悟)의 수행법이요, 생기차제는 한 단계 한 단계씩 깨달음을 이루어가는 점수(漸修)의 수행법과 비슷하다.

원만차제는 중생과 부처가 둘인 상대적인 경계를 인정하지 않고, 일체 유정이 다 본래 부처라는 지견으로 수행한다. 곧 방편을 빌리지 않고 본연의 절대적 진리로 직접 들어가는 것이다. 근기가 아주 수승한 사람은 생기차제의 수행을 거칠 필요 없이 직접 원만차제의 수행을 하게 된다. 따라서 제자의 근기를 성숙시키고, 그 후에 자성의 본모습을 인지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먼저 생기차제의 수행을 거치되, 먼저 업장부터 정화하여야 한다. 다음으로 불보살의 관상을 통하여 부처의 색신(色身)을 성취하고, 마지막으로 공성(空性)의 수행을 통해 부처의 법신을 성취하게 된다.

이 생기차제법에 따라 , 대부분의 티베트 사람들은 자신과 특히 상응하는 본존불을 정하여 진언을 외우고 관상을 한다. 먼저 공성진언인 '옴 숴바와 수다살바 달마 숴바하 수다함'을 하여 공성을 견고히 관상한 다음, 본존의 모습을 생각으로 일으킨다. 일단 본존을 일으킨 후에는 자신이 관상으로 지은 부처가 아닌 무시 이래의 본래 부처라는 확신을 확고하게 갖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공성을 수행하여 견고한 기초 위에 본존을 생기해야 하기 때문에, 공성의 수행은 본존요가(본존불을 이루는 수행)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본존요가를 오직 생기차제라고만 보기보다는 원만차제도 포함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밀교의 원만차제 수행 가운데에서도 공통적으로 본존요가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티베트불교 안에는 각 파(派)마다 고유한 전승을 가진 수행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공통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수행이 본존요가이다.

시방에 본래 있는 불보살을 본존불인 지혜존(智慧尊 : 관상의 대상이 되고 자신에게 성취와 가피를 내려 주는 본존불)으로 모시고, 자신의 몸을 수행의 대상으로 정한 불보살과 똑같은 모습으로 관상하는 것을 삼마야존(三摩耶尊 : 계율존이라 번역되며, 범부인 중생이 수행의 방편으로 자신을 본존불로 관상했을 때의 본존불)이라 부른다.

본존 만트라를 모시고 삼마야존을 선명히 관상하여 자신이 진실로 본존불과 똑같은 부처라는 확신과 신심이 확고해졌을 때 지혜존인 본존불과 상응할 수 있게 되고, 그의 가피를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혜존과 삼마야존이 잘 상응하여 가피가 충만해졌을 때 자타가 둘이 아닌 불이(不二)의 공성 상태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 단계를 원만차제의 단계라 한다.
이를테면 한 가지 수행 안에 생기차제와 원만차제가 다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다만 원만차제 수행만을 할 때는 고요하면서도 지극히 또렷한 광명의 상태로 생기차제를 대신한다.

원만차제 수행을 대표하는 법으로 '마하무드라'라 불리우는 까규파(닝마파, 겔룩파, 샤캬파와 함께 티베트불교의 대표적인 4개 종파 가운데 하나)의 대수인(大手印) 수행과 '마하무디'라고 불리우는 닝마파의 대원만 수행을 들 수 있다. 이 두 수행은 모두 지관(止觀)수행을 포함하고 있으며, 한국의 참선법과 흡사한 면이 많이 있다.

 

금강살타(Vajrasattva ; 金剛薩唾) 수행

금강살타(金剛薩唾)는 업장이 다 소멸되었을 때

 

 

회복하게 되는 본래의 청정한 부처님으로,

 

분을 의지하여 닦는 금강살타 수행은 생기차제의 대표적인 수행이다. 이 수행은 티베트불교의 각 파에서 필수로 하고 있는 정화수행법으로, 기초적인 네 가지 수행[四加行] 중에서 귀의 대예배를 한 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많은 성취자들이 강조하는 금강살타 수행은 수행의 시작이자 구경(究竟)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수행자는 먼저 자신의 업장을 청정히 하여 오독번뇌(五毒煩惱 : 탐욕 . 분노 . 어리석음 . 교만 . 의심)로 물들여진 법기(法器)를 완전히 정화시키고 나서야 비로소 법수(法水)가 담겨지게 되어 성불에 이를 수가 있다.
그래서 업장 소멸을 위한 수행으로서 금강살타가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업장이 다 소멸되면 본연의 불성이 드러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구경의 금강살타라고 말하여진다.

많은 사람들은 번잡한 관상과 만트라를 모셔야 하는 생기차제 수행보다는 그대로 자성의 본모습을 관조하는, 언뜻 보기에 무척 간단하게 느껴지는 원만차제 수행만을 하기 원한다.

그러나 황달에 걸린 환자의 눈에는 흰그릇도 누렇게 보이는 법이다. 그런 환자에게는 그릇이 흰색이라는 것을 강조하기보다 황달을 고쳐 스스로 흰 것을 희게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적절한 방법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는 본래 부처이지만 무시 이래로 지어온 업장에 가리워져 자신이 부처임을 알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그 업장을 정화하여 자신이 본래 부처임을 스스로 알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생기차제 수행이요, 그 중에서 가장 수승하고 효율적인 수행이 바로 금강살타 수행이라는 것이다.


금강살타 수행법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 수행자는 먼저 자신의 머리 위 30센티미터 정도 거리 위에 연화대가 있고, 그 연화대와 자신의 범혈(梵穴 : 정수리)이 연꽃 줄기 같은 대롱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관상한다.
② 연화대에는 일륜과 월륜이라는, 달과 해를 겹쳐 놓은 것 같은 방석이 놓여져 있고, 방석 위에 금강살타께서 앉아 계신다고 관상한다. 금강살타께서는 흰 색의 몸을 하고 계신데, 마치 설산에 햇빛이 비추었을 때 눈이 부셔서 똑바로 볼 수 없을 만큼 빛나는 모습이다. 그리고 지혜의 상징인 금강저(金剛杵)를 쥔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자비의 상징인 요령을 든 왼손은 허리에 대고 계신 모습이다.
③ 이때 금강살타의 가슴 중앙 부분에 흰색의 '훔'자가 나타났다고 관상하고, 그 주위를 금강살타 만트라가 한 글자씩 동그랗게 에워싼 채 오른쪽으로 돌아가고 있는 형상을 떠올린다. 그리고 '훔'자와 만트라의 각 글자에서 빛이 나오고, 감로가 흘러나온다고 관상한다.
④ 이윽고 만트라에서 나온 감로는 범혈과 연결된 대롱을 타고 흘러들어온다. 그리고 자신이 세세생생 지어온 무명 업장들을 씻어내며 석탄 같은 검은 물이 되어 각 털구멍으로 빠져나간다고 생각한다. 또 병이 있는 사람은 감로에 의해 병의 장애가 피고름의 모양으로 빠져나간다고 생각하고, 사업이나 공부 등의 장애가 있는 사람은 나쁜 업장이 전갈이나 독거미 등 독충의 모습을 하고 항문 쪽으로 빠져나간다고 관상한다.
⑤ 초보자로서는 이러한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관상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금강살타의 모습 . 만트라 . 감로가 흘러나오는 모습 등을 잠깐잠깐 떠올리며 금강살타 만트라를 원하는 만큼 외운다.

금강살타 만트라는 그 음절이 백개라 하여 일명 '백자명진언(百字明眞言)'이라고 불린다. 불보살님들의 모든 만트라가 이 백자명에서 파생되어 나갔기 때문에, 이 진언을 수지독송하게 되면 모든 불보살의 심주(心呪)를 모시는 것과 같아서 가피의 힘도 그만큼 크다고 한다.

금강살타 만트라를 한글로 표기하면 아래와 같다.

옴 벤자 싸또싸마야 마누 빠라야
벤쟈 싸또띠노빠
티타디또 메바와
쑤또쇼 메바와
아누라또 메바와
쑤뽀쇼 메바와
싸르와 씨띠 메빠야차
싸르와 깔마 쑤짜메
찌땀 씨리얌 꾸루훔
하하하하호
바가완 싸르와 타타가따
벤자 마메무짜 벤자 바하와
마하 싸마야 싸또아

⑥ 금강살타 만트라를 다 외우고 나면 '옴 벤자 싸또 훔' 이라는 보궐진언(망상 등으로 수행에 집중하지 못했던 것을 보충하는 진언)을 108번 염송한다.
⑦ 그리고 나서 금강살타를 향해 자신의 죄업을 참회하는 기도를 올린다. 그런 뒤 금강살타께서 "너의 업장이 이제 모두 청정해졌느니라"라고 기쁘게 말씀하셨다고 관상하고, 금강살타께서 빛으로 화하여 자신과 하나가 되는 모습으로 회향되는 것을 떠올린다.
⑧ 마지막으로 수행자는 잠시 동안 명상을 하고 기도를 마친다.

수행자가 수행 과정에서 계율을 범한 것 등의 모든 허물을 정화시켜 주는 데도 금강살타 수행은 가장 효율적이라고 한다. 물론 자신의 허물을 간절히 뉘우치고 다시는 범하지 않겠다는 강한 결심이 전제가 된 상태라야 효과가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리고 금강살타 만트라는 자신의 업장뿐만 아니라 죽은 영혼의 업장을 정화시켜 주기 위해서도 사용되며, 특히 수행 중에 오는 장애나 병 등을 막아준다고 한다. 또한 수행 중에 여법(如法)하지 못했던 부분이나, 내용을 빠뜨렸거나 산란했던 부분들을 보궐하는 역할도 한다. 그래서 모든 수행을 하고 난 뒤에는 마지막으로 반드시 이 만트라를 7번 내지 21번 염하여 보궐진언을 대신하기도 한다.

나는 인도 따시종 사원에 있으면서 한국 스님들이나 많은 외국인들이 기초 수행의 단계, 특히 금강살타 수행을 할 때, 실제로든 꿈으로든 자신들의 업장이 많이 정화되는 것을 느끼고 기뻐하는 경험담들을 많이 들었다.

이제 금강살타 수행에 얽힌 짧은 일화 하나를 소개하며 이번 호의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따시종에서 근래의 최고 성취자로 꼽는 독댄(무문관 수행자로써 깨달음을 성취하신 분을 가리킴) 암잠은 일생 동안 금강살타 수행을 위주로 정진을 하셨다.
그는 무문관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자신의 몸 하나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벼랑 위 좁은 동굴에서 거의 잠을 자지 않고 보리 가루만 먹으며 6년 동안 백자명진언을 1백만 독씩 1백 번을 하였다.
이후 그는 깊은 삼매를 성취하여 잠을 조복받고 무문관 수행을 할 수 있는 힘을 얻음은 물론 마침내 최고의 수행성취를 하였다.

암잠은 1988년 86세를 일기로 열반하였는데, 다비를 하였을 때 150여 과의 오색 사리와 함께 심장과 혀가 불에 타지 않고 싱싱하게 남는 이적을 보여, 후세 수행자들의 귀감이 되었다.

현재 따시종의 티베트 스님들은 무문관을 하기에 앞서, 백자명진언을 100만 독하고 나서야 무문관에 들어가는 것을 불문율로 하고 있다.


▶ 출처 문헌

- 월간『법공양』 2546년 5월호

 

 

설오 스님의 티베트 불교 강의 - 공양과 뉵네 수행  

 

설오스님(인도 다람살라에서 티베트불교 수행中)

티베트불교의 공양


공양이란

부처님께서는 [대반야경(大般若經)]에서 “자비로 상수(上首)를 삼고 방편으로 구경을 삼는다”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자비를 으뜸으로 삼고 방편으로 일체 중생을 제도한다는 말과도 통하는 것이다.

티베트불교는 수승한 방편을 가지고 한 생에 성불할 수 있는 ‘즉신성불(卽身成佛)’ 을 주장하며, 성불을 위해 수행하는 과정에서 쉽고도 빠른 시일 내에 성취할 수 있도록 갖가지 방편을 만들어 놓았다. 또한 성취한 다음, 중생을 제도하고 이롭게 하는 데도 세세하고 많은 방편들을 중생의 근기에 맞게 효과적으로 제도할 수 있도록 활용하고 있다.

그 방편들 가운데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공양(供養)이다. 공양은 그 글자의 뜻처럼 ‘웃어른에게 음식을 대접한다’는 의미만을 지닌 것이 아니다. 누구를 위해 바치는 것을 넘어서서, 내 육체를 수양(修養)하고 정신력을 함양(涵養)시키기 위해 올리는 것이다.
곧 공양이라는 단어 속에는 무엇인가를 바쳐서 ‘참 생명력을 기른다’는 뜻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공양은 불보살님이나 삼보 전에 올리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와 같은 중생, 우리보다 못한 중생에게도 공양을 올려 ‘참 생명’을 일깨우고 ‘깨달음’을 이루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실로 티베트에는 이와 같은 공양의 방편이 매우 다양하다. 한 예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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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따시종 사원에서 대중스님들 모두가 의례적으로 1년에 한 번씩 거행하는 중요한 기도에 몇 번 참석한 적이 있다.
티베트 사원의 기도 때에는 음의 높낮이가 다른 각종 관악기와 타악기가 많이 사용되는데 대략 20여 가지가 넘는다. 악기 가운데 새벽의 여명을 타고 멀리 퍼지는 소라고동도 있는데, 그 소리는 마치 우리의 영혼을 히말라야 고원 만년설의 나라로 인도하는 듯 하다. 그런가 하면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잘링’, 사람 정강이뼈로 만든 탁하고 쉰소리를 내는 법구,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는 호각들도 쓰인다.

인스턴트 문화에 길들여진, 이른바 문명 국가에서 온 나는 번거로운 것은 피하고 편리하고 단순한 것에 길들여져 있었기에, 그러한 의식들이 번잡하고 조금은 과장되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보다못한 나는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복잡한 의식 과정과 법구들이 동원되어야 합니까?”

그때 스님은 이렇게 설명해 주셨다.
“이 기도의 목적은 모든 불보살님과 호법신들에게 공양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육도에서 태란습화(胎卵濕化)로 태어난 각종 업생(業生)의 중생들이 이 기도 소리를 듣고 해탈을 얻을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하지만 그들이 들어서 해탈을 얻을 수 있는 소리의 높낮이와 톤은 모두 다르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종류의 법구를 사용하고 복잡한 의식을 베푸는 것이다.”

곧 눈이 열린 성취자들이 기도를 통해 중생들이 해탈을 얻을 수 있는 소리를 관한 다음, 듣거나 보기만 해도 즉시 해탈할 수 있게끔 만든 것이라는 말이다. 그 뒤 나는 번잡한 법구들의 소리를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참된 공양의 의미가 그 속에 깃들어져 있음을 깊이 공감하면서...

실로 티베트에서는 시방세계에 계신 불보살님과 업이 다른 사생육도의 중생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의식들이 다양하다.
그들은 기도의식에서 주로 네 가지 종류의 공양을 올린다. 물론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이 보리가루와 버터를 섞어서 만든, 각종 모양의 돌마를 올리는 ‘돌마 공양’이다. 이것은 원래 인도에서 과자나 음식물로 올리던 것을, 티베트 사람들이 주식인 보리가루와 버터를 섞은 돌마를 사용하도록 현실에 맞게 바꾼 것이다.

이 외에도 물로 공양을 올리는 수공(水供)과 불에다 공양물을 태워 올리는 화공(火供), 그리고 연기로 공양을 올리는 연공(煙供) 등이 있다. 그리고 전문적인 수행의 한 방편으로 손꼽히는 만다라공양(曼茶羅供養)도 있다. 이제 이들 공양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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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공(水供)

티베트 사람들은 아침마다 부처님 앞에 정수(淨水)를 일곱 잔 내지 스물한 잔, 또는 그 이상을 올리면서 자신이 바칠 수 있는 많은 공양물을 관상하여 대신한다.

어떤 린포체는 정수를 올리면 우리의 청정심이 증장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맑은 물은 어디에나 흔하게 있기 때문에, 인색한 마음 없이 항상 풍족하게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실로 많은 잔의 정수를 부처님 전에 매일 올리는 행위는 복덕을 쌓고, 청정한 자성심(自性心)을 찾게 하는 아주 수승한 방편이다.

티베트 사람들이 기도의식 속에서 물로 공양을 올리는 대표적인 신은 공덕을 쌓아주고 재물을 가져다준다는 재신(財神)이다.
이 재신을 티베트 말로는 ‘잠바라’ 혹은 ‘남세’라 하는데, 우리 사찰의 수문장인 사천왕(四天王) 가운데 한 분인 비사문천이기도 하다.
전설에 의하면, 비사문천은 한때 마왕과 결투를 하다가 몸에 심한 상처를 입었다. 그때 상처 입은 몸을 물에 담그자 편안함과 시원함을 느꼈기 때문에, 그 뒤부터 특히 물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티베트 사람들은 승려나 재가신도를 막론하고 모두 재신(財神)을 모신다. 왜냐하면 수행을 하든 세속의 삶을 영위하든, 재물은 복덕을 쌓을 수 있게 해주는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라마가 불사를 하는 데 재신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세 분이나 되는 재신(財神)의 상을 물이 담긴 유리컵에 넣어 모신 것을 본 적이 있다. 이것은 수공(水供)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연공(煙供)

티베트 사람들은 달라이라마나 린포체들을 영접할 때 젖은 솔가지나 향나무 . 측백나무 가지를 꺾어 길 곳곳에 쌓아놓고 연기를 피운다. 마치 달라이라마나 린포체가 오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기라도 하듯이....
그러나 그것은 신호가 아니고 연기공양의 일종이다. 대부분의 티베트 가정에서는 깡통의 아랫부분과 옆부분의 구멍을 뚫어, 연기를 피우는 향통을 들고 아침마다 집 주위를 흔들며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티베트 사람들의 의식 속에 아주 밀접하게 자리하고 있는 이 연기 공양은 주위 환경을 정화하고 나쁜 기운을 몰아내는 데 사용된다. 특히 수행을 하는 과정에서나 생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지은 허물을 정화시켜 준다고 하여 거의 매일 연기향을 피운다. 이 연공도 유래가 전해지고 있다.

부처님 당시, 한 제자가 멀리에 계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였다. 그러나 먼 곳까지 갈 수가 없자, 생각 끝에 좋은 향내가 나는 향나무 가지를 많이 쌓아놓고 연기를 피워 공양을 하였다. 그러자 그 연기가 향기와 함께 부처님 전에까지 전달되었다.
나도 이와 비슷한 체험을 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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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의 훌륭한 고승이셨던 독댄 암잠께서 열반한 후 첫 제삿날, 나는 옥상에서 생솔가지를 많이 쌓아놓고 연기로써 공양을 올렸다.
그런데 그때 신기하게도 연기가 용트림을 하듯이, 똘똘 뭉쳐서는 긴 용이 빠져나가듯이, 곧바로 암잠 큰스님의 영구를 모신 법당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 광경을 보고 나를 비롯하여 함께 있던 모든 도반들이 감탄을 하여 크게 환희심을 내었다.

일반적으로 티베트 사원에서는 법당에서 대중들이 기도 의식을 행할 때 밖에서 연기공양을 올리는 것이 상례이다.


화공(火供)

한편 공양 의식 가운데 나와 가장 인연이 있고 수승하게 생각되는 것은 공양물을 전부 불에 태워서 올리는 화공(火供)이 아닌가 싶다.
그러면 화공에 관련된 짧은 일화를 소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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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만에서 까루린포체를 모시고 뉵네수행에 참석하였을 때였다. 그때에도 반드시 기도 끝에는 화공(火供) 의식과 함께 천도재를 거행하였다.
의식단 주위에 음식물 . 향 . 기름 . 우유와 갖가지 약초등을 쌓아놓고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한 접시씩 불 속에 집어넣었다. 나도 활활 타는 불 속에 공양물을 붓고는 합장하고 돌아나왔다. 그때 나는 고소한 음식 냄새와 함께 활활 타는 불길이 두 어깨를 짓누르던 업장과 번뇌까지도 다 태워버리는 듯한 가벼움을 느꼈다.
그때뿐만이 아니다. 그 뒤 여러 번 화공에 참석할 때마다, 나는 이와 비슷한 감정을 체험하곤 하였다.

“화공은 우리의 인색한 마음을 자비심으로 대치하기 위해 생겨난 수행법이다.”
누군가가 내게 일러주었던 이 말처럼, 화공은 불 속에 모든 공양물을 태워 올림으로써 가슴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던 한가닥 남은 인색함마저 남김없이 태워없앤다는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

티베트 사원에서는 기도회향을 하기 전에 동서남북 사방에 단을 차려놓고 화공을 한다. 사방을 지켜 주신 호법신장들과 불보살님께 음식을 태우는 향으로써 감사의 공양을 올리는 의식이다.
이때 신도들은 악업을 소멸해 달라는 의미로 검은 깨를, 선업이 증장되라는 의미로 흰 깨나 보리가루 . 우유 등을, 사업이 번창하게 해달라는 의미로 버터나 기름 등을 불에 넣어 올린다. 또한 아픈 사람의 병을 낫게 해달라는 의미로 각종 약초도 불에 넣어 공양한다.
티베트 사람들의 화공의식은 화장을 할 때에도 적용되는데, 그 예로 독댄 암잠의 다비식 때의 광경을 들려드릴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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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댄 암잠의 다비장에서 티베트 사람들은 저마다 손에 들었던 향과 흰 ‘카다(티베트 인들이 예불 때 사용하는 명주 천)’를 암잠의 영구에 올리고, 머리를 운구차에 대며 한 사람씩 작별을 고하였다. 이어 영구는 쌓아놓은 장작더미 위에 올려졌다. 그와 동시에 라마들은 각종 공양물을 앞에 차려놓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화공의식은 매우 진지하게 약 3시간에 걸쳐서 행하여졌고, 암잠 큰스님의 영구는 공양물과 함께 활활 타올라 시방에 계신 불보살님께 올려졌다.
그리고 라마들에 의해, ‘불보살님께서 거룩한 공양을 받으시고 망자의 남은 업장이 완전히 다 소멸되도록 가피를 내려 달라’는 내용의 관상과 기도가 진행되었다. 그런 뒤 마지막으로 모든 공덕을 망자와 시방법계에 가득한 중생들의 성불을 위해 회향하며 다비식은 끝을 맺었다.


만다라공양

이제 만다라공양에 대해 살펴보자.
밀교에서는 모든 부처님과 보살 등 성중들이 모여 있는 곳을 만다라(曼茶羅)라고 일컫는다. 그래서 거룩한 성현들에게 모든 값지고 귀한 것을 공양 올리는 것을 만다라공양이라고 한다.

사가행(四加行 : 네 가지 기초수행이라는 뜻으로, 오체투지 . 금강살타수행 . 만다라공양 . 구루요가 등을 가리킴) 가운데 세 번째 단계가 스승과 불보살님들께 공양을 올리는 만다라공양이다.
이 만다라공양의 방법과 순서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① 먼저 지름이 6인치 가량 되는 청동으로 된 둥근 만다라 판(板)을 앞에 놓는다. 그 판은 마치 쟁반을 뒤집어놓은 것과 같은 모양인데, 그 판을 자신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② 자신의 오른팔에 지혜의 맥이 흐르고 있다고 관상하며 팔뚝을 세 번 만다라 판에 문지른다. 그것은 지혜에 의해 깨달음을 가로막는 탐 . 진 . 치 삼독의 번뇌를 없애는 것을 상징한다.

③ 다음으로 ‘옴 벤자 부미아 훔’이라는 황금의 땅을 만드는 진언을 염송하며, 물을 들인 쌀이나 보리 등을 만다라판에 섞어 놓으면서 수미산(須彌山) . 4대부주(四大部州) . 8대소주(八大小州) 등을 관상하며 수놓는다.

황금의 땅은 번뇌가 없는 순수한 지혜를 뜻하며, 쌀이나 보리는 이 법계에 있는 모든 진귀한 보배와 음식물 등의 대체물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실제로 금이나 은 . 진주 . 옥 등도 섞어 사용한다. 곧 그러한 보배들을 시방에 계신 불보살님들께 공양을 올린다고 관상하며 정성스럽게 놓는 것이다.

관상하는 공양물 가운데는 칠정보(七政寶), 곧 나라를 다스리는데 필요한 금륜(金輪) . 현명한 황후 . 신하 . 하녀 . 코끼리 . 말 . 보석 등의 7가지 보물과 팔길상(八吉祥)인 일산(日傘 : 햇빛 가리개) . 쌍어(雙魚) . 보병 . 연꽃 . 법라(法螺 : 고동이 왼쪽으로 돌아간 소라) . 길상결(吉祥結 : 길상한 매듭) . 당(幢 : 법당을 장엄할 때 쓰는 비단) . 법륜(法輪)도 포함된다.
또한 여섯 명의 공양녀가 옆에서 발 씻는 물 . 마시는 물 . 꽃 . 향 . 등 . 향수 . 음식물 . 음악 등 8가지를 올리고 있다고 관상한다.

④ 그리고 나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도를 올린다.
“시방의 모든 불보살님들께 이 공양을 올리오니, 이 공덕으로 저를 비롯한 모든 생명들에게 가피를 내려 주십시오.”

⑤ 마지막으로 정성스럽게 수놓은 만다라를 강물에 띄워 없애 버린다. 이것은 연기성공(緣起成空), 곧 법계의 모든 것은 연기(緣起)에 의해 이루어졌고, 그 본성은 공(空)한 것이라는 진리를 상징한다.

만다라공양은 궁극적으로 공양을 올리는 의식과 관상의 힘을 통하여 빠른 시일 내에 복덕자량을 쌓고자 하는 방편이라고 할 수 있는데, 10만 번 정도 시행할 것을 강조한다.

만다라공양 . 수공 . 연공 . 화공 .... 이러한 공양들은 자량(資糧)을 기르기 위한 수행방편이다. 곧 자량(資糧)은 먼길을 떠나는 여행자가 준비해야 하는 노자돈이나 식량에 비유할 수 있다. 성불의 길을 가려면 복덕자량(福德資糧)과 지혜자량(智慧資糧)이 구족되어야 한다.

보시 . 지계 . 인욕 . 정진 등을 통해 유루(有漏)의 복을 짓는 행위는 복덕자량을 쌓는 것이고, 수행을 통해 선정과 지혜를 닦는 것은 지혜자량을 쌓는 것이다.
다시 말해 복덕자량을 양초에 비유한다면 지혜자량은 양초 위에 당겨진 불꽃이라 할 수 있다. 불꽃이 밝고 오랫동안 빛나려면 충분한 양의 양초가 마련되어야 하듯, 수행자가 성불을 위해 정진을 길을 가려면 오랫동안 타오를 수 있는 양초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장애가 없는 수행의 길을 위하여 티베트 사람들은 복덕자량을 쌓는 행위를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특히 보름달이 뜨는 날에 보시를 하고 수행을 하면 그 공덕이 만 배 이상 커진다 하여 보름날은 학교와 일터를 쉬면서 선행을 하거나, 거지 등 가난한 사람이나 어려운 이웃들에게 많은 보시행을 한다.
우리 불교계에도 공양을 통하여 자량을 기르는 수행방편들이 잘 정립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뉵네 수행

내가 경험한 티베트불교 수행 가운데 어떤 수행이 가장 실질적이고 효과적이냐고 묻는다면, 제일 먼저 뉵네수행을 소개하고 싶다.

티베트 어로 ‘뉵네’란 ‘뉵네샘’의 줄임말로, ‘불성자리에 안주한다’는 뜻이다. 곧 평소에 번뇌와 상응하던 신구의(身口意) 삼문(三門)을 거둬들여 본래의 청정무구한 자성자리인 깨달음의 상태와 상응케 한다는 의미이다.

티베트 사원에서는 새해를 맞이한 정월 대보름을 기점으로 하여 세 차례 이 수행을 하는데, 한 차례에 2박 3일 정도 걸린다.
그들은 먼저 팔관재계(八關齋戒)를 받고 절에서 숙식을 함께 한다. 팔관재계는 재가의 불교 신도로 하여금 일정 기간 동안 출가한 스님네와 같이 청정행을 닦게 한다는 데 그 본의가 있으며, 8계는 다음과 같다.

① 살생을 하지 마라(不殺生)
② 훔치지 말라(不偸盜)
③ 음행하지 말라(不淫)
④ 거짓말하지 말라(不妄語)
⑤ 술 먹지 말라(不飮酒)
⑥ 꽃다발 쓰고 향을 지니거나 몸에 바르지 말려, 노래하고 춤추는 데 가서 구경하거나 듣지 말라(不着香華?不香塗身 不自歌舞倡伎不往觀聽)
⑦ 높고 넓고 크게 꾸민 평상에 앉지 말라(不作高廣大床)
⑧ 때 아닌 때에 먹지 말라(不非時食)

이때만큼은 오후에 음식을 먹지 않고 여덟 가지 계율을 청정히 지키면서, 절하고 만트라를 하는 것 외에 일절 잡담과 세간의 잡사를 금한다.

첫날은 점심을 주고, 저녁에는 우유 등 마실 것만을 준다. 그리고 그 시간 이후 하루를 꼬박 지내고 다음날 아침까지 일체 음식은 물론 물도 입에 대어서는 안된다.
그리고는 묵언을 하면서 대중이 함께 천수천안관세음보살님께 기도를 드린다. 기도는 ‘신묘장구대다라니’와 ‘옴 마니 반메 훔’ 만트라를 위주로 하는데, 천수관음을 찬탄하면서 오체투지를 하는 것이 많이 들어 있다.

36시간 동안 밥은 물론 물도 먹지 않는데다가 대중과 함께 오체투지를 하기 때문에 위장은 비어 열이 나고 입은 무척 마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지막날 밤에는 입술이 새까맣게 타고 혈색이 창백해진다.

주문을 외우는 것 외에는 묵언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절대로 입을 열어 말을 해서는 안된다. 만약 그 가운데 누군가 견디기 어렵다고 하소연을 하기라도 한다면 대부분은 쓰러져 버릴 지경이다. 다행히 말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으므로 묵묵히 참고 견디는 것이다.

정초에 많은 티베트 사람들은 라마들과 함께 이 수행에 동참하는데 청정한 마음으로 이 뉵네수행을 열두 차례 참석하면 초지보살[初地菩薩 : 성불하기 전에 거치는 보살의 열두 가지 지위 가운데 하나로, 환희지(歡喜地)라고도 한다. 이 경지에 오르면 언제나 환희로움이 가득하다]의 지위에 오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연달아 세 차례를 다 참석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은 가족이 번갈아가며 교대로 참석한다. 이제 뉵네수행의 가피력에 얽힌 두 편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이번 호의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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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겨울, 나는 대만에서 죽첸린포체(현재 둑파 까규파의 최고 수장인 법왕. 북인도에 있는 다질링에 본사가 있고, 유럽 쪽에 많은 제자들이 있으며 대만에도 그가 세운 밀종 도량이 여러 곳에 있음)가 주관하는 뉵네수행에 처음 참석하였다. 그때는 뉵네의 의미도 모르고 누군가 ‘삼악도의 과보를 앞당겨 받는 고통스런 수행’이라고 하는 말만을 들었던 터였다.
일찍이 보현보살도 허공을 덮고도 남을 업장이 있다 하셨는데, ‘나는 그동안 알게 모르게 지은 업장이 좀 많을까’ 싶어 약간은 호기심 어린 기분으로 참석하였다.

법왕이라 불리우는 린포체가 직접 이끄는 기도는 엄중하고 가피가 충만된 듯하였지만, 마지막날 밤이 되자 모두들 입술 부위가 새까맣게 타고 얼굴이 창백한 탈진상태가 되었다.
회향하는 날에는 새벽 2시에 일어나 3시간 동안 기도를 하고, 금식과 묵언을 트는 의미의 감로수를 받아 마시게 되었다. 그때 그 한 방울의 감로수가 얼마나 달고 감사하던지....

마지막날 밤이었다.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는데 머리는 너무 맑아 거의 잠이 오지를 않았다. 그런데 비몽사몽간에 누군가가 삼악도의 과보가 눈앞에 펼쳐질 것이라는 말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세계지도가 눈앞에 펼쳐지는가 싶더니 우리나라 지도와 함께 아비지옥이라는 글씨가 나타났고, 잠시 후 속가의 아버님이 나타나셔서 ‘삼보를 비방하고 살아 있는 생명의 생살을 많이 먹어서 받게 되는 아비지옥의 과보’에 대해 말씀하셨다. 깜짝 놀라 자세히 보려 하니 그러한 정경이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꿈에서 깨어나자 갑자기 부모님 소식이 궁금해지면서 불안해졌다. 기도를 마치고 처소로 돌아와 한국으로 전화를 몇 차례 하였으나 집에는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가까운 친척집으로 전화를 걸자, 친척분은 깜짝 놀란 목소리로 “어떻게 알고 전화를 했느냐”며, 아버님이 이틀 전 밤중에 귀가를 하시다가 공사중인 맨홀에 빠져 얼굴에 심한 상처가 나서 입원중이시라 하였다.

티베트불교에서는 중음의 상태에서 어두운 구덩이로 빠지는 느낌이 들면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아버님께서 아비지옥에 가실 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왜냐하면 평소에도 술을 많이 드셨던 아버님은 집안의 맏딸인 내가 도움이 되기는커녕 출가해 버리자 크게 실망하시고 매일같이 술을 드셨다. 그리고는 식구들을 괴롭히고 삼보를 비방하였다. 나는 자신의 출가로 인하여 가족들이 고통 속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 하고, 아버님이 악업을 끊임없이 짓는 것이 너무도 안타까웠으나 별다른 대책이 없었다.
그런 가운데 가까스로 친척의 도움으로 어머니와 통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님, 제가 뉵네 기도에 참석한 공덕으로, 아버님께서 돌아가시지 않고 그만했던 것 같습니다.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후에 49재를 잘 지내드리는 것보다 지금 기도를 해드리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평소에도 불심이 깊으신 어머니는 곧 통장으로 50만 원을 넣어 주셨다. 나는 50만 원을 비자카드로 인출하여, 4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남부 지방에 계시는 죽첸린포체를 다시 찾아뵈었다.
“아버님이 아직도 병원에 입원하고 계십니다. 아버님께서 지옥에 가실 과보를 면하고, 이 생에서 업장을 녹여서 불심이 생겨나도록 가피를 내려 주십시오.”

린포체는 별다른 기도를 하라는 말씀도 않으시고 당신께서 ‘알아서 하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별로 미더워 하지 않는 나의 표정을 보더니, 웃으며 가방에서 매듭을 지어놓은 끈을 꺼내었다. 그리고는 그 매듭에 ‘후후’ 입김을 몇 번 불어넣더니 아버님께 보내드리라고 하였다.
나는 약간은 미심쩍은 마음이 없지 않았으나, 아버님을 위하여 아미타불상 조성과 사리탑 조성 불사에 동참하고 인등 공양 등을 올리고는 타이페이에 있는 숙소로 밤차를 타고 돌아왔다.

처소에 도착하자마자 피곤에 지쳐 잠깐 사이에 잠이 들었는데, 꿈에 너무도 생생하게 내가 한국의 속가집으로 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버님은 길목에서 아주 환한 미소를 띠고 나를 반기셨다.

고지식한 시골농부인 아버님은 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평소에 나에게는 거의 밝은 표정을 선사하신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중학교 3학년 때까지도 혹시 친아버지가 아닌가 하고 의심을 일으키곤 하였다. 그런 아버님께서 꿈에 나타나 너무도 밝은 미소로 나를 반기며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어보시는 것이었다.

“아버님께서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이 되어 뵈러 왔습니다.”
그러자 아버님은 상처가 아문 듯한 얼굴에 난 갈색 흉터를 보이시며 오히려 격려를 해주셨다.
“이제 다 나았으니 걱정하지 말고 대만으로 돌아가 공부나 열심히 하여라.”
평소에 술을 좋아하시고 농사일을 많이 하신지라 얼굴빛이 검고 붉으셨는데, 꿈속에서의 얼굴은 갈색 상처 부위를 제외하고는 희고 빛나는 모습이었다. 나는 약간은 아쉬운 마음에 말씀드렸다.
“그러면 어머님이라도 뵙고 가겠습니다.”
“네 어머니도 건강하고 편안하게 잘 있으니 돌아가서 공부나 열심히 해라.”
그래서 나는 그냥 대만으로 발길을 돌리던 중 꿈에서 깨어났다.

꿈이 너무도 생생하여 곧장 속가로 전화를 하였더니, 아버님의 수술 결과가 좋아 조만간 퇴원을 하실것이라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그 이후 뉵네수행을 몇 번 더 참석하였는데, 그때마다 가족들이 가피를 입고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들과의 원결이 풀리는 등 좋은 징조들이 많았다.

그 뒤 감사하게도 아버님은 내가 스님이라는 것을 친척과 이웃들에게 자랑스럽게 말씀하시게 되었다. 그리고 집에 조그마한 불단을 마련하여 향과 다기물도 올리고 삼배도 드리시는가 하면, 식사 때에는 반드시 합장하고 나무아미타불을 10번 하신후에 드셨으니, 이 얼마나 큰 뉵네수행의 가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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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뉵네수행에 함께 참여했었던 한 대만 청년은 30세쯤 돼 보이는 유난히 얼굴이 희고 해맑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의사로부터 백혈병이라는 난치병 선고를 받은 병약한 몸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던중 그는 친구의 소개로 뉵네수행을 알게 되었고, 초인적인 의지로 스무 차례나 뉵네수행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나서 그는 병원을 찾아가게 되었다. 그런데 검진을 하여 보니, 백혈구의 숫자가 정상이 되었다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그는 신심이 샘솟아 몇 번 더 뉵네수행에 참여하였고, 마침내 건강은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그는 ‘이만하면 죽을 염려는 없겠다’ 싶어 더 이상 뉵네수행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자 백혈구 숫자에 차츰 이상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 뒤 그는 지금까지 한 달에 한 차례씩 꼭 뉵네수행에 동참하고 있고, 대중들에게 뉵네수행의 수승함을 증명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우리 나라 불교에서도 신라와 고려 시대에는 팔관재계를 즐겨 닦았다. 이러한 티베트의 뉵네수행과 같이, 우리 나라도 팔관재계를 다시 부활하여 그 기간 동안 용맹심으로 기도를 한다면 가피가 무한할 것을....

글을 마무리하면서 감히 수승한 행법의 부활을 기대해 본다.


▶ 출처 문헌

- 월간『법공양』 2546년 6월호

 

맺음말   


  이상에서 소개한 티베트 불교의 수행 법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서면으로 소개되어진 보편적인 수행 외에도 각 파에서 비밀리에 구전으로만 전수되어지는 비밀하고도 수승한 수행들이 많이 있다. 물론 티베트의 불교라 해서라마들에 의해 티베트화 하여 만들어진 불교는 아니다. 불교가 중생들의 근기에 맞추어 소승, 대승으로 발전해 가던 과정에서 金剛乘으로 발전되어진 순수한 불교이다. 가장 후기에 발전되어진 불교로서 말법시대의 중생들의 근기와 상응하여 부처님께서 방편으로 설하신 법이라고 한다.

  인도에서는 7세기부터 사오백년간 중관, 유식파와 대승불교학에 근간을 둔 밀교가 성행하였다고 전해진다. 그 당시에 나란다 대학을 비롯한 여섯 개의 유명한 불교대학들이 모두 밀교 수행과 불교학의 중심지로서 밀교가 황금기를 맞게 되는 주요 역할을 하였다. 이 즈음 티베트에서는 토속신앙인 본교를 누르고 불교를 국교화하려는 노력이 적극적으로 진행되어지고 있었다. 티송데우첸왕은 번역가 세명을 인도로 보내어 당시 밀교 수행의 성취자로서 많은 이적을 보이고 있었던 파드마삼바바를 청하여 밀교 수행을 받아들여 수 없이 많은 우여 곡절과 수난을 겪은 끝에 국교화 되었다.

  티베트인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히말라야 설산의 고요함과 평온함 속에서 빛나고 있던 티베트불교가 다시 한번 나라를 통채로 짓밟히는 커다란 고통을 겪고 전 세계로 흩어져 나오게 된 데에는 또 다른 시절 인연과 불보살님들의 큰 원력이 숨어있으리라. 

  티베트 불교의 수행차제와 구루들의 고요하고 평온한 텅 빈 지혜에 매료되어 어느 덧 육년이란 시간이 흘러갔다. 자신을 돌아보면 여전히 정화되어지지 않은 모습에 실망하곤 하지만 이 글을 통해서 인연 있는 누군가가 히말라야에서 온 행복의 열쇠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끝으로 모든 중생들의 영원한 행복과 불법이 항상하기를 바라면서 이 지구상에 모든 선지식들이 장수하시고 정법의 법륜을 항상 굴리시기를 기원하면서 낮은 지식으로 쓴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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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04.16 18:49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_()()()_

  • 14.04.17 10:40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하시고 성불하세요 나무아미타불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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