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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죽여야 하는 죄책감에 정신 붕괴
전투 중 조준사격 기피 사례 비일비재
전우 향한 강한 책임감이 부담 줄여줘
미 육군 훈련 과정에 심리학 기법 도입
‘전투살해’ 정당화·합리화 노력 지속
우리 군 지휘관 교육과정에도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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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복 장전된 소총이 무더기로 발견된 게티즈버그 전투 일러스트레이션 전문화가 투르 디 툴스트럽(Thure de Thulstrup, 1848-1930)의 작품 「게티즈버그 전투」는 전투에서 남부군의 돌격을 막고 있는 북군의 대응장면을 담고 있다. 16만여 명의 남군과 북군이 결전을 벌여 5만30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이 전투에서 1만2000여 정의 중복 장전된 총이 발견되면서 ‘사격을 거부하는 군인들’이 존재했다는 역사적 사례로 제시되고 있다. 투르 디 툴스트럽. 「게티즈버그 전투」(1886). 모조 피지 석판화. 디지털복원. 미국 국회도서관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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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e Grossman. 2009[1995]. On Killing: The Psychological Cost of Learning to Kill in War and Society. Back Bay Books | 이동훈 옮김. 2011. 플래닛. |
전장에서 누구나 주저 없이 적군을 죽일 수 있을까? 적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과
동료들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다소 어려움이 있겠지만 누구나 총을 들고 적군을 향해 발사하리라는 것이 상식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그로스먼 교수는 그렇게 쉽지 않다고 얘기한다.
데이브 그로스먼은 미국 육군사관학교 심리학과와 아칸소 주립대학 군사학과 교수를
역임한 20년 군 경험의 예비역 중령이다. 그의 문제의식의 출발점은 S.L.A. 마셜 장군의 『사격을 거부하는 군인들: 전투지휘의 문제점(Men
against fire: the Problem of Battle Command)』(1947)일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군들이 어떻게
전투를 수행했는지를 현장 조사했던 마셜은 병사의 15~20% 정도만 실제 전투에서 총을 쏘았다는 충격적인 결과를 발표했다. 그 이유는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인간을 죽이는 데 아주 강한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사격을 주저하는
군인들
사실 이러한 주장은 많은 역사적 근거를 갖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게티즈버그 전투다. 전투 현장에서 수거된
2만7000여 정의 소총 가운데 거의 90%(2만4000여 정)가 장전되어 있었고, 그 가운데 1만2000여 정은 두 번 이상, 그리고
6000정은 세 번 이상 장전된 채 발견됐다. 그들은 왜 사격하지 않고 목숨을 건 전투에서 수십 초 소요되는 장전에 몰두한 것일까? 많은 병사가
사격은 하지 못하고 장전만 반복한 것이다. 사격에 대한 주저가 자신의 목숨마저 앗아간 셈이다.
먀셜의 주장은 학계에서는 대체로
무시됐지만 미 육군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그의 조언에 따라 새로운 훈련과정이 도입됐고 그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군사훈련에서는
심리학자 스키너가 발전시킨 ‘조작적 조건형성 기법’이 활용됐다. 실감 나게 재현된 훈련장에서 사람 모양의 표적 등장과 반사사격, 명중 시 표적이
쓰러지는 즉각적인 피드백, 그리고 결과에 따른 보상(포상 휴가) 등으로 전투에 적합한 인간으로 만들어졌다. 사격을 회피하는 심리 기제를 크게
완화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그 결과 6·25전쟁에서 사격 비율은 55%까지 높아졌고, 베트남에서는 90%대까지 올랐다.
다른 인간을 죽여야 하는 부담감
병사들의 정신이 붕괴되는 원인은 여러 가지다.
일반적으로 죽음의 공포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적과 일 대 일로 맞선 상태에서 적을 죽여야 하는 것만큼 힘들게 하는 것은 없다고 한다. 육체적
고통은 일시적이지만 살인의 죄책감은 지속되기 때문이다. 생존율(25%)이 훨씬 낮았던 폭격기 조종사보다 전투보병들이 더 심각한 정신적 붕괴를
경험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로스먼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투살해의 심리적 본질을 잘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출발점은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인간을 죽이는 데 아주 강한 거부감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할리우드 전쟁영화에서 열심히 싸우는 병사들의
모습에 익숙한 우리에게 무척이나 당혹스러운 주장이다. 하지만 실제 살해에 대한 거부감은 존재하며, 많은 군인이 전투살해로부터 심각한 정신적
손상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그에 대한 증거 역시 차고 넘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같은 인간을 죽이는
것에 강력히 저항하는,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힘의 본질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지 않은 2%의 공격적인 사이코패스가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은 전투 중 살해라 해도 그것으로부터 심각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그 ‘살해의 짐’이 너무 크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워한다. 이러한 점은 전투를 지휘해야 하는 지휘관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된다. 적을 향해 총을 쏘지 못하고
웅크리고 있거나 조준사격을 기피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병사들이 감당해야 하는 심리적 부담을 보다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성공적인 전투지휘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된다.
그런 점에서 전투살해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요인이 제시되고 있는 ‘4부
살해의 해부’는 이 책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그는 전장에서 병사들이 적을 향해 조준사격을 하기 위해서는 △존중하는 지휘관의 강력한 명령,
△부대원들 간의 끈끈한 유대에서 비롯되는 책임감과 집단적 면죄, △반복훈련을 통한 전투실행, △적에 대한 사회적·문화적 거리감, 그리고 △타깃의
명료함과 유인 등 5개 요인을 설명하고 있다.
예컨대 적절한 훈련을 받은 부대원들이라면 문화적으로나 인종적으로 거리가 먼 것으로
인지된 적군과 조우했을 때, 존경받는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방아쇠를 당길 가능성이 가장 커진다. 여기 특히 중요한 것은 부대원들 간의 관계이다.
많은 연구에 따르면 “온전한 인간이라면 하고 싶지 않은 일, 즉 전투에서 적을 죽이는 일을 하도록 군인을 동기화하는 주요 요인은 자기 보존의
힘이 아니라 전장의 동료들에 대해 느끼는 강한 책임감”이다.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
중요
문제는 전투과정에서의 살상은 그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병사는 인간적 죄책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불가피한 전투상황에서 적을 죽인 것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인간적 자책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많은 참전용사들이 증언하고 있다.
결국 전투살해를 피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이를 지속적으로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전투지휘를 책임진 일선 지휘관이 담당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병사들의 정신적 붕괴는 막기 어려울 것이다.
“전쟁에 대한 이해는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하는 것처럼 전투지휘의 기본 역시 다른 인간을 살해해야 하는 병사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으려는 노력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
군의 초급 지휘관 교육과정에도 이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개설해야 하는 이유이다. 병사들 훈련과정에서도 조준사격 거부를 통제하는 방안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과도한 추론과 일반화의 오류가 눈에 띄기는 하지만, 인간 내면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정치한 설명이 저자의 주장을
믿음직스럽게 만든다. 병사들에게 사격을 명령할 초급지휘관과 병력운용과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지휘관의 정책결정자까지 모두 필독해야 할 책이라
생각한다.
<최진영 중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