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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제40편※
회맹군(會盟軍)의 첫 출전
손견을 선봉장으로 하는 이십여만 명의 동탁 토벌대가 낙양을 향해 진군하니, 그 소식이 승상부에 아니 들어갈 턱이 없었다.
어느 날 아침, 이유는 정찰병의 보고를 받고 부리나케 승상부로 달려 들어갔다.
"승상 각하! 큰일 났습니다."
"아침부터 무슨 큰일인가?"
동탁은 비대한 몸을 바람벽에
기대고 앉은 채, 이유에게 반문한다.
"승상, 이번에야 말로 큰일인가 봅니다."
이유는 지금까지 수집된 모든 정보를 동탁에게 보고했다.
"음 .... 그러면 이번 일의 주모자는 조조와 원소란 말인가?"
"그 자들 뿐만이 아니옵니다.
이번에는 십팔 개 제후와 태수들이 한테 뭉쳤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물론입지요. 저들은 원소를 총대장
으로 떠받들고, 조조를 참모로, 손견을 선봉장으로 하여 진군해 오는데, 첫머리는 이미 <사수관>에 접근했다고 합니다."
"손견이라면, 장사 태수 말인가?
그 자가 싸움을 잘하나?"
"자세히는 모르오나 싸움을 잘하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그자는 병학자로 유명한 손자(孫子)의 후손이니까요."
"허어.... 그자가 손자의 후손이던가?"
동탁은 무엇을 믿고 그러는지, 이유의 보고를 그다지 대단하게 여기지 않는 눈치였다.
"승상, 손견은 결코 녹록치 않은 장수입니다."
이유는 그렇게 말하면서 동탁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 손견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손견이 열일곱 되던 때, 그는 해적
(海賊)이 들끓기로 유명한 전당
(錢塘)이라는 항구에 아버지와 함께 놀러 갔던 일이 있었다.
그날 저녁 아버지와 함께 거리 구경을 다니고 있노라니까 수십 명의 해적들이 바닷가에서 양민의 재물을 빼앗아 가지고 나누고 있었다.
손견은 비록 어린 나이었으나 그 꼴을 보고서는 잠자코 있을 수가 없어서 다짜고짜 칼을 뽑아 들고 해적의 무리 속에 뛰어들어 두목으로 보이는 자의 목을 단 칼에 잘라 버렸다.
그리고 나머지 해적들을 노려보며 이렇게 외쳤다.
"이놈들아! 썩 없어지지 못하겠느냐! 나는 이 해안을 지키는 사람이다!"
그러자 해적들은 혼비백산으로 빼앗은 재물을 그대로 둔 채 줄행랑을 쳐버렸다
.
그리하여 손견은 재물을 빼앗긴 주인들에게 모두 돌려주게 되었다
. 그중에서는 값진 보석도 있었으나 손견은 사례도 받지 않고
흔쾌히 주인들에게 모두 돌려준 것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 그 부근 일대에서는 손견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누구나 손견의 말이라면 모두 군말 없이 따르게 되었고 존경을 받게 된 것이었다.
동탁은 그 얘기를 듣고 나서야 진진한 얼굴이 되었다.
"음 ... 그런 용맹을 가진 놈을 쳐부수려면 우리 쪽에서도 걸출한 장수를 보내야 되겠구먼. 그러면 누가 좋을까?"
그러자 동탁의 옆에 시립하고 섰던 여포가 한걸음 나서며 말한다.
"아부(亞父)님! 걱정 마십시오. 조조니 원소니 손견이니 하는 것들도 제게는 초개(草芥)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저에게 군사 수천 명만 주시면 제가 역도 두목들의 머리를 모조리 베어 오겠습니다."
"음 ... 믿은직스러운 얘기로다. 그대가 있는 한 내가 무슨 걱정이 있겠나."
그러자 이번에는 저만치 문밖에 서 있던 장수가 동탁의 앞으로 썩 나서며,
"여포 장군님,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닭을 잡느데 구태여 소잡는 칼을 쓸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소장(小將)이 나가서 역도의 머리를 베어 오겠습니다."
큰소리를 치고 나온 사람은 키가
구척이나 되고 위풍이 늠름한 용장 화웅(勇將 華雄)이었다.
"오오, 화웅인가? 그러면 그대가 사수관으로 가서 역도들을 섬멸토록 하라!"
동탁은 즉석에서 화웅을 효기교위
(驍騎校尉)로 삼아 병마 오만을 주면서 이숙, 호진, 조잠 등과 함께 밤을 새워 사수관으로 나가게 하였다.
이때, 동탁 토벌군 가운데 제북상 포신(濟北相 鮑信)은 시기심이 무척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선봉장으로 출전하는 손견에게 일등 공로(一等 功勞)를 빼앗길 것이 아쉬워서 속으로 은근히 안타까웠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의 동생인 포충(鮑忠)에게 병마 삼천을 주어 손견의 부대보다도 지름길로 사수관에 달려가서 적과 싸움을 시작하도록 부추켰다.
이에 포충은 선발대 오백 명을 이끌고 험한 산을 넘어 손견의 부대 보다 앞서 사수관에 도착하였다.
사수관 성루에서 다가오는 포충의 군사를 발견한 화웅이 역시 오백 명의 군사를 이끌고 마주 달려나와 한바탕 격전을 벌였다.
그러나 포충은 화웅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게다가 변변히 싸워보지도 못하고 화웅이 휘두른 칼에 포충의 목이 떨어져버리고 말았으니 싸움의 결과는 말할 것도 없었다.
화웅이 포충의 머리를 승상부에 바치니, 동탁은 크게 기뻐하며 화웅을 도독(都督)으로 삼았다.
한편, 선봉장 손견은 포충이 패전한 줄도 모르고 자신의 심복 맹장인 정보, 황개, 한당, 조무 등 네 명만을 거느리고 사수관 성문앞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성밖에서 큰소리로 외쳐댔다.
"역적 동탁을 돕는 필부야! 빨리 나와서 항복하라! 그러면 목숨만은 살려 줄 것이다!"
손견이 화웅을 향하여 그렇게 외쳐대자, 화웅은 큰소리로 웃는다.
"하하하, 어리석은 놈이 무슨 개수작을 하고 있는 것이냐! ... 여봐라! 누가 나가서 저자의 목을 베어 공훈을 세워보겠느냐?"
하고 자신의 부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자 부장 호진(胡軫)이 달려나오며,
"제가 명을 받들겠습니다!"하고 소리치는 것이었다.
"장한지고! 어서 나가 저놈의 목을 베어 오라!"
관문이 활짝 열리며, 호진이 오천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달려 나온다.
그러자 손견의 심복인 정보가 마주 나가 싸움을 시작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어울려 싸우기 시작한지 채 오 합이 못 되어,
정보는 호진의 머리를 땅에 그대로 떨어뜨렸다.
적장 화웅은 그 모양을 보자 성문을 굳게 닫고 성안에서 돌을 던지고 활을 쏘아대었다.
손견은 성안에서 농성중인 화웅군을 성밖으로 끌어내어 보려고 하였으나,
적들은 꼼작도 하지 않는 바람에 일단 성문 근처에 진지를 구축하고 원소의 본진에 전승 보고를 올리는 동시에 군량을 빨리 보내주기를 요청하였다.
원소는 군량을 책임지고 있는 원술에게 군량을 보내 주도록 명령하였다.
그러나 원술의 부하로 손견에게 사원(私怨)을 가지고 있던 자가 원술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손견은 강동(江東)의 호랑이라고 불리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선봉으로 나서서 낙양을 함락하고 동탁을 죽인다 해도, 그것은 이리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이는 격입니다.
또한 손견은 의병을 일으켰다는 명분아래 천하를 노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고 싶어 이번에 선봉을 자청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제풀에 지쳐 철수하도록 군량을 대주지 말아야 합니다."
"음... 그럴 수도 있겠군!"
원술은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십팔 개 제후와 태수들이 모여든 이번 회맹 연합은 비록 한패이기도 하면서 내심으로는 호시탐탐 제각기 딴생각들을 품고 있을 것이 분명한 일이 아니겠나?
손견의 부대는 군량이 떨어졌다.
군량이 떨어지자 군심이 흉흉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도데체 총대장 원소는 뭘 하고 있단 말인가? 주린 배를 움켜잡고 싸우란 말인가?"
손견은 벼락같이 화를 냈다.
날고뛴다는 손견이었지만 적의 공격을 받아서가 아니라 같은 편에서 계획적으로 식량 공급을 중단해서 곤경에 빠질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동탁의 부하 이숙(李肅)은 그런 정보를 듣고 화웅에게 말한다.
"오늘밤, 내가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손견의 뒤에서 공격할 것이니 장군은 군사를 거느리고 정면으로 공격해 주시오.
굶주린 병사들은 맥을 못 쓸 것이 분명하니까 우리가 공격만 하면 손견은 문제 없이 사로잡게 될 것이오."
화웅은 그 작전에 찬성하고 손견의 진지에서 소란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이날 밤, 달은 밝고 바람은 온화하였다.
이숙은 삼경(三更)이 되기를 기다려 손견의 진지를 후방에서 기습하였다.
손견의 군사들은 불시에 기습을 받아 크게 어지러웠다.
손견도 자다 말고 갑옷을 입으며 허둥지둥 밖으로 달려 나오는데, 고함을 치며 덤벼드는 장수가 있었다.
눈을 들어 보니 적장 화웅이었다.
손견은 즉시 적을 맞아 싸웠다.
※ 삼국지(三國志)제41편 ※
관우의 첫 출전!
적장 화웅의 머리를 베다.
손견의 군사들이 적에게 크게 패했다
는 기별이 오자,
본진에 있던 원소와 조조등이 크게 놀랐다.
더구나 군율을 어기고 앞서 적진으로 달려간 제북상(濟北相)포신의 동생 포충 장군이 비참하게 죽은데다가 이번에는 손견까지 대패하고 보니 모두들 사기가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십칠 명의 제후들이 그날 중으로 한자리에 모여 대세만회를 위한 작전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적장 화웅의 기세가 등등하더란 소문을 듣고 회의에 참석한 제후와 태수들은 용기가 위축된 듯이 보였다.
총대장인 원소가 눈을 들어 좌중을 바라보다가 문득 북평 태수 공손찬 등뒤에서 시선을 멈췄다.
공손찬의 등뒤에는 낮모를 위장부
세 사람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공손 태수의 등뒤에 있는
세 사람의 위장부는 누구요?"
원소가 공손찬에게 물었다.
공손찬은 세 사람중에 한 사람인 유비를 앞으로 불러내었다.
"이 사람은 나와 동문수학(同門修學)
한 평원령(平原令) 유비(劉備) 올시다."
조조가 그 소리를 듣자, 눈을 크게 뜨며 묻는다.
"예전에 황건적 토벌의 공로가 많았던 현덕 유 공 말씀이오?
그러고 보니 나도 황건적과 싸우다가 한 번 만난 일이 있었소."
"바로 그 사람이오."
유비는 공손찬의 소개말과 함께 조조와 눈이 마주치자 가볍게 목례를 해 보였다.
그러자 조조 역시도 유비에게 가벼운 목례를 해 보이는 것이었다.
공손찬은 유비를 제후들에게 소개하고 나서, 그의 옛 전공을 나열하면서 크게 칭찬을 하였다.
원소는 유비가 한실의 종친의 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그러면 저 사람에게도 앉을 자리를 드리도록 하시오!"하고 말했다.
유비는 그제서야 말한다.
"아니올시다. 저같은 미관(微官)이 어찌 이 자리에...."하고 다른 제후, 태수들과의 동석(同席)을 사양했다.
"사양말고 어서 앉으시오.
나는 귀공에게 직위로서 앉으라고
한 것이 아니라, 귀공이 한실 종친인
데다가 황건적 토벌에 전공이 컸다
기에 앉으라는 것이오."
유비는 사양하다 말고,
시종이 가져온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관우와 장비 두 사람은 공손찬의 뒤에서 묵묵히 걸음을 옮기더니 이번에는 유비의 등뒤에 엄숙히 시립(侍立)하는 것이었다.
마침 그때, 바깥이 떠들썩하더니 경계병 하나가 숨을 헐떡거리며 달려 들어온다.
"무슨일이냐?"
"장군님들 큰일 났습니다.
적장 화웅이 손견 장군이 쓰시던 붉은 두건을 창끝에 꿰어 들고 진문(陳門)
앞에까지 몰려와서 싸움을 청하고 있습니다."
원소가 좌중을 둘러보며 물었다.
"누구 나가서 싸울 사람이 있소?"
효장 유섭(驍將 兪涉)이 투구 끈을 졸라매며 말한다.
"소장이 나가 싸우겠습니다."
원소는 크게 기뻐하며 곧 나가 싸우라고 하였다.
그런데, 유섭이 싸우러 나간지 얼마 되지 않아, 그가 적장 화웅에게 목이 잘렸다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기주 지사 한복(韓馥)이 그 소리를 듣고 크게 분개하였다.
"나의 상장군 반봉(上將軍 潘鳳)을 보내어 화웅의 머리를 가져오게 하겠소."
원소는 곧 그리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 역시도 적장 화웅과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목이 달아났다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원소는 좌중을 둘러보며 탄식하였다.
"내 상장군 안량(顔良)이나 문추
(文醜)를 데려왔다면 화웅 따위는 문제가 아니었는데,
화웅 하나를 거꾸러뜨릴 장수가 없다니 그야말로 천하의 웃음거리요!"
제후들은 말이 없고 좌중은 침통한 침묵에 잠겼다.
그러자 문득 어디선가 통분한 어조로,
"만약 허락하신다면 소장이 나가서 화웅의 머리를 베어다가 장하(帳下)
에 바치오리다."
하고 외치는 사람이 있었다.
모든 시선이 소리가 나는 곳으로 집중되었다.
소리의 주인공은 키가 구 척에 수염이 두 자가 넘고, 봉의 눈에 눈썹이 짙고, 얼굴은 무르익은 대춧빛 같고,
목소리는 쇠북을 울리는 듯이 웅장한 사람이었다.
"저 사람이 누군고?"
원소가 물었다.
"유현덕의 의제 관우(義弟 關羽)요."
공손찬이 대답을 가로맡았다.
"벼슬이 뭐요?"
"유비공 밑에서 마궁수(馬弓手:요즘 말로 소대장)로 있는 사람이오."
원소는 그 말을 듣고, 크게 격앙되어 관우를 꾸짖는다.
"우리에게 나설만한 장수가 없다고 네가 누구를 업신 여기는거냐?
한낱 궁수에 지나지 않는 자가 여기가 어디라고 입을 함부로 놀리는고 ....
여봐라!
저 자를 밖으로 내쫒아라!"
그러자 조조가 손을 들어 멈춘다.
"총수는 너무 노여워 마시오.
저 사람도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것일 테니 한번 싸워 보게 합시다.
꾸짖는 일은 나중에 해도 될 일이 아니오?"
"일개 궁수를 내보냈다면 적에게 웃음거리가 될 것이 아니오?"
"저 사람은 본디 호걸풍의 풍채를가지고 있으니 적장이 설마 궁수인 줄은 모르리다."
조조는 곧 따듯한 술을 가져오라 하여 관우에게 친히 한 잔 따라 주었다.
관우는 술을 받아 들고 이렇게 말한다.
"고맙소이다. 이 술잔은 그냥 두었다가 술이 식기 전에 곧 화웅의 머리를 베어 가지고 돌아와서 마시겠습니다."
관우가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청룡도를 차고 말에 올라 밖으로 달려나갔는데,
잠시 후에 성밖에서는 한바탕 아우성과 함께 아군쪽에서는 북소리와 함성 소리가 요란스럽게 나는 것이 아닌가?
제후들이 깜짝 놀라 사람을 보내어 영문을 알아보려는데 문득 문간이 소란스럽더니 관우가 화웅의 머리를 들고 나타나는 것이었다.
"과연 저것이 화웅의 머리냐?"
제후들이 눈을 크게 뜨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러자 화웅을 알아 본 몇 사람이,
"오오! 화웅의 머리가 분명하오!"
"세상에, 틀림없는 화웅의 머리요!"하고 놀란 소리를 지르자, 제후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울렸다.
관우는 그제서야 조조 앞으로 걸어나가 아까 따라 받았던 술잔을 경건히 집어들며 말했다.
"술이 아직 따듯합니다.
그럼, 주신 술을 잘 마시겠습니다."하며 그 자리에서 마셔 버리는 것이었다.
"수고하셨소. 한 잔 더 드시오."
조조가 술 한잔을 더 따르려고 하자,
"아니올시다. 오늘의 명예를 어찌 저 혼자서 받사오리까!"
관우가 사양의 말을 하자, 유비의 등뒤에 서있던 장비가,
"아직 승리에 도취하기엔 때가 이르오.
관우 형님이 화웅의 머리를 베어 오셨으니 다음에는 내가 동탁이란 놈을 생으로 붙잡아다가 만장하신 제후님들 앞에 바치리다."
하고 익살맞은 소리를 외쳐대었다.
모두들 돌아보니 그 사람은 열여덟 자나 되는 사모(蛇矛)를 손에 움켜잡고 유현덕 등뒤에 서있는 장비(張飛)였다.
원소의 아우 원술은 장비의 큰소리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며 일갈했다.
"일개 현령의 수하 졸병들이 방자스럽게 여러 제후와 태수들 앞에서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니 이게 무슨 짓인가?"
그러자 조조가 즉각 대답한다.
"공이 있는 사람에게 상을 주는데 어찌 귀천을 가리겠소.
공은 너무 나무라지 마시오."
"공들이 일개 현령의 소졸들을 그처럼 소중히 여긴다면 나는 자리를 같이 못하겠소!"
원술을 발끈 성을 내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 조조가 말한다.
"원술 장군은 너무 나무라지 마시오.
저 사람들이 비위에 거슬리면 이 자리에서 내보내기로 합시다."
공손찬은 조조의 눈치를 알아채고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을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이날 밤 조조는 세 사람에게 많은 술과 안주를 보내 주면서 오늘의 일을 너무 노여워하지 말라고 진심으로 위로해 주기를 잊지 않았다.
※ 삼국지(三國志)제42편 ※
호뢰관 싸움
드디어 장비가 등장합니다.
장비와 여포의 오늘 대결은 아쉽게도 무승부로 끝났습니다.
한편, "화웅이 전사하였다" 는 소식이 전해지자, 낙양의 동탁은 크게 황망하여 이유를 불러 묻는다.
"화웅같은 용장이 죽었다면 사수관은 어찌 되었는가?"
"지원군을 보내 줄 때까지 사수
(死守)하고 있으라고 명령했습니다."
"패전의 원인은 어디에 있었는고?"
"원소의 휘하에는 십팔군의 용맹이 제각기 다른 장수들이 즐비한 것 같습니다."
"음... 낙양에는 원소의 작은 애비 <원외>가 있지 않은가?"
"네, 아직도 태부(太傅) 벼슬을 지내고 있습니다."
"천만 위험한 일! 그자가 원소와 내응(內應)을 한다면 큰일 아닌가?"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그래서 그를 없애는 것이 어떨까 하고 아뢰옵니다."
"진작 그럴 일이지. 여태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냐! 당장 그자를 없애 버려라!"
이유는 즉석에서 군사를 보내어 원외와 그의 가족과 집사를 비롯한 측근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하인들까지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모두 죽여 버렸다.
그리고 이십만 대군을 일으켜 적을 물리치게 하되, 먼저 이각, 곽사 두 대장에게 오만 명의 병사를 딸려 주어 사수관을 지키게 보내 놓고 동탁 자신은 이유, 여포, 번주, 장제 등 쟁쟁한 장수들과 더불어 십오만의 병력을 거느리고 낙양에서 오십 리쯤 떨어진 호뢰관(虎牢關)으로 나왔다.
호뢰관은 천혜의 요새로써 이곳에 십만 명의 병사를 두면 천하의 어떤 영웅도 감히 통과할 수 없다고 하는 곳이었다.
동탁은 호뢰관에 진을 치고 난 뒤, 여포에게 삼만의 병력을 주어 성문밖을 지키게 하였다.
천하의 맹장 여포가 성밖을 지키고 있고 성안에서는 동탁 자신이 십이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금성철벽(金城鐵壁)이라고 볼 수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회맹군 편에서도 낙양성 공격에 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원소는 조조의 주장대로 이쪽에서도 두 패로 나누어 적을 공격하는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일부는 사수관에 남겨 두고, 왕광, 교모, 포신, 원유, 공융, 장양, 도겸, 공손찬 등은 총력을 기울여 호뢰관을 공격, 낙양성으로 가는 길을 확보하게 한 것이었다.
그리고 조조는 대기 병력을 데리고 후군(後軍)으로 남아서 어디든지 전세가 불리한 곳으로 달려가 지원하기로 하였다.
제후들이 각기 군사를 거느리고 전진하는 도중에, 왕광의 군사들이 제일 먼저 호뢰관에 도착하였다.
여포는 적이 성문밖에 도착한 것을 보고 철기(鐵騎)삼천을 거느리고 공격해 온다.
이때의 여포의 차림새는 호화찬란하기 그지없었다.
붉은 비단으로 만든 백화전포(百花戰袍)에 보석 고리가 달린 갑옷을 겹쳐 입고,
등에는 호피(虎皮)로 만든 화살통을 둘러 메고, 손에는 커다란 방천화극(方天畵戟)을 거뭐쥐고 있었다.
게다가 그가 타고 있는 말은 명마중에 명마로 유명한 적토마
(赤兎馬)가 아니던가.
"저자가 여포다! 저자를 잡아라!"
대장 왕광이 부하 맹장 방열과 함께 여포에게로 달려갔다.
그러자 여포가 달려나와 1합을 싸우지 못하고 여포의 칼에 머리가 달아났다.
이번에는 왕광이 여포를 맞아 싸웠다.
그러나 왕광도 여포를 당할 재주가 없었다.
간신히 십여 합을 싸우다가 도저히 안 되겠던지 말을 돌려 도망을 가는 중에 원유, 교모의 도움을 받아 겨우 죽음을 면하였다.
이튼날, 여포가 또다시 나타나 싸움을 걸어왔다.
그러자 상당 태수 장양의 부장 목순(穆順)이 달려나가 싸웠으나,
그의 실력도 여포 앞에서는 한낱 어린애에 불과하였다.
그는 불과 이 합을 겨뤄보지 못하고 여포의 단칼에 마상에서 머리가 굴러 떨어졌다.
북해 태수 공융의 부장 무안국(武安國)이 여포에게 달려들었으나, 그는 여포 앞에서 어린애보다도 무력하였다.
여포에게 이미 대항할 자가 없었다.
누구든지 그를 보기만 하면 겁에 질려 맥을 못 썼던 것이다.
원소를 비롯한 제후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다시 대책을 의논하였다.
그 자리에서 조조가 말한다.
"여포 같은 용장은 백 년에 한 사람 나기가 어려운 사람이오.
일 대 일로 싸워서는 아무도 그를 당할 사람이 없으므로 제후들은 그에게 집중 공격을 퍼부어서, 그를 피로하게 만든 뒤에 사로잡아 보기로 합시다.
그렇게 여포만 잡아 놓으면 동탁을 없애는 것은 문제가 아닐 것 같소."
한창 논의를 하고 있는 와중에 여포가 또다시 나타났다는 전갈이 왔다.
여포가 나타나기만 하면, 아군은
싸워 보지도 못하고 지레 겁을 먹고 쫒기기만 하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팔국 제후들이 일제히 말을 타고 여포에게로 달려나갔다.
공손찬이 창을 휘두르며 맞서 싸워보았으나 여포의 적수는 아니었다.
그리하여 이십여 합을 싸워 보다가 도망을 치는데 여포가 적토마를 달려 추격하는 것이었다.
적토마는 능히 하루에 천 리를 달리는 말이었다.
여포가 바람처럼 달려오며 창을 휘둘러 공손찬의 머리를 자르려는 순간, 문득 한 장수가 고리눈을 부릅뜨고 범의 수염을 거스르며 장팔사모를 꼬나잡고 말을 몰아 내달아 온다.
"이놈, 여포야! 장비의 창을 받아라!"
여포를 향하여, 물찬 제비와 같은 속도로 벽력같은 소리를 질러대니 이때만은 여포도 찔끔 놀라다가 이번에는 장비를 향하여 공격을 하였다.
두 장수가 어울려 싸우기를 오십 합이 넘어도 승부가 나지 않았다.
이를 바라보던 관우가 팔십여 근의 청룡도를 휘두르며 화살같이 내달아 장비를 도와 여포와 싸우기를 삼십여 합! 그래도 여포를 거꾸러뜨리지 못하였다.
마침내 유비마저 쌍고검을 휘두르며 말을 달려 나왔다.
세 형제가 여포 한 사람을 상대로 벼락치듯 싸웠다.
쌍고검과 청룡도와 장팔사모가 여포의 방천화극(方天畵戟)과 한데 어울려 연실 불꽃과 굉음을 내면서 번쩍거렸다.
모든 군사들이 정신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여포도 힘이 다했는지 불현듯 말머리를 돌려 자기 진지를 향해 패주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쪽의 군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구름떼처럼 적진으로 돌격해 가는 것이었다.
이렇게 유비, 관우, 장비가 여포의 뒤를 쫒아 호뢰관 아래 이르렀을 때, 문득 성루를 바라 보니 그곳에는 동탁을 상징하는 푸른 비단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보라! 저기 보이는 것이 총수 동탁이다. 여포 따위는 내버려두고 저자를 잡아 죽이자!"
장비가 벼락같은 소리를 지르며 성문으로 덤벼들자, 기다렸다는 듯이 성 위에서 돌과 화살이 쏱아져 내린다.
관우는 더 이상 공격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고 장비를 달래서 뒤로 물러나게 하였다.
그리하여 이날의 격전은 결국 어느쪽도 확실한 승리를 거두지 못 한 무승부로 결말이 나고 말았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호뢰관의 삼전(三戰)>이라는 것이다.
※ 다음 제43편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