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계 22:14)
복 있다, 자기들의 예복을 빠는 사람들은! 그들은 생명나무에 나아갈 자격을 받아서, 문으로 그 도시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대한성서공회 새한글성경 중에서)
Blessed are they that do his commandments, that they may have right to the tree of life, and may enter in through the gates into the city.(KJV)
“Blessed are those who wash their robes, that they may have the right to the tree of life and may go through the gates into the city.(NIV)
'두루마기'라는 말은 성경에 단 두번 등장합니다.
요한계시록 6:11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요한계시록에서만 쓰인 '두루마기'란 표현은 본래 '두루 막는다'라는 의미로 보통 '한복의 겉옷'을 의미합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두루마기는 한국 고유의 웃옷입니다. 주로 외출할 때 입는데, 옷자락이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모양으로, 다른 이름으로는 주의(周衣)로도 불리는데, 두루마기는 '주위가 모두 닫혀 있다'는 뜻이며 추위를 피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의례적인 용도로도 쓰입니다.
요한계시록 6장에 나오는 것처럼 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하며 신원하는, 즉 원수를 갚아달라고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그러니까 여기서 흰 두루마기는 아마도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으로 인한 증거의 삶을 살아갔던 이 땅의 수 많은 성도들, 그들에게 주실 '의의 옷',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참석할 예복'이 아니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는 그 두루마기를 빠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만이 생명나무에게로 나아갈 수 있으며,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두루마기를 빠는 사람들'이란 바로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들'입니다.
그런데 왜 두루마기를 빠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을까요? 제가 이해하기로는 여기서 '빤다'는 의미는 두루마기가 더러워서라기보다는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기 위해, 또는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그 옷을 빨아서 준비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보게됩니다.
우리가 결혼식에 참석할 때는 가지고 있는 옷 가운데 가장 옷을 선택하여 입고 갑니다. 예전에는 보통 한복을 입었는데, 몇일 전에 한복을 빨아서 다림질을 하고 다려서 가장 깨끗하고 단정하게 옷을 준비하여 입고 혼인잔치에 참석하는 것과 같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영어 KJV을 보면, 전혀 다른 번역이 나타납니다.
"그분의 계명을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으로 들아갈 권세를 받음이라."
자기 두루마리를 빠는 자들
그분의 계명을 행하는 자들
어떻게 이런 전혀 다른 번역이 나올 수 있을까요?
그 원인은 헬라어 사본의 차이 때문이니다.
KJV 번역자들은 TR(Textus Receptus)이라는 헬라어 사본을 선택하여 번역하였고,
NIV나 한글성경 번역자들은 MGNT(Morphological GNT)라는 헬라어 사본을 선택하여 번역하였기 때문입니다.
헬라어 단어는 이렇습니다.
ἐντολὰς(엔톨라스) --- 계명들(명령들)
στολὰς(스톨라스) --- 두루마기
그러니까 앞에 알파벳 두개가 서로 다릅니다. 제가 실제 헬라어 사본들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아마도 'ἐν', 'σ' 부분이 명확하지 않아 사본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뉘어졌거나, 아니면 사본 작성시 의도적으로 변개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쪽이 진짜 원본에 있었던 알파벳인지는 사실 현재로선 알 길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원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쩔 수 없이 두 번역본을 함께 살펴보고 상고하는 것입니다. 선택은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의 몫이겠지요.
이미 두루마기를 빠는 것에 대하여는 살펴보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하나님의 계명을 행하는 자들'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keep)이 아니라, 행하는(do)인가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사용된 '지키다'라는 표현이 사용된 구절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요한계시록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keep)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요한계시록 3: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keep)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요한계시록 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keep)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요한계시록 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keep) 자니라."
요한계시록 22: 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keep)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요한계시록 22:9 "그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keep)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모두가 Do가 아니라 Keep이었습니다.
오직 오늘 본문에서만 하나님의 계명을 행하라(Do)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헬라어 단어는 전혀 다른 단어입니다.
Keep는 τηρέω(테레오)이고,
Do는 ποιέω(포이에오)입니다.
ποιοῦντες(포이오운테스) --- 행하다
πλύνοντες(플르노운테스) --- 빨다
앞에서 이미 우리는 '두루마기'라는 헬라어와 '계명'이라는 핼라어 단어가 알파벳 한두개로 다르다는 것을 확인해보았습니다. 그런데 '행하다'라는 단어와 '빨다'라는 단어 역시 헬라어 알파벳으로만 보면 비슷합니다. 그러니까 사본을 조사하는 사본학자들 입장에서는 분명 명확하지 않은 다양한 사본 가운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는 심증을 가질 수 밖에 없어 보입니다.
TR과 MGNT 사본은 이렇게 해서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 사본이 만들어졌고, 이를 대본으로 한 영어나 한글성경 또한 전혀 의미가 다른 번역본이 나올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저자 요한은 왜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다(keep'는 표현을 써 오다가 마지막에서만 '행하다(do)라는 단어를 선택하였을까요?
저의 이해는 이렇습니다.
지키다는 말에는 행하다라는 의미를 포함해서 보존하다라는 폭넓은 의미가 담겨있는 단어입니다.
그렇지만 행하다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들 가운데 우리가 그 말씀에 순종하여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말씀들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계명', 곧 명령(commandment)이 그것입니다. 계명은 단순히 그것을 보존하고 지켜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 계명을 내가 스스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첫댓글 헬라어 공부가 성경을 올바로 읽는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네요
keep은 좀더 지속적으로 지켜나가야 하는 부분이 강한 느낌이고, 여러가지의 행하는(do) 것들이 모여서 keep이 형성되는 것으로 생각이 들었습니다. 묵상한 내용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