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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표 없는 편지 원문보기 글쓴이: 청풍명월
『한국의 미학』 - 최광진
“어떤 한 단어의 의미는 다른 단어와의 차이를 통해서 드러나듯이 비교미학(한국과 서양, 한국과 중국, 일본 등)은 자신의 문화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특별한 문화의지의 반영임을 이해하고 다른 민족과의 상생관계를 모색하는 작업이다. 어떤 문화와 예술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비교미학의 중요한 전제다.”- 서문 중에서
이 책을 읽으려고 하면서 생각해 보니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든다.‘나도 에지간(근원말은 어지간)’하다는 생각 말이다. 철학·과학·문학·역사·종교·고전·고고학에 대한 책에 이어서 이번에는 「미학」에 대해서도 공부하게 되는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다.
저자인 최광진 선생은 홍익대학교에서 예술학을 전공하여 대한민국 1호 예술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호암(현삼성)미술관 큐레이터로 활동하면서 〈한국의 미, 그 현대적 변용전〉등 여러 전시회를 기획하고, 2004년부터 「理美知연구소」를 열고 기호학, 생태학, 포스트모더니즘, 동서미학 등 인문학적 통찰을 통한 시대정신과 예술의 길을 모색하는 강좌를 진행하고 있으며 『현대미술의 전략』등 여러 저서도 냈다.
‘미학(aesthetica)’이라는 말은 독일 철학자 바움 카르텐(1714∼1762)이 처음 사용한 말로 그는 확실한 것만 사실로 인정하는 논리학으로는 발견할 수 없는 세계를 감성이 채워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감성적 경험에 의한 인식’을 미학이라고 했다. 이후 감성은 학문의 대상이 되었고 미학은 학문으로 독립하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아름다움’을 그저 철학의 한 부분으로 보았다는 말이다. 서양의 고전미학이 진선미를 통합한 것이었다면, 근대미학은 진선미를 독립된 것으로 만든 것이다.
자연이 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조화로운 전체를 이루도록 해야 하는 것처럼 민족간 문화생태를 복원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민족마다 각기 다른 미적 가치를 존중하는 비교미학이 필요하다. 그것은 다른 민족과의 상생관계를 모색하는 작업이며, 어떤 문화와 예술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비교미학의 중요한 전제다. 자연에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개나리가 겨울이 지나도 진달래로 변하지 않는 것처럼 문화의지는 변하지 않는다. 민족마다 문화적 정체성이 다른 이유는 근원적으로 이 문화의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인으로서 한국미술을 연구해 기틀을 세운 최초 학자는 우현 고유섭이다. 그는 경성제국대학 철학과를 다녔는데 미학과 미술사를 접한 뒤에 「개성박물관장」으로 한국미술을 연구했으며, ‘구수한 큰맛’이라는 미학적 언급으로 족적을 남겼다. 그에게 안목을 익힌 최순우는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현장에서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미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나는 우리 것이 좋다”는 말이 기억난다. 그는 풍아(風雅)와 “고요한 익살의 아름다움”등 폭넓은 시각으로 한국미술에 접근했으나 미학을 개념화하지는 못했다.
삼불 김원룡은 국내 유적발굴을 지휘하며 고고학적 자료를 토대로 많은 저서과 업적을 남겼으며, 예술을 철학적 관점으로 접근한 조요한은 한국 문화의 모태가 ‘무교는 음악미, 불교는 조형미, 유교는 생활미, 도교는 정원미’를 낳았다고 보았고 한국문화는 유·불·선의 삼교가 잘 융합되어 공존해 왔고 ‘남성적인 유교의 엄격성과 여성적인 무교의 황홀함이 조화를 이룬 것’이 특징이라고 했다. 종교는 여러 민족이 공유하지만, 민족마다 문화가 다른 것은 종교보다 더 근원적인 ‘문화의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족의 고유한 문화의지에 대한 파악 없이 미학연구는 산만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1부】문화의지, 어떻게 다른가
[서양의 분화 문화]
서양문화는 분화(分化-differentiation)에서 시작했다. 동질성인 하나를 둘로 나누는 것이기 때문에 A→A+B로 표시될 수 있는데 이때 B는 새로운 생성이다. 전체라는 통제하에 진행되는 분화는 성장과 진화를 의미한다. 그러나 인위적인 분화는 때로 대상을 둘로 나누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 간의 우열과 주종의 관계를 설정함으로써 이분법의 폐단을 낳기도 한다.
현상과 원인과 결과로 나누는 인과론과 기계론적 사고는 서양 종교와 철학에서 근대 합리주의에 이르기까지 서양인들의 사고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 개인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이런 사고는 공동체의 목적과 무관하게 자신의 이익만 집착하는 편협한 이기주의를 낳기도 한다. 통합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동양과는 매우 상이한 특징이다. 서양과 동양이 서로 행복에 대한 가치관을 가지는 요인이기도 하다.
인류가 벌인 대부분 전쟁이 종교전쟁으로 그것은 진리의 절대성과 종교의 상대성을 동일시하는 태도에서 기인한다. 이스라엘 민족 지도자 모세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유일한 여호와시니”라고 해 절대 신을 강조하고 다른 민족의 신은 적대시했다. 이 유일신앙은 처음에는 그리스에서 다른 신앙과 많은 갈등을 불러일으켰지만, 기독교가 로마에서 공인된 이후 전 유럽으로 확대되면서 서양인들의 사고방식을 지배하게 된다. 유일사상의 가장 중요한 특징의 하나는 초월적 인격체라는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인 우주를 창조했다는 관념이다.
첫째 날 빛을 만들어 밤과 낮을 분화시켰고, 둘째 날 공창을 분화시켜 하늘 아래 물과 하늘 위 물로 나눴고, 셋째 날에는 땅을 물과 육지로 분화시켜 거기에 만물이 자라나게 했고, 넷째 날에는 해와 달과 별을 분화시켰다. 다섯째 날에는 하늘과 새와 물속의 물고기를 지어 공간과 물속을 채웠고, 여섯째 날에는 육지와 각종 짐승들을 만들고 이들로부터 사람을 분화시켰다. 마지막 날에는 아담에게서 여자인 하와를 분화시켜 그들이 인류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창조주가 주체가 되어 피조물을 마음대로 분화시키고 우주 창조를 인과론적으로 기술한 이런 내용은 아무리 봐도 인위적이지 자연적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담의 갈비뼈를 빼내 여자로 만들었다니….(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다)
인간과 신의 관계를 분화된 것으로 보느냐, 미분화된 것으로 보느냐의 차이가 기독교와 불교의 결정적인 차이고, 이것이 문화의 차이다. 기독교 유일사상에는 분화의지가 반영되어 있다면 불교, 도교 등 동양 종교들은 범신론적 신앙으로 통합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우파니사드』(인도 경전의 원형)에서는 인간의 자아(Atman)는 우주의 본질인 브라만이 자신의 일부를 방출해 생성된 것으로 보고 우주의 근본원리인 범(梵)과 불변하는 참 존재인 아(我)가 하나라는 ‘범아일여(梵我一如)’사상으로 우주 만물은 계층적 질서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모두 평등한 존재로 보았다. 이런 세계관은 모든 생명체는 영혼이 불멸하며 끝없이 윤회한다고 한다. 세계 밖에 초월적 인격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과 세계가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런 범신론적 세계관의 특징은 창조주와 피조물을 미분화된 존재로 본다는 것이다.
서양에 불교가 전파되기 어렵고 동양에서 기독교가 전파되기 어려운 이유가 이처럼 상이한 문화의지에서 오는 관념을 좁히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양에서 유대교 경전을 연구하던 ‘스피노자’(1632∼1677, 데카르트와 다른 견해를 보인 네덜란드 철학자)는 유대교의 이원론에 회의를 느끼고 “신은 곧 자연이다”라는 범신론적 일원론을 주장했다가 신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자신이 신봉했던 유대교로부터 파문당하기도 했다.
개인주의 문화는 개인을 모든 사고와 행위의 출발점으로 삼기 때문에 때로 사회공동체의 목적과 무관하게 자신의 이익에만 집착해 편협한 이기주의를 낳기도 한다. 이것은 통합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동양과 매우 상이한 특징이며 이로 인해 서양과 동양은 행복에 대한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다. 현상을 원인과 결과로 나누는 인과론과 기계론적인 사고는 서양 종교와 철학에서 근대 합리주의에 이르기까지 서양인의 사고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 서양인들이 ‘변치 않는 것을 영원한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동양인들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영원하다’고 생각했다. 동양사상이 이성보다는 직관을 중시하고 개념적 사유보다는 마음의 느낌을 중시한다면, 서양의 형이상학은 본질적 실체에 대한 개념화를 중시하기 때문에 이분법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신비적 체험보다 과학적 합리주의를 더 신봉한다.
[중국은 동화 문화]
동양문화는 통합(統合-integrate)에서 시작된다. 그중에서 중국은 동화(同化), 일본은 응축(凝縮), 한국은 접화(接化)문화다. 동화는 한 생명체가 외부로부터 영양분을 섭취하여 필요한 에너지를 만드는 작용을 뜻하는데, 이때 필요가 없는 찌꺼기는 이화(異化)작용을 통해 배출한다. 동화작용과 이화작용을 반복하는 신진대사를 통해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존재를 유지한다. 그 동화작용이 이화작용보다 활발하면 비대해지고, 그 반대가 되면 허약해진다.
붉은 바탕에 별이 다섯 개인 중국의 오성기는 하나의 별에 동화된 네 개의 작은 별의 형상화다. 가장 큰 별은 중국공산당이고, 그것을 둘러싼 네 개는 노동자·농민·도시소자산계급·민족자산계급을 상징하지만, 구조적으로 주종의 관계가 될 수밖에 없는 형태의 조형화다. 중국의 역사는 한족이 주변 민족을 동화시켜 나가는 과정과 한족을 중심으로 거대한 하나의 중국을 만드는 것을 정치적 과제로 삼는다. 동화가 안되는 나라는 이적(夷狄), 즉 오랑캐라고 천시하고 배척했다. 중(中)이란 의미는 사방의 오랑캐들로부터 중심이라는 의미다.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의 오랑캐 민족들은 동화의 대상이다.
독립을 부르짖는 티베트에 대해 폭력적으로 대응하고,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와 발해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시키기 위한 프로젝트가 이것이다. 동화주의는 오늘날 화교를 통해 국경 밖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는데, 세계 각처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특히 동남아 지역에서는 강력한 통치력과 경제권을 갖고 있어 이들의 자본 규모가 동남아 산업의 50∼80%를 차지할 정도다. 자기중심적 확장의지는 영토뿐 아니라 상술에서도 나타난다. 상인(商人)이란 말은 고대 상나라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중국인들이 상대를 동화시키기 위한 기상천외한 방법과 전략은 『손자병법』, 『삼국지』등에 나타나 있다.
국가란 목적과 사명이 있기 마련인데, 왕도정치를 부르짖었던 맹자는 탁월한 이성을 갖춘 밝은 사람이 군주가 되어 착오 없는 판단으로 법을 세우고 우수한 능력을 가진 수호자 계급이 용기 있게 그것을 지키내고, 나머지는 생산에 종사하되 지배계급에 복종해야 한다고 했다. 군주가 먼저 수행을 통해 인의 덕을 갖추고 모범을 보임으로써 백성을 동화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플라톤이 이성적 능력을 갖춘 군주를 통해 위계적 사회질서를 구축해야 한다고 한 것과는 다르다.
유학이 발전하며 하늘의 이치가 사람의 심성과 일치한다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명제가 대두되었는데 우주의 생성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이기론(理氣論)체계를 세운 송나라 주돈이(周敦頤)는 음양오행 우주론적 체계를 세우고 그것을 도덕론으로 끌어옴으로써 유교 전통을 계승하고자 했다. 무극(無極)과 음양오행의 작용으로 만들어진 우주의 만물 중 가장 뛰어난 존재가 인간이고 사람의 도리를 세운 자를 성인(聖人)이라 불렀다. 성인은 우주 만물의 모범이 되는 존재로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갖추어야 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유교 이념은 봉건적 사회질서와 서열 관계를 유지하는 데 매우 적합했다. 그 영향으로 동양인들은 개인보다 출신과 소속을 중시하고 상대를 위하는 이타적 생활 태도가 몸에 배이게 되었다. 유교의 핵심인 인(仁)은 두 인격체 관계가 동등한 평등 관계가 아니라 주종이 분명한 사랑관계로 만약에 여기서 사랑이 빠지면 지배와 복종을 강요하는 주종관계만 남게 된다. 권위적이고 가부장제와 남존여비사상이 나오는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도교 사상은 서양인들에게는 산이 터부와 정복의 대상이었다면, 중국인에게는 동경과 동화의 대상이었다. 서양의 합리주의는 인간과 자연의 차이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이성의 우월성을 부각시키고 그것을 통해 자연을 지배하고자 했다. 도교에서의 무위자연은 인간과 자연의 공통점을 집요하게 찾아 구별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고자 했다. 그러나 둘 다 실현이 불가능한 꿈이다. 인간은 자연과 완전히 분리될 수 없고, 또 온전히 자연에 동화될 수도 없다. 서양과 동양이 서로 다른 꿈을 꾼 것이다.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는 한(漢)나라 때 중국에 유입되어 많은 변화를 거쳤다. 탈속적 도교나 가부장적 위계질서를 강요하던 유교의 삶에 고통으로 허덕이던 사람들에게 불교는 직접적인 위안이 되었다. 불교의 공(空)사상은 인간에게 본성이 있다고 믿은 유교를 곤혹스럽게 하였지만, 무위자연을 추구한 도교와는 공통점이 많았다. 불교의 각(覺)은 도(道)의 개념으로, 반야(般若)사상은 도교적 허무사상과 관련해서 해석되기도 했다.
6세기 보리달마(菩提達磨)에 의해 중국에 전해진 선종(禪宗)은 본고장 인도보다 중국에서 번성하여 한국과 일본으로 전파되었는데 선종은 현학적인 경전에 의존하지 않고 참선을 통해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주시하고 마음의 흐트러짐을 차단함으로써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불립문자(不立文字)는 선종의 핵심 정신이고 이것은 노자의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와 통한다. 선종은 인도의 불교가 중국의 토속 종교인 도교와 결합하여 탄생한 불교라고 할 수 있다.
선종의 수행 방법은 마음이든 화두든 집착과 번뇌를 내려놓고 만유의 본체로서 평등하고 차별 없는 진여(眞如)의 상태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이 상태를 불성(佛性)이라 하며, 모든 인간은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불성을 깨달아 그대로 부처가 된다는 것으로 고립된 실체가 없고 관계만 있다는 연기론적 空사상과 달리 인간 본성으로서 불성을 주장한 것이다. 이는 불교가 중국에 정착되면서 유교의 본성론과 결합된 것으로 중심을 필요로 한 중국의 동화의지가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일분은 응축 문화]
‘1.하나로 집중되다. 2.한데 엉기어 굳어지다.’는 의미인 응축(凝縮)은 동화(同化)처럼 성분 자체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이질적인 존재를 압축해 하나의 작은 통일체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 자연계에서 작은 통일체는 큰 전체의 요소에 복속된다. 작은 전체가 큰 전체로 복속되는 과정이다. 응축은 동화와 마찬가지로 통합의 힘이지만, 그 질과 지향점은 상반된다. 동화의지가 자기를 중심으로 외부로 향해 확장해가려는 힘이라면, 응축은 내부를 향해 수축하며 하나로 결속하려는 힘이다.
응축은 부피를 줄이고 온도를 낮추는 것이기 때문에 활기찬 생동성보다 정적으로 고착된 상태가 되는데 이런 특징은 일본에서 보존 문화가 발달한 배경이다. 일본에는 등록된 박물관만 4천 개가 넘고, 곳곳에 박물관이 있어 마치 전 국토가 박물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일본은 과거의 역사와 문화를 마치 냉동 창고처럼 보존하려는 의지가 남다르다.
일본인들의 몸에 밴 예절과 지나칠 정도의 상냥함은 상대와의 대립적 갈등을 피하기 위한 배려다. 응축의지는 심리적 완벽주의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들은 대립과 갈등 상황에 놓이는 것을 힘들어하고, 완전하게 하나로 통일되어야 안심한다. 과거에 중국은 한국을 침략해 주종관계를 요구했지만, 일본은 단발령을 시행하고 성씨를 개명하게 하여 한국인의 의식구조까지 완전히 바꾸어 하나의 일본을 만들고자 했다. 이런 차이가 문화의지의 차이다.
일본에는 약 10만 개의 신사(紳士)가 있다. 몇 해 전 한국의 산사 7곳과 서원 9곳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과 비교해 보면 그 수가 짐작이 안 될 정도로 많다. 일본에 정착한 외래 종교는 불교가 48% 정도지만 그것도 신토(神道)라는 토속 종교와 융합되어 있다. 기독교인은 1% 미만이다.
일본에 기독교가 정착하지 못한 것은 개인의 신앙을 중시하는 기독교가 일본의 조직사회를 유지하는데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는 개인의 힘으로 유대교의 권위적인 율법주의에 맞섰고 팔레스타인 사회에 큰 위협이 되어 결국 십자가형을 당했다. 16세기 타락해 가던 로마교황청 권위에 맞서 종교개혁을 이뤄낸 마틴 루터 역시도 개인의 힘으로 가톨릭이라는 거대조직과 대립해 개신교를 낳았다. 기독교는 종교 조직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개인들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 이는 서양 문화가 개인주의적으로 나아간 배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본은 현실에서도 계층 간 신분이동을 차단하고 기존의 통합된 조직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유일신보다 다신숭배가 유리하다고 보았고 신토에서는 신과 인간의 차이가 없고 예배의 대상보다 참배를 더 중요시했다. 심지어 대상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참배하는 경우도 있다. 그들은 대상이 누구든 신을 숭상하고 영위를 높여주면 그 대가로서 신이 인간을 지켜주는 복을 준다고 믿는다.
일본인들이 섬기는 신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메이지 천황 같은 정치적 영웅들도 있고, 야스쿠니 신사에는 과거 군국주의 시대 천황을 위해 죽은 250여 만의 전사자들을 신으로 모시고 있다. 우파 정치인들이 주변국들의 비난을 감수하고 신사를 참배하는 것은 일본 국민의 내부 결속을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행위다. 천황은 살아 있는 신이며 콩코교(金光敎)나 텐리교(天理敎)교조들도 살아 있는 신이다. 내세를 위한 신 중심의 종교가 아니라, 현세적 체제 유지를 위한 인간 중심의 종교인 것이다. 이를 통해 정치인들은 세습에 대한 명분을 얻고 하나로 응축된 조직사회를 이룩하고자 한다.
7세기경부터 천황의 신불화(神佛化)가 이루어져 『고사기』, 『일본서기』같은 역사책을 통해 천황은 신의 자손이라 지칭하면서 신의 자손만이 일본을 지배하는 유일한 존재라고 했다. 이는 백성의 아버지인 천황을 중심으로 나라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조직체계로 만들고자 한 것이다. 무사정권이 들어서면서 천황의 지위가 크게 약화 되어 사실상 실권되었지만, 이후 무사들이 천황의 제사와 의식을 담당하면서 여전히 신격화되고 결국 쇼군을 임명하는 것은 천황이었다. 쇼군은 정권교체가 많았지만, 천황제만큼은 지금까지도 지속적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지금도 일본인들은 천황에 대한 충성심은 무조건적이며, 제2차 세계대전에는 항복의 조건으로 천황제 유지를 내걸었다. 정치인들은 일본의 군사적 대국화에 필요한 민족주의를 위해 천황제를 고수하고 있으며 일본민족의 정체성을 강조할 때마다 천황의 역할을 중요하게 부각시킨다. 이처럼 유래를 찾기 힘든 천황제를 유지하며 국민을 통합하고 있다. 이것은 일본인들의 응축의지가 만들어낸 문화적 현상이 아닐 수 없다.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이었음에도 불과 30년 만에 세계 경제대국으로 발돋음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조직문화의 응축의지 때문이었는데, 일본의경제성장은 경이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것이었다. 그 비결은 관료조직의 시장에 대한 효율적인 통제와 적극적인 개입에서 찾는다. 그러나 놀라운 성장을 보이던 일본 경제가 오늘날 장기불황의 늪에 빠진 것도 관료조직과 무관하지 않다. 경직된 관료제도는 급변하는 오늘날의 상황이나 재난에 신속하게 순발력 있게 대처하는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최근 일본 내부에서도 관료 망국론이 등장하기도 한다.
일본에서 존경받는 사람은 다방면에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자기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사람이다. 일사 분란한 조직화된 사회시스템은 혼돈스러운 사회를 안정시킬 때는 큰 힘을 발휘하지만, 사회가 안정적일 때는 생기를 잃고 나른하게 정체되기 쉽다. 계층간 이동이 제한된 일본의 응축 문화는 전문화를 지향하는 모던시기 시대정신과는 부합되었지만, 순수성이 해체되고 장르 간 융합이 활발한 포스트모던(주체 및 경계의 해체, 탈 장르화 등의 특성을 갖는 예술상의 경향과 태도-기존의 틀을 따르지 않음)시대정신과는 부합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 일본이 직면한 과제다.
[한국의 접화 문화]
서로 다른 두 식물의 절단면을 따라 접합시키는 ‘접붙이기’가 접화(接化, grafting)라 할 수 있다. 《성경》에 밑둥치가 잘려진 돌감람나무를 참감람나무에 접붙이면 좋은 열매를 맺게 된다는 비유가 있다. 이를 통해 구원의 가능성을 말한 것이다. 일본의 응축 문화가 완벽주의를 지향한다면 한국의 접화 문화는 대립하는 이질성이 보존되는 상극의 어울림으로 혼합주의를 지향한다. 이는 민족이 거주하는 지형과 무관하지 않다.
중국처럼 거대한 대륙 국가는 농경문화와 안정된 삶을 누리면서 자신이 있는 곳이 중심이라고 생각하기 쉽고, 일본처럼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해양 국가는 갈등과 분열이 생기면 피하기 어렵기 때문에 내적으로 응축해 조직화하려고 한다. 또 한국처럼 대륙과 해양이 접한 반도 국가는 두 가지 문화가 뒤섞이기 때문에 접화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전통음식인 김치나 찌개, 비빔밥 등에 잘 나타나 있다.
온도와 관계없이 ‘시원하다’라고 하는 것은 모든 재료를 기름에 뽁아 동화된 맛을 추구하는 중국요리나 회처럼 단일 재료로 응축된 맛을 내는 일본요리와 다른 것이 한국요리의 특징이다. 이는 주변을 자연과 접하게 하는 한국의 정원과 인공적으로 자연을 거대하게 만드는 중국과 작게 집안으로 끌어들이는 일본과 다른 특징이기도 하다. 또 한국은 건축 자체보다 풍수지리에 입각하여 자연과 이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터를 중시하여 운동도 바람이나 지형 등에 접화한 양궁, 골프에 강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 접화 문화는 종교나 이데올로기에서도 작용하는데 기독교와 불교 등 신앙과 사상이 전혀 다른 종교들이 사이좋게 공존하는 거의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현대와 전통, 동양과 서양, 아날로그와 디지털 등 역동적으로 긴장을 이루고 있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그러나 이렇게 대립된 요소들이 상생의 관계를 이루면 태극처럼 이상적 통합모델이 될 수 있지만, 상극이 되어 갈등 관계가 되면 극한 대립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접화는 중심이 있는 안정적인 통합이 아니라 대립적 어울림이기 때문에 언제나 상생과 상극이라는 긴장 관계에 놓여 있다.
서양 신화는 인간은 신과 자연 사이를 방황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인간은 원래 머리가 두 개, 팔과 다리가 네 개, 생식기도 두 개였으나 그들이 점점 번성하고 강성해지자 위협을 느낀 제우스가 그를 반으로 쪼개 힘을 잃게 했는데, 그때부터 인간은 잘려 나간 반쪽을 찾는 일에만 매달리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해 몸부림치게 된다. 이것을 ‘에로스’의 기원으로 보았는데 이처럼 서양 신화는 신과 인간의 관계가 ‘신인불합’이었는데 반해 한국신화는 ‘신인묘합’즉, 신과 인간이 극적인 화해를 이룬다는 것이다.
가장 오래된 신화를 담고 있는 『부도지(符都誌)』(신라 박제상이 태학사로 있을 때 정리한 비서로 알려져 있음)에 따르면 천신인 마고(麻姑)가 하늘의 음(音)인 율려(律呂)에 의해 지상에 부도라는 낙원을 건설한다는 이야기로 천인들은 마고성에서 지유(地乳)를 먹고 살았는데 백소씨족의 지소(支巢)라는 자가 지유가 부족 하자 담벼락에 열린 포도를 따 먹고 오미(五味)를 맛보게 된다. 이를 계기로 천인들이 열매를 먹기 시작하면서 이(齒)가 생기고 침이 뱀의 독과 같이 되었으며 눈은 올빼미처럼 밝아졌다. 그러자 피가 탁해지고, 마음은 모질게 독해져서 마침내 하늘의 본성을 잃게 된다. 자재율이 파괴되고 율려가 차단됨으로써 수명이 짧아지게 된다. 마치 성경의 창세기의 선악과를 연상시키는 이 이야기는 죄의 고통과 원인, 인간의 수명이 유한한 이유에 대한 신화적 해답이다.
결국 마고성의 지유가 말라 버리자 장남인 황궁(黃穹)이 천부(天符)의 신표를 나누어 주고 사방에 흩어져 살 것을 명한다. 그래서 청궁씨족은 운해주(雲海州-중국대륙), 백소씨족은 서쪽 월식주(月息州-이란 이라크지역), 흑소씨족은 남쪽 성생주(星生州-인도, 인더스 유역), 황궁씨족은 북쪽 천산주(天山州-시베리아 중앙아시아)로 옮겨 살게 된다. 천산주는 매우 춥고 위험한 땅이었으나 황궁씨는 마고성을 회복하겠다는 굳은 의지로 이 땅을 선택했는데, 황궁씨가 한민족의 조상이라는 것이다. 이후 황궁씨는 천신족의 징표인 천부삼인(天符三印)을 맏아들 유인(有因)씨에게 물려주고 유인씨는 다시 아들 환인(桓因)에게 물려주어 환인이 동북아 9개 족속을 다스리는 환국의 왕으로 추대된다. 이것은 한민족이 잃어버린 지상낙원인 부도를 복원하는 데 있음을 밝힌 것이다.
천상계와 지상계가 접화된 곳에 부도(符都)를 건설하는 것인 한민족의 이상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한민족을 배달민족이라고 하는데 배달은 부도가 음차된 것으로 부도의 고어는 뷔더이며 이것이 바이더〉바이다〉배달로 변한 것이다. 부와 바는 모두 밝다는 의미이고, 더와 도는 터라는 의미여서 부도와 배달은 밝은 도읍지라는 의미다. 하늘의 뜻에 따라 부도의 공동체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야말로 한민족의 신화적 이상이었다.
불교의 공사상은 우주의 바탕을 존재론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기독교는 창조주를 중심으로 전문화되어 우주를 작가론적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다. 또 도교는 창조주가 낳은 천지자연의 이치를 다루어 작품론적 접근이며, 유교의 성리학은 우주 중에서도 가장 대표 존재인 인간을 다룬 것이기에 명품론적 접근이라 할 수 있다. 모두 각각 우주의 바탕과 본체와 작용을 다룬 것이기에 충돌할 이유는 전혀 없다. 인간을 사회학, 심리학, 물리학, 생물학 등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듯이, 우주를 보고 다루는 관점도 존재론, 작가론, 작품론, 명품론 등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결국 전문화된 종교들은 표층에서는 서로 대립할 수 있지만, 심층에서는 서로 필요로 하는 유기적 관계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연결성이 없지만 ‘단군(檀君)’이라는 말은 퉁구스어로 천신과 하늘을 의미하는 텡그리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 곰을 숭배한 고아시아족은 최고 샤먼을 텡그리감(天君)이라고 불렀는데, 텡그리는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중재자를 말한다. 최남선은 텡그리가 당골〉당굴〉단군으로 변한 것으로 보았다. 지금도 전라도 지방의 세습 무녀를 당골네 혹은 단골네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자기 집에 신단을 갖고 있거나 성황당을 관리한다.
신라 화랑도가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되었다면, 선비정신은 조선왕조의 정신적 토대였다. 선비(士)의 어원은 선인(仙人)이며 고구려 시대 선비는 신분이 아니라 하늘의 도를 깨우친 신인을 의미했다. 고구려에는 ‘선배제도’라는 것도 있었는데 선배도 선인에서 온 말이다. 매년 3월 10일 ‘신수도’(臣蘇塗-수도는 고조선 시대 신단(神壇)이라는 이두문자가 한자로 음차 되면서 소도로 변한 것)라는 제전행사를 벌였는데, 이때 선배인 조의선인(皂衣仙人-검은 옷)을 뽑아 국가에 공헌하게 했다고 한다. 고구려 역시 신분사회였으나 여기서 뽑힌 조의선인, 즉 선배는 실력으로 뽑았기 때문에 뛰어난 인물의 등용문이 되었다. 을파소, 명림답부, 을지문덕 등이 여기서 뽑힌 인물들이고 연개소문은 이들의 강력한 후원을 받았다고 한다.
선비들은 벼슬자리 외에 딱히 먹고살 길이 없었지만, 나아가는데 신중하고 물러설 때에 집착하지 않았다.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를 처사(處士)라고 하는데, 이들은 관직에 나간 선비보다 더 존경 받았다. 참 도를 깨우친 선비에 의해 통치되고 선인에 의해 교육되는 사회야말로 한민족의 이념인 홍익인간을 실현할 수 있는, 한국인이 꿈꾼 이상사회였다.
평등사상을 꿈꾼 동학운동은 비극적으로 끝났지만, 이는 천지인 사상을 바탕으로 반봉건 사회개혁을 외친 근대적 시민운동이었다. 이상사회를 건설하고 모두가 선인이 되고자 했던 한민족의 오랜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으나 타락한 조선사회에서는 대역죄가 되고 말았다. 유교의 정치이념을 따른 조선 사회는 겉으로 민본주의를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백성과 힘없는 민중을 오직 통치의 대상으로 삼았을 뿐이다. 영국의 명예혁명(1688), 미국의 독립운동(1776), 프랑스대혁명(1789) 등은 인권의 자유와 평등정신이 자연법사상과 계몽사상을 토대로 일어난 것이었지만, 그 배경에 부르주아 계층이 신흥세력으로 성장한 사회에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면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동학운동은 시민사회 성장에 따른 것이 아니라 천지인 사상에 기반을 둔 인권운동이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철학적이다.
【2부】미학, 어떻게 다른가
서양미학은 미적 이상에서 미의 순수한 실체를 규명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고, 미추(美醜)의 분리를 통해서 미에 기생하고 있는 추를 제거하고자 한다. 여기서 미와 추를 분리시키는 주체가 인간이기 때문에, 서양미학은 인간 중심적 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동화의지에 입각한 중국미학은 인간이 우주에 온전히 동화되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상태를 미적 이상으로 삼고 합일의 주체는 우주이며 인간은 우주에 동화됨으로써 우주성을 획득하고자 하기 때문에, 중국미학은 우주 중심적 미학이다. 응축의지에 입각한 일본미학은 관념적인 우주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응축된 사물과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상태를 미적 이상으로 삼는다. 그것은 일체의 주체가 사물이기 때문에, 사물 중심적 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접화의지를 가진 한국미학은 인간과 신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신인묘합(神人妙合)’의 상태를 미적 이상으로 삼으므로, 주체는 어느 한쪽으로 기우는 중심주의가 아니라, 인간과 신이 상호주체가 된다. 이때 상호주체는 인간과 자연, 신과 인간이 서로 섞여 있기 때문에, 무한한 상호작용을 하게 되고 이것이 특유의 한국미학이다.
[서양의 분화주의 미학]
조화로운 상태를 미로 느끼는 것은 동서양이 다를 바 없지만, 조화에 대한 관념에는 차이가 있다. 동양인들은 인간이 우주와 어울리는 것을 조화라고 생각한 반면에 서양인들은 모든 대상에 내재한 수(數)의 비례관계에서 조화를 찾았다. 여기에서는 수학적 합리성이 전제되는데 합리성과 이성을 의미한 ‘rational’은 수적 비례를 의미하는 라틴어 ‘ratio’에서 파생되었다. 세상의 모든 피조물에는 황금비(黃金比)라는 우주적 비밀이 있다고 믿은 그리스 수학자 피타고라스는 정오각형의 꼭짓점을 연결하여 1개의 별을 얻고, 중앙에 생긴 작은 오각형의 꼭짓점을 연결하여 작은 별을 만드는 과정을 무한 반복했는데, 이때 별을 이루는 다섯 개의 삼각형은 밑변의 양 끝이 72도가 되는 이등변삼각형이고, 삼각형의 빗변과 밑변의 비율이 황금비율인 1 : 1.618이 된다고 했다.
[피타고라스의 팬타그램]
팬타그램이라고 불리는 이 별은 피타고라스학파의 상징처럼, 부적처럼 이용되었다. 서양에서는 이것을 비너스의 상징이자 악을 물리치는 도형으로 여겼다. 도형의 황금비를 신의 도형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플라톤도 황금비를 ‘이 세상 삼라만상을 지배하는 힘의 비밀을 푸는 열쇠’라고 하고는 예술 창조의 원리로 보았다. 수학과 기하학에 기댄 고전주의 미학은 인간에게서 이상과 감성을 분리시킨 뒤에 이성을 미로 삼으려는 분리주의적 특징을 드러냈다.
기원전 2세기경 만들어진 그리스 조각 〈라오콘 군상〉에 대해 독일의 미술사가 빙겔만은 “휘몰아치는 격정 속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위대한 영혼을 나타낸 고귀하고 단순한 고요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고전주의 미학을 대변하는 문구가 된 ‘고귀한 단순, 위대한 고요’라는 말은 극적인 고통 속에서도 절규하지 않고 절제할 수 있는 이성의 위대함을 표현한 말이고 실제로 조각에서 그런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그는 이러한 이성적 절제를 최고의 미로 보았기 때문에 예술이 자연보다 위대하다고 주장했다.
[라오콘 군상]
자연을 동경하는 동양인은 마치 유아가 엄마에게 느끼는 감정처럼 순수하고 무조건적으로 자연을 숭배한다. 그러나 서구 낭만주의자들의 자연 찬미는 과학의 식민화로부터 예술을 분화시키려는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서양의 낭만주의는 아카데미즘으로 굳어진 고전주의 아방가르드(20세기 초 유럽에서 일어난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따위의 기성 예술의 관념이나 형식을 부정한 혁신적인 예술 운동을 통틀어 이르는 말)역할을 수행하며 변증법적인 역사를 만들어왔다. 20세기 들어 물질과 정신 사이의 초자연적 관계를 발견하고자 했던 상징주의, 개인의 주관적 내면과 자발적 창조 행위를 중시한 표현주의, 개인의 억압된 무의식의 세계를 다룬 초현실주의, 반이성적인 해체를 특징으로 하는 포스트모더니즘(비역사성, 비정치성, 주변적인 것의 부상, 주체 및 경계의 해체, 탈장르화 등 특성을 갖는 예술상의 경향과 태도)예술 역시 낭만주의 변주로 볼 수 있다. 한계에 도달한 분화주의 미학에서 탈출구는 동양미학과의 우연치 않은 만남이었는데, 자기 파괴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서양의 포스트모더니즘이 그 대안으로 존재론적인 희망을 꿈꾼다면 그것은 동양과의 만남을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오늘날 서양은 동양의 문화를 곁눈질하고 있고 동양은 서양을 추종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자신들의 문화적 한계를 보완하려는 흐름 속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분화주의에 입각한 고전 물리학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기반으로 하는 양자역학에 의해 붕괴되면서, 동양과 서양의 접점을 찾으려는 시도들이 이어졌다. 이런 신과학운동은 물질의 궁극적 실체가 고전물리학자들이 생각한 것처럼 명료하게 붙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이해될 수 없는 신비로운 것이라고 보았다. 자연관과 전통적인 동양의 유기체적 자연관이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음에 주목했다. 양자역학에서 주장하는 부분과 전체의 상관성은 음양의 상보적 관계라는 동양사상과 매우 흡사한 것이다.
정신과 물질, 영혼과 육체라는 이원론을 극복하려는 신과학 운동들은 그 뿌리는 다르지만, 내용적으로 동양의 통합적이고 전일적인 우주관과 매우 근접해 있다. 진리의 객관화가 사라지고 낭만주의자들처럼 전체성에 대한 신념을 관념적으로 탐구한 것이 아니면서 동양처럼 명상을 통한 통합주의적 태도나 수행을 중시하는 것은 서양의 전통과 괘를 달리하는 것이면서 오히려 동양의 전통과 접목되는 것이 낫다고 본 것이다. 중국과 일본, 한국은 오랫동안 나름의 통합주의적 사상과 문화를 일구어온 민족들이어서 이들 민족의 미학을 검토하는 것은 포스트모던 이후의 문화의 방향을 모색하는 데 시사하는 작업이 될 수 있다.
[중국의 동화주의 미학]
우주를 신비롭게 생각한 동양인들은 인간과 우주의 화합을 추구하고자 했다. 낙천적이고 관념적 사유를 좋아한 중국인들은 우주에 온전히 동화되는 천인합일을 미적 이상으로 삼았다. 우주에 동화될 수 있다는 생각은 밤하늘의 달을 보면서도 서양인들은 그것의 실체를 규명하고 정복의지가 강했다면 중국인들은 달은 우주적 신비이고 동화의 대상이었다. 이태백은 “꽃 사이에 술 한 병 놓고 벗도 없이 홀로 마시네. 잔을 들어 달맞이하니 그림자 비춰 셋이 되었네. 달은 본래 술 마실 줄 모르고 그림자는 흉내만 낼뿐. 잠시 달과 그림자를 벗 삼아 봄날을 마음껏 즐기리. 내가 노래하면 달은 서성이고 내가 춤을 추면 그림자도 덩실덩실 취하기 전에는 함께 즐기지만 취한 뒤에는 각기 흩어지니 정에 매이지 않는 사귐 길이 맺어 아득한 은하에서 다시 만나세!”「월하독작(月下獨酌)」
중국 최초 음악이론서인 『예기』「악기(樂記)」에는 “대악은 천지와 동화한다.”라고 하여 음악의 목적이 우주와 동화하는 데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음악의 기능이 하늘과 땅의 조화로서 친하게 동화되는 역할이면서 예는 하늘과 땅의 질서로 서로 공경하게 하는 기능이 있다고 보고 예와 악을 상호보완 관계로 보았다. 하지만 동화만을 위해 음악이 너무 강조되면 질서가 난잡해지고, 질서를 위해 예를 너무 강조하면 서로 소원해진다고도 했다.
색(色)에 대해서 서양은 빛의 반사에 의해 스펙트럼에 나타나는 7색이 기본이지만, 오행사상에 근거한 동양은 무지개를 ‘오색찬란한 무지개’라고 하는 것처럼 5색이 기본이다. 황청백적흑의 오방색은 빛의 스펙트럼에 의한 시각적인 색이 아니라, 음양오행의 우주작용을 상징한다. 여기서 황(黃)은 흙을 상징하고 중앙, 우주의 중심을 의미한다. 청(靑)은 나무를 상징하고 동쪽과 귀신을 물리치고 복을 빈다는 의미다. 백(白)은 쇠를 상징하며 서쪽과 결백, 진실, 순결 등을 의미한다. 적(赤)은 불로써 남쪽과 창조, 정열, 애정, 열정의 의미한다. 흑(黑)은 물을 상징하며, 북쪽과 인간의 지혜를 관장한다. 이런 색의 조화로 이루어진 그림은 곧 우주의 조화를 따르고 조화를 통해 천인합일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다.
서양미학에서는 형상(image)이 뭉뚱그려져 있지만, 중국미학에서는 사물의 외면적 실체를 뜻하는 형(形)과 허체인 氣로 이루어진 상(象)이 구분되어 있다. 주역에 “하늘에서는 상을 이루고 땅에서는 형을 이룬다.(在天成象 在地成形)라고 한 것처럼 상을 형이상학적 존재로, 형을 형이하학적 존재로 보았는데 그만큼 형보다도 상을 중시했다는 의미다. 경계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사물의 외형보다 상을 통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 것이고 만물에 내재한 상을 보기 위해서는 마음을 맑게 해야 ‘상 너머의 뜻(象外之意)’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중국사상에서는 인간은 형, 기, 신의 유기적 구성물이다. 形이라는 것은 생명의 집이고, 氣는 생명을 가득 채우는 것이며, 神은 생명을 제어하는 것이다. 그중 하나를 잃으면 셋이 모두 상하게 된다고 『회남자』에서 밝히고 있다. 형이 육체를 관장하는 하드웨어라면 신은 영을 관장하는 소프트웨어, 기는 형과 신을 매개하고 작동하게 하는 전기에너지 같은 것이다. 기를 중시한 중국미학에서 형은 경시되지만, 기와 신은 기름과 등불처럼 밀접한 관계에 있다. 이 둘은 명료하게 나눠지지 않는다.
아는 길은 막혀도 불안하지 않지만, 모르는 길은 누구와 같이 혹은 빨리 가더라도 불안하다. 눈앞에 이익과 집착에 사로잡혀 인생의 목적과 길을 잃는다면 우리는 첫 번째 경계에 이를 것이다. 두 번째 경계는 잠자고 먹는 것도 잊은 채 몸과 마음을 바쳐 불타는 열정으로 노력하고 목적과 길을 알아도 게을러서 열정과 사명감으로 자신을 불태울 수 없을 때다. 세 번째 경계는 그렇게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가까운 곳에서 문득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우리가 찾는 보물은 언제나 가까운 곳에 있는 법이다. 집착과 분별심을 벗어나 너와 나, 선과 악, 미와 추의 구분이 사라진 무차별 경계에 이르러 자타가 사라지면 무아지경의 황홀경을 체험하게 되고 여기서 우리는 진정한 존재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고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의 응축주의 문화]
천인합일과 일본의 물아일체(物我一體)는 자신을 비우고 스스로를 초월하여 자연과 하나 되고자 한다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초월의 대상과 방법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 중국의 화합은 그 대상이 우주라면, 물아일체에서는 사물이 대상이다. 이는 중국인의 사유가 관념적인 반면 일본인의 사유는 보다 구체적이라는 의미다. 우주와의 합일을 추구하면서 인간과 우주가 공통된 매개체를 기에 두었다면 일본인들은 기가 응축된 사물에 주목했다.
삶 속에서 만나는 모든 현상적 대상들, 즉 구름, 나무, 연못, 돌 같은 구체적인 자연물에 인간의 감정을 이입함으로써 미적인 정서를 얻는 방식으로 응축된다. 사물과 자아, 객관과 주관이 경계 없이 하나로 통합되는 물아일체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미적 이상으로 삼은 것이다. 중국에 시성으로 불리는 두보(杜甫)가 있다면 일본에는 하이쿠의 거장 마쓰오 바쇼가 있다. 둘의 시에서 감정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두보는 길 떠나는 나그네의 고독과 애수를 “ … 서리 어려 있는데 외로운 학은 멀리 날아가고, 달지는 새벽에 먼 산이 누워 있네. 아이야 길 험하다고 말하지 마라. 시절 태평하고 길도 평탄하지 않느냐!”고 「조행」에서 말했다. 이런 두보의 한시를 바쇼는 “말에서 잠 깨어 꿈은 남고 달은 멀고 차 끓이는 연기!”라고 응축해 말했다. 두보의 “달지는 새벽에 산이 멀리 누워 있네”가 대자연의 숭고함을 느끼게 한다면, 바쇼의 “차 끓이는 연기”는 시인이 연기와 일체 되어 있다.
바쇼의 시는 일상 속에서 사물과의 찰나적 만남을 통해 지금, 여기서, 순간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도를 깨우치고자 하는 선불교적 돈오를 느끼게 한다. 이것은 사물과의 감정이입을 통해 에고의 집착을 사라지게 하는 일본 미학의 특징이다. 일본인들은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추상성을 그대로 수용하기보다 그것이 응축된 구체적인 사물에 자연을 향해 열려 있는 신비한 창을 발견하는 데 익숙하다.
모든 사물은 곧 사라질 무상한 존재다. 사물이 사라진다는 생각과 물아일체가 되면 애상(哀想)의 정서를 느끼게 되는데 이런 정서를 ‘모노노아와래(物の哀れ)’라고 한다. 사물뿐만 아니라 인간의 부귀영화도 모노노아와레가 될 수밖에 없다. 불로초로 영생을 꿈꾸었던 진시황도 결국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서구인들에게 사물은 실증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의 대상이었다면, 일본인에게 사물은 거시적 우주가 응축된 무상한 존재였다.
모노노아와레는 불교가 융성했던 헤이안시대(794∼1185) 왕조 문학을 대변하는 미학이었다. 불교의 삼법 중 하나인 ‘제행무상’은 불변하는 실체는 존재하지 않고 생성 변화하는 일체의 현상은 영원한 것이 없다는 그것의 무상감이 미의식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세속적 집착을 벗어난 마음상태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것은 극복할 수 없는 좌절감이나 헤어날 수 없는 절망과는 다르다. 불교는 좌절이나 절망은 오히려 무상한 존재로 붙잡으려는 집착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모노노아와레는 인간의 마음을 사물에 일치시킴으로써 세속적 집착을 내려놓고 사물의 섭리를 따르는 것이다.
1865년 프랑스 화가 브라크몽은 일본 도자기 포장지에 사용한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만화 한 조각을 친구인 마네, 드가 등에게 보여 주었다. 이로 인해 19세기 유럽은 자포니즘의 열풍이 불게 되고, 우키요에(사실주의적인 설화와 모모야마 시대·도쿠가와 시대의 장식적 화풍을 혼합한 미술양식)의 영향을 받은 인상파 화가들은 평면적이고 강렬한 색의 그림을 그리게 된다. 단순화된 평면성과 깔끔한 윤곽선, 화려한 색채의 우키요에는 유럽의 현대회화가 사실적인 재현에서 단순화로 방향을 바꾸었다. 중국미학과 달리 일본미학은 일상에서 미시적이고 놓치기 쉬운 미세한 감정들을 느끼게 한다. 관습화된 인간의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것이나 무심히 보아 넘기는 것에서 발견되는 의외의 생명력은 인간의 사유 작용으로 감지하기 어려운 세세한 느낌까지 포착한다. 이것은 미세한 관찰에서 얻어지는 경이로운 감정이며 그것을 자유롭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매우 여성스러운 미의식이 아닐 수 없다.
[우키요에 양식의 평풍화]
[한국의 접화주의 미학]
천인합일에서는 통합의 중심이 우주이고, 물아일체에서는 그것이 사물이라면 신인묘합은 신과 인간이 상호주체가 되는 통합을 지향한다. 둘 다 주체가 되기 때문에 합일이나 일체가 아니라, 묘합이 되는 것이다. 묘합은 서로 어우러질 수 없는 것 같은 상극의 존재가 오묘하게 통합된 접화의 상태를 말한다. 고조선 시대부터 천신에게 제를 올리는 국가 행사를 치뤘고 삼국시대부터는 불교를 수용했지만, 천신은 제석(帝釋)이라는 이름으로 생명, 운명, 출산, 농업 등을 관장하는 인격신이었다.
사찰 안에 산신각, 칠성각 등을 두어 인격신과 비인격신의 조화를 꾀하고자 한 것도 한국불교만의 특징이다. 조선시대에는 유교가 국교가 되면서 인격신이 철저히 억압되었으나, 민간에서는 제석신앙이 무속으로 이어져왔다. 억압되었던 신격신관이 폭발한 것은 최재우에 의해 주창되었던 동학이다. 그는 불교, 유교의 영향으로 약화 된 인격신관을 부활시킴으로써 민중의 큰 호응을 얻었다. 그것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고 한 것에서 유대교 지도자들로부터 “예수가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한다”는 모함을 받아 십자가형을 받은 것처럼, 기독교가 체험보다 형식적 문화행사로 전락한 이유기도 하다.
동학은 천주(天主)라는 인격신관을 복원하여 신의 내재성을 통해 서학과 차별화를 두고 시천주(侍天主), 즉 천주를 마음에 모시는 체험을 중시했다. 인내천(人乃天)이 곧 신인묘합의 상태인 것이다. 중국인들은 하늘을 생각할 때 기가 가득한 우주를 생각하지만, 한국인은 우주의 주체인 인격신을 생각한다. 이 인격신관은 민족신관인 천부경의 “광명을 앙망하는 사람 안에서 천지가 하나로 접화 된다.(仰明人中天地一)와 통한다. 한국이 근대 이후 서양의 기독교를 열광적으로 수용한 것도 인격신관의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인격신 전통이 없는 중국이나 일본은 기독교가 성공적으로 정착하지 못했다. 문화행사로 전락한 서양의 기독교와 달리 한국의 기독교는 직접적인 체험을 중시한다.
‘한국의 멋’이라고 할 때 멋은 맛에서 왔다는 설, 신라 화랑, 조선의 처사에서 찾을 수 있다는 설, 최치원 〈난랑서〉의 풍류라는 설 등 여러 가지지만, 시대와 사회적 목적에 따라서 형성된 미의식이 ‘해학’이거나 ‘평온’과 ‘신명’이런 것이 신성에 가까운 미의식이라면 소박과 해학은 인간성에 가까운 미의식이라 할 수 있겠다. 신명과 해학은 양성적인 미의식이고 소박과 평온은 음성적인 미의식이라 할 수도 있고 또 서양미학과 관련해서 보면 신명은 한국적 표현주의, 평온은 한국적 고전주의, 해학은 한국적 리얼리즘, 소박은 한국적 자연주의라고 볼 수 있겠다.
아름다움의 고어는 ‘아람다옴’으로 아람은 자기를 의미하는 것이고 다옴은 답다(如)는 의미이므로 ‘자기답다’는 뜻이다. 미와 아름다움은 다르다. 한국인이 사용하는 아름다움은 제 빛깔, 즉 가장 자기다운 얼이 드러나는 것이다.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자신의 본성대로 존재하기 때문이고, 인간이 추한 것은 자기다운 본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한국 예술이 추구하는 목적과 이상은 객관적인 미를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주관적인 개성을 통해 하늘의 섭리라는 보편성에 이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멋의 메카니즘(기계적인 제작)이다.
한국인들은 자신의 의지보다 신령한 힘에 의해 현실의 문제를 극복하고자 했다. 한국인은 유난히 신명에 강한 민족으로 신명이 나면 힘들고 어려운 일도 척척 해낼 수 있는 저력이 있다. 흥취가 나면 신난다거나 혹은 신명난다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하는데, 이것은 단순히 즐긴다거나 재미있다는 표현보다 더 깊은 의미를 내포한다. 이성이 발달한 서양인은 신명이 발달하지 않았으며 인격신의 개념이 약한 중국과 일본도 한국인만큼 신명이 깊지는 않다.
시베리아의 샤먼이나 이슬람의 수피즘 엑스터시는 영혼이 육체를 떠난 상태에서 일어나는 신비체험이라 강한 흥분과 황홀한 정서의 상태에 이르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다. 플라톤도 광기를 창조성의 원천이라고 했지만, 근대에 와서는 광인은 격리와 치료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결국 정신병원에 수감되었다. 이것은 이성을 인간의 주체성으로 삼고 광기를 타자성으로 간주하여 억압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은 인간의 주체성을 이성이 아니라 신명으로 삼았기 때문에 광기처럼 타자성으로 몰리지 않았고 오히려 신묘합일의 계기로 삼을 수 있었다. 맺힌 한과 갈등을 풀어주는 것이 신명이다. 신명 상태로는 일상이 가능하며 오히려 일의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이 민족만큼 곡선을 사랑한 민족이 달리 없지 않은가. 심정에서, 자연에서, 건축에서, 조각에서, 음악에서, 기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선이 흐르고 있다.”- 1922년 「조선의 미술」이라는 책에서 일본인인 야나기 모네요시가 한 말이다. 그는 한국 특유의 선이 고독과 비애의 정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그 논리는 곡선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고, 불안정하고 동요하는 마음으로 선은 이 세상의 덧없음을 느끼고 피안을 찾아 떠나려는 고독한 마음이라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중국은 크고 장엄한 형태의 미를 낳았고, 해양국가 일본은 따뜻한 기후에 꽃이 많고 평온하고 아기자기한 자연 속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서 화사한 색채를 탐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두 나라 사이에 낀 한국은 반도국가로 수많은 외침과 그로 인해 운명적으로 고독과 비애의 정서를 갖게 되었다고 보았고, 이 비애의 정서가 조형적으로 선을 주도적 요소로 선택하게 했고, 가늘고 긴 곡선으로 고독한 마음을 표현했다고 보았다. 이는 지형적 요인으로 그곳에서는 ‘자연마저 쓸쓸해 보인다.’라고 했는데, 맞는 말일까? 세계에는 스페인, 그리스 이탈리아 같은 반도 국가가 많다. 하지만 그들 민족성을 고독과 비애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들은 대륙과 해양문화가 만나는 장소에 있기 때문에 갈등과 긴장은 있었지만, 그들의 문화는 정체되지 않았고 오히려 역동적이었다. 야나기가 한국의 환경적 요인을 비관적으로 본 것은 식민시대에 한국을 보았기 때문이다.
한국미학은 ‘신명’과 ‘평온’, ‘해학’과 ‘소박’으로 구성된다. 신명이 일종의 광기라면 평온은 동요하지 않는 고요한 마음의 상태로써 집착과 갈등이 해소되었을 때 오는 정신적 충만감을 말한다. 신명이 신묘합일의 율동이라면 평온은 신묘합일의 여정(呂靜-음율 정서)이다. 신명이 양의 작용이면 평온은 음의 작용이고, 신명은 동이지만 정을 머금고 있는 동중정(動中靜)이고 평온은 정이지만, 동적인 상태를 머금고 있는 정중동 미학이다. 평온은 단순히 안락한 환경에서 오는 당연한 편안함이 아니라 분주하고 괴로운 현실 속에서도 평온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자연의 순환적 섭리에 대한 깊은 깨달음에서 가능한 경지며, 혼란스러운 마음을 흡수해 포용할 수 있는 명상적 차원의 미의식이다.
1954년 일본을 방문한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일본의 국보 1호이던 목조반가사유상을 보고, 그 특유의 평온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오늘날까지 수십 년 철학자의 생애를 살아오면서 이처럼 인간 실존의 참으로 평화스러운 모습을 표현한 예술품을 본 적이 없다. 이 불상은 우리 인간이 지닌 마음의 영원한 평화를 남김없이 최고도로 표현하고 있다.”야스퍼스가 본 이 반가유상은 한국에서 건너간 것이라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경북대 박상진 교수 「나무에 새겨진 역사」
일본인 학자 야나기 역시 〈석굴암 본존불〉를 보고 그가 찾던 종교적 평온미 극치를 읽어냈다. “어떤 진실이 어떤 아름다움이 이 찰라를 초월할 것인가. 그의 얼굴은 이상한 아름다움과 깊이로써 빛나고 있지 않은가. 나는 많은 불타의 좌상을 보았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신비에 가득 찬 영원한 작품일 것이다. 나는 이 좌상에서 조선의 가장 깊은 불교를 대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작품에서 종교도 예술도 하나인 것이다.”
서양의 중세 종교예술은 설명적이고 삽화적인 종교화다. 르네상스 시대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같은 작가들의 사실적인 종교화는 작가의 천재적 기교에 경의를 보내게 하지만, 그들의 작품들에서 종교적 정서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한국의 종교미술은 사실적이면서 종교적 느낌을 느끼게 한다. 깨달은 자의 미소와 어떠한 악도 포용해 줄 것같은 인자하고 친근한 마음까지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예술과 종교가 일체임을 의미한다.
한국미에서 마지막으로 볼 것은 해학과 소박이다. 해학은 삶의 역경과 난관에 처했을 때 불쾌한 사회적 현실을 웃음으로 반전시킬 수 있는 미의식으로 한 많은 삶을 살아온 한국인들에게 달관의 지혜이며 한국 고전에 뿌리 깊은 대명사다. 서양에도 희극은 있다. 인생의 깊은 고뇌를 다루는 비극과 달리 희극(comedy)은 웃음을 주조로 하여 인간과 사회를 경쾌하고 명랑하게 다룬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한 희극은 ‘보통 이하의 악인을 모방하는 것’이었는데, 이런 사람의 실수나 결함을 볼 때 웃게 된다는 것이다.
웃음은 감정의 상태에 따라 미소, 냉소, 고소, 실소, 조소 등 다양한 차원이 존재한다. 해학적 웃음은 냉소적인 풍자적 웃음과 다른 차원에서 나온다. 한국 특유의 해학에는 사회가 인위적으로 설정한 우열의 관계를 중화시켜 조화로운 공동체 이상을 실현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공동체적 이상은 해학의 중요한 미학적 사명이기도 하다. 해학의 諧는 ‘화합하여 평등하게 어울린다’는 의미고, 謔은 ‘즐겁게 논다’는 뜻이다. 해학은 공동체적 이상이 전제되지 않은 희극이나 단순한 웃음인 서양의 골계와는 다르다.
요즘처럼 발달 된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쉽지 않은 해학의 행위가 조선시대에 가능했던 것은 탈춤 등을 통한 반사회적인 저항보다 해학을 통한 공동체적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탈춤은 중국이나 일본처럼 직업 배우가 하는 것이 아니며, 가면극과 달리 무대와 관객을 따로 갈라놓지 않는다. 공연자와 관객이 한마당에서 자유롭게 섞이는 탈춤은 참여예술로서 모두가 하나로 어우러져 공동체적 이상을 구현하고자 했다.
소박(素朴)의 素는 누에의 실을 뽑아서 염색하지 않은 하얀 상태, 朴은 인위적으로 가공되지 않는 자연스러운 본래의 모습인 원목상태를 말한다. 중국이나 일본의 예술은 소박하지 않다. 소박미가 무위자연의 도가사상과 불교의 비움 철학과 통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한국인의 소박성은 종교적 이데올로기의 영향이 아니다. 한국인은 외래 종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신과 인간이 현묘하게 접화되는 신인묘합을 미적 이상으로 삼아왔으며 소박미는 하늘과 접화하려는 문화의지의 발현이었던 것이다. 한국인의 미적 이상은 무위가 아니다. 그것은 자연과 인간이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고 타협점을 찾는 것이다.
음식문화는 비교적 외래문화의 영향을 적게 받는다. 맛에 대한 감각은 몸과 직접 관련을 갖고 유전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의상과 거주문화가 서양식으로 바뀌었음에도 한식의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거의 모든 재료를 기름에 튀겨 재료의 맛을 하나로 동화시키는 중국 요리는 결코 담백하지 않다. 일본인들이 즐기는 사시미는 섞지 않고 응축된 재료 자체의 맛을 즐긴다. 이에 비해 한국인들은 여러 재료를 섞은 비빔밥이 대표 음식이다. 이것을 골동반(骨董飯)이라고 했는데, 골동은 여러 자질구레한 것이 한데 섞인다는 의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재료 자체가 아니라 재료들이 섞인다는 의미로서 어울림의 관계다.
현대인의 몰개성화와 획일화는 페스트푸드와 무관하지 않다. 낭비라는 자성을 자아내지만, 한식은 전형적인 슬로푸드로 담백하게 자연의 속성을 반영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소박한 음식이다. 물감의 혼합은 감산혼합으로 섞을수록 탁해지지만, 빛의 혼합은 가산혼합으로 섞을수록 밝아진다. 한국인이 백색을 좋아하는 것은 한국의 음식처럼 모든 물질의 색을 섞어 중성화하고 광명의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신앙이 담겨 있다. 이런 백색의 신앙이 곧 소박이다.
책 마지막에 저자는 “한국은 문화의지와 미의식에 있어서 다른 민족과 차별화되었고, 그것은 수 천 년 동안 외침을 당하면서도 독립된 민족을 유지해온 저력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위기는 경제위기가 아니라 문화의 위기이고, 미의식의 위기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잊혀져가는 문화 의지와 미의식을 회복하는 작업이 절실하다. 대안으로는 한국적 미의식이 담긴 예술품을 찾고 그것에 공명해야 한다. 21세기 문화의 시대는 모든 민족이 자생적 미의식을 통해 문화로 경쟁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이 책이 그 준비를 위한 초석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겉만 핥았지만 그래도 미를, 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은 든다.
오늘이 가면 내일이 오듯이 오늘 최선을 다했다면 후회는 없다.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