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사
잭슨 이후 -- 남북전쟁(1861-65)
1) 서부로 진출하는 포장마차가 줄을 잇다 – 무척 힘든 여행이었다.
미시시피 서부의 땅을 점차 백인들이 점거해 나갔다.
2) 국토 확장 — 노비의 필요성으로 노비 증가가 일어나다.
노비에 대한 찬-반 논쟁이 점점 더 뜨거워져 갔다.
3) 조면기 발명 – 미국의 남부지역에 목화농장이 확장되고 노예가 증가
(노예의 비용이 임금 노동자의 반도 안 되었다.)
4) 노예제도 옹호론자(토마스 듀 교수)
”최고의 지식과 능력을 갖춘 인간이 열등한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고, 신의 섭리이다.“
5) 남부는 노예의 증가와 수많은 노예주가 나타났다.
6) 그러나 모든 노예주가 잔혹한 백인인 것만은 아니다.
노예주의 배려로 글도 배우고,가족이 함께 사는 노예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예는 상품이었으므로 팔려서 뿔뿔이 흩어졌다.
7) 북부는 노예반대론자가 많았다;.
공장이 많은 북부는 흑인 노예보다, 백인 임금 노동자를 고용했다.
(지도자 윌리엄 로이드 게리는 단체를 조직하여 반대했다.)
8) 흑인 노예의 저항도 있었다. 60명의 흑인이 백인을 살해한 사건
이 사건은 노예 해방론자의 입지를 좁히게 했고,
노예에게 더욱 가혹한 법이 나타났다.
9) 서부 진출자는 남부의 노예주와 달랐다
스페인 통치 지역(테네시, 미시시피 지역)은 백인의 수가 아주 적어서
스페인의 허가 없이 진출하여 사는 백인이 늘어났다.
10) 멕시코 정부는 카톨릭 신자이고, 멕세코 법을 지킨다는 서약만 하면
허가했다.(가짜 서류를 만들어서 진출했다)
11) 군인이 멕시코 정부를 장악하고, 이 사실을 알고 기겁했다.
12) 1836년에 멕시코 정부는 군대를 파견하여 불법 백인을 소탕해나갔다.
텍사스 알라모에서 민병대 180명이 전원 사망하면서, 멕시코 군인
4000명을 전사시키고 승리한다.
이후, 미국 정부군을 지휘한 샘 휴스턴 장군이 멕시코 군을 몰아내고
텍사스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이때의 구호가 ‘알라모를 잊지 말자’
13) 텍사스는 미 연방에 합병하였다
(이때도 합병론자와 반대론자의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14) 미 정부는 서부의 각 주를 합병해 나갔다.
(오리건,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유타 등)
15)* ‘도망 노예 단속법’을 제정하면서, 미국 사회는
찬성파와 반대파의 논쟁이 미 대륙을 불구덩이를 만들었고
결국은 불길에 휩싸이게 된다.
*이때 스토 부인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 집’이 불쏘시게 역할을
했다.
***광부와 소몰이군(카우보이) 그리고 철도와 소단지의 도시
1848년에 칼리포니아의 개울에서 노동자가 금을 발견했다. 이때부터 황금을 찾아 서부로 떠나는 노동자들이 부쩍 많아졌다. 1848년의 칼리포니아 인구는 1만 5천 명이었다. 1852년에는 2만 8천으로 불어났다. 1860년 경이 되면 이들은 금을 따라 서부의 이곳저곳으로 옮겨다녔다. 콜로라도의 주도인 덴버 시는 이렇게 하여 생겨난 도시이다.
카우보이는 임금도 적고, 음식도 좋지 않으면서 무척 힘드는 일을 하는 노동자이다. 남부군 출신들이 서부로 많이 찾아갔다.
미시시피 강의 서쪽은 동쪽에 비하여 약간 건조한 곳이다. 이곳으로 건너간 개척민은 광활한 땅에 소를 방목하고 말을 키웠다. 록키 산맥의 산록에서는 양을 키웠다. 대목장이 들어서고는, 소몰이군이 소를 몰고 다니는 길(소몰이길)이 생겼다. 이 소몰이길이 철로와 만나는 곳에 소단지 마을이 생기고, 다시 도시로 발전하였다. 백인이 많 이 오면서 백인의 사는 끝마을인 변경 지역이 점차 없어졌다.
1862년에 미국 의회는 유니언 퍼시픽 철도 회시가 철도건설을 위해 땅의 매입권을 주었다. 1869년에 북미지역에 대륙 횡당철도가 완성되었다. 1884년까지 대륙횡단 철도가 4개가 들어섰다. 소몰이길(trails)이 철도와 만나는 지점에 소단지가 생겨서 마을을 형성하였고, 도시가 만들어졌다.
소몰이군이 몰고 온 소는 소단지에서 기차에 실려 시카고나 소도살장으로 갔다. 동부 도시로 소를 옮기는 시간이 단축되면서 소몰이군은 천천히 소에게 풀을 뜯기며 왔으므로, 소의 체중도 줄지 않아서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었다.
시카고 또는 캔자스 소도살장에서는 소를 대량으로 도축하여 다시 도시로 보냈다.
철도가 많아지고, 소단지가 늘어나면서 서부도 발전하였다.
**홈스테더스(homestades)와 소몰이군(cattlemm)
서부의 땅에 먼저 들어와서 농지를 일구어 농사를 짓는 정착민이 있었다. 이를 홈스테더스라고 했다. 이들은 소몰이군이 소를 몰고 자신의 농장을 지나가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농작믈을 뜯어먹기도 하고, 들어가서 망쳐놓기도 했다. 농지에 올티리를 쳐서 소나 양이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풀도 뜯겨야 하고, 물도 먹여야 하는 소몰이군은 불만이 쌓여갔다.
이 두 그룹은 사이가 좋을 리 없다.(서부극의 소재로 많이 나온다.) 심할 때는 서로 총질도 했다. 두 집단이 서로 좋아지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때 조셉 글리든이란 사람이 1874년에 침이 있는 가시 울타리를 발며하여 대 히트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