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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0년대 한국 마라톤의 풍운아 ‘김재룡’ | |||
황영조, 김완기와 함께 8, 90년대 한국 마라톤을 풍미한 마라토너 김재룡은 뛰어난 실력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선수다. 너무 유명한 마라톤 스타들과 동시대를 사는 바람에 일반인들에겐 제대로 기억되지 못했다. 물론 마라톤 마니아들이라면 이름 정도는 알고 있겠지만 말이다.
김재룡은 1966년 전남 고흥군 포두면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교(포두중학교) 시절까지 평범한 학생이었다. 또래들보다 지치지 않고 오래 달리는 재주가 있기는 했지만 운동부 활동을 하지는 않았다. 단지 TV에서 손기정 선생 등 마라톤 스타들의 일대기를 소재로 한 「맨발의 영광」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바람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던 중 중학교 3학년 때 체육교사로 부임해 온 윤여춘 선생(현 MBC 육상해설위원)이 그의 달리기 소질을 발견하고 육상을 권유하면서 마라토너로서의 첫 발을 떼게 되었다. 정식 육상부가 없어서 클럽활동처럼 방과 후에 조금씩 연습하는 식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한 김재룡은 조대부고(조선대학부속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첫 해 2학기부터 육상부에 발탁되어 제대로 된 훈련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전까지 취미 정도로 하던 달리기를 본격적으로 하려니 힘에 부치고 견디기가 힘들었다. 어려서부터 단계를 밟아 온 동료들보다 몇 배로 훈련해야 하는 것도 버거웠다. 그래서 학교도 육상도 다 집어치우자 생각하고 고향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들의 성공을 기원하며 정화수를 떠 놓고 기도를 드리는 어머니의 모습에 마음을 고쳐먹고 학교로 돌아간 적도 있었다(이런 일이 줄잡아 10여 회나 된다고 한다).
2학년 말부터는 마라톤 선수로 성공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훈련에 매진하여 인천에서 열린 전국체전 10km에 나가기도 했다(그때까지 팀 이탈을 자주 하여 대회 참가 기회가 거의 없었다). 주위에서는 20위 정도의 성적을 예상했는데, 의외로 초반에 선두를 달리자 코치는 페이스를 줄일 것을 지시했고, 김재룡은 힘을 다 쓰지 않은 채 5위를 했다.
이 시합이 너무 아쉬워 그는 휴가도 반납하고 훈련에만 매달렸다. 그 결과 <통일역전경주대회> 6개구간을 뛰어 전구간 신기록을 내며 최우수선수상을 탔고 이후 참가한 고교 도로경기에서 전 대회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지금의 전은회 선수(배문고)처럼 자타가 공인하는 고교 최강의 자리에 올라선 것이었다.
부상 중에 일구어 낸 한국기록 2시간 13분 35초
고등학교를 졸업한 김재룡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1985년 한전에 입사했다. 당시 부속고등학교 운동부원들은 모(母)대학으로 진학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조선대학교에는 장거리 육상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부족했던 것이다.
끈질긴 집념으로 2시간 10분 벽을 넘어서다
재기전에 이어 참가한 1990년 <동아마라톤>대회에서 김재룡은 크게 고배를 마셨다. 상승세를 탄 컨디션을 믿고 장거리 훈련을 소홀히 하는 바람에 30km 지점까지 선두를 달리고도 마지막에 44위를 한 것이었다. 이 대회에서 김완기는 2시간 11분 34초로 한국신기록을 냈다. 그는 분한 나머지 아버지께서 “대회마다 따라다니니 부담스러워 못 뛰겠다”고 말해버리고는 크게 후외했다고 한다. 이후 그의 부친은 대회장에 나타나지 않게 되었고, 김재룡은 반성하는 의미에서 다시 한 번 심기일전 해 지구력 훈련에 매달렸다. 잦은 부상을 근력으로 이기기 위해 본 훈련 이외에 틈만 나면 걷기 훈련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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