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유골 1
지금으로부터 약 550여년 전, 이조 세종임금 때.
그 조정에 황희라는 정승 한 분이 있었는데 천성이 청령하다보니 가세 또한 청빈하게 그지 없었다. 하루는 세종 임금이 그 청빈 허실을 탐문, 확인하고저 감쪽같이 황정승댁으로 승교 행차하게 되었다.
어가가 들이닥친 때 황정승 댁에는 부인과 따님 둘이 있었는데, 상례에 따르면 세 여인이 동시에 나와 선후 차례로 인사를 개여올릴 것이나, 이상하게도 황정승부인이 먼저 나와 인사하고 들어가자 한참 있어 맏따님이 나오고 맏따님이 들어가자 한참 있어 둘째 따님이 나오는 것이었다.
세종 임금이 하도 이상하여 그 연유를 알아보았더니 세 여인 모두 나들이옷 치마 하나를 윤번으로 입고 나오느라고 그랬던 것이다.
《오, 짐이 듣던 바와 일점불차 극빈하도다.》
회궁한 세종 임금은 이제 어떻게 하면 이 정승댁의 가세를 펴우도록 하겠는가를 곰곰 궁리하다 못해 하루는 한 묘안을 생각해 내고 하정 후 황희정승을 조용히 불렀다.
《짐이 보아하니 경의 가세 극빈한지라. 이제 한 수로서 경을 돕고저하니 경의 의향은 어떤고?》
허나, 그 말을 곱게 받아드릴 황희가 아니었다.
《전하! 하해같이 생각해 주시는 그 은총 고마웁기 그지 없으나 청빈함이 오히려 마음 편하거늘 그 상념을 걷우시옵소서!》
그러자, 세종 임금은 허허 웃고, 《아니로다. 가세가 그렇듯 청빈하고서야 어찌 국사에 진력할 수 있겠는고? 더구나 이번 수는 결코 백성을 추후도 해하지 않노니 방심을 하라!》
《전하, 그럼 대체 무슨 신묘한 수라도 있나이까?》
《이제, 장날 두 날을 정하여 서울의 남, 서, 동 세 대문에 사람을 파하여 지켜 섰다가 팔려 들어오는 씀직한 물건을 죄다 경이 차지하도록 하리로다!》
그 말을 들은 황희 정승은 천부당만부당이라 펄쩍 뛰었다.
《전하! 천언만언 다 따르겠사오나 오직 이 일만은 불가당 못 따르겠사오니 그만 영을 걷우옵소서.》
일이 이 지경이 되자 황정승과 더 말해야 쓸데없음을 깨달은 세종임금은 《그럼 이 일에 대해서는 더 말을 말라.》 해놓고 그 첫장날이 되자 궁중의 궁문직이 수십 명으로 하여금 그들에게 돈 한 꾸레미씩 주어 새벽부터 저녁까지 물건 팔려 들어오는 장사치들의 반반한 물건을 택해 사서 황정승댁에 가져가도록 명했다.
헌데, 그 날따라 꼭두새벽부터 비비람이 기승을 부리며 쳐대는데 저녁 늦도록 도무지 끊칠 줄을 몰랐다. 하여 그날은 장날이 폐장이 되고 말았다.
세 곳 궁문지기들은 그만 낙담 실망하여 막 회궁하려고 하였다.
바로 이 때 동대문 게로 수염받이 새하얀 파의파림의 시골노인 한 사람이 계란 한 꾸레미를 안고 서울 장거리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저, 노인장. 이 계란은 팔 것이옵니까?》
《예, 급히 팔아 요긴히 쓰려고 이렇게 급급히 달려오는 길이웨다.》
천만 다행으로 궁문직이들은 두말 없이 그 계란을 달라는 값대로 몽땅 사가지고 황정승댁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것이나마 황정승에게 대접시키시라고 했다.
그러나 뉘 알았으리요. 그 달걀은 맹랑하게도 몽땅 곯아빠진 썩은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세종임금은 못내 탄식해 마지 않았다.
《안되겠구나. 짐이 황의 정승을 각별히 생각하여 그런 묘안을 내었건만 하필이면 그 계란마서 곯아빠져 유골이니….》
하여, 세종임금은 그 다음 장날 또 그리해 보려던 계획을 깨끗이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세종으로서도 어찌 알 수 있었으랴! 그 날 곯아빠진 썩은 계란을 가지고 뒤늦게 장에 들어선 시골 노인 인즉 바로 변장한 황희 정승 자신이었다는 것을.
아무튼 이로부터 항간에는 계란에 유골이란 속담이 널리 퍼지게 되었으니 원래는 골다의 조선음 그대로를 따서 골자를 쓴 것인데 그 뒤로는 골자를 아예 뼈골자로 치부하여 《계란에도 뼈가 있다.》는 것으로 쓰게 된 것이다.
이 속담의 뜻인즉 소위 운수가 나쁜 사람은 무슨 일을 하나 이래 저래 안된다는 것이다.
계란유골 2
이기 황희 황정승이 인제 옛날에 참 곤궁히 사는데, 그 부인이 저 챔피(참피)를 훑어다가 인제 쪄서 말려 식량을 해 먹고 이러게 사는 입장인데, 그 황희 황정승이 조화나 재주는 무궁무진하단 말이야. 그런데, 어렵게 산단 말이야. 그래서 부인이 하는 말이,
"그렇게 재주가 좋은 양반이 왜 이리 때 가는 줄 모르게 굶게 사느냐?"
고 그래. 부인이 남편한테 그런 황정승한테 고런 얘기를 고하니까,
"그렇게 먹는 기 원이냐?"
고 그래더래.
"아, 먹는 기, 사람 먹고 먹는 기 원이 아니냐?"고
"그, 내가 먹는 걸 많이 들여 올 테니까 보라."
고, 그래. 아마 구시 월 쯤 됐는 모양이야. 그예 부적을 써가주 사방으로 이래 던지니까, 한참 있더니 오곡이 전부 드 와서(들어와서) 마당에 꽉 쌓인단 말이야. 그예 부인이 보니까 거 참, 마음이 홍황한기 좋단 말이야. 굶어 지내다가 팸피 훓어 먹고 살다가 그러게 곡식이 들어오니까 희희낙락하고 좋은 이제 형편이니까. 그만 봉생이 인제, 옛날 봉생이라는 기 있어. 봉생일 가지고 펴 들인단 말이야. 고만은 이래 퍼 들이자 하니까 황 정승이, 황희 황 정승이 그걸 못 퍼들이게 한단 말이야. 놔 두라고.
"아, 왜 이 들어 온 곡식을 못 퍼 들이게 하냐?"
"아, 놔 두라고, 갖다 그 자리 갖다 놓으라."
고 그래, 가서 가지고 도로 갖다 못 퍼들어 오게 하니까 갖다 도로 부었단 말이야. 그래도, 뭐라고 부적을 그거 서방을 던지니까, 홀연이 다 나가거든, 그 곡식이. 그 이미 그만 다 나가 버리니까, 아, 그거 황정승 부인이 그만 털썩 앉아 통곡을 한다 이기야. 그 없는 살림에 곡식을 많이 들어 왔으니까 좋아했는데 다 홀연히 나가 버리니까, 고만 앉아 통곡을 하니까 그 부인이 보고,
"왜, 그리 원통히 인제 생각을 하고 우느냐?"
그리니까,
"아, 그거 들어온 곡식이 이러게 나가니까 원통하지 않느냐."
고 그래곤,
"당장 내가 또 한 가지 구해 올 테니까 보라."
고 그래, 또 부적을 써서 이래 보니까 아, 겨란(달걀)이 열 개가 들어오거든. 겨란 열 개 들어오는 거를,
"이를 갖다 삶으라고, 삶아가지고 우리가 먹자."
고 먹자 그래니 그래 들어오는 겨란을 통로 우에다가 삶았단 말이야. 삶아가주고서는 물에다 씨가주(씻어서) 와서 황희 황정승과 같이 이래 까지 먹을라 하니 아, 병자리(병아리)가 다 생겼단 말이야. 고만 아주 새카만지 고만 안에 다 돼가주 죽은 기란 말이야.
"그걸 보라."고
"당신이 내나 이거 인제 할복할 사람은 이 겨란도 유골이라."
고 그 `할복한 정승은 겨란도 유골` 인제 거서 났다는 거야.
출처: 우리말 배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