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21일 목요일
스가랴 9:1-7
“여부스 사람 같이”
“두로는 자기를 위하여 요새를 건축하며 은을 티끌 같이, 금을 거리의 진흙 같이 쌓았도다
주께서 그를 정복하시며 그의 권세를 바다에 쳐넣으시리니 그가 불에 삼켜질지라” 스가랴 9:3-4
심판이 임했다.
소문이 꼬리를 물고 온 땅에 퍼졌다. 예루살렘의 회복과 번영이 시작되자 열방이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했다. 누구라 할 것 없이 이스라엘 백성과 동행할 것을 요청했다. 하나님의 이름이 온 땅에 충만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라를 잃고 갖은 고초를 당할 때, 이웃국가들은 번창했다. 일예로 두로는 은을 티끌같이 금을 거리의 진흙처럼 사용했다고 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경제적 호황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금번 4.13 총선의 이슈가 경제였고 앞으로 다가올 대선 역시 경제문제를 비껴갈 수는 없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그것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을 축복받은 나라,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그들을 바다에 쳐넣으시겠다고 하신다.
호황의 블랙홀은 흥청망청이었다. 인간의 역사를 해부해보면 부를 축적하면 윤리적으로 타락으로 이어졌다. 무서운 심판의 징조였다.
심판은 엄중했고 온 땅에 미쳤다.
전통적으로 유대와 인접해 있던 불의한 이웃국가들은 범죄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징계하는 하나님의 몽둥이로써의 역할을 담당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되고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면서 이들은 더 이상 필요 없는 존재들이 되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셨다. 거짓의 자리에 이웃사랑을 채우라 금식을 그치고 기쁨과 즐거움에 동참하라고 하셨다. 화평의 나라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잘나가던 국가들의 패망을 선언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절망인 심판의 자리에서도 여전히 잃어버린 자를 찾으신다. 남은 자였다. ‘여부스 사람같이 되리라’고 하셨다.
“그의 입에서 그의 피를, 그의 잇사이에서 그 가증한 것을 제거하리니 그들도 남아서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유다의 한 지도자 같이 되겠고 에그론은 ‘여부스 사람’ 같이 되리라” 스가랴 9:7
여기에 우리들의 희망이 있다. 가나안 정복과 함께 땅의 분배가 시작되었다. 갈렙은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험한 산지를 구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이 한마디에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담겨있었다. 성공의 자리에 한편 그늘이 있었다.
“예루살렘 주민 여부스 족속을 유다 자손이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오늘까지 유다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 여호수아 15:63
갈렙의 승리를 기록한 다음, 유다자손은 예루살렘에서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했다고 했다. 성공의 기록 안에 슬쩍 한 마디를 첨언하신 것이다. 갈렙의 신앙과 대비되는 불순종이었다.
성공에 취해서 꼭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릴 때가 있다. 유다지파의 땅 분배에 앞서 갈렙의 신앙을 기록한 것은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한 불순종에 대한 경계의 말씀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일 여부스 사람 이레나의 타작마당이 성전건축 부지가 된다. 아무런 자격 없는 이방인이었던 나를 위하여 두 팔을 벌리셨다. 기꺼이 못 박히셨다. 여부스 사람처럼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이시다. 쓰나미처럼 쓸려가던 ‘잡족’이었던 나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셨다.
이것이 은혜이다.
첫댓글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샬롬.
진실한 증인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여도 거짓말을 뱉는 사람은 속이느니라(잠언 14장 25절 말씀).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