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2박 3일의 복음생명 캠프를 은혜 가운데 잘 마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현지 목회자들과 지도자들에게 선포된 복음이 그들에게 맡겨진 양들에게도 잘 증거되게 하옵소서.
새 언약 백성이라면 반드시 해야 할 주님과의 교제를 즉시로 실천하는 영혼들을 세워주시길 기도합니다.
오늘은 저희팀이 가야 하는 곳 중 가장 열악한 지역의 가난한 교회 두 곳을 방문합니다.
가는 길이 멀고 험하여 새벽 5시에 출발합니다.
함께 예배드리고 또 주님께서 마련해 주신 사랑의 쌀을 전하고자 합니다.
주님이 지으신 아름다운 세계가 펼쳐지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오염된 영혼을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진리의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65.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종을 선대하셨나이다
66. 내가 주의 계명들을 믿었사오니 좋은 명철과 지식을 내게 가르치소서
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68.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들로 나를 가르치소서
69. 교만한 자들이 거짓을 지어 나를 치려 하였사오나 나는 전심으로 주의 법도들을 지키리이다
70. 그들의 마음은 살져서 기름덩이 같으나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72.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
(본문 주해)
이 단락의 주제는 고난 가운데에서도 말씀을 통해 선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신뢰함이다.
65~66절 : “주님,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주님께서는 주님의 종인 나를 잘 대해 주셨습니다. 내가 주님의 계명을 따르니, 올바른 통찰력과 지식을 주십시오.”(새번역)
시인은 주의 약속대로 주님의 종인 자신을 선하게 대하여 주셨다고 한다. 그 결과로 주의 계명들을 믿었다고 한다. 주의 계명을 믿는 자신에게 지식과 선한 판단에 대해 가르쳐 달라고 한다.
67~68절 : “내가 고난을 당하기 전까지는 잘못된 길을 걸었으나, 이제는 주님의 말씀을 지킵니다. 선하신 주님, 너그러우신 주님, 주님의 율례들을 내게 가르쳐 주십시오.”(새번역)
주님은 자기 백성에게 고난을 통하여 무엇이 잘못된 길인지 알게 하셔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신다. 이것이 주의 선하심이기에 주의 율례들로 자신을 가르쳐 달라고 한다.
그러므로 성도에게는 고난조차 유익한 일이다.
69~72절 : “오만한 자들이 거짓으로 내 명예를 훼손하였지만, 나는 온 정성을 기울여서, 주님의 법도를 지키겠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무뎌 분별력을 잃었으나, 나는 주님의 법을 즐거워합니다.
고난을 당한 것이, 내게는 오히려 유익하게 되었습니다. 그 고난 때문에, 나는 주님의 율례를 배웠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친히 일러주신 그 법이, 천만 금은보다 더 귀합니다.”(새번역)
고난을 겪는 자를 치는 교만한 자들은 그 마음이 살져서 기름 덩이 같다고 한다. 이는 마음에 말씀이 들어가지 않는 모습을 말한다.
그러나 고난을 겪는 시인은 주의 법이 즐겁다고 한다. 그 이유는 고난을 겪는 것이 자기에게 유익한데 그것은 그 고난을 통하여 주의 율례를 배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타락한 인간은 고난 없이 주의 뜻을 배울 수가 없다.
그러므로 고난을 겪고 나니 주의 입의 법이 자신에게 수천 개의 은과 금보다 더욱 귀중하다고 한다.
(나의 묵상)
시인은 고난 당하는 것이 자신에게 유익이라 한다.
그 이유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주의 말씀을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주의 말씀을 배우는 것이 뭐가 그렇게 중요할까?
고난 당하지 않는 것과 주의 말씀을 모르는 것 중 어느 것을 원할까?
당연히 고난 당하지 않는 것이다.
주의 말씀을 모른다고 세상 살아가는 데 무슨 대단한 어려움이 있겠는가? 땅에 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자는 주의 말씀에 관심도 없을 뿐 아니라, 아무 문제도 없다.
그래서 나는 ‘고난 당하는 것이 유익’이라는 말은 그저 고난 당하는 자를 위로하기 위해 지어낸 말이라고 과거에 생각했다.
‘고난’이라고 하면 바로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바로 욥이다.
욥의 고난의 결과는 그가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하나님은 인과율을 뛰어넘는 하나님이시며, 인간인 자신이 도저히 다 알 수 없는 분이심을 알았기에 자기의 말을 거두어들이고 재 가운데 회개한다.
하나님을 새롭게 알게 된 욥의 고백이 바로 ‘고난 당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하는 시인의 마음과 통하는 것이 되겠다.
복음을 알고 난 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 너무너무 중요하다는 알게 되었다.
그것이 곧 영생이기 때문이요, 이는 창세전부터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한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생명을 주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셨다.
지금도 ‘고난’이라는 것이 절대 반갑지 않다. 그러나 복음을 알고 난 뒤는 주님이 겪으신 고난을 알고 또 그의 길을 따르는 자가 되었다. 그리고 ‘고난이 주는 유익’에 대해서 새로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고난을 통해서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를 더 잘 알게 되었으니 하늘의 기쁨을 누리는 자가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모든 것을 다시 회복시켜 주셔서 기쁜 것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된 것 때문에 기쁘다는 것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내 앞에 어려움 보게 하셔서 결국 주의 뜻을 알게 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감사를 드린다.
자기 백성에게는 고난조차 유익한 일이 되도록 조치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노래한다.
(묵상 기도)
주님,
타락한 인간은 고난 없이 주의 뜻을 배울 수가 없습니다.
제게 고난이 있음은 주님을 더 잘 알도록 하기 위한 주님의 조치이니
그 길을 기꺼이 걸어가게 하옵소서.
십자가의 길입니다.
주님이 가신 길입니다.
더 이상 옛사람으로 살지 않는 새 언약 백성이 가야 할 길입니다.
이것을 알게 하실 뿐만 아니라, 함께 동행하여 주시는 성령님이 계시니 안심하고 나아갑니다.
오늘 둠밍 교회와 뿌너르탄 교회를 방문하여 복음을 전하고 사랑의 쌀을 전하는 모든 시간을 주님께 의탁합니다.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