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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록 실중어요(室中語要) 22. 조사선(祖師禪)은 하지 못했다.
[운문선사가 문득 한 법을 보이셨는데 앙산(仰山)스님이 "여래선(如來禪)은 사형(師兄:香嚴)이 알았다고 인정하겠습니다만…"* 이라고 한 말을 꺼내는데 어떤 스님이 물었다.]
운문선사가 한 때 법을 거론 하셨다.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앙산(仰山)스님이 "여래선(如來禪)은 사형(師兄:香嚴)이 알았다고 인정하겠습니다만…"* 이라고 한 말을 꺼내는데 어떤 스님이 물었다.”라고 하십니다. 라고 하시는 것은 지금 여기서 앙산스님은 누구십니까? 앙산스님은 마조 도일선사의 제자로써 도를 깨닫고 별도로 독립한 위산스님의 제자입니다.
어록에 이하면 백장스님의 제자인 향엄(香嚴)스님은 학식이 너무나 뛰어나 무슨 물음이든 다 조리와 이치에 맞게 설멸은 잘하는데 조사선을 모르는 것을 아시고 도저히 나의 선기방편이 통하지 않음을 아시고, 위산스님에게 말년에 부탁하여 향엄스님을 좀 조사선을 가르치라고 부탁한데서 위산스님은 제자인 앙산에게 부탁하여 향염스님을 견처를 좀 알아보라고 당부를 합니다.이 내용은 다음에 전개되는 내용인 것입니다.
그래도 여래선과 조사선의 좀 다른점을 살펴본다면,
여래선(如來禪), 조사선(祖師禪)에 대한 설명을 드린다면
우리는 안다는 것은 대상(對象) 즉 상대(相對)를 아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안다고 하면, 그 아는 것은 나를 대상으로 삼았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이미 대상이면 그것은 내가 아니다.
그래서 아는 것으로는 주객(主客) 미분(未分)의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의 소식을 대신 할 수 없다고 하였다.
향엄은 백장의 제자이다. 향엄은 부처님의 경전 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에 조예가 깊어 일체 질문에 막히는 데가 없었다.
백장은 그 점이 걱정이었다.
향엄이 이해가 깊어 아는 바가 무궁하나 지식일 뿐이어서, 아직 문밖 소식만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식으로는 문 안에 들어 올 수 없다. 지식은 오히려 문안에 들어오는 것을 방해한다.
향엄은 언제나 자신만만했다. 백장은 열반에 앞서, 제자 위산을 불러 향엄을 부탁하였다.
위산이 향엄을 불러 “불법의 요체를 일러보라”고 하였다.
향엄은 위산에게 해박한 지식으로 불법의 요체를 풀어 일렀다
도무지 어떠한 질문에도 막히는 바가 없다.
그러나 위산은 향엄에게 “자네가 아는 것은 배워서 아는 것이네,
그것은 자네 것이 아니네, 배우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대답 아닌가?
불법은 배워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네” 라고 하였다.
향엄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세월이 흘렀다,
돌맹이가 대나무에 부딪치는 소리에 향엄이 눈을 떴다는 소식이 들렸다. 위산이 제자 양산을 불러 “향엄을 점검하라”고 하였다
양산이 향엄에게 부모미생전의 소식을 묻자
향엄은 다음의 게송으로 답하였다.
거년빈(去年貧) 미시빈(未是貧) 금년빈(今年貧) 시시빈(始是貧)
거년빈(去年貧) 유유탁추지지(猶有卓錐之地)
금년빈(今年貧) 추야무(錐也無)라 하였다. 해석해 보면
작년 가난은 가난이 아닐세((去年貧 未是貧)
금년 가난이 참 가난일세(今年貧 始是貧)
작년은 송곳 꼿을 땅조차 없더니(去年貧 猶有卓錐之地)
금년은 송곳조차 없네(今年貧 錐也無)
양산은 “이 게송으로는 자네가 여래선을 알았다고 하겠으나
조사선을 증득하였다는 것은 꿈도 꾸지 말게” 라고 하였다.
이에 향엄이 양산에게 눈을 찡긋하였다.
양산은 비로소 “향엄이 조사선을 증득하였다”고 기뻐하였다.
향엄은 눈을 깜박임으로써, 지금 여기 일인 있는 그대로인
중도를 드러냈다.
양산이 “이 게송으로는 여래선 밖에 보지 못하였다”고 평한 것은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이 연기와 중도인데, 향엄은 그 연기와 중도를 설명한 것에 불과하였다”는 것이다.
향엄은 게송에서 “지난 시절은 한 물건도 없는 참 가난(불이(不二中道)을 증득하지 못하였는데, 지금은 한 물건도 없어 대상도 없고(法空) 나도 없다(我空)”고 하였다
즉 나(主)와 대상(客)은 연기하는 것으로 주와 객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주가 있어 객이 있고 객이 있어 주가 있다.
주객은 분별이 만든 이름 뿐인 이법(二法)의 세계다.
주객을 여의니 불이(不二) 중도(中道)의 실상을 알겠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은 알건 모르건, 중도의 실상이 드러나 있다.
중도의 실상인 불이가 있는 그대로라면, 우리는 안다거나 모른다거나 상관없이 중도의 실상으로 산다.
그것이 알고 모르고와 관계가 있다면, 있는 그대로가 아니다.
안다고 해도 해석일 뿐이요 모른다고 해도 해석일 뿐이다.
깨닫고 보니 우리의 일상이 모두 중도를 드러내지 않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은 어떤 것인가? 견문각지, 어묵동정, 행주좌와가 모두 우리의 일상이요, 중도의 드러남이다.
견문각지 어묵동정이라 하지만, 여기에는 행위의 주체가 따로 없고
행위의 객체가 따로 없는 견문각지 어묵동정이다.
알고 모른다는 해석이 붙지 않은 있는 그대로이며, 주객으로 나누기 전의 있는 그대로이다.
다시 본론으로 덜아가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앙산 혜적(仰山慧寂)스님이 사제(師弟) 향엄(香嚴)스님에게 묻기를, "아우님은 요즘 보는 경지가 어떻소?" 하니]
앙산 스님이 향염스님에게 묻기를 “아우님은 요즘 보는 경지가 어떻소?”라고 하는 물음을 좀더 풀어서 살펴보면 “아우님은”이라고 부른 겻은 나이가 어리다는 뜻이있으니 주제는 양산스님이고 대상은 향염스님을 칭했으니 주와 객이 생겨버렸습니다.
즉 묻는 양산스님과 지칭받은 향염스님이란 것이 상대성이요 대대요 체와 용이 생겼으니 본래공인데 무슨 내가 있고 상대가 있습니까? 그러나 이것을 평상심으로 본다면 별로 문제되지 않는 것입니다. “아우님은 요즘 보는 경지가 어떻소?”에서 요즘이라고 하는 말은 과거와 지금과 미래가 있다고 시간적으로 보고 한 말이니 이말도 허물인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 여기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공간론이니 형상을 찰나로 끊어서 하는 말인 것입니다. 그리고 “보는 경지”라고 하는 말은 향엄스님이 보는 바가 있다면 그 보이는 경계를 칭하고 있는 것이니 “어떻소”라는 것은 향염스님이 앞에 펼쳐진 경계가 어떻게 보이는가를 물은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향염스님은 바로 직설적으로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를 답하면 되는데 왜 대답을 못할까? 생각이 너무 많으니 무어라고 대답할까를 사량분별한다는 것이다.
바로 직심으로 답을 못하니 이렇게 말을 합니다.
["갑작스레 대답하려니 말이 안 나오는군요."하고는 게송을 하나 지어 바쳤다.] 갑작스레 대답하려니 말이 안 나오는 군요라는 대답도 또한 식심으로 사량분별하고 있는 것이며 자기의 여래장에 있는 지식과 상식을 즉 알음알이 견문각지를 총동원해서 말라식이 사량분별을 하고 있으니 바로 직심으로 답할 수 있는 육식이 할 말이 없겠지요ㅎㅎㅎㅎ그래서 직심이 바로 답이 나와야 하는데 핑계를 대고 있다고 스스로 인증하면서 고작 불입문자인에 글을 쎴어 올립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니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작년의 가난은 가난이 아니었고
금년의 가난이야말로 진짜 가난 일세
작년엔 송곳 하나 꽂을 틈 없더니
금년엔 송곳마저도 없어졌다오.]라고 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시공간이 없는 찰나간에서 본는 공간론에서 본다면 이미 다 틀린 글을 나열하고 있는 것입니다.
작년이라고 하여 이미 지나가 흔적도 없는 시간을 가져와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난”이란 차별상인 이름을 사용하였으니 “가난”하면 바로 상대성인 “부자”라는 차별상이 뜨 오르니 이법입니다.
이렇게 이법을 쓰면 조사선은 아닌 것입니다.
불이법(不異法)인 일승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니 아직 법을 묻고 답하는 안목(眼目)이 없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가난이 아니고”라고 하였으니 보이는 그대로를 말해야 하는데 왜 절대경지를 보지 못하고 차별적 분별망상의 소리를 합니까
“금년의 가난이야말로 진짜 가난 일세”라고 하니 앞단에는 작년이라하였는데 지금은 금년이라고 하니 이 역시 차별법이고 이법인 것입니다. 그 다음 말도 가난, 진짜일세라고 하였으니 전부다 상대법으로 글로 쓰고 있습니다.
“작년엔 송곳 하나 꽂을 틈 없더니
금년엔 송곳마저도 없어졌다오.“에서도 작년은 금년과 상대법이고
송곳이 어디있어 명색으로 말을 합니까? 또 “없어졌다”고라는 말도
본래 있었는데 금년엔 없어졌다고 하였으니 본래 무일물도 모른단 말인가 지상가상이 없다. 그러니 이것은 연기법으로 법을 해석한다고 한다면 말이 되나 본래 무일물인 공간적으로 보면 전부다 명색의 나열이요. 자기 지식과 상식인 알음알이 견문각지(見聞覺知)로만 답을 하였으니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앙산 스님은 다 듣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여래선(如來禪)만 했을 뿐, 조사선(祖師禪)은 하지 못했다."]
라고 하십니다. 여래선 과 조사선은 위에서 설멸했지만 간단하게 설명하면 여래선은 보리달마께서 가르치신 명상이나 참선을 해서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이니 달마대사가 전한 입능가경에서 본다면 모든 깨달음은 수행을 통해서 이루어 진다고 설파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차제법문이고 대기설법인 것입니다. 물론 석존의 모든 경전에서도 상대방의 근기에 따라 설법을 하다보니 최상승인 일승법은 제일 마지막인 법화경에서 하셨고 최상승법인 화엄경을 설했지만
초전법륜에서 5비구가 알아듣지를 못하는 것을 보고 바로 열반에 드시겠다고 하시다가 범천왕과 지신의 간청으로 한 마음 돌리시어 초기경전인 차제를 두어 5시교로 나누어 설하신 것처럼 바로 중도 정견인 상대법을 벗어난 내려 놓는 것을 설파하시고 자연의 법칙을 주로 설파 하시어 자연의 법칙이 그대로 진리라고 설하신 것에데 이것을 여래선이라고 하였든 것입니다.
6조 혜능대사에 이르러 본래 무일물을 근본으로 하여 이 우주 전체에는 한 물건도 없다라는 주제로 공사상을 도입하여 조사선을 이어 8대조인 마조 도일선사가 즉심즉불(卽心卽佛)을 설하시어 심법계를 근본으로 삼아 마음이 그대로 부처라는 말로 세워진 것이 조사선인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앙산스님이 여래선을 알았지만 조사선엔 꿈도 꾸지말라고 하시니 향염스님이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무엇이 여래선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앙산스님은 묻는 말에는 대답이 없으시고 이렇게 조사선의 선기방편을 사용하여 이러게 행리처를 보여 주십니다.
[스님께서 "상대인(上大人)…" 하고는 다시 부채를 들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것을 부채라고 부르는데, 그대는 무엇이라고 하겠느냐?"]
앙산스님은 향염스님을 법명를 부르지 않고 “상대인(上大人)이라고 불렸다 이것은 명색에 끄달리지 않는 주관도 없고 객관도 없는 둘다 없는 경지는 바로 앞에 있는 향염스님이란 말을 빼고 상대인이라고 불렸다. 상대인이란 글자대로 해석해 보면 높고 큰 사람이란 말이 되니 이것이 상대성에서 벗어난 지금 여기 한 물건이 보이니 그냥 상대인이라고 불렀든 것이다. 이것이 있는 그대로를 불렷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다시 부체를 들고 말씀하셨다.
라는 것은 주관과 개관을 다 벗어난 일슴법인 일진법계에서 하는 말이니 말은 말이 아니요 말아님도 아님 말 그대로가 말이라다라는 뜻으로 하는 말이니 이것이 중도정견(中道正見)으로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운을 때고는 "나는 이것을 부채라고 부르는데, 그대는 무엇이라고 하겠느냐?“라고 묻습니다.
여기서 부채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대나무를 쪼깨여 거기에 종이를 붙인 한 물건에 무엇이라고 불러야 대중들이 다 알아볼수 있을가하여 붙여진 이름이 부채인 것입니다. 그런데 안산스님이 부채라는 명색을 쓰버렸으니 향염스님은 대답할 명칭이 없으니 말을 못합니다. ㅎㅎㅎㅎㅎ그럴 때 부채를 뺏앗아 버리고는 부체가 없을땐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 반문해야 하는데 아직 거른 선기방편을 없었든지 아무른 말을 못합니다.
[대꾸가 없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부채 위에서 설법을 하고 등롱 속에 몸을 숨긴다. 어떠한가?"]
향염스님이 대꾸가 없자 스님께서 그냥 자기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부채 위에서 설법을 하고”라고 하시는 것은 본래공에서는 한 물건도 없으니 이 몸이 환화공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몸이 없으니 이 부체를 내 몸으로 사용하여라는 뜻이니 의타기성(依他起性)이지만 내 환화공신인 이 몸뚱이를 대신하여 즉 부채를 내 몸으로 삼아 설법도 하고라고 하시어 부채도 사실 허상이지만 어쩔 수 없어서 자기 몸이 환화공신임을 알아차리라고 하는 선기 벙편인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는 “등롱 속에 몸을 숨긴다”라고 하시는 말씀은 몸은 환화공신이니 어디에있으나 허상이란 뜻을 알아차리라고 등롱이란 의타기성을 또 사용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 스님이 다시 물었다. "무엇이 스님의 선(禪)입니까?"]라고 향염스님은 안산스님에게 스님의 선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앙산스님은 꾸짖었다. "원래 여기에 있었을 뿐이다.“]
“원래 여기”라는 것은 지금 여기라는 것이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은 상대를 벗어난 있는 그대일 뿐이라는 말이다.
성불인연 맺으소서 옴 바아라 믹~~~~~!!!!!!!!!!!!!!!
조사선(祖師禪) 운문록(雲門錄)을 들어시어
인연성불(因緣成佛) 하시어서 붓다(佛陀) 같이 살아가소!
일승법문을 시절인연삼아 인연성불 하옵시고 대원성취 하옵소서 !
원오선원 명상쉼터 천안시 두정동 611_1번지 5층(041)551 8546
무명 납승 원오선사 010 8748 6006 옴~바아라 믹!!!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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