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성법은 역사 속에서 오랜 세월동안 변천을 거듭해왔다
당연히 그 시대의 무기나 과학기술의 발전에 맞춰서 발전해왔는데
우선 한국의 축성술은 좀 독특한 면이 있어서 동북아 3국중에서도 확연히 구분이 된다.
한국은 대대로 산성 체제였다.
즉, 평시에는 도시에서 살다가 전쟁이 나면 산악에다가 험준한 지형을 기반으로 요새화된 성곽에 들어가 싸우는거다
그때문에 청야입보 전술이 발달했는데
이 말이 무엇이냐면 전쟁이 날거 같으면 미리 도시에 있는 모든 물자를 산성으로 옮긴다.
그리고 들판에 불을 질러 풀한포기 남겨놓지 않고 산성으로 모두 틴다.
적이 도시에 와보면 이미 모든 물자는 성안으로 옮겨졌고 벌판에 불까지 질러놔서 말이 먹을 풀조차 찾을수 없게된다.
그런 후에 산성을 거점으로 해서 계속해서 적의 후방을 교란하면서 보급로를 차단해 적이 지치게 만드는것이 바로 청야입보 전술의 요체이다.
그러다보니 한국은 대대로 산성이 발달할수 밖에 없고, 이때문에 도시에 성을 쌓는 다른 나라들과 많이 구별될 수 밖에 없다.
한국의 축성술은 품(品)자식 건축방법인데.
자, 여기서 한문인 품자를 보시면 마치 벽돌 3개가 삼각형 모양으로 쌓여있는것 같다
이처럼 벽돌을 저 형태로 쌓는데 저런식으로 계속 쌓다 보면 대략 벽돌들이 서로 얽히고 섥힌 형태의 상황이 나온다. 마치 퍼즐맞추기 처럼
그럼 굉장히 견고한 성벽을 쌓을수 있게 되고, 그 사이에 진흙을 발라서 내구성을 기르는 거다
단 저렇게 하면 벽돌 소모가 심해서 높고 넓은 성은 만들기 힘들어지는데 그 문제를 산성이 해결해 주는거다
즉, 산성이란 산악지형을 이용하기때문에 굳이 성벽이 높을 필요가 없다.
사람 키보다 조금 높게만 지어도 적은 깍아지는 듯한 절벽을 타고 올라오느라 성벽을 제대로 넘기도 힘들어지는거다
이처럼 한국은 산성의 발달과 더불어 낮은 성벽의 품자식 축성술이 많이 발달했다
이는 경주나 공주, 부여, 서울의 아차산이나 남한산성 등만 가봐도 쉽게 볼수 있는 축성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