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은 17~18세기 최상급의 철제품을 생산하면서 제철 분야에서 최고의 리더가 되었다. 베스트만란드(Vastmanland)에 위치한 엥겔스베리 제철소 유적은 당시 스웨덴 제철소 가운데 잘 보존되고 가장 완벽한 사례이다.
중요한 기술적 유적과 행정 및 주거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는 엥겔스베리는 17~19세기 영향력 있는 유럽 공업 단지를 보여주는 탁월한 사례이다. 이 제철소는 잘 보존되었으며, 이런 형태의 스웨덴 제철소 가운데 가장 완벽한 사례이다. 또 초기 제련 용광로를 사용하여 최상급의 철제품을 생산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스웨덴은 민족 대이동 기간[Migration Period] 후반부터 약 2세기 동안 철강 분야에서 경제적 리더가 되었다. 지역 농부들은 13세기에 농업 소득을 보충하려고 광석을 캐서 초기 제련 용광로를 사용하여 철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중세기 후반에 수차[water-wheel]를 동력으로 하여 용광로와 대형 망치를 작동하면서 스웨덴의 철강 산업은 급속히 발전하였다. 16세기 말경에 엥겔스베리에서 처음으로 철봉[bar-iron]을 단조하였다. 17세기 중반에는 작업 규모가 상당히 커졌다. 당시 스웨덴 정부는 농부들이 하는 선철 생산을 제한하고, 광산 지구 밖에 용광로를 세워 귀족이나 부유한 시민들이 살 수 있는 제철 작업 단지를 만들고, 제품을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는 설비 개발을 유도하는 정책을 펼쳤다. 대표적인 곳이 엥겔스베리였는데 1681년에 한 귀족이 커다란 풀무형 용광고를 세워 선철과 철봉을 동시에 생산하였다. 기술이 발달하고 주변의 용광로들이 커지면서 18세기 동안 철 생산량은 점차 증가했다. 1695년에 1년 생산량이 135톤이었고, 1767년에 264톤으로 증가하였다. 1778~1779년에 최신 기술을 적용한 새 용광로를 세웠고, 쇄석기와 대형 석탄 저장고도 설치하였다. 1836년에 새 송풍 기관을 도입하자 생산량은 크게 증가했다. 1848년에 가스로 가열하는 일회용 구이가마[one-roasting kiln]가 추가되었으며, 18세기 후반에 세운 용광로에는 1850년대의 프랑스식 화로[French hearths]가 다시 설치되었다. 1860년대 스웨덴에 헨리 베세머(Henry Bessemer)의 평로강 형태의 제철 제강법이 소개되면서 석탄 광석 생산 방법은 쇠퇴하였다. 1880년대 엥겔스베리는 제련 용광로의 크기를 키우고 작업 시간을 늘리는 방법으로 간신히 버텼다. 그러나 엥겔스베리 제철소의 소유자 파게르스타 회사[Fagersta Company]는 낡은 공법이 더는 경제적이지 못하다고 판단, 1919년에 문을 닫았다. 엥겔스베리는 17~18세기 스웨덴 번영의 기반으로 전통적인 제철소[jarnbruk]가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사례이다. 이런 자급자족 단지는 기술 설비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행정 건물과 주거 건물이 있으며, 주거 건물에는 관련된 농장 노동자와 관리인과 제철 노동자들이 살았다. 건축 시기가 다르고 기능이 다양한 50채 넘는 건물이 단지 안에 잘 보존되어 있다. 1750년에 세운 주요 건물은 추운 날씨를 견딜 벽과 주석으로 도금한 검은색 지붕이 있는 2층짜리 현대식 주택이다. 몇몇 방은 구스타브 양식[영국 조지아 양식과 비슷한]의 그림으로 장식되었고, 실내에서 밖을 내다보면 영지와 용광로가 보이게 되어 있다. 1828년에 영지의 주인이 바뀌면서 현대화 작업을 하였다. 새로운 창과 현관이 정원 마당에 시계탑과 함께 추가되었다. 건물 동쪽에는 부엌이 달린 부속 건물이 있다. 각 부속 건물 앞에는 제철소의 부산물인 슬래그 석[slag-stone]으로 만든 둥근 현관이 있다. 서쪽 부속 건물의 내부는 아주 우아하게 치장되었다. 영주의 주택 주변에 책임 정원사 주택(1790), 양조장(1829), 슬래그 석으로 지은 창고가 있다. 엥겔스베리의 다른 건물에는 감독관 주택, 현대식 창고, 사무실 건물[1917~1918년에 달레카를리아(Dalecarlia)에서 가져옴], 마구간, 마차 보관소, 대장간 오두막 등이 있다. 후대에 설치한 1778~1779년의 제련소와 1850년대의 대장간, 1800년대의 광석 구이가마[ore-roasting kiln]는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유적은 전통적인 스웨덴 제철소의 기술 설비를 완벽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