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질서와 영역주권 수호, 당파적 정치 아닌 신앙고백의 본질
| 크리스천투데이 : 2026.10.28 06:23
[기고] ‘고애연의 9가지 비평은 교수회 보고서를 반박했는가?’에 대한 신학적 재반박
▲고애연 최근 포럼 모습. ⓒ크투 DB
들어가는 말: 질문의 프레임을 바로잡으며
박종철 목사는 기고문에서 필자의 ‘주권론적 비평’을 검토하며, “하나님의 주권이 모든 영역에 미친다는 사실이 특정 정치적 판단의 정확성을 자동으로 보증하지는 않으며, 이를 결론으로 정당화하려면 사실 검증과 성경적 연결 과정에 대한 추가 논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얼핏 보면 박 목사의 논지는 신중하고 학문적인 분별을 요청하는 정당한 비평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의 논증 구조는 출발선에서부터 심각한 ‘범주 오류(Category Mistake)’를 범하고 있다. 박 목사는 교회가 현재 직면한 거대한 영적·신학적 도전들을 가치중립적인 ‘특정 정파적·정치적 호불호 영역’으로 치부한 뒤, 교회의 저항을 단순히 ‘정치적 판단을 성경으로 정당화하려는 시도’로 격하시켰다.
그러나 지금 한국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입법적·제도적 위기들은 단순한 정책 선호도나 정파 간 이해관계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하나님의 창조질서, 생명의 신성함, 그리고 국가 권력이 교회의 고유 영역을 침범하는 영역주권의 훼손에 관한 ‘신앙고백적 상태(status confessionis)’의 문제다. 개혁주의 정통 신학과 역사적 맥락에 비추어 박 목사의 비평이 지닌 한계를 조목조목 짚고자 한다.
1. 범주 오류: 창조질서 수호는 ‘특정 정치적 판단’이 아니다
박종철 목사는 교회의 발언이 “정치 현실에 대한 자의적 판단에 절대적 권위를 부여하는 도구로 전락할 위험”을 경계한다. 그러나 성경이 명백히 규정하고 있는 근본 원리를 세속 국가가 법률로 파괴하려 할 때, 이에 항거하는 것은 ‘선택적 정치 판단’이 아니라 ‘성경적 당위성’이다.
창조질서(창 1:27) vs 성별체계 해체
‘포괄적 차별금지법(평등법)’은 하나님이 정하신 남성과 여성의 양성 창조질서를 해체하고 주관적 성별정체성을 법제화하려는 시도다. 이는 개혁신학이 고백하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과 질서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생명의 절대 주권(출 20:13) vs 무제한 낙태 합법화
태아의 개월 수와 상관없이 인공임신중지를 허용하고 유산유도제를 전면 도입하려는 흐름은, 인간 생명 수여자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심을 부정하는 반생명적 입법이다.
이러한 사안들은 세율을 몇 퍼센트로 정할 것인가, 도로를 어디에 놓을 것인가와 같은 ‘가치중립적 정책 판단’이 아니다. 성경의 절대적 가르침과 세속 권력의 입법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이다. 이를 두고 ‘특정 정치적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추가 논증이 필요하다’며 유보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신중함이 아니라 불의와 창조질서 파괴 앞에서 교회의 입을 막는 영적 방관에 불과하다.
2. 아브라함 카이퍼의 영역주권: 국가 권력 월권에 맞선 저항
개혁주의 신학, 특히 아브라함 카이퍼의 신칼빈주의는 하나님의 주권이 모든 영역에 미친다는 사실을 선언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 영역의 ‘고유한 주권과 한계’를 엄격히 규정했다.
국가의 월권과 전체주의적 통제
국가는 법을 집행하는 하나의 제도적 영역일 뿐, 교회나 가정, 학교 위에 군림하는 전능한 실체가 아니다. 그러나 현재 발의되거나 논의되는 일련의 흐름들-교회의 정당한 공적 비판을 빌미로 한 종교법인 해체 및 재산 국가귀속 법안, 선교와 구제를 위축시키는 비정상적 과세 시도, 기독교 사학 및 대안학교에 대한 자율권 박탈-은 명백히 국가 권력이 교회의 고유 영역(말씀 전파, 선교, 자녀의 기독교 교육)을 불법적으로 침탈하려는 시도다.
영역주권의 본령
카이퍼는 국가가 다른 영역의 자율성을 침해할 때 교회가 이를 방어하고 저항하는 것을 지극히 당연한 신학적 의무로 보았다. 카이퍼 자신이 세속주의 교육법에 맞서 기독교 학교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정치 결사(반혁명당)를 조직하고 싸웠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따라서 교회가 이러한 악법들의 본질을 폭로하고 저항하는 것은, 국가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권력의 월권으로부터 교회의 주권과 가정의 교육권을 지켜내기 위한 정당한 영역주권의 발현이다.
3. 칼뱅의 저항권과 예언자적 강단의 사명
박종철 목사는 현실에 대한 진단과 성경의 연결이 충분히 논증됐는가를 묻는다. 그러나 종교개혁의 역사는 강단이 시대의 구체적인 불의와 권력의 타락을 침묵으로 외면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칼뱅의 위정자론: 『기독교 강요』 제4권 20장
장 칼뱅은 위정자의 권위를 인정하면서도, 그 권위의 한계를 분명히 했다. 위정자가 하나님의 법을 짓밟고 하나님의 통치를 찬탈할 때, 성도는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행 5:29)”는 명령 앞에 서게 된다. 칼뱅은 제네바 시의회가 교회의 영적 치리권과 출교권을 침해하려 했을 때 단호히 맞서 싸웠다.
성경적 선지자의 전통
구약의 엘리야, 아모스, 신약의 세례 요한은 모호한 신학적 추상성 뒤에 숨지 않았다. 세례 요한은 헤롯 왕의 구체적 불법(동생의 아내를 취한 죄)을 지목해 책망하다 투옥되고 순교했다. 현실의 구체적 악법과 불법, 부정선거 논란이나 헌정질서의 위기 앞에서 ‘특정 정치 행동의 위험’만을 경고하며 입을 다무는 것은 성경의 예언자적 전통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결론: 비겁한 중립을 넘어, 신앙의 공적 책임을 다하라
박 목사는 비평에서 “정치적 현실을 성경으로 해석하는 것과 이미 형성된 정치적 판단을 성경으로 정당화하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그 잣대는 박 목사 자신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교회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무너뜨리는 입법과 교회의 자유를 억압하는 세속 권력의 횡포를 목도하면서도, “더 정치적으로 정교한 논증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침묵을 요구하는 것이야말로 세속적 다원주의와 좌파적 이념의 눈치 보기로 성경의 절대성을 희석하는 또 다른 ‘정치적 판단의 정당화’ 아닌가?
하나님의 주권은 추상적 사변의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법과 제도, 문화와 일터라는 구체적 삶의 현장에서 창조질서와 교회의 자유가 위협받을 때, 강단에서 이를 경고하고 성도들을 깨우는 것은 개혁교회 설교자의 피할 수 없는 소명이다.
박종철 목사가 진정으로 개혁신학의 주권론을 논하고자 한다면, 현실의 악법들이 하나님의 질서를 허물고 있는 명백한 실재 앞에서 왜 교회가 침묵해야 하는지, 국가의 교회 침탈을 어떻게 신학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지를 조목조목 밝혀야 할 것이다.
교회의 외침은 당파 정치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공의와 창조질서를 지키기 위한 신앙고백적 결단이다.
▲이경우 목사.
이경우 목사
영주시민교회 원로목사
고애연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