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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기 소년
유은실
“그루지야, 수도 트빌리시, 네팔, 수도 카트만두.”
진수가 교탁 옆에 서서 나라 이름을 외운다. 수도도 외운다.
진수가 오늘 우리 반에 전학 온 아이다. 선생님은 조금 전, 진수한테 ‘노래든 뭐든 잘하는 것’을 하라고 하셨다. 진수는 나라 이름과 수도를 외우기 시작했다.
“대만, 수도 타이베이, 대한민국, 수도 서울.”
진수가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말할 때 ‘대만, 수도 타이베이’와 같은 느낌이 든다. 대한민국이 먼 나라 같다. 수도 서울도 낯선 도시 같다.
“라오스, 수도 비엔티엔,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교실은 점점 조용해진다. 진수는 키가 작다. 머리통은 지구본처럼 둥글다. 진수는 가만히 서서 입을 움직인다. 진수 목소리는 크지 않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다. 또박또박 귀에 박힌다. 난 진수를 안다. 이름이 ‘진수’라는 건 조금 전에 알았지만, 진수를 안다.
“말레이시아, 수도 콰라룸푸르, 몰디브, 수도 말레.”
진수는 우리 동네에 산다. 지난 일요일, 그러니까 꼭 팔 일 전에 우리 동네로 이사 왔다. 길모퉁이 주차장 한구석, 상자로 만든 집이 진수네 집이다. 주차장이 생기기 전 길모퉁이는 공터였다. 어른들은 진수네 집을 ‘컨테이너 박스’라고 부른다.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미얀마, 수도 양곤.”
나는 상자 속에 부엌이랑 화장실이 들어 있다는 게 신기했다. 상자 속에 사는 건 어떤 기분일까, 혹시 희한한 피리를 부는 긴 머리 아저씨 혼자서 살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잠이 들기도 했다.
“바레인, 수도 마나마,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하지만 이제는 그 집이 캠핑카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상자로 된 집의 문이 열리는 걸 본 순간부터 그렇다. 지난 화요일, 나는 길모퉁이를 지나다 그 집에서 나오는 아이들을 보았다. 남자 아이가 문을 열고 나오자, 조금 작은 남자 아이가 뒤따라 나왔다. 그리고 똑같이 생긴 여자 아이 둘리 나란히 나왔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 부탄, 수도 팀부.”
아이들 뒤로 검은 모자를 쓴 아저씨가 나왔다. 아저씨는 한쪽 어깨에 검은 가방을 메고 있었다. 아저씨는 뒤로 돌아 문 안에 있는 누군가한테 손을 흔들었다. 어떻게 저렇게 작은 집에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들어 있을까…… 나는 한참을 멍하니 서서 상자로 만든 집 식구들을 보았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도 평양. 브루나이, 수도 반다르세리베가완.”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부르는 아이를 나는 본 적이 없다. 진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반다르세리베가완’처럼 말한다. 진수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 무표정한 게 아니다. 무표정도 없다.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 스리랑카, 수도 스리자야와 르데네푸라코테.”
나는 엄마한테 그 집에 대해 묻고 싶었다. 어떻게 그렇게 작은 집에 여섯 식구가 사는지, 왜 그렇게 넓은 주차장에 그렇게 작은 집을 만들었는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 관심은 온통 싱크대에 있었다. 물이 잘 내려가지 않는 싱크대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웠다. 엄마는 내 얼굴보다 싱크대 구멍을 더 오래 들여다봤다.
“시리아, 수도 마마스쿠스, 싱가포르, 수도 싱가포르.”
지난 수요일, 나는 책가방을 메고 그 집으로 들어가는 아이들을 보았다. 진수는 그중에서 첫째로 보였다. 진수 어깨는 지쳐 보였다. 진수 동생들도 지쳐 보였다. 주차장에서 세차를 하던 아주머니가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문이 닫혔다.
“아랍 에미리트, 수도 아부다비,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
나는 아빠한테도 ‘상자로 만든 집’에 대해 묻지 않았다. 야구 때문이었다. 프로야구가 시작되면 아빠는 내 얼굴보다 텔레비전을 많이 본다. 작년까지만 해도 아빠한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같이 야구를 보면서 했다.
작년이었다면 엄마가 아무리 싱크대 구멍을 들여다보고 있어도 쫓아디니면서 말을 걸었을 거다. 나는 육학년이 된 다음부터 나를 보지 않는 사람들한테 말걸기가 싫어졌다.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싱크대 물이 내려가지 않으면서, 엄마가 싵크대 구멍을 계속 들여다보면서, 나한테 화내는 것보다 싱크대한테 화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목이 갑갑해졌다. 내 목구멍에도 뭐가 걸려 있는 것만 같았다.
“예멘, 수도 사나, 오만, 수도 무스카트.”
지난 목요일 아침, 상자로 만든 집에서 나오는 아이들을 또 보았다. 나는 일부러 서둘러 나가 주차장 근처를 맴돌고 있었다. 나는 ‘주차합니다.’라고 쓴 나무 간판 뒤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상자로 만든 집을 보았다. 전날의 지친 어깨는 온데간데없었다. 아이들은 환하게 웃으며 뛰어나왔다. 마술사의 입에서 피어 나오는 꽃송이처럼 밖으로 팡팡 터져 나왔다.
“요르단, 수도 암만,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
마술사의 입에서 피어 나오던 꽃송이, 상자로 만든 집에서 나오던 아이들. 둘이 자꾸 겹쳐서 떠올랐다.
‘검은 모자를 쓴 아저씨가 마술사일까. 밤이 되면 아이들을 인형만 하게 만들어서 지친 어깨를 다 털어주고, 아침이 되면 다시 상자 밖으로 내보내는……’
말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내 짐작은 조금씩 커졌다.
‘아이들 책가방도, 옷도, 이불도, 상자로 만든 집 안에 들어가면 장난감처럼 작아져서 둥둥 떠다닐 거야. 그렇지 않다면 , 저렇게 작은 집에서 여섯 식구가 어떻게 살아……’
말도 안 되는 짐작은 머릿속에서 점점 더 커졌다.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이란, 수도 테헤란.”
진수는 쉬지 않고 말한다. 입으로 만국기를 뽑아내는 마술사 같다. 진수가 뽑아내는 만국기가 교실을 채우고, 교실이 운동장이 되고, 운동장에서 운동회를 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진수가 보이지 않는 만국기로 교실을 꽁꽁 묶어 버린 것 같다. 교실은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이스라엘, 수도 예루살렘. 인도, 수도 뉴델리.”
지난 금요일 밤,나는 상자로 만든 집으로 들어가는 아저씨를 보았다. 창문으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그 집은 오두막처럼 신비롭고 멀게 느껴졌다.
나는 상자로 만든 집으로 다가갔다. 모자를 벗는 아저씨에 실루엣이 보였다. 순간, 모자 속에서 무언가 푸드덕 날아오르는 걸 본 듯도 했다. 모자를 벗으면 새가 날아오르고, 입에서는 꽃송이가 피어나고, 번쩍이는 마술 도구들을 가방 속에 넣고 다니는 마술사가 떠올랐다.
아이 하나가 창으로 다가와 창문늘 닫았다. 나는 움찔 몸을 숙였다. 아이는 어둠 때문에 나를 보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상자로 만든 집에서 조용히 뒷걸음질을 쳤다. 창문에 커튼이 쳐졌다. 나는 주차장을 가로질러 우리 집 쪽 골목으로 뛰었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 일본, 수도 도쿄.”
지난 토요일 낮, 나는 또 아저씨를 보았다.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아저씨가 있었다. 바로 우리 집 부엌 한가운데.
“중국, 수도 베이징, 카자흐스탄, 수도 아스타나.”
아저씨는 싱크대를 들어내고, 바닥에 뚫린 구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옆에는 활짝 열린 가방이 놓여 있었다. 가방 속에는 낡은 공구와 기름걸레가 가득했다.
아저씨가 하수구구멍에 오른손을 집어넣었다. 시커먼 덩어리가 아저씨의 손을 따라 올라왔다. 썩은 냄새도 같이 올라왔다. 엄마가 창문을 열었다. 아저씨는 왼손으로 모자를 벗엇다. 숱이 적은 머리가 드러났다. 바람이 창으로 들어왔다. 아저씨의 머리카락이 일어서서 흔들렷다. 마치 어린 새가 날개짓하는 것처럼……
“카타르, 수도 도하,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아저시는 싱크대를 다시 제자리로 옮겨 놓았다. 엄마가 물을 틀었다. 아저씨가 뚫어 놓은 구멍이 물을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물이 고일 틈도 없이 ㅃ져 나갔다. 아저씨는 엄마한테 뭐든 고치고 뚫을 수 있다고 했다. 돈도 조금만 받겠다고 했다. 그리고 작아진 옷이나 보지 않는 동화책을 얻을 수 있냐고 물었다.
“쿠웨이트, 수도 쿠웨이트, 키르기스스탄, 수도 비슈케크.”
아저씨는 아이들이 늘 같은 옷만 입고 같은 책만 봐서 마음이 앞다고 했다.
“우리 큰애는 작년에 얻어다 준 국기책만 봐요. 나라 이름이랑 수도 이름을 전부 외워요.”
엄마는 아저씨한테 이제는 보지 않는 내 동화책이랑 작아진 옷을 싸 주었다.
“세상에, 이걸 어디다 놓나. 선반을 매야겠네요. 점점 넓은 집으로 가야 하는데, 점점 좁은 집을 얻게 되네요.”
아저씨는 고개를 숙이며 계속 고맙다고 했다.
“키프로스, 수도 니코시아, 타이, 수도 방콕.”
엄마는 아이들이 어느 학교를 다니냐고 물었다. 아저시는 곧 가까운 학교로 전학시킬거라고 했다. 엄마가 아이들이 몇이냐고 물었다. 아저씨는 넷이라고 했다. 아저씨가 고개를 숙였다. 나는 엄마가 그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지키스탄, 수도 두샨베, 터키, 수도 앙카라.”
싱크대 구멍은 이제 벙 뚫렸다. 하지만 내 목구멍에는 여전히 뭐가 걸려 잇는 것 같다. 엄마는 이제 싱크대 구멍을 별로 들여다보지 않지만, 나는 되도록 말을 걸지 않는다. 아이들을 너무 많이 낳았다고 말하는순간 엄마랑 마주 보기 싫어졌다.
“투크메니스탄,수도 아슈하바트,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
진수가 입에 침을 바른다. 나는 진수의 눈을 본다. 눈을 뜨고 있지만 아무것도 보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진수의 목덜미를 본다. 작년에 내가 입던, 칼라에 보풀이 일어난 체크무늬 셔츠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
진수가 선생님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선생님, 아시아 끝났는데요. 오세아니아도 할까요?”
선생님이 뒷머리를 긁는다. 아이들을 휘둘러본다. 아이들이 “우―” 소리를 내며 박수를 친다. 스피커에서 수업 시작을 알리는 음악이 나온다.
“음…… 너 완전 걸어 다니는 만국기로구나. 그건 다음에 해라. 그리고 우선 맨 뒤 빈자리에 가서 앉아라.”
진수가 통로를 지나 교실 뒤로 간다. 조그만 진수가 큰 아이들 뒤에 앉는다. 아이들이 수군거린다. 아이들은 진수를 ‘걸어다니는 만국기’로 기억할 것이다.
어디 사는지, 아버지가 무얼 하는지, 혹시 내가 입던 옷을 얻어 입은 게 아닌지 궁금해하지 않을 거다. 다행이다.
“그런데, 강진수. 강진수?”
선생님이 진수를 부른다.
“네?”
진수가 대답한다.
“일어나 봐.”
진수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네가 외운 나라 중에서, 너는 어느 나라에 제일 가 보고 싶니?”
진수는 대답이 없다. 그 대신 진수 얼굴에 표정이라는 게 생겼다. 슬프고 겁에 질린 표정. 나는 선생님이 그걸 묻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진수 표정을 본 순간, 나는 선생님과 마주 보기 싫어졌다. 진수 얼굴도 더는 보고 싶지 않다.
나는 창으로 고개를 돌린다. 창밖을 본다. 하늘이 파랗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밝은 날이다.
<끝, 30장>
첫댓글 아, 저는 좀 어려운데...아이의 가족은 탈북자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