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 사람
원제 : These Three
1936년 미국영화
감독 : 윌리암 와일러
원작 : 릴리언 헬만의 "The Children's Hour"
각본 : 릴리언 헬만
제작 : 사무엘 골드윈
음악 : 알프레드 뉴만
촬영 : 그렉 톨랜드
출연 : 미리암 홉킨스, 멀 오베론, 조엘 맥크리어
보니타 그랜빌, 캐서린 두셋, 앨마 크루거
마르시아 메이 존스, 월터 브레난
윌리암 와일러 감독은 1935년 까지는 그다지 두드러진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필모를 볼 때 1935년 까지의 작품들은 모두 '듣보잡 영화들' 입니다. 물론 제가 직접 어떤 영화들인지 확인해 볼 수 없었지만 할리우드나 유럽에서 제작된 상당수의 30년대 초중반 영화들이 많이 알려져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마도 주목할 만한 작품들은 아니겠죠.
1936년 그는 '공작부인'과 '이 세 사람'을 통해서 걸작의 출발을 했습니다. 이후 등장한 작품들은 대부분 인지도가 높고 유명한 수작들이지요. '공작부인'은 아카데미상 후보 다수에 올랐고, 그의 초기 대표작이자 30년대 미국 드라마 장르 영화의 걸작이기도 합니다. 이 '공작부인'에 가려지긴 했지만 '이 세 사람' 역시 상당한 수준급 작품이지요. 사실상 윌리암 와일러 감독의 꽃길의 첫 걸음을 장식한 출발점이 '이 세 사람'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공작부인'보다 이 작품을 더 좋아하지요.
인기작가 릴리언 헬만의 원작 희곡을 각색한 영화입니다. 릴리언 헬만은 '라인의 감시' '체이스' '작은 여우들' 같이 제법 괜찮은 영화들의 원작자 입니다. 1977년 프레드 진네만의 후기 수작 '줄리아'는 그녀의 가짜 자전적 내용을 각색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릴리언 헬만은 19세기 영국 애든버러 지역의 어느 학교에서 실제로 있었던 재판에 기초하여 이 작품을 썼습니다. 꽤 유명한 재판 중 하나였대요. 그걸 윌리암 와일러가 영화로 만든 건데 간단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의 시간(The Children's Hour)' 이라는 제목의 그 원작은 1930년대 당시에 영화화 하기 쉽지 않은 소재였습니다. 바로 동성애 때문이죠. 지금이야 문제될 소재가 아니지만 가뜩이나 경제 대공황으로 어수선한 1930년대의 시대에 당시 기준으로 이런 '부적절한' 내용을 담아낼 수는 없었죠. 그래서 이 이야기의 틀 자체가 완전 변경되었습니다.
졸업식, 하지만 부모가 없는 두 여성
캐런과 마사는 향후의 진로에 대해서 걱정을 하는데...
마사와 캐런을 연기한 미리암 홉킨스(왼쪽)와
멀 오베론, 멀 오베론은 3년뒤
윌리암 와일러의 '폭풍의 언덕'에 출연한다.
훤칠하고 선량한 훈남 의사 카딘을
연기한 조엘 맥크리어
세 사람은 캐런이 물려받은 낡은 집을
개조하여 학교를 건립할 계획을 세운다
두 여성의 동성애는 두 여자와 한 남자의 삼각관계로 재설정 되었습니다. 뿌리 자체를 바꾸어 버린거죠. 릴리언 헬만은 아예 영화의 시나리오를 직접 담당해서 꽤 그럴듯한 삼각관계 사건으로 변경했습니다. 원작자가 직접 각색한 것이니 상당히 그럴듯하게 내용이 변경되었고, 이야기의 핵심인 '아이의 거짓말'은 그대로 잘 살렸죠. 제목도 '이 세 사람(These Three)'으로 바꾸어 세 사람이 엮인 사건임이 강조되었습니다.
상당히 강렬한 내용이지요. 부모 없이 어렵게 대학을 졸업한 두 젊은 여성 캐런(멀 오베론)과 마사(미리암 홉킨스)는 자기들 힘으로 학교를 세우고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지요. 물론 여기에는 선량한 훈남 의사 카딘(조엘 맥크리어)의 큰 도움이 있었지만. 이런 배경이니 주인공 두 여성에게 이 학교가 어떤 의미인지 설명할 필요가 없죠. 극중 대사로 나오지만 정직한 일터이며 그들의 자존심의 산물이고, 또한 생계의 수단입니다. 이게 어떤 못되고 사악한 학생의 거짓말로 인하여 산산조각난다고 생각해 보세요.
관객이 보기에도 억장이 무너질 상황이 이 세 사람들에게 연출되지요. 그들이 피땀 흘려 가꾼 학교는 순식간에 망하게 되고, 실력있는 의사는 병원에서 쫓겨나게 되고, 더구나 추문의 주인공으로 언론에 오르내리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인 것이죠.
카딘과 캐런의 사랑이 무르익어 가고...
"우리 마을에 잘 오셨소"
캐런과 마사를 반기는 지역 유지 할머니
하지만 그 뒤의 사악한 손녀딸의 음흉한 미소.
학교도 잘 운영되고 카딘과의 사랑도
얻게 된 캐런의 행복한 시간
캐런의 연인 카딘을 바라 볼 수 밖에
없는 마사, 이 영화에서 가장 안타까운
캐릭터가 마사다
거짓말과 누명, 죄와 벌에 대한 깊이있는 고찰입니다. 영화는 엄청 강렬합니다. 오래전에 처음 봤을 때 그 당시는 지금보다 1930년대 영화들을 접하기 훨씬 어려운 시절이었음에도 너무 강렬했지요. 특히 못된 소녀 메리 역의 보니타 그랜빌의 사악한 연기가 일품이었습니다. 정말 스크린 속에 들어가서 때려주고 싶더군요.
30년대 영화니 만큼 빠른 진행과 빠른 대사가 전개되면서 시원스럽게 흘러가는 내용이지만 그럼에도 지금 장면 이후에 펼쳐질 다음 내용이 뭘까 조급해질 정도로 강렬하고 재미있었던 작품입니다. 원작의 핵심요소인 '동성애'를 통삭제 해버렸음에도 이런 구성이 무난힌 나온 겁니다. 기가 막힌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이 영화에 대해서는 적절히 찬반이 갈립니다. 무난한 수작이라는 것에야 이견들이 없겠지만 최고의 걸작이냐 그냥 볼만한 영화냐에 대해서는 조금 온도차가 있겠죠. 아마도 원작을 좋아하고 접한 분들에게는 불만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앙꼬없는 찐빵이 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순수하게 이 영화 자체로 접한 경우는 상당한 걸작 그 자체입니다. 물론 세 사람의 관계보다 아이의 거짓말에 대한 파장이 더 중요한 요소이고, 원작의 제목 자체도 거기에 포인트를 두고 있습니다.
동성애를 통삭제 하다 보니 의사인 카딘과 캐런과의 로맨스에 대한 어느 정도의 할당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시간이 더 할애될 수도 있지만 이걸 1시간 30분의 시간속에 다 녹여 버렸으니 얼마나 잘 각색을 한 건지 알 수 있지요. 많은 이야기를 잘 압축해서 꼼꼼히 잘 챙긴 영화입니다. 중요한 내용들이 폭탄 터지듯 확확 던져지고, 중요 인물 7명(세 사람, 악녀소녀 메리, 그 친구인 로잘린, 메리의 할머니 틸포드 여사, 주책바가지 이모 모타)에 대한 캐릭터는 아주 확실하고 명확합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들 7명의 각자의 관점에서 따로 각색한 영화를 만들어도 상당히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각색, 연기, 연출 다 뛰어났습니다. 특히 자신의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이 연기상을 받은 경우가 무척 많을 정도로 배우의 캐릭터 묘사에 워낙 능한 윌리암 와일러의 장점이 빛났습니다.
역대급 사악한 소녀 메리를 연기한
보니타 그랜빌
어른들을 제치고 아카데미 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거짓말을 하는 메리에게 벌을 내리는 캐런
엿듣다 걸린 두 소녀
메리의 사악함을 너무나 잘 아는 가정부
하지만 메리는 할머니를 꼬드기는데...
원작을 변경한 김에 결말도 상당히 바뀐 셈인데 일종의 부분 해피엔딩일 수 있지요. 나름 경제 공황 시대의 할리우드 식 타협을 한 셈입니다. 물론 그게 다행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영화 보는 내내 안타깝고 답답했지만 인내를 갖고 복잡한 실타래를 하나씩 푸는 느낌이 들었는데 풀다 말았으면 참 답답한 결말처럼 느꼈을테니까요. 오히려 좀 더 명쾌했으면 하는 바램까지 들었거든요. '이만하면 그나마 다행이긴 하네. 만족스럽진 못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원작의 결말처럼 갔다면 그냥 답답하고 암담한 영화로 끝나는 셈이지요. 딱 적당한 타협이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사라진 동성애 소재 대신 애틋한 로맨스 영화이기도 했지요.
이런 영화를 보고 분노하거나 답답해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그러면서도 우리 세상에서는 유사한 일이 참 많이 벌어지지요. 사악한 사람과 능력있는 사람이 한 통속이 되면 정말 누구 하나 파멸 시키는 건 일도 아니지요. 사악한 손녀딸의 거짓말에 휘둘린 지역 유지 할머니의 현명치 못한 처사로 인하여 모든 것을 다 잃은 세 사람, '우린 모든 것이 걸렸는데 당신은 마치 인형을 갖고 놀듯 우리를 상대하고 있다'라는 대사처럼 누구에게 누명 씌우고 선동하는 건 참 쉬운 일이지만 그 누명을 벗기고 명예회복을 시키는 건 참 힘듭니다. 가령 '최민수 노인 폭행 사건' 같은 것도 누명을 벗는데 꽤 오래 걸렸죠. 그 동안 받은 피해와 손실은 어느 누구도 보상해주지 않습니다. 그냥 고스란히 '피해'로 남을 뿐이죠. 이 영화에서도 진실이 다 드러나더라도 모든 걸 되돌릴 방법은 전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고 실제로 세상이 그렇습니다. 진실이 드러나면 선동되어 돌을 던진 사람은 '몰랐네' 라고 한마디 하고 돌아설 뿐이지요. 그나마 이 영화에서 후반부의 세 사람의 상황도 영화니까 그 정도 까지라도 간 것입니다. 선동 잘 되는게 사람이고, 특히 어떤 사건이나 루머로 누굴 비난하려면 최소한 양측의 말을 다 들어보는 정도의 기회는 줘야겠죠. 선동과 루머는 결코 가벼운게 아닙니다. 누구 한 명의 인생을 송두리째 날려 버릴 수 있는 것이지요.
영문도 모른채 학생들이 빠져나가는
상황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캐런과
세 사람의 가장 길고 힘겨운
투쟁이 시작되고...
나쁜 소녀 메리의 거짓말은
운명 공동체였던 세 사람의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리고 심지어 그들의 우정과
사랑마저 흔들리게 만든다.
마사의 간절한 호소는 과연 효과를 얻을까?
이 세상에서 가장 한심한 말 중의 하나가 '아이는 거짓말을 안한다' 입니다. 절대 아니죠. 아이는 거짓말을 많이 합니다. '우리 애는 안 그래요' 역시 마찬가지고요. 어쩌면 아이에 대해서 가장 모르는게 그 부모일 수도 있지요. 사악한 아이가 등장하는 영화는 종종 있지만 이 영화처럼 또박또박 상황전달을 강렬하게 잘 한 작품은 드물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윌리암 와일러 감독 영화 중 한 편입니다. 다소 과장된 면이 있을 수 있지만 인간의 갈등과 사랑, 내면 등에 대한 묘사가 필요한 드라마 장르에 대해서는 가장 탁월한 연출을 보여주는 윌리암 와일러의 진가가 잘 드러난 영화입니다.
평점 : ★★★★ (4개 만점)
ps1 : 레너드 말틴의 무비 가이드 평점에서 이 작품과 '공작부인' 두 편 모두 별 네개 만점을 받았는데 그만큼 1936년은 윌리암 와일러에게 큰 전환기가 된 시기였지요.
ps2 : 수상은 못했지만 사악한 악역 메리 역의 보니타 그랜빌은 아카데미 조연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멀 오베론, 미리암 홉킨스, 조엘 맥크리어 등 어른 배우들 틈에서 그런 주목은 받은거죠.
ps3 : 이 영화를 보고 딱 생각나는 작품은 2012년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덴마크 영화 '더 헌트' 입니다. 물론 계획적이고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해서 어른들을 파멸시킨 '이 세 사람'과는 달리 그 영화는 그냥 너무 어리고 철없는 아이의 무심한 거짓말이 한 남자를 궁지에 몰아넣은 내용이었죠.
ps4 : 영향력이 큰 사람이 얼마나 조심해서 처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 내용이니다. 우리 사회는 SNS 라는 것이 발달하여 정말 아무나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지요. 특히 소위 논객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은 남을 잘 비판하여 유명해지는 직업이지만 선을 넘지 않고 정도껏 했으면 합니다. 자신의 세치 혀가 어떤 사람을 하루 아침에 악마로 둔갑시킬 수 있으니까요.
ps5: 윌리암 와일러는 1961년 오드리 헵번과 셜리 매클레인 주연으로 리메이크 작을 만듭니다. 꼭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또 그래야 했던 이유도 있었죠. 원작의 틀을 그대로 유지한 영화화에 대한 미련이 남았던거죠.
ps6 : '이 세 사람' 이라는 제목은 네이버 영화 제목인데, 사실 이 그 저 같은 관사를 잘 안쓰는 우리나라의 언어방식을 감안하면 그냥 '세 사람'이라는 것이 더 적절한 제목이지요.
ps7 : 감초 조연 배우로 정평이 난 월터 브레난이 택시 운전사로 단역 출연합니다.
[출처] 이 세 사람(These Three, 1936년) 윌리암 와일러 초기 걸작|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