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백두산 화산 폭발설
발해의 쇠퇴와 멸망 원인은 기록의 미비로 잘 알 수가 없다. 백두산의 화산 폭발이 그 원인이라는 설도 있다.
1990년 일본의 마치다 히로시 교수는「백두산 화산 폭발과 그 환경적 영향」이라는 논문에서 발해가 백두산의 폭발 때문에 멸망했다는 가설을 내세웠다. 그는 동해와 인접한 일본 지역의 지층에서 10세기의 백두산 화산재로 보이는 건층(鍵層, keybed)이 발견되고 있는데, 화산재가 동해를 건너올 정도였다면 당시 발해의 피해가 엄청났을 것이란 논리를 전개했다.
1970년대 이후 일본 북부 지방에서는 일본 화산에서 분출한 화산재라고 볼 수 없는 독특한 화산재 층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B-Tm ash(백두산-토마코마이 화산재)’ 라 불리는 이 화산재의 성분은 일본 화산의 화산재에선 거의 볼 수 없는 알칼리 성분이 많은 규장질의 화산 유리로 되어 있었다.
이러한 화산재는 동해 바다 속에서도 발견되는데, 해양 시추 자료에 의하면 1~16㎝ 두께의 화산재가 서쪽으로 갈수록 두꺼워진다고 한다. 일본 혼슈 북부 및 홋카이도 일대에서도 약 1~5㎝ 두께로 쌓인 화산재 층이 발견되고 있다.
시기적으로 이 화산재는 10세기경 백두산 폭발 때 일본으로 날아온 것이라고 한다. 폭발 당시 화산재가 대기층으로 치솟아 일부가 편서풍을 타고 동해를 건너간 것으로 추정된다. 화산이 폭발할 때 용암은 화산 주변 지역에만 흘러 국지적인 피해를 주지만 화산재는 열기를 머금은 채 멀리까지 날아가 비처럼 다시 떨어지기 때문에 그 재앙은 매우 클 수 있다.
이 화산재가 일본까지 날아갈 정도였다면 당시 백두산이 국토 한가운데 있었던 발해의 피해는 어느 정도였을까. 엄청난 폭발을 동반한 백두산의 화산 분출이 엄청난 양의 화산재를 뿌렸던 것은 분명하다. 20세기에서 손꼽히는 재앙으로 꼽히는 필리핀의 피나투보 화산이 분출할 때 보다 10배나 되는 분출물이 쏟아졌다고 하니 백두산 폭발이 어느 정도 규모였는지 알 수 있다.
화산재는 무서운 열운을 형성하여 산 밑으로 쏜살같이 떠밀려 내려가 닥치는 대로 모든 것을 파괴했을 것이다. 백두산에는 강이 많이 발달해 있는데 이 강줄기를 따라 용암과 열운이 흘렀다면 그 밑은 멀리 있는 마을들은 흔적 없이 사라졌을 수 있다. 실제로 백두산 부근의 큰 강에서는 어김없이 화산재와 물과 산사태의 흙과 바위가 섞인 뜨거운 진흙류인 토석류의 흔적이 나타난다고 한다.
많은 양의 화산재는 성층권에 도달할 정도로 높이 치솟아 하늘을 뒤덮고 멀리가지 퍼져 태양을 완전히 가렸을 것이다. 수백 킬로나 되는 곳까지 화산재가 퍼져나가고 다시 그것이 지상에 떨어졌다면, 그 열기는 주변의 농작물과 가축에게 큰 피해를 주었을 것이고 기온까지 내려가 수년간 기근이 닥쳤을 수도 있다.
대규모 화산 폭발은 폼페이를 멸망시킨 베수비우스 화산의 예로도 알 수 있듯이 엄청난 위력을 보인다. 더구나 백두산을 신령한 산으로 믿고 숭배했던 발해 주민은 백두산 폭발을 하늘의 노여움으로 여겼을 것이고 민심이 크게 동요했음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멸망하기 이전부터 발해의 난민이 고려로 들어온 것은 이러한 것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화산 분출에 의한 인적․물적 피해와 민심의 동요로 발해의 국력은 크게 약화되었고 이로 인해 20년 간 치열히 겨루었던 거란의 기습 공격에 이렇다 할 항쟁을 못하고 멸망했을 것이라는 것이 이 설의 요지이다. 그러나 화산 폭발 시기가 10세기 초라는 것이 확증되어야 한다. 최근에는 9세기에도 백두산 화산 폭발이 있었다는 주장이 일본에서 나왔다. 이 문제는 더 많은 후속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첫댓글 국사샘한테 들은기억이 새록새록
일본의 멸망 원인-야나기사와의 후지산대폭발슛과 크로아티아전에서의 니가 차 슛
일본은 2050년 멸망 2040년쯤 북극 얼음 다 녹아 없어진답니다.ㅋㅋ
흠 ...하긴 그 큰나라가 그 짧은 시간만에 정복으로인해 ...아예 없어진다는건 말이ㄷ안되는것이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