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지라고 하는 생활 환경에서,
태양의 열, 빛의 변함없는 에너지를 받으면서 생존하고 있다.
이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거기에 대자연의, 신의 위대한 자비와 사랑이란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대자연의 생명에 조화하고,
신의 마음을 나의 마음으로 삼고,
자비와 사랑으로 살아야 한다는 의의를,
지금까지의 설명에 의해서, 대충 알았으리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가치판단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을 기준으로 무엇을 표준으로 정해야 할까를 설명하자.
우선, 가치의 개념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사물에 값어치가 있다는 것은 효용이 있기 때문이다.
돈의 값어치는,
돈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로빈슨 크루소처럼,
절해의 고도에서 혼자 사는 생활이라면,
몇 억의 재보인들 아무런 가치도 의미도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가치라는 것은,
효용이 있는 것과 동시에, 상대적인 것이다.
인간의 값어치라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는 상대적이다.
나쁜 사람이 있기때문에,
나쁘지 않은 사람이 좋게 보인다.
착한 사람만 있다면, 착한 사람을 알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요즈음에는, 인간성이야 어떠하든,
돈이나 지위, 명성 또는 재능이 있는 사람한테는,
선인(善人), 위인(偉人)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 뭐니뭐니 해도, 저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다. .....’
라는 말을 곧잘 듣는다.
그것은 무엇에 대한 평가인가, 냉정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간의 평가를 단순하게 받아들여,
‘그것은 틀렸다’고 어렴풋하게 느끼면서도,
대세에 휩쓸려 버린다.
그리고 또한, 인간의 성공과 실패를,
단순히 운, 불운만으로 돌리는 경향도 있다.
현상계에 있어서의 가치의 성질은,
이처럼 상대적이지만 동시에 그 때의,
시대적 배경에 의해서도 가치관이 바뀐다.
원수 갚음은, 옛날에는 미담이었지만,
지금은, 살인죄에 해당된다.
부모를 위해서는, 딸이 매춘을 강요당해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현대에서는 자식에게도 주권이 있으며,
매춘 그 자체도 금지되어 있으므로,
무법적 행위가 아니고서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이처럼 가치관은, 시대적 배경, 사회의 구조에 따라서 변해가는 것이다.
(=도덕)
그러나 상황에 따라서 다시 말하면
시대적 배경이나 사상 혹은 사회 구조에 따라서
인간의 길이라고 하는 가치관을, 바꾸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정법은 언제, 어디에서도, 누구에게 있어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며,
누구라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이 정법을, 마음의 양식으로 하여,
매일의 생활에 살려 나간다면 우리는 항상,
미혹에 빠지는 일은 없으며,
정법의 길을 걷고 있다면,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여,
신의 자식으로서의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때 우리의 마음은,
대우주의 마음과 조화되어 본래의 평안의 경지에 이르고,
신의 빛에 싸여,
실재계인 저 세상에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주즉아 (宇宙卽我)를 깨닫기 위해,
우주와 동화된,
진짜 인간의 모습으로 되돌아 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주 ;
독화살의 비유.→
인간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하지만, 세상에는 너무나 그럴듯한 말로 쓰여진 (짐작으로, 상상으로,)
쓰여진 책들 때문에, 많은 혼동을 일으키고 있다.
다카하시 신지 선생님의 가르침은 우리 인간에게,
꼭 필요한, 꼭 해야만 하는,
그리고 할 수 있는 것만, 구체적으로 가르켜 주셨다.
도덕은 인위적인 것으로서,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 기준이 다르지만,
진리는 자연의 법칙으로서,
시대와 지역에 상관없이,
변하지 않음을 가르쳐 주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도덕은, 물질계에서의 법칙,
정법은, 비 물질계에서의 법칙....이라고 생각하나이다.
인연있는 이여, 어떻게 생각하시나이까.
p91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