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3-51 그 무렵 43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기로 작정하셨다. 그때에 필립보를 만나시자 그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44 필립보는 안드레아와 베드로의 고향인 벳사이다 출신이었다. 45 이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만나 말하였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46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였다. 그러자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7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48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49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50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51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나를 따르시오! 와서 보시오!
심각한 사제 수도 성소 급감 현상이 한국 교회 전체에 큰 타격을 주고 있습니다. 한때 젊은 사람들로 가득 찼던 전국 신학교와 수도자 양성소는 스산한 분위기로 바뀌었고, 어떤 용도로 대체해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절, 어떻게 해서든 성소자 확보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젊은 사람들을 만나면 용기를 내서, “나를 따르시오!” “와서 보시오!” 라고 크게 외쳐야 하는데, 도무지 나서지를 못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돌아봅니다. 이 길이 분명 가치 있고 아름다운 길임을 잘 알고 있지만, 공동생활의 어려움, 봉헌 생활의 복잡다단함을 잘 알고 있기에 선뜻 제안하지 못하는 측면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아무래도 나 자신이 충만한 봉헌 생활을 잘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듯합니다.
내가 지금 몸 담고 있는 이곳에서 충만하고 기쁘게 살고 있으며 공동체 안에서 생생한 천국 체험을 하고 있다면, 어찌 “나를 따르시오!” “와서 보시오!” 라고 외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봉헌생활자들의 삶이 보다 충만해져야 하겠습니다. 보다 복음적 가치와 의미를 잘 드러내는 향기로운 삶이어야겠습니다.
우리 공동체가 보다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정겨운 공동체, 서로가 서로를 향한 섬김과 나눔과 봉사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지상 천국 공동체를 건설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