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의식불명의 시기에 키요시 곁에서 떠나지 않고
뒤에 있어준 신은 도대체 뭐일까.
의식이 회복됐을 때는
키요시의 눈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고
지금까지의 생활 이외, 변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죽은 아버지도 어머니도,
확실히 키요시와는 반대편의 밝은 곳에서,
지나온 인생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는 사실--.
키요시는 틀림없이 저 세상일지도 모른다고,
그 체험을 믿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길을 확실하게 재확인하는 것을,
앞으로의 인생의 보람으로 하려고 결심하는 것이었다.
한편, 군마의 미야자와산업은 야마모토가 사장으로 승격해서,
일은 시대의 흐름을 타고 발전해 갔다.
아라키는 지금까지의 인생의 잘못을 키요시로부터 듣고,
키요시의 재산을 밑천으로 해서,
혜택받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서 사회복지사업에 일생을 걸고 있다.
키요시는 진목야의 손주들을 맡아서,
게이코와 함께 돌봐줘서 사회복지사업에 협력해서 키우고 있다.
한 사람의 인간의 선한 자각이,
많은 사람들의 헤매는 인생에 위대한 광명을 줄 수가 있다는 것을
키요시는 게이코와 얼굴을 마주보며 웃었다.
후기
사람은 모두, 올바른 마음의 기준을 잊어 버렸을 때부터,
욕망의 수렁속에서 괴로움과 슬픔의 생활을 맛보고 있다.
인생의 목적과 사명을 망각하고, 그리고 죽어간다.
슬픈 일생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태어났을 때는,
누구나 둥글고 풍요로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것이, 태어난 환경, 교육, 사상, 습관 속에서,
스스로의 성격을 만들어내고
어떤 때에는 원한, 질투, 시기, 어리석음, 만족할 줄 모르고
자기보존, 자아아욕의 사념과 행위에 의해,
둥근 마음에 왜곡을 만들어, 어두운 구름으로 마음을 덮어버린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마음의 광명을 잃고 장님의 인생을 보내버린다.
그리고 바른 법등이 꺼졌을 때부터,
마음의 눈이 닫혀, 육체오관을 의지한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 결과, 인생에 있어서 생활의 지혜에 의해 만들어진 물질문명의 노예가 되어,
사람들은 진정한 자신을 잃고 갔다.
그 때문에 물질, 경제, 지위, 명예, 기타 여러 가지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투쟁과 파괴를 반복하며 혼란하고 복잡한 사회를 만들어내고,
스스로 마음의 평안을 잃어버렸다.
누구나가 이대로 갈 수 없다.
뭔가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암중모색 속에서 어떤 인간은
그 괴로움으로부터 도망가려고
종교에 길을 찾아 왔고 지금도 찾고 있다.
그러나 현대 종교의 대다수는 우상숭배, 타력본원이 되어
광명으로 가득찬 법등의 불도 꺼진 지 오래다.
사람들은 맹신자, 광신자가 되어버려
진정한 자기자신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마음(양심)없는 지도자들의 대다수는,
자기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신이나 부처를 구실로 삼아서,
헤매는 많은 신자들에게 마음의 공해를 마구 뿌리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신의 자식이며,
이 대자연의 모습,
아름다운 하늘, 푸른 대지, 산수 등과 함께 조화로운 세계에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태양의 열, 빛에 의해,
만생만물은 상호작용 속에서 안정하고 있는 것이 본연의 모습인 것이다.
이 모습이야말로 신의 대자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대자비 속에서, 우리들의 육체도 또한 보존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육체의 선장(혼, 의식)이야말로
우리들의 전생윤회를 반복해가는 진정한 자기자신이고,
그 중심이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신은 인생항로를 건너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일체의 환경과 모든 도구를 인간에게 주고 있는 것이다.
만다라나 기타 우상이 인간에게 필요하다면,
태어날 때에 육체에 일부로서 가지고 왔을 것이다.
만다라도, 모든 우상도, 인간이 만들어낸 지혜의 산물에 불과한 것이다.
대자연의 조화된 모습이야말로 신의 마음의 표현이다.
신의 뜻은, 이처럼 대자연 속에 숨겨져 있다.
그것은 조화이며, 조화는 치우치지 않은 중도의 길로서,
자비와 사랑의 덩어리라고 하는 것이다.
이 대자연의 자애에 감사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그리고 보은이라고 하는 행위가 동반되었을 때,
감사의 마음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광명을 줄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에 조화에의 행위가 실현되어가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인간의 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바른 법의 등불은,
그 사람들의 마음과 행위 속에 점화되어 가는것이다.
치우치지 않는 중도의 마음이야말로,
인생항로에 필요한 마음의 기준인 것이다.
그 마음의 기준으로, 스스로의 사념과 행위를 반성하고,
더욱 마음의 경지를 높여 갔을 때,
인간은 일체의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해서,
집착하는 마음의 어리석음을 깨닫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그때에 마음의 구름이 맑게 개어,
신의 빛으로 가득 채워져, 마음의 평안이 만들어져 갈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렁텅이 인생을 체험하고,
마음에서 광명을 발견하고, 인생의 목적과 사명을 알고,
자기의 결점을, 용기와 지혜와 노력에 의해 수정하고,
혹독한 인생항로의 거친 파도를 헤쳐나가면서,
후회없는 인생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미타무라 키요시도 그 한 사람이다.
그는 부동산업과 금융업으로 10일에 1할이라고 하는 폭리로 막대한 자산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어렸을 때 양친을 잃고, 혹독한 인생을 체험한 결과,
의지할 곳은 돈이외에는 없다고 생각하고, 남을 믿지 않았다.
돈을 위해서는 어떤 악독한 수단도 실행해서, 완전히 감정없는 장사를 했다.
만족할 줄 모른 주인공은,
냉혈한으로 더욱 더 수전노로 철저하게 재산을 만들어갔다.
그러나 이 냉혈한의 주인공도 병에게 이기지 못했다.
아침, 일하던 중 쓰러져, 의식불명인 상태로 입원해 버렸던 것이다.
주인공에게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현재까지 체험해온
그 사건이 마음속에 기억되어 그 체험이 재현된다.
이 소설은 선한 마음으로
스스로의 사념과 행위를 반성해가는 그 과정의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리고 천상계로부터 신의 목소리를 듣고,
지금까지의 잘못된 인생을 지적받고, 욕망의 불꽃을 꺼간다.
자애의 마음이 싹텄을 때에 의식이 돌아와,
재출발한 인생을 밟는다는 대강의 줄거리다.
그리고 욕망의 공허함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갔다.
이 작품은
“또 한 사람의 자신”
혼이,
육체를 떠나 차원을 초월한 세계를 방문한다고 하는
저자의 자신이 체험했던 드라마를 기초로 한 것이다.
그리고 선한 마음,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자기자신이라는 것을 밝힌 이야기다.
쇼와 48년 3월 10일
-- 다카하시 신지 - 저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