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제자
원제 : The Devil's Disciple
1959년 미국영화
감독 : 가이 해밀턴
원작 : 조지 버나드 쇼
제작 : 버트 랭커스터, 커크 더글러스, 제임스 힐
해롤드 핵터
출연 : 버트 랭커스터, 커크 더글러스, 로렌스 올리비에
자넷 스코트, 해리 앤드류스, 바실 시드니
닐 맥칼럼, 조지 로즈
'악마의 제자'는 영국의 유명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희곡을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입니다. 버나드 쇼는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이며 '마이 페어 레이디'의 원작으로 유명한 '피그말리온' '성녀 조앤' 등의 작품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유명 작가의 작품을 각색했고, 버트 랭커스터, 커크 더글러스, 로렌스 올리비에 라는 불세출의 배우 세 명이 함께 공연합니다. 감독은 '007 골드핑거' '007 죽느냐 사느냐'의 가이 해밀턴, 이 정도 목록이라면 굉장히 유명하고 인기있는 영화여야 할 것 같은데 어찌된 일인지 이 작품은 요즘 거의 '듣보잡 고전'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1961년 국내 개봉된 영화인데도 어떤 영문인지 TV방영조차 한 번도 안했고, 출시도 안되었으니 아는 사람 자체가 없는 영화가 된 것이죠. 이 영화에 출연한 주요 3명의 스타들의 작품들을 상당히 많이 접할 수 있었다는 걸 감안하면 참 특이한 일입니다. 이렇게 유명 스타들이 대거 등장한 작품임에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드물게 있습니다.
1777년이 배경입니다. 그 시기는 미국 독립전쟁의 역사가 벌어지던 시기죠. 미국은 1776년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조지 워싱턴을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했습니다. 그리고 거의 25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세계 최고의 강대국이지요. 역사가 짧은 나라인데 전 세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영국에게서 독립한 것이 그러한 계기가 되었고, 그런 미국의 초기 개척사는 여러 서부영화들을 통해서 소개가 되었지만 독립전쟁 당시의 18세기 후반을 다룬 작품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악마의 제자'는 그런 역사적 상황이 배경이지만 의외로 코믹함과 로맨스에 비중을 더 두고 있습니다.
1777년 미국 뉴 잉글랜드 지역, 영국장군 존 버고인(로렌스 올리비에)에 의해서 점령된 그곳, 더전 이라는 인물이 반역혐의로 교수형을 당하고 목사인 앤더슨(버트 랭커스터)은 시체라도 가져오려고 하지만 본보기로 매달아 두겠다는 영군군의 지침으로 그냥 돌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날 밤 더전의 시체가 탈취되는데 범인은 더전의 장남 리처드(커크 더글러스)로 아버지의 시신을 가져간 것이었습니다. 결국 장례가 치루어지고 뜻밖에도 상속자로 지정된 건 집을 나가 떠돌다 돌아온 리처드였습니다. 내놓은 자식 취급을 받으며 마을 사람들에게도 문제아로 취급되는 리처드, 그는 스스로 악마의 제자라고 자처하며 자유분방하게 사는 인물이었습니다. 리처드가 돌아오자 그의 어머니 마저도 따로 살겠다고 집을 나가버립니다. 이후 영국군은 앤더슨 목사를 반역죄로 체포하라고 지령을 내리고 그의 집을 기습합니다. 마침 앤더슨은 위독해진 리처드의 어머니를 돌보러 떠나 있었고, 앤더슨의 아내 주디스(자넷 스코트)와 식사를 하던 리처드는 병사들에게 체포됩니다. 리처드는 주디스와 과거 사랑하는 사이였고, 주디스를 위하여 스스로 앤더슨 행세를 하며 순순히 체포됩니다. 주디스는 앤더스에게 그 사실을 애기하고 그 말을 들은 앤더슨은 어디론가 떠나 버립니다. 남편이 도망친 것으로 생각한 주디스는 리처드를 면회가고, 그녀의 입회 아래 재판이 열리고 예상대로 교수형이 선고됩니다.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리처드에게 주디스는 그를 사랑한다고 애절하게 고백하는데....
미국 독립전쟁 당시의 영국과 미국간의 치열한 대치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두 남자와 한 여자와의 삼각관계를 은근히 다루고 있습니다. 한 명은 저명하고 존경받는 목사, 한 명은 문제아로 낙인찍힌 방랑자, 목사의 아내와 그 방랑자는 과거에 연인이었던 것이 암시되고, 결혼후에도 은근 과거의 사랑을 잊지 못하는 듯이 전개가 됩니다. 목사와 방랑아를 연기한 버트 랭커스터와 커크 더글러스는 연적이자 동지같은 관계로 설정됩니다. 둘 다 비중이 높지만 영화의 제목과 연계되어 인간의 진짜 모습과 본질에 대해서 주도하는 캐릭터는 커크 더글러스가 연기한 리처드라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버트 랭커스터에게도 후반부에 큰 비중이 주어집니다.
미국배우인 버트 랭커스터와 커크 더글러스는 식민지의 미국저항군 포지션이라면 영국배우 로렌스 올리비에는 실존했던 미국 독립전쟁 당시의 영국장군 존 버고인을 연기합니다. 버고인은 저항하는 미국인에 대해서 법대로 처벌하는 것은 원리원칙적 인물이지만 의외의 인간적인 관대함과 신사적인 면모를 갖춘 캐릭터입니다. 이들 세 남자 외에 비중이 높은 인물이 앤더슨의 아내로 등장한 주디스 역의 자넷 스코트 입니다. 목사와 결혼해서 정숙하고 도덕적으로 살고 있지만 홀연히 돌아온 옛 사랑 리처드를 잊지 못하는 여인입니다.
'악마의 제자'라고 자처하면서 문제 많은 인물로 취급된 남자가 사랑하는 여인의 남편을 구하기 위해서 스스로 죄를 뒤집어쓰는 내용이 가장 핵심 장면인데 이러한 비정한 내용을 오히려 가볍고 위트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커크 더글러스의 능청많은 연기가 일품입니다.
버트 랭커스터와 커크 더글러스는 1950-60년대를 풍미한 할리우드의 대스타입니다. 특히 'O.K 목장의 결투'에서 두 사람은 함께 공연하면서 가장 근사한 와이어트 어프와 가장 실감나는 닥 할러데이를 연기하며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는데 커크 더글러스가 연기한 닥 할러데이는 향후 다른 영화에서 동일 캐릭터가 등장할 때 가장 표본이 되는 상징적 연기로 깊은 각인을 시켰습니다. 절친이기도 한 두 사람은 '5월의 7일간' 같은 정치영화 수작을 남기기도 하였고 몇 편의 영화에서 함께 공연하였으며 나이가 들어서 '터프 가이' 라는 영화에서 재회하기도 했습니다. 믿고 볼 수 있는 두 배우의 공연에 영국의 명우 로렌스 올리비에까지 등장했는데 오래도록 잊혀지고 묵힌 영화가 되었지요.
'악마의 제자'는 주요 3인의 배우가 남긴 여러 걸작들과 비교할 때 그만한 완성도까지는 아니지만 역시 무난한 재미를 주는 볼만한 작품입니다. 괜히 이름값을 하는 배우들이 아니듯, 생각보다 대작은 아니었지만 아기자기한 재미와 유쾌함을 준 작품입니다. 커크 더글러스의 빈틈없는 능청스러운 연기, 후반부에 보여준 버트 랭커스터의 굉장한 전투력, 그리고 안좋은 상황을 태연하고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로렌스 올리비에의 상남자 기질 등 세 배우는 각자 자기 역할을 훌륭히 해냅니다. 1961년 개봉된 이래 너무 오래 묻혀있기는 참 아까운 영화입니다.
평점 : ★★★ (4개 만점)
ps1 : "마을을 점령할 수는 있어도 한 국가 전체를 차지할 수는 없소' 라고 말하는 버트 랭커스터의 대사가 인상적입니다. 임진왜란, 일제 강점기, 6.25 .전쟁 등 저항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입장에서 참 와닿는 대사지요.
ps2 : 가짜 앤더슨으로 잡혀왔음에도 재판 과정에서 통쾌하게 돌직구를 날려서 영국 군인들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커크 더글러스의 유쾌한 입담이 볼만합니다.
ps3 : 목사부인으로 등장하여 삼간관계의 주인공이 되는 주디스 역의 자넷 스코트는 그리 유명배우는 아니지만 과거 '공포의 고가' 라는 코믹 호러물에서 어여쁜 악녀로 등장한 기억이 있습니다.
ps4 : 커크 더글러스는 버트 랭커스터와 공연할 때 더더욱 연기의 힘을 받는 느낌입니다. 'O.K 목장의 결투'에서도 그랬고 정치영화 걸작 '5월의 7일간' 에서도 그랬고 '악마의 제자' 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캐릭터입니다.
[출처] 악마의 제자 (The Devil's Disciple, 59년) 버나드 쇼 원작, 상남자 셋의 공연|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