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에 대하여'라는 곡을 아시나요?
아마 최백호라는 가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있더라도 저 노래를 들어보면
"아! 어디선가 들어본 노래"라고 답할 것입니다.
그만큼 오래된 추억의 노래이며, 처음 들었을 때 상당히 특이하면서 발표 당시
시절에 맞지 않는 트렌디한 노래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흔적조차 사라져버린 부산진역을 출발해 포항까지 145.8km를 빼어난 바닷가 절경을 보며
두 시간에 걸쳐 달리는 동해 남부선. 1930년 개통당시의 출발역이었던 부산진역을 대신해
지금은 서면 로타리 인근 부전역에서 출발합니다. 이 존재감 없는 기차 노선은 훗날 이 땅의 중년 세대를
위로하고 울리는 대중가요의 결정적인 모티브(motive)가 됩니다.
검은 교복, 얼룩무늬 교련복에 양은 도시락을 담은 김치 국물이 밴 가방을 옆에 끼고 통학하던 시절에
'낭만에 대하여' 노랫말이 이 기차간에서 탄생합니다.
최백호는 지금은 부산광역시에 편입된 동래군 일광면에서 성장기를 보냈습니다.
부친은 29세에 부산에서 2대 국회의원을 지낸 최원봉님. 최백호가 태어난 그 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는 일광초등학교 교사로서 최백호를 홀로 키웠습니다.
일광역에서 동래를 거쳐 부산서면을 느릿느릿 오가던 동해남부선 통학 완행열차.
최백호가 청소년기에 짝사랑한 첫사랑 그 단발머리 소녀 박경희를 만나는 설렘으로 기차에 올랐던 역광장은
이젠 주차장으로 변했습니다. 이젠 십대의 수줍음과 설렘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서 나처럼 늙어갈까/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 대목입니다.
그 후, 결핵으로 군대에서 조차 쫒겨난 20대 초반의 대책 없는 신세의 청년 최백호는 유일한 버팀목였던
어머니 마저 돌아가시고 "내마음 갈 곳을 잃었던" 시절, 밥만 준다면 뭐든 다 했습니다.
서면 동보극장 간판 그리는 일도 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그리던 솜씨가 지금 꽤 잘나가는 화가가 된 계기가 됩니다.
가진것 없어 굶주릴 당시 청춘을 저주하며 자주 들락날락거리던 동래시장 입구 거리.
"궂은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던 농담사이로/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던" 바로 그 거리입니다.
그때 여종업원에게 LP 재킷을 달래서 들어 보았던 연주곡 "바바~밤 ~ 바바~밤~" 이렇게 시작하는 곡을
한 스무번 이상 들었던 기억을 끄집어 내어 노래를 만듭니다.
부산항 제3부두 선착장, 지금은 국제선 선착장이 된 이곳,
그 시절 한 일본인 친구를 배로 떠나보낸 사연이 노랫말로 됩니다.
"~그야말로 연락선 선창가에서/ 돌아 올 사람은 없을지라도/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라"는
아련한 그리움의 대상이 됩니다.
'낭만에 대하여'는 이렇게 "왠지 한곳이 비어 있는" 중년들의 가슴을 후벼파는 노래입니다.
듣는 이에게 "다시 못 올것에 대하여" 어서 느껴보라고 속삭입니다.
'지나간 시절을 조용히 생각해보니 그것이 첫사랑이었다'는 그런 말들과 고스란히 일치 합니다.
아무도 기억않던 숨은 이야기를 가만히 생각하게 하는 노래,
뒤돌아보면 모두 그립고 아쉬운 시간들.
돌아가고픈 그시절들에 대해 추억해 보라고 속삭입니다.
흘러 가버린 세월, 낭만은 아득하고 아련히 긴긴 세월 속에서 야위어만 갑니다.
낭만에 대하여
최백호 사,곡,노래
궂은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 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리 들어보렴
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사이로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잊겠냐마는
왠지 한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밤늦은 항구에서
그야말로 연락선 선창가에서
돌아올 사람은 없을지라도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이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최백호. 그는 부산 기장군에서 1남 2녀중 막내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 최원봉은 독립운동가이자 국회의원을 지냈고,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 최백호는 그의 아버지 최원봉의 스승이었던 동양철학자이자 예비역 육군 중령 김정설 선생이
지어준 이름입니다. 실제로 그는 호랑이 띠로 태어나기도 했으며 호 또한 산남으로,
이름으로만 따진다면 찰떡궁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최백호는 가수가 아닌 마라톤 선수를 꿈꿔왔습니다.
하지만 당시 운동선수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던 시절이었고,
훈련도 중요하지만 휴식도 중요한 지금과는 달리 오로지 쉬지 않고 한계에 몰아붙이는
운동방식으로 인해 몸이 혹사되면서 선수생활을 접게 됩니다.
이후 최백호는 육군 사병으로 군 복무를 하게 되지만,
갑작스러운 결핵을 앓게 되면서 의가사 제대를 하고 맙니다.
또한 어머님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후 가정환경이 어려워져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했고,
당시 음악살롱 무대를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나가게 됩니다.
하지만 이때 가수 하수영과 인연을 맺게 되면서 서울로 함께 상경을 하게 되었고,
1976년 자신의 데뷔곡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를 발표하게 됩니다.
당시 최백호는 마라톤 선수 시절의 영향으로 탄탄한 몸매를 자랑했고,
목소리 또한 힘이 있어, 데뷔하자마자 대중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에 데뷔 앨범 3개월 만에 6천 장의 판매고를 올리게 되면서 많은 팬들이 생겼고,
이후 발표한 다음 앨범에서는 독특한 창법으로 다시 한번 히트를 치며 큰 인기를 얻게 됩니다.
데뷔와 동시에 큰 인기를 얻어 전성기를 누리던 그는 1980년에 국민배우 김자옥과 결혼합니다.
이후 꾸준한 인기를 누리던 그는 김자옥과 이혼하게 되면서 많은 시련을 겪게 되었고,
이에 차츰 대중들의 기억에서도 사라지게 되는데, 최백호는 다시 가수로서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
작곡에 전념하게 되지만 그것 마저 실패하고 1989년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됩니다.
하지만 다시 1990년에 귀국하여 음악활동을 재개하였고, 1996년 '낭만에 대하여'노래를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에 OST로 삽입되면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다시 한번 대중들의 인기와 사랑을 받게 됩니다. 요즘도 각종 방송에서 간간히 모습을 보이며
가수로서 행복한 삶을 지내고 있으며, 최근 꾸준한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낭만이 뭘까'라는 질문에 최백호는 '삶 자체가 낭만'이라 합니다.
가사를 다 써놓고 제목을 못 붙이고 있다가 마지막 가사가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라고 끝을 맺기가 그래서 '낭만에 대하여'라고 덧붙이다가
만들어진 이 곡의 제목이 신의 한수가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첫댓글 오늘같이 비오는날 들으니 더 감성있게 즐감 합니다^^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