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쇼핑 시대에 살고 있다.
집에 앉아서 인터넷이나 방송을 보면서 사고 싶은 물건을 신청하고 받는, 도깨비 시대를 살고 있다.
내 근검절약의 일순위는 충동구매 배제(排除)였다. 물건을 살 때 심사숙고해 꼭 필요한 것만 사는 것은 기본이고, 사고 싶은 욕구가 생길 때면, 굳은 의지로 물리치면서 '그래 잘했어, 백 번 잘했어, 내 생각이 옳았어.' 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곤 했다.
며칠 전 우연히 티브이 채널을 돌리다 꿀꺽 침이 넘어가는 장면을 만났다. 화면 가득히 기름기 자르르 흐르는 갈치를 단란한 가족이 모여 맛있게 먹고 있었다. 물론 분장한 연기자들이 보여주는 것이지만 계속 클로즈업되는 화면이 환상적이었다. 한창 시장기가 도는 저녁 무렵에 두툼한 갈치가 노릇노릇 구워지고, 맛있다고 약을 올리는 쇼 호스트는 너무나 싼 가격이라며 이 번 기회를 놓치면 후회막급이라고 계속 부추겼다. 거기다 덤으로 주는 것이 짭짤했다. 고등어살, 참조기, 한라봉까지 유혹을 뿌리치기엔 너무 매력적이었다.
홈쇼핑을 처음 시청하는 자리에서 충동구매가 이루어지고 말았다. 길이 80센티미터 갈치 열 마리에 덤으로 여러 가지, 더구나 다 손질이 되어 있어서 포장만 벗기고 바로 조리할 수 있는 편리함까지, 난 속으로 빠르게 계산을 해보았다. 아무리 싸게 산다고 해도 저 가격에 도저히 저만한 물건을 살 수 없겠다는 결과에 도달하고는 전화기 버턴을 누르기 시작했다. 마감시간이 다 되었다는 협박에 전화기 누르는 손가락이 떨리기까지 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정말 화면에 비친 것만큼 좋은 물건이 배달될까 하는 의구심, 한동안은 반찬 걱정 안 해도 되겠구나 하는 안도감, 가격 면에서 싸게 샀다는 만족감, 나도 이제 새로운 형태의 쇼핑문화를 누린다는 세련성과 흐뭇함까지, 복잡하고도 묘한 기분이었다.
며칠 후 물건이 도착했다. 선물상자를 여는 설렘으로 개봉한 결과는 실망감이었다. 전체 무게가 미달이었고 크기도 작아 보였고 한라봉을 제외한 모두는 냉동상태였다. 그러나 어쩌랴! 냉동실에다 차곡차곡 넣고 하나만 해동해서 구웠다. 모니터에 비치던 기름기 자르르하던 갈치는 어디 가고 푸석푸석하게 윤기 없는 갈치가 날 비웃고 있었다.
나는 내 의지를 항상 자랑했다. 홈쇼핑 화면을 들여다보면서 하릴없이 충동구매나 일삼는 철딱서니 없는 일부 주부들을 비난했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과는 격이 다르다고.
홈쇼핑도 중독이 된다고 한다. 홈쇼핑은 돌 같은 나도 무너뜨렸다. 어제는 샴푸 세트가 배송되었다. 또 내가 홈쇼핑으로 주문한 것이다. 은갈치를 받아보고 이상 끝이라고 결심한 지 불과 사흘 만이다.
머리카락 숱이 적은데다 가늘어서 각별히 신경 쓰던 터에 친구가 입소문으로 0000샴푸가 좋다고 해서, 직접 써보니 정말 좋다고 권해서 쓰고 있는 바로 그 비싸기 짝이 없는 샴푸를, 특별 세일 기간이라 몇 개나 더 덤으로 주겠다며 유혹하고 있었다. 더욱이 왕년에 한 미녀스타가 쇼 호스트로 나와 이런 기회를 마련한 회사에 감사해야 한다며 자기 몫은 물론 친척들에게도 선물하려고 신청했노라고 나긋나긋 예쁜 미소를 지으며 구매를 부추기는데, 또 넘어가고 말았다.
내가 좋다고 하니까 남편과 아들도 그 샴푸를 쓰고 있다. 온 가족이 매일 쓰게 되면 저렇게 쌀 때 사둬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만 신청을 해버렸다. 그전에 아들이 '홈쇼핑용 상품은 따로 만든답니다'라며 귀띔해 주었는데도 믿지 않았다.
어제저녁에 상품이 왔는데 열어보니 과연 아들 말이 맞았다. 우리가 쓰던 건 명품0000샴푸인데 이 건 0000샴푸 골드, 같은 회사 제품이지만 상품의 질과 가격과 명칭이 달랐다. 우리가 쓰지 않는 린스가 두 병이나 끼어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찜찜하고 불편했다. 아들에게는 뭐라고 해야 하나?
퇴근한 아들이 '제가 사지 말라고 했잖아요.'라며 핀잔을 준다. '이왕 산 거 그냥 쓰지.' 남편은 그래도 내 편이 되어준다. '반송하면 되지, 배송료와 반송료 물어내라고 하겠지? 까짓 거 물어내지 뭐.' 복잡한 머릿속을 반송이라는 단순함으로 바꿔버렸다.
이튿날 아침, 전화로 이차 저차 해서 반송할 생각이라고 했더니, 예상외로 친절하게 반송 가능하고 반송료는 없다는 이야기에 기분이 말끔하게 개고 환해졌다.
'유명 홈쇼핑이라 역시 다르군, 그래야 다음에 또 안심하고 주문하지 않겠어?'
아니 내가 지금 뭐라고 하고 있는 거야? 또 주문하겠다고???
2007.5.17
첫댓글

옥덕아 홈 쇼핑 보고 있으면 안 넘어가는 사람 없다.




러워 좋은지 나쁜지도



지금 몇개 안남고 무슨 사이즈는 품절됬고 이제 마감 시간이
10분 밖에 안 남았다고 할 때면 강심장도 쫓기듯 팔딱 팔딱 뛴다.
너처럼 나도 몇번은 넘어갔다
거금 주고 약을 샀을 땐 너무 바보스럽고
모르고 숨겨놓고 먹느라고 지루해서 죽을뻔도 했어...
많이 당하고 나니 이제는 사구싶은 마음은 싹 없어졌다 ...
대박나는 상품은 몇 천억원이나 판다고할 만큼 많이들 사나봅니다.
저는 아예 홈쇼핑 화면을 안 봅니다.
어쩌다 맞춰진 화면에 충동구매를 했는데 그 후 두 번 다시 이런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ㅎㅎㅎ..
선배님 글이 너무 재밌어요.
저희도 방한화 같은걸 사봤습니다.
상품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그냥 따뜻하게 신었지요.
먹거리 품종은 대체로 실망.
보여주는 사이즈보다 작았어요.
상술이 너무나 대단해 안 사곤 못 베기게 한다지요.
편하고 저럼해 많이들 이용한다는데 두 번 실망하고는 아예 그런 영상은 안 봅니다.
옥덕아우님 홈쇼핑은 실패했어도 글이 점점 재미있게 부드럽게 느껴져 역씨 노력의 대가로 보입니다.
점점 길어지는 문장이 쉬 읽게 되는 글 솜씹니다.
월요일마다 하는 수필공부 덕분입니다.
이 지났습니다.
이제 두
옛날에 써놓았던 글을 가지고 다시 수정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외출 자제 하고 "방콕" 하고 있으니 인터넷 글읽는것이 얼마나 재미 있는지,옥덕 아우는 이제 당하네.
홈쇼핑 초창기에 신나게 해봤지 

나만 한것이 아니라 딸이 산 브래지어 레이스 나풀나풀 
린것 주문해서 온 사이즈가 하나도 맞지않아 겁없이 버리는 아이들것을 비쩍 마른 내가 주워서 입지도 못하고 버리지도 못하고..


웃고만다.그다음 부터는 아무리 꼬셔도 안사고 홈쇼핑을 보지도 않는다.
난
저도 지금 이야기가 아니고 8년 전에 겪은 이야깁니다.
두 번 실패하고는 홈쇼핑 화면도 안 봅니다.
전 자이글(삼겹살 구이용) 하고 뽕고대기 하고 사서 잘쓰는데요...*^^*
선택을 잘 하면 가정경제에 도움이 되죠.
아~~오래전 얘기군요..저는 식품은 잘안사고 요즈음 요구르트베이 사서 너무좋아서 여러개사서 나눠주느라 정신없었고..ㅋㅋ 전기꽂아 걸래로 마루 닦는거 이번에 미국올때 언니사다 드렀어요..미국은 카펫이 많으니 그런상품은 개발이 안되나봐요!.
밧데리 때문에 걱정이었는데 마침 충전해서 쓰는게 나와서 사갔더니 디기 편하다고 좋아하셨어요~~
성공적인 구매였군요.
요구르트베이가 뭐죠
여동생이 랜틸콩을 인터넷으로 구매하면 훨씬 싸다며 2kg을 주더군요.
나도 구매해서 계속 먹어보려고요.
@36회 김옥덕 랜틸콩은 저는 큰며느리가 사서 나눠주었고 요구르트베이는 요구르트 만드는건데 물끓여서 붓고 우유와 불가리스한통을 넣으면 큰통으로 한통이 나오는거예요,,
요구르트도 맛있고..먹으면 아침으로 화장실에서 황금을 만나거든요..
먹는것보다 보내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잖아요..우리애들이 엄마는 요구르트전도사라고 놀린답니다..
@38회 유명수 요구르트베이 좋은 거네요.
나는 요구르트 큰통 사서 먹는데...
나도 사서 직접 만들어 먹어야겠어요.
@36회 김옥덕 그렇게 하세요^플레인요구르트 사서 만들면 당뇨에도 좋다던데요..
만드는 방법도 간단해요..
이것은 홈쇼핑으로 사야 만드는 통을 두개주어서 한통먹을동안 다른통에 만들수 있어 편리해요.,
@38회 유명수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