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공원 자작나무 사이로/ 이승철
따지고 보면 모든 게 한 순간의 장난일 뿐인데 그걸 영원이라고 한때 집착하고 사로잡혔다. 허나 그대 등뼈가 오늘따라 저렇듯 곧추선 것은 지난 구월 초, 가쁜 내 숨결을 기억하기 때문인가. 마누라님과 십년동안 별거의 끝자락이었다. 정 그렇다면, 당신도 한번 잘 살아봐야지 하며 마포 아현동 서부지원에서 합의이혼장에 서명한 후 확인기일 받아 제각기 허청허청 돌아서던 날 기막힌 건 그녀와 함께한 모든 추억들이 일시에 물거품처럼 실종돼 머릿속이 하얗다는 것! 모든 게 한 순간의 장난 같아 그게 참, 부끄러웠다. 내 아킬레스건이 그동안 너무 무겁다고 하소연했나. 일산 호수공원 자작나무 사이로 오늘도 홀로 걸었다. 얼빠진 장닭처럼 이리저리 제멋대로 걸어갔다. 당찬 바람은 호수 속으로 풍덩, 혼숙을 감행했다. 노모 잃은 지 3년 만에 아내마저 떠나갔으니 돌싱남은 이제 누구와 함께 저 청산을 남아가랴. 걱정마라, 딱따구리 한 놈처럼 온밤을 쪼아보자. 허물 벗은 자작나무 흰 뼈처럼 나 또한 살아보자.
- 시집『그 남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도서출판 b, 2016) ................................................................... 한 결혼정보회사에서 이혼남녀를 상대로 한 흥미로운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질문은 ‘전 배우자와 결혼 생활을 할 때와 이혼 후 생활상의 심리적 변화’였다. 이 질문에 이혼남의 43.4%가 ‘이혼하니 불편한 게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답한 반면, 이혼녀 37.7%는 ‘혼자 사는 삶이 훨씬 더 쾌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응답했다. 그 다음으로 이혼남은 20.8%가 ‘비관적으로 변했다’고 했고, 이혼녀는 22.6%가 ‘운명에 기대는 습성이 생겼다’고 했다. 이혼남의 경우 ‘그동안 못했던 것을 실컷 한다’고 긍정적인 답변을 한 사람은 17.4%에 그친 반면, ‘이혼 후 불편한 게 더 많다’며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낸 이혼녀는 11%에 불과했다. 결국 이혼은 남자에게는 손해, 여자에게만 남는 장사란 말인가. 헤어지고나면 누가 더 아플까란 물음도 이 응답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실제로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실연을 당했을 때 남자가 여자보다 불안, 고독, 우울함을 느끼는 경향이 더욱 심하다고 한다. 외국의 경우이긴 하지만 남자가 실연 후 자살할 확률이 여자보다 3배나 높다는 통계도 있다. 이래저래 남자가 더 손해를 보고 상처를 받는다는 결론이다. 대체로 남자의 경우 헤어진 뒤 당장은 해방감에 해피하다가도 점점 마음의 고통이 커지는데 반해 여자는 헤어지기까지가 힘들뿐이지 이별 직후 잠시 괴로워하다가 이내 마음의 평온을 찾는다고 한다. 그러나 설문 결과야 어떻든 이혼은 각자 조금씩 사정이 다른 개별사항이고, 이혼하면서 겪었을 마음고생은 당사자만이 안다. 요즘은 갈라서는 게 흉도 아닌 세상이라 주변에서 묻고 따지거나 가타부타할 일도 아니다. 이혼 후에 삶이 어떻게 변모했는지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다. ‘따지고 보면 모든 게 한 순간의 장난일 뿐인데 그걸 영원이라고 한때 집착하고 사로잡혔다’ 이승철 시인은 이혼 후에야 비로소 삶이 대승적으로 되어갔다. ‘정 그렇다면, 당신도 한번 잘 살아봐야지’ 오래 참지 못하고 덮어주지 못해 헤어질지라도 서로에게 ‘무례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으며, 원한을 품지 않아야’ 한다. 그게 말이 쉽지 실행에 옮기기란 쉽지 않다. 시인은 ‘호수공원 자작나무 사이로’ 홀로 걸으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노모 잃은 지 3년 만에 아내마저 떠나갔으니’ 의지처가 한꺼번에 사라진 처지라 그 심정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른다. 하지만 시인은 자신도 악착같이 한번 살아보겠다는 결기를 내비친다. ‘허물 벗은 자작나무 흰 뼈처럼 나 또한 살아보자’ 비록 갈라져 다른 길을 가지만, 상대의 행복을 빌어주는 동시에 자신도 영혼의 뼈를 발라내듯 삶을 깎아내며 살겠다는 결심을 다진다. 그렇듯 나훈아도 기왕 이혼으로 결판난 마당에 더 이상 구질구질하게 다툼을 이어갈 게 아니라 앗살하게 정리하고 다시 팬 곁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권순진 The Trees Had only one Leaf |
출처: 詩하늘 통신 원문보기 글쓴이: 제4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