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그 인정스런 모습으로 다가와 제 손을 잡아주실 것만 같은데 어이 부족한 제가 조사를 드리게 되었나요! 그저 꿈이기를 바라는마음입니다. 장로님은 일제시대에 때어나 인생의 백과사전 같은 삶을사셨습니다.
광덕원마을 안동권씨 집성촌 마을 가운데 위치한 집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 시절 나라를 잃고 우국지사들이 용문에 모여 세운 금곡교회를 다니시며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우리 교회를 세우신 권수도 장로님의 둘째 아드님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권수도장로님의 모습과 걸음걸이와 성품까지 빼어닮은 권태각장로님! 우계동 집 마당 텃밭에 아담한 기도실을 짓고 저녁예배와 구역예배와 새벽기도를 드리며 우계동 사람들이 믿음생활을 잘 하도록 하셨지요. 그때 우계동 사람들과 함께 찬송하고 기도하고 지금도 태원이고모 영자누나 금숙이 누나들의 울부짖는 기도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우계동 마을에 귀한 목사님이 세 분, 장로 권사가 여러분 세워진 일도 그3기도실의 영향인 것으로 압니다. 그 후 미국으로 가신 형과 분가를하면서 예천의 모 인사집에서 일하신 것으로 압니다. 맡은 일은 내일 같이 하신 분라고 들었습니다. 그후 운수업과 건축 일을 하면서 집을 마련하고 가세가 일어나는가 했는데 그만 사기를 당하여 빈 손이 되었는데도 원망 한마디 않으셨습니다. 1980년 지금의 우람한 우리교회를 새로 지을 때 건축위원장을 맡아 밤낮없이 살피시던 그 충성된 모습은 맡은 자의 본이 되지만 저희들은 흉내도 내지 못합니다. 최근에는 우계안둥권씨추밀공파 회장으로 7년간 봉사하면서 문줌의 옛 영과을 찾고 키우자고 하면서 행사 때마다 물질과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늘 남을 섬기고 봉사하고 베프신 일을 예천사회의 미담으로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입니다. 어렵게 사시면서도 조금의 여유가 있으면 베플고 대접하시는 삶의 모습은 우리를 깨우칩니다. 억울하고 분한 일을 당해도 한마디 윈망도 불평도 아니한 삶은 믿음의 본이요, 성인과 같은 삶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태각이 아제는 예수다. 살아있는 예수다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그 모습은 다시 만날 수 없고 믿음으로 그리던 하늘나라로 가시는 군요.
장로님의 성품과 모습까지 닮은 조은숙 권사님과 사랑과 믿음으로 으젓하게 자란 혜진이와 은진이 영호 영욱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 손녀들은 어이두고 가십니까 조상의 믿음을 이어 받아ㆍ 믿음의 명문 가정을 이루어 갈 것입니다. 부디 평안히 가십시오. 우리 주님 그 크신 사랑의 품에서 다시 만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