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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텐차
원래'cadenza di brabura
화려한 마침'이라는 뜻이지만 줄여쓴다. 18세기 오페라가수가 아리아를
끝내기전 화려한 즉흥연주를 한데서 비롯되었는데 기악 협주곡 독주자가
모방한 것이다.악곡의 끝에 쓰이는 특이한 화성구조 마침꼴 앞에삽입되어
화려한 기교를 요하는 자유로운 무반주 부분이다
카바티나
18∼19세기의 오페라·오라토리오에서
볼 수 있는 기악반주가 따른 서정적인 독창곡. 아리아보다 양식이 단순하고
프레이즈나 가사의 반복이 없다. 또 기교적인 화려한 콜로라투라풍의
꾸밈도 제한되어 있다. 오라토리오에서는 하이든의 《사계(四季)》 중의
2곡(제15·34), 오페라에서는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중의 3곡(제3·10·23)이
유명하다. 이 밖에 17세기의 서정적인 기악곡·기악악장에도 카바티나라는
명칭이 쓰인 것이 있다. 베토벤의 현악4중주곡(작품번호 130)이 좋은
예이다.
카발레타
아리아중 짧은 선율. 카바티나의
축소형에서 비롯된말
카사치오네
야외에서 저녁때 연주되는
디베르티멘토의 일종
18세기 후반 갤런트 스타일 시대 유행하였으나
사라져 버렸다.
카스트라토
남성 거세 가수. 라틴어의
동사 castrare(거세하다)에서 나온 말이며 변성기 전의 소년을 거세하면
성인이 된 후에도 소프라노나 알토의 성역을 지닌다. 음질적으로도 소년이나
성인 여성에 비해 씩씩하고 순수하며 또 음역도 훨씬 넓다. 그래서 16세기
이후 가톨릭성당에서 많이 쓰였으며 17∼18세기의 이탈리아오페라에서도
많이 쓰였다. 그 후 성당에서는 이와 같은 비인간적인 행위를 금지시켰으며
오페라에서도 19세기 이후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오늘날의
카운터테너는 카스트라토와는 다르며 가성(팔세토)을 구사하는 남성가수를
가리킨다.
카프리치오
‘변덕스러움’ ‘일시적인
기분’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음악용어로는 다음과 같은 악곡을 가리킨다.
① 17∼18세기에 주로 건반악기를 위해 작곡된 푸가형식의 작품. 일반적으로
재치에 넘친 주제를 지녔으며 표제가 붙은 것도 적지 않다. 프레스코발디,
프로베르거에게 많은 예가 있으며 J.S.바흐도 2곡의 카프리치오를 남기고
있다. ② 19세기에 쓰인 자유로운 기지에 넘친 소품. 이러한 뜻에서의
카프리치오는 흔히 기상곡 또는 광상곡으로 번역되고 있다. 베버, 멘델스존,
브람스 등에게 피아노를 위한 뛰어난 작품이 있다. 또 관현악곡으로는
차이코프스키의 《이탈리아기상곡》(작품번호 45, 1880),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스페인기상곡》(작품번호 34, 1887) 등이 유명하다.
칸초네
‘노래’ 또는 ‘가요’를
의미하며 일반적으로 오페라의 아리아와 같은 순클라식곡은 제외하고
널리 대중이 애창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포퓰러송. 전통적인 칸초네의
특징은 멜로디가 밝고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으며 내용도 단순하고
솔직하게 표현한 사랑의 노래가 많은 데 있다. 곡의 구성도 거의 2마디·4마디·8마디식의
배(倍)로 멜로디가 진행된다. 그리고 곡의 처음에는 스트로파라는 이야기부분이
있고, 리토르넬로라는 되풀이하는 부분이 있어 곡을 북돋아간다. 킨초네에는
예로부터 각지에 전해 내려온 향토색 짙은 민요나 일류 작곡가에 의한
격조 높은 가곡, 또 재즈의 영향을 받은 로크조(調)의 곡 등 많은 종류가
있다. 그 중에서도 나폴리민요로 알려져 있는 나폴리의 칸초네(칸초네
나폴레타나)는 독자적인 장르를 형성하고 있다. 변천이 심한 나폴리의
역사와 항구에서 이루어지는 동서문화의 교류를 반영하여 나폴레타나에는
동양적인 곡조와 애수를 띤 것들이 많고, 가사도 이탈리아어가 아니라
나폴리어로 되어 있다. 또한 18세기에 생겨난 밸칸토창법이 큰 영향을
끼쳤다. 나폴레타나를 육성한 것은 유명한 피에디그로타의 노래축제이다.
그것은 이 지방의 어부들이 제례(祭禮) 때에 노래를 바친 것이 그 시초인데,
18세기 초에 나폴리왕에 의해서 나폴리 전시의 음악제가 되어 《오 솔레
미오》 《돌아오라 소렌토로》 등의 많은 명곡이 나왔다. 이 행사는
한때 중단되었다가 1953년부터 나폴리 칸초네페스티발(나폴리가요제)로서
부활되었다. 베네치아와 로마 등지도 칸초네가 발달하고 트렌토 등 알프스산록의
북부 도시에서는 알피니스트들의 코러스가 울려퍼진다. 로마의 칸초네(칸초네
로마나)는 명쾌한 곡조로 널리 애창되었으나 오늘날에는 북서부의 산레모가
그 중심지로 바뀌었다. 1951년에 시작된 산레모가요제는 58년에 최우수곡으로
뽑힌 《볼라레》가 세계적으로 히트함으로써 국제적인 색채를 띠기 시작,
로크나 라틴리듬을 도입한 곡들도 내보내고 있다.
칸초네타
칸초네의 축소형으로 주로
16~17세기에 이탈리아에서 유행했던 가벼운 기분의 작은 가곡. 유절형식(有節形式),
무곡풍(舞曲風)의 것이 많으며 류트반주의 독창이나 간단한 성악·기악의
앙상블로 불리었다. 전형적인 것으로는 O.벡키, C.몬테베르디 등의 작품을
들 수 있으며 근대의 작품으로는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협주곡》
제2악장이 <칸초네타>로 표기되어 있다.
칸타타
17세기 초엽에서 18세기 중엽까지의
바로크시대에 가장 성행했던 성악곡의 형식. 이탈리아어의 cantare(노래하다)에서
파생된 말이다. 보통 독창(아리아와 레치타티보)·중창·합창으로 이루어졌으나,
독창만의 칸타타도 있고 또 처음에 기악의 서곡이 붙어 있는 것도 적지
않다. 그리고 가사의 내용에 따라 세속(실내)칸타타와 교회칸타타로
대별된다. 칸타타는 17세기 초엽 이탈리아에서 생겨나 오페라에서 발달한
벨칸토 양식의 아리아와 서창풍(敍唱風)의 레치타티보를 도입하였다.
이탈리아에서는 주로 왕후·귀족들의 연희용으로 작곡된 독창의 실내
칸타타가 중심을 이루고 카리시미, 체스티, 로시 등을 거쳐 나폴리악파의
대가 알렉산드로 스카를라티에서 절정을 이룬다.
그 정형은 ‘레치타티보-아리아-레치타티보-아리아’라는
4악장 형식으로, 아리아에서는 화려한 콜로라투라의 기교가 구사되었다.
독일에서도 텔레만, 헨델이 이탈리아 형식의 실내 칸타타를 많이 작곡하였다.
프랑스의 칸타타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오페라풍의 양식을 따랐으며 캉프라가
뛰어난 작품을 남기고 있으나 이탈리아나 독일처럼 성하지는 못하였다.
처음에는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아 아리아와 레치라티보가 교체되는 독창
칸타타를 길러낸 독일은 18세기에 들어 그리스도교의 교회음악으로서
독일 특유의 칸타타를 발전시켰다. 그것들은 17세기 이래의 교회합창곡과
오페라풍의 아리아·레치타티보를 융합한 것으로 가사로는 자유로운
종교시에 성서의 구절이나 찬송가(코랄)를 곁들인 것들이 많다. 특히
중요한 것은 찬송가의 가사와 선율을 바탕으로 한 코랄칸타타이다.
이러한
독일의 교회칸타타는 매 일요일의 예배나 특정한 축제일에 교회에서
연주되었던 것으로 그날 낭독되는 성서의 구절이나 목사의 설교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었다. 북스테후데, 크나우, 텔레만 등이 많은 우수한
작품을 남기고 있으나 독일 교회칸타타의 절정을 이룬 것은 약 200곡에
이르는 바흐의 작품들(커피 칸타타)이다. 형식과 내용의 다양성에 있어서 그것들은
바흐음악의 정수라고 부를 만하다. 그의 칸타타의 가장 전형적인 형식은
처음에 기악의 서주를 지닌 규모가 큰 대위법적인 합창곡을 두고 거기에
몇 개의 아리아·레치타티보·중창이 이어지며 단순한 코랄합창이 전곡(全曲)을
맺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칸타타는 바흐 이후에도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브람스, 프로코피예프, 베베른 등에 의해 작곡되었으나 칸타타의
전성기는 바흐와 더불어 막을 내렸다 해도 무방하다.
칸틸레나
'작은 가곡'이라는 뜻
중세에는 모든 가곡을 일컬었고 최근에는 마드리갈의 고음이나 독창파트,작은
칸타타등을 의미한다.
캐릭터스틱 피스
무곡, 행진곡, 전쟁이나 폭풍우의 음화등과 같이 확정된 인상을 주는
악곡을 말하며 대개 짧은 기악곡으로서 시적인표제나 특징을 나타내는
곡명에의해 듣는이의 상상력을 일정궤도로 유도하기 때문에 절대음악과
표제음악의 중간에 위치한다.
캐치
사교적 오락을 위한 다성
노래.3성이나 그 이상의 라운드로서 퍼셀은 50곡 이상 작곡했다.
커피 칸타타, BWV211
당시 정규 콘서트에서 어떤 작품들이 연주되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바흐 자신의 협주곡(특히 하프시코드 협주곡)과 소나타들이 프로그램에 들어있었으리라 여겨질 뿐이다. 그러나 프로그램에는 중심 제재가 있고 비교적 소규모(세 명의 독창자, 플루트, 현악과 콘티누오)로 연주되는 성악곡, 소위 말하는 "커피" 칸타타가 포함되었음을 알고 있다. 이 칸타타는 바흐가 선호하는 라이프치히 작사가 크리스티안 프리드리히 엔리치(필명 슈렌드리안(베이스)은 커피 중독증에 걸린 딸 리셴(소프라노)이 커피를 마시지 못하도록 한다. 하지만 딸은 만일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의 결혼을 허락해준다면 더 이상 커피를 마시지 않겠다고 함으로써 자신의 상황을 유리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야기는 피칸더의 출판된 가사에 덧붙여, 리셴의 결혼 계약서에 남편으로 하여금 자신의 커피 중독을 인정토록 하는 강제 조항이 포함될 것임을 보여주게 된다.
바흐가 이렇게 원래 이야기에 가필한 것은 짐머만과 그의 단골 고객들의 흥취를 돋구기 위한 의도였음이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이로써 작품의 시작부에 등장한 이래 한번도 노래하지 않았던 나레이터(테너)로 하여금 레시타티브를 부르게 하고 다른 두명의 독창자와 어울려 마지막에 적당히 흥겨운 조로 다음의 3중창을 노래하도록 하고 있다. "고양이가 쥐를 가만히 두지 않듯이 젊은 아가씨는 어쩔 수 없이 커피에 빠진 채 지내고 있네" 독창자들에 의한 이 마지막 앙상블은 플루트의 활달한 음형을 통해서 효과를 얻고 있다. 플루트는 리셴의 첫 번째 아리아에서도 효과를 얻고 있다. 플루트는 리셴의 첫 번째 아리아에서도 오블리가토 악기로 연주되고 있는데 여기서는 그녀의 약삭빠른 일면을 묘사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현악기로 반주되는 슈렌드리안의 아리아는 딸 자식의 습성을 싫어하는 그의 성격을 잘 표현해내고 있다.
다른 두 개의 아리아는 아버지와 딸을 갈라놓고 있는 "세대 차이"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즉 슈렌드리안은 묵직한 반음계와 세세한 코드 변화를 지닌 구식 아리아로 "이 고집쟁이 딸 자식아!"라는 강경한 어투의 노래를 부르며 리셴은 신랑 운운하는 아버지의 제안에 대해 당시 유행하던 하프시코드의 "알베르티" 분산화음과 단순한 화성을 바탕으로 가볍고 화려한 프레이즈의 노래를 부르며 응대한다. 이 "커피" 칸타타는 바흐가 쓴 작품 중 가장 오페라에 근접해 있는 곡이다. (비록 대화체 형식의 다른 몇몇 교회 칸타타들도 그 개념상 거의 드라마적이긴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바흐가 정식으로 오페라 장르에 손을 대었더라면 어떤 면에서 강하고 약한지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오락을 위한 다성
노래.3성이나 그 이상의 라운드로서 퍼셀은 50곡 이상 작곡했다.
코다
악곡 끝에 결미로서 덧붙인
부분. ‘꼬리’를 뜻하는 이탈리아어에서 비롯된 말이다. 코다의 규모·내용
및 코다로 들어가는 방법 등은 여러가지이며, 곧 코다에 최종적인 클라이맥스를
두고 템포를 빨리하여 격하게 곡을 끝마치는 경우, 반대로 정적(靜的)인
코다에 의해서 침잠(沈潛) 속에 종결하는 경우 등이 있다. 코다에 쓰이는
소재는 이미 나온 주제나 동기에 의한 것이 많으나 아주 새로운 소재에
의한 것도 있다. 또 코다가 악곡의 명쾌한 종결감 후에 새로이 덧붙여지는
일도 있으며, 어디가 코다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도입법이나 양자의 중간적인
진행법을 취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소규모적인 코다를 코데타(codetta)라고
부르는 일이 있는데, 이것은 악장 전체의 마침에 붙여지는 코다와 구별해서,
이를테면 소나타의 제시부(提示部)처럼 악장 속의 결미부(結尾部)를
가르키는 일이 많다. 이 밖에 발레용어로는 고전발레의 그랑 파 드 되(grand
pas de deux)의 종말부분을 말한다. 이 때는 프리마 발레리나와 그 상대역인
남성 제1무용수가 함께 춤을 춘다.
코데타
작은 종결.
코다가 1곡또는
악장의 종결부를 가리키는것에 비하여 코데타는 일부분의 종결을 형성하는
짧은 패시지이다.
코랄
한국 그리스도교의 개신교교회에서
예배에 사용하는 성가를 일반적으로 일컫는 말. 개신교에서도 이전에는
성가라는 용어를 쓴 일이 있었으나 최근에는 성가라 하면 오로지 가톨릭교회의
용어처럼 되어 있다. 가톨릭에서는 원래 라틴어의 힘누스(hymnus)를
찬송가라 하지 않고 찬가(讚歌)로 번역해 왔다. 그러다가 1963년 제2바티칸공의회가
만들어낸 전례헌장(典禮憲章)의 정신에 따라 한국 등지에서는 기리에·글로리아·상투스·아뉴스
데이를 ‘4개의 찬가’라 하고, 입당송과 그 밖의 전례적인 노래를 ‘전례성가’,
종래 가톨릭교회의 성가, 즉 민중적 종교가(cantus popularis)를 ‘일반성가’라
부르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재는 찬송가라 하면 개신교교회에서 그 신도들이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역사】 찬송가의
기원은 멀리 구약시대로 소급된다. 그리스도교의 모체가 된 유대교에서는
예배 때 구약성서에 있는 150편의 시편으로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로 시작되는 그리스도교회의 찬송은 다음과 같다.
⑴ 초대교회:예수
당시의 찬송은 유대교의 전통을 그대로 답습하였으나 예수 승천 이후의
신약시대에는 시편 이외에
① 대송영(大頌詠:Gloria in Excelsis
Deo:루가 2:14),
② 소송영(小頌詠:Gloria Patri),
③ 삼성창(三聖唱:Sanctus:이사야
6:3, 요한묵시록 4:8),
④ 할렐루야,
⑤ 즈가리야의 찬송(Benedictus
Deus Israel:루가 1:68~79),
⑥ 시므온의 찬송(Nunc Dimitti
s:루가 2:29~32)
⑦ 마리아의 찬송(Magnificat:루가 1:46~55),
⑧ 테 데움(Te Deum
laudamus) 등이 추가되었으며, 바울로 서신에 몇 개의 찬송이 소개되어
있다(에페소 5:14,Ⅰ디모테오 3:16, 6:15∼16, Ⅱ디모테오 2:11∼12).
⑵ 동방교회:로마 통치하에서 그리스어를 쓰며 헬레니즘문화의 영향을
받은 지방(비잔틴·아르메니아·시리아·알렉산드리아 등)에서는 그리스의
힘노스(hymnos:그리스의 신이나 영웅 등에 대한 찬가)가 들어와 많은
찬송가를 만들어 냈다.
⑶ 서방교회(로마교회):제1회 니케아회의(325)
무렵부터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고 라틴어가 세계어로 등장하면서
라틴어에 의한 최초의 찬송가 성 힐라리우스(315?∼367?) 이후 많은
찬송가가 나타났다. 그 후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가 이를 통합, 집대성하여
서방교회 전례성가의 기초가 되는 단선율의 그레고리오성가를 펴냈다.
이것이 온 유럽교회에 보급되었는데 13세기경부터는 이 성가도 복음악적(複音樂的)으로
처리되기 시작하였다.
⑷ 종교개혁 이후:
① 독일에서는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운동에서 발단한 프로테스탄트교회에서 무수한 자국어
찬송가(독일 코랄)를 만들어냈다. 독일 코랄 가사는 전통적인 가톨릭성가(라틴어)를
독일어로 번역한 것과 종교개혁 이전의 종교적 민요 등을 개신교용으로
개작한 것, 그리고 새로이 창작한 것 등이 있었고, 곡조 역시 전래의
가톨릭성가곡과 옛 종교민요 그리고 일반의 세속 곡조도 채용하는 외에
새로 창작도 하였는데 대체로 부르기 쉽고 선율적인 곡이 많았다.
② 프랑스에서 일어난 칼뱅의 종교개혁운동은 루터의 그것보다 더욱
강렬하여 로마교회의 전례나 음악을 철저히 거부하고 교회에서 사용하는
찬송가도 시편을 프랑스어로 부르는 것만 허용하였다. 이것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처음으로 발간되었기 때문에 《제네바 시편가》라 불리며
멜로디는 프랑스 민요나 발라드, 독일 코랄 등에서 채용하였다.
③ 영국에도 시편의 운문화가 퍼져서 《구역 시편가》(16세기 중반),
《신역 시편가》(17세기 후반) 등이 간행되었다. 18세기 초엽, 영국
찬송가의 아버지라 불리는 조합교회의 I.와츠(1674∼1748)가 영국 찬송가의
기초를 세웠다. 이어서 웨슬리형제와 뉴턴, 그리고 비국교회에 의하여
주관적·신앙체험적인 영국 특유의 찬송가가 18세기에 탄생되었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다시 국교회파의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문학적으로 우수한
찬송가가 많이 나타났다.
④ 미국 교회에서는 17세기 이후 영국의
《구역 시편가》에 이어 《신역 시편가》를 사용하였으나 독립전쟁을
치른 뒤 한동안은 영국의 영향을 받아 주관적·신앙체험적인 찬송가도
창작되었다. 미국찬송가의 특색은 19세기 후반 신앙부흥운동의 물결을
타고 대량 생산된 복음찬송으로서, 이는 가사나 곡조의 예술성이 그다지
높지 않은 반면, 그 직설적이고 통속적인 표현과 멜로디 때문에 널리
애창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서는 개인구원적이기보다
사회구원적인 내용의 찬송가가 많이 나타났다.
【한국의 찬송가】
한국에서 찬송가가 처음 출판된 것은 1894년이었다. 최초의 장로교 선교사
H.G.언더우드(1859∼1915)가 펴낸 《찬양가》가 곧 그것이며 곡조 찬송으로서
모두 117장이었고 이 중 8편의 가사가 한국인 작사로 되어 있다.
이보다 2년 앞서 감리교의 G.H.존스와 L.C.로스와일러가 펴낸 수형본(手形本)과
백홍준(白鴻俊)이 중국 찬송가를 번역하여 서북지방에 보급시킨 것이
있기는 하나 본격적인 것은 언더우드의 《찬양가》가 처음이었다. 이
후 북장로교에서 발행한 《찬셩시》(1895), 감리교의 《찬미가》, 윤치호(尹致昊)
편의 《찬미가》(1905) 등이 불려오다가 1908년에 완성된 장로교·감리교
연합공의회 편의 《찬송가》가 나옴으로써 양대 교파는 하나의 찬송을
20년간 부르게 되었다. 한편, 동양선교회는 한국에 성결교단을 창설,
11년 《복음가》를 발행하고, 침례교회에서도 1900년에 《복음찬미》를
발행하여 독자적인 찬송을 불렀다. 24년 예수교 연합공의회는 《신정
찬송가》를 발행하기로 하고 4년만인 28년에 그 편집을 끝냈으나 화재로
소실, 재차 편집에 착수하여 31년에 햇빛을 보았다. 그러나 장로교에서
35년 400장의 《신편 찬송가》를 단독으로 발행, 모처럼의 연합은 다시
깨어졌다. 45년 광복이 되자 장로교·감리교·성결교 등 3대 교단은
다시 찬송가의 합동을 결의, 48년 《합동 찬송가》를 발행하였으나 장로교
일부에서 그 사용을 거부하고 계속 《신편 찬송가》만을 써오다가 마침내
62년 《새찬송가》를 내놓았다. 한편, 합동 찬송가를 불러오던 교파에서는
《합동 찬송가》의 미흡한 점을 개편하기 위해 한국찬송가위원회를 조직,
67년에 총 620장의 《개편 찬송가》를 발행하였다. 이렇듯 3찬송가가
혼선을 빚자 그것을 하나로 통일하자는 소리가 높아져 새로이 발족한
찬송가공회(公會)에서는 통일작업에 착수하여 83년에 《찬송가》를 발행하였다.
찬송가는 개신교회의 경우, 교회음악의 중심인 회중가(會衆歌)의 성격을
띤다. 그것은 회중이 자국어로 제창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대체로 단순하고 부르기 쉬운 찬송가가 많다. 회중가로서의 찬송가는
보통 오르간에 의해 뒷받침되며, 때로는 코랄을 소재로 한 칸타타나
앤섬(anthem) 혹은 오르간코랄 등의 형식으로 예술적 연주도 한다. 독일복음교회(루터교회)나
영국국교회(성공회)같이 전례를 중요시하는 교파의 찬송가는 책의 절반을
교회력(敎會曆)의 항목에 따라 배열하고 있으나 전례에 그다지 치중하지
않는 교파의 찬송가는 그 배열이 다소 달라진다. 한국의 찬송가는 지금까지
후자의 길을 걸어왔으나, 차차 개신교에서도 전례와 교회력에 관심을
보이고는 있지만 83년판 《찬송가》에서도 아직은 종래의 찬송가와 같이
후자의 원칙을 따르고 있다.
코랄 전주곡
루터파의 코랄에 바탕을 두는 오르간을 위한 짧은 대위법 작품
코러스
두 사람 이상이 함께 부르는
가창형태. 넓게는 여러 사람이 하나의 성부를 소리를 맞추어 부르는
제창(齊唱)과 다성악곡(多聲樂曲)의 각 성부를 한 사람씩 맡아서 부르는
중창(重唱)도 합창이라고 할 수 있으나, 정확히는 다성악곡의 각 성부를
각각 두 사람 이상이 맡아서 부르는 것을 합창이라고 한다. 합창은 소리의
성질에 따라 어린이합창·남성합창·여성합창·혼성합창 등으로 나뉘며
남성 또는 여성만의 합창을 동성합창(同聲合唱)이라고 한다. 성부의
수는 2∼8 정도가 보통이지만 특수한 경우 36성부의 작품도 있다. 합창의
가장 표준적인 형태는 소프라노·알토·테너·베이스의 혼성4부합창이나
동성인 경우는 테너 2부와 베이스 2부로 편성되는 남성4부합창과 소프라노·메조소프라노·알토로
편성되는 여성3부합창 등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합창의 무리를 두 부분으로
나누어 대비적으로 합창하게 하는 형태를 이중합창(二重合唱) 혹은 복합창(複合唱)이라
하며 그 밖에 삼중합창 이상의 형태도 있다. 반주악기는 피아노나 관현악
또는 여러 가지 악기의 편성으로도 이루어지며 반주악기 없이 부르는
합창을 무반주합창, 즉 아카펠라라고 한다. 합창은 본래 유럽음악의
한 연주형태로서 매우 중요시되었으며 예부터 명곡이 많았고 오늘날에는
전문가나 비전문가의 구별 없이 널리 성행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1900년
이후 외국 선교사들에 의하여 서양음악이 보급되면서부터 넓은 의미의
합창이 교회와 학교에서 이루어져 왔으며 1933년에는 홍난파(洪蘭坡)의
창작곡인 《방아찧는 색시》가 ‘신민요합창(新民謠合唱)’이라는 제목으로
경성 보육학원 합창단(京城保育學院合唱團)에 의하여 불렸다. 당시 이
합창곡은 새로운 시도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 민족음악의 수립면에서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8·15광복 후 합창은 각급 학교를 비롯하여 교회와
각 직장에서 여가선용이나 단합의 계기로 삼는 것으로 널리 활용되어
왔으며 특히 근래에는 성가합창제(聖歌合唱祭)·각급 학교의 합창경연대회
등을 통하여 합창의 수준이 크게 향상되고 있다.
합창단(合唱團) 합창을
위한 연주단체. 전문적인 성악가를 구성원으로 하는 직업적인 합창단과
학교·직장·일반 동호인 등이 구성하는 비전문적 합창단으로 구분할
수 있다. 단원 수는 대개 20∼30명이며 혼성합창단이 주류를 이룬다.
직업적 합창단이란 주로 방송국, 독립된 전문가단체, 교회 등에 속하는
합창단을 말하는 것으로 특히 유럽에는 극장이나 방송국 등에 우수한
전속합창단이 많으며 미국에서는 로버트 쇼합창단·로제 와그너합창단
등이 유명하다. 로마가톨릭교회의 성가대는 다성음악 이전부터 오르가눔
초기까지는 남성(男聲)만으로 합창단을 편성했으나 대위법음악의 발전에
따라 보이소프라노와 남성을 합친 혼성합창단이 조직되었으며 17세기부터는
여성도 포함한 합창을 하고, 특히 시스티나성가대(이탈리아)·빈 소년합창단(오스트리아)·케임브리지
킹스칼리지합창단(영국) 등이 유명하다. 세속음악의 합창단도 다성음악시대
초기부터 있었으며 처음에는 남성만의 합창단이던 것이 15∼16세기에는
여성이 포함되어 18세기에는 각지에 세속음악합창단이 창설되었다. 구미의
비전문적 합창단은 19세기 중엽부터 발전하여 오늘날에는 빈 악우협회합창단,
영국의 해더스 필드합창단, 베를린의 징 아카데미합창단 등이 연주회와
레코드 취입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슬라브민족은 합창에
뛰어나 그 실력이 널리 알려져 있으며 돈 코사크합창단은 망명한 백계(白系)
러시아인들에 의하여 조직된 것으로 구미 여러 나라를 순회공연하는
등 그 활약이 두드러진다. 한국 창작음악이 합창단에 의해서 처음으로
연주된 것은 1933년으로 홍난파(洪蘭坡)의 창작곡 《방아찧는 색시》가
경성 보육학원합창단(京城保育學院合唱團)에 의해 발표되었다. 8·15광복
후 49년에는 예술대학합창단이 활약했고 전문적 합창단으로 볼 수 있는
시온성(詩溫城)·필그림·오라토리오합창단 등이 57년에 발표회를 갖는
등 이때부터 한국합창단의 질·양적 발전이 눈에 띄기 시작하였다. 62년에는
KBS합창단과 서울 시향(市響)합창단이 제1회 국제음악제에서 연주했고,
특히 선명회(宣明會) 어린이합창단은 몇 차례의 해외 순회공연을 통하여
한국 어린이합창의 진가를 보여 아낌없는 갈채를 받았다. 56년에는 미국
웨스트민스터합창단이 내한, 합창예술의 진수를 보여주었으며 66년의
미국 코넬대학합창단, 69년의 빈 소년합창단 등도 내한하여 특색 있는
합창의 진미를 남기고 갔다. 현재 직업단체로서의 합창단으로는 국립합창단·서울시립합창단이
있고 일반합창단에는 상록수·운경·아퀴나스·글로리아·로사리오 등의
성인합창단이 있으며 어린이합창단에는 서울시립 소년소녀합창단·무궁화
소년소녀합창단·선명회 어린이합창단 등이 있다. 그 밖에 명동대성당
성가대와 한국 기독남성합창단(韓國基督男聲合唱團)도 있으며, 해마다
성가합창제(聖歌合唱祭)를 열고 있다.
콘덕투스
12,13세기 모든성부가 1음표
하나하나대로 함께 불리웠던 오르가눔 풍 다성악곡
콘서트
일반 청중을 위한 음악 연주행사.
연주회는 연주목적·연주형태·흥행형태 등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독주와 독창 연주회는 리사이틀이라 하며, 그 목적과 성격에 따라 데뷔리사이틀·고별리사이틀
등으로 부른다. 두 사람 이상일 경우는 특히 조인트리사이틀이라고 한다.
오케스트라·실내악단·합창단 등에 의한 연주회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정기연주회이다. 이것은 글자 그대로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것이며,
독일에서는 예약연주회라고도 한다. 이에 대하여 정기적이 아닌 것을
임시(특별)연주회라고 한다. 대중적인 작품만을 연주하는 것에는 포퓰러콘서트·팝스콘서트
외에 주로 시즌 오프(보통 여름철)에 야외연주장에서 개최되는 프롬나드콘서트
등이 있다. 한편 어떤 작곡가의 작품을 여러 차례에 걸친 연주회에서
연속적으로 연주했을 때를 연속연주회라고 부른다. 오페라에서 의상·무대장치·연기
등이 빠진 채로 연주될 경우 오케스트라 반주가 따른 것은 연주회 형식에
의한 상연이라고 하며, 피아노 반주를 곁들인 것은 오페라 리사이틀이라고
한다. 최초의 공개연주회는 1637년 건립된 베네치아의 산 카시아노극장에서
개최된 오페라 상연이었다.
콘소트
16.17세기의 실내 합주
동종의 악기편성이 많아 whole consort라고 하며 비올 콘소트가 대표적이다.
콘체르토
음악에서는 2개의 음향체(音響體)
간의 대립·경합을 특징으로 한 악곡. 어원인 콘체르토는 ‘경합하다’의
뜻을 지닌 라틴어의 동사 콘케르타레(concertare)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화려한 연주기교를 구사하는 독주악기(또는 독주악기군)와
관현악을 위해 작곡된 기악곡을 가리킨다. 이러한 협주곡은 17세기 말엽
이후 후기바로크·고전·낭만파시대 특유의 것으로 그 이전(16세기)에는
어떤 종류의 성악곡에 대해서도 이 말이 사용되었다.
⑴ 성악콘체르토:16세기
중엽부터 약 100년 동안은 콘체르토라고 하면 기악반주가 따른 성악곡을
뜻했다. 그러나 이 때의 기악반주는 종전과 같이 음의 선율을 그대로
중복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성부(聲部)를 지니고 있었다. 거기에는
사람의 목소리와 악기의 협주라는 요소가 많이 내포되었으며 베네치아악파
이래 합창과 관현악을 2군으로 나누어 서로 교대하게 함으로써 2개 음향체의
경합과 같은 인상을 많이 풍겼다. 이와 같은 성악콘체르토는 이탈리아에서
발생하여 A.가브리엘리, G.가브리엘리, 반키에리, 비아다나, 몬테베르디
등이 좋은 작품을 썼고, 독일에서도 샤인, 슈츠 등이 이 양식을 계승하였다.
그러나 성악콘체르토에 대해 협주곡이라는 언어는 쓰지 않은 것이 통례였다.
⑵ 합주협주곡(콘체르토 그로소):바로크시대 특유의 기악협주곡으로
몇 개의 악기로 이루어진 독주군(콘체르티노 또는 솔리)과 대개는 현악
오케스트라의 합주부(리피에노 또는 콘체르토 그로소)로 이루어져 2군의
음량의 대비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 형식의 협주곡은 1700년을 전후하여
이탈리아의 코렐리에 의해 확립되었으며 그의 작품에서는 독주부가 2개의
바이올린과 첼로로 이루어졌다. 또 형식과 기능상으로는 느림·빠름·느림·빠름의
4악장을 기조로 한 교회협주곡(콘체르토 다 키에자)과 무곡모음곡형식을
취한 실내협주곡(콘체르토 다 카메라)의 2종류가 있다. 한편 비발디는
독주부의 기교를 더욱 화려하게 하고 리토르넬로형식을 도입하여 새로운
형식의 합주협주곡을 만들어 냈다. 헨델은 작품 3, 작품 6 등에서 코렐리의,
J.S.바흐는 《브란덴부르크협주곡》 제2,4번 등에서 비발디의 형식을
계승 발전시켜 함께 합주협주곡의 정점을 이룩하였다.
⑶ 독주협주곡(솔로
콘체르토):오늘날 가장 많이 연주되는 것이 단일 독주악기와 관현악으로
이루어진 독주협주곡이며 독주악기에 따라서 피아노협주곡·바이올린협주곡
등으로 불린다. 이 형식의 협주곡도 바로크시대인 1700년경에 이탈리아에서
발생하였으며 토렐리, 알비노니, 비발디 등이 주로 바이올린협주곡을
많이 작곡했다. 그리고 바이올린에 이어서 오보에·플루트 등의 협주곡도
인기가 있었다. 특히 470곡 이상의 협주곡을 쓴 비발디는 빠름·느림·빠름의
3악장형식을 확립하고 빠른 악장에 솔로와 투티(全奏)가 교대로 나타나는
리토르넬로형식을 채용하여 형식의 통일감을 높임과 동시에 독주악기의
기교를 크게 향상시켰다. 그 전통을 이어받아 바로크기 협주곡의 정점을
이룬 것이 바흐이다. 그는 바이올린협주곡 이외에도 하프시코드를 독주악기의
지위에까지 올려놓음으로써 뒤에 피아노협주곡이 나오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합주협주곡이 바로크시대와 더불어 그 생명을 다한 데
반하여 3악장형식의 독주협주곡은 고전파·낭만파로 계승되어 협주곡이라고
하면 전적으로 이것을 가리킬 정도로까지 되었다. 그러나 바로크시대의
리토르넬로형식을 대신하여 빠른 악장에는 소나타형식이 쓰이게 되었다.
하이든(첼로·피아노), 모차르트(피아노·바이올린·플루트)를 거쳐
베토벤의 바이올린협주곡과 피아노협주곡에 이르러서는 협주곡이 화려한
음악적 기교를 발휘하는 데 다시없는 곡으로 등장했으며 교향곡과 필적할
만큼 깊은 정신성(精神性)의 표현에 도달하게 되었다. 빠른 악장의 종결부
직전에 삽입된 화려한 카덴차는 원래 연주자의 즉흥(卽興)에 맡겨졌으나,
베토벤의 《황제》(1809) 이후는 작곡가가 사전에 작곡하도록 되었다.
낭만파시대에도 협주곡은 가장 중요한 음악형식의 하나로 즐겨 쓰였으며
멘델스존, 쇼팽, 리스트, 그리그, 차이코프스키, 드보르자크, 브람스
등도 화려한 기교를 살린 작품들을 남기고 있다. 이러한 독주협주곡은
현대의 버르토크, 프로코피예프 등에게 계승됨과 동시에 현대음악에서는
버르토크의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1943)이나 스트라빈스키의 《현악합주를
위한 협주곡》(46)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협주곡의 개념이 확대되어
가는 경향에 있다.
콘체르토 그로소
바로크시대 특유의 기악협주곡으로 몇 개의 독주악기로 이루어진 소악기군(콘체르티노)과
보다 큰 합주단(合奏團:원래의 콘체르토 그로소)을 위하여 쓰여진 악곡.
본디 ‘큰 콘체르토’라는 뜻으로 보통 합주협주곡(合奏協奏曲)으로
번역되고 있다. 편성과 음색이 다른 1군의 대비효과(對比效果)에 바탕을
둔 음악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이탈리아의 코렐리, 비발디 등에 의해
확립되고 J.S.바흐의 《브란덴부르크협주곡》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콘체르트시튀크
1악장의 작은 협주곡.템포,리듬,조등
다른 몇 개의 부분을 포함한다.베버의 작품이 유명하다.
콜로라투라
18∼19세기 오페라의 아리아
등에 즐겨 쓰인 선율 또는 그 양식. 빠른 템포로 통상 자잘한 음표로
이루어졌으며, 꾸밈음이나 스릴에 넘치는 화려한 악구가 소위 기악적으로
펼쳐지는 듯한 선율양식이다. 가수의 명인기(名人技)를 위한 것이어서
그만큼 음악적 내용이 공허해지기 쉽고, 사실상 점차 틀에 박힌 양식에
빠져 쇠퇴해 갔다. 모차르트의《마술피리》 가운데 <밤의 여왕의
아리아>는 콜로라투라의 전형적인 예이다.
콩트르탕스
사교춤. 17세기 영국의 농촌에서
유행한 쾌활한 2박자의 춤으로 컨트리댄스라고 하였다. 1710년경 프랑스에
전해져 콩트르당스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점차 민속적인 색채가 없어지고
사교적인 춤과 음악으로 세련되었다. 그 후 독일·이탈리아를 비롯하여
유럽 각국에 전파되어 크게 유행하였다. 4쌍 또는 8쌍의 남녀가 서로
마주 서서 춤추며, 음악은 4분의 2박자 또는 8분의 6박자로 8소절의
선율이 반복된다.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작품에도 이런 형식의 작품이
있다. 코티용·카드리유(남녀의 스퀘어댄스)도 이 춤에서 파생되었다.
콰이어
그리스도교교회의 예배에 봉사하는 합창단. 역사적으로는 고대 유대의
예배에도 이미 레위인(人)에 의한 성가대가 조직되어 있었으며, 중세
초기의 그리스도교교회·수도원에도 하급 성직자에 의한 성가대가 예배시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오늘날도 로마 가톨릭교회·그리스 정교회·성공회·독일
루터교회처럼 예배를 중요시하는 여러 교회에서는 성가대가 그 예배에
필요한 음악을 연주하고 있으며, 그리스도교 여러 파도 거의 다 성가대를
가지고 있다. 성가대의 편성·규모, 예배 중의 역할, 성가대석의 위치
등은 그 교회의 교의·전례관(典禮觀)·음악관에 따라 좌우된다. 오늘날은
일반 신자로 조직된 성가대가 일반화되고 또 이전에는 용인되지 않았던
부인들의 참여도 보편화되었으나 아직도 일부에서는 전통적으로 성년
남성만으로 조직된 성가대, 소년 합창으로 이루어진 성가대, 성직자만으로
편성된 성가대가 있다.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성가대로는
독일 라이프치히의 성토마스교회 성가대·레겐스부르크대성당 성가대·베를린
성헤투히교회 성가대(현재는 연주활동만을 하고 있다)·아헨대성당 성가대·보이론수도원
성가대·마리아 라하수도원 성가대, 스위스의 마인지덴수도원 성가대,
영국의 케임브리지 킹스칼리지 성가대·케임브리지 성존칼리지 성가대,
프랑스의 솔렘수도원 성가대, 이탈리아의 시스틴예배당 성가대, 미국의
모르몬회당 성가대 등을 들 수 있다.
쾨헬
오스트리아의 식물학자·음악연구가. 빈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나 그의 일생은 식물학과 음악활동으로 시종한
것이었다. 특히 모차르트의 작품을 수집·정리하는 데 정열을 기울였으며,
1862년 그가 만든 모차르트작품의 일련번호(쾨헬번호라고 한다) 목록은
체계적인 작품목록의 작성에 있어 하나의 규범이 되었다. 그가 작성한
작품목록은 그 후에도 판을 거듭하여 출판, 개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쿠랑트
16세기에 발생하여 한때 유럽
여러 곳에서 널리 유행했던 춤곡. 프랑스어 ‘courir(뛰다)’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17세기 중엽에는 모음곡 중의 한 곡이 되었다. 이는 17세기에
코렌테와 프랑스풍의 쿠랑트의 2개의 형으로 갈라졌는데, 이탈리아풍의
코렌테는 4분의 3 또는 8분의 3박자의 빠르기로 끊임없이 뛰어 돌아다니는
듯한 음형을 지녔다. 그러나 쿠랑트는 코렌테보다 세련된 형으로 속도는
중간쯤이며 3분의 2 또는 4분의 6박자이나, 박자가 종종 서로 교대되며
일정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두 춤곡의 차이는 바흐에 의해서 명확해졌는데,
후에 교정자가 코렌테에 쿠랑트의 명칭을 썼기 때문에 혼란을 초래했다.
쿠오들리베트
2개나 그이상의 잘알려진
선율을 동시에 부르거나 연주하는 다성악곡. 즉흥적인 것도 있고 작곡된
것도 있다
16~17세기 독일의 작곡가들이 자주 사용한 수법
퀸테트
5명의 연주자를 위한 실내악.
현악 5중주는 바이올린2,비올라2,첼로로 구성
성악 은 소프라노2,알토,테너,베이스로
구성.
키리에
미사 통상문의 처음 부분으로'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로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