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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나무를 심은 사람-2-지금 여기에 있는 나의 의미/최복현
모든 생명체에게 주어진 조건 중 아주 공평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실존입니다. 하급 생물이건 고급생물이건 생명체는 실존이란 동일한 조건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생명체는 그 무엇을 막론하고 시간의 지배를 받습니다. 시간, 그것은 바로 유한하게 주어졌습니다. 공간, 그 무엇에게나 생명체라면 공간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서 존재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반드시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시간과 공간의 지배 속의 존재, 이 세 요소를 실존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실존이란 바로 지금이란 시간, 여기라는 장소, 그리고 존재로서의 나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지금 여기에 있는 나", 이것이 바로 실존의 조건입니다. 나가 없으면 시간과 공간은 무의미합니다. 공간이 없으면 나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시간이 없으면 나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하는 것이 실존이며, 현재라는 시간입니다. 이를테면 현재란 지금 여기에 있는 나를 이르는 말이며, 현재란 바로 실존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우리에겐 시간과 공간이란 배경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에따라 모든 소설에는 배경이란 것이 우선 나옵니다. 소위 발단에서는 이 삶의 최소조건인 배경이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물이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읽어가려는 '나무를 심은 사람'도 따라서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약 40여 년 전의 일이다. 나는 여행자들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는 고산지대로 먼 여행을 떠났다. 그곳은 알프스 산맥이 프로방스 지방으로 뻗어 내린 아주 오래된 산악지대였다. 이 지역은 동남쪽과 남쪽으로는 시스테롱과 미라보 사이에 있는 뒤랑스 강의 중류를 경계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북쪽으로는 드롬 강이 시작되는 곳에서부터 디까지 이르는 강의 상류가 그 끝이고, 서쪽으로는 콩타브네생 평원과 방투 산의 산자락이 뻗어 내린 곳을 경계로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곳은 바스잘프 지방의 북부 전부와 드롬 강의 남쪽 및 보클뤼즈 지방의 일부 작은 지역에 걸쳐 있었다.
이 앞부분을 차지하는 발단 부분, 여기엔 배경과 인물 소개, 그리고 복선이 나옵니다. 아직 인물소개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대신 그 인물이 살아갈 조건인 배경을 설정하면서 그 어떤 이야기를 할지 그것을 보여주려 합니다. 등장할 인물은 이 배경 속에서 살아갈 겁니다.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곳, 오래된 산악지대라는 단어가 유난히 눈길을 끄는 건 왜일까요? 여기에 살고 있을, 아니 등장할 사람은 자신의 그 무엇을 내세울 사람이 아니라는 암시 아니겠어요. 적어도 자신이 하는 일을 가지고 생색낼 사람이 아니라는 것 아니겠느냐고요.
앞에서 우리는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란 어떤 인물인지를 가늠해 보았지요. 늘 일관된 사람, 그 어떤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지요. 그 어떤 사람이든,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든 아니든, 존재는 모두 동일한 조건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 주어진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이용하느냐가 한 존재의 모양을 갖춰간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누구에게나 시간은 중요합니다. 공간은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최소한의 생존조건인 시간과 공간의 중요성을, 소중함을 잊고 삽니다. 그것이 나에게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을 잃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생각합니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사람을 만납니다. 공간을 딛고 만납니다. 시간을 거스르지 못하고 공간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지금 당신의 시계는 몇시입니까? 그 삶의 시계를 보며 지금이란 시간을 생각해 보세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그 공간의 의미를 생각해 보세요. 그래서 지금 어디에 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자고요.
내일이 내게 주어지든 말든 지금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그 시작은 바로 지금입니다. 지금 나는 나의 인격을 심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어지는 지금이란 시간들 속에 나의 인격은 형성되고 있습니다. 지금입니다. 나의 모두는 지금입니다. 주위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지 않고 나 자신의 세계를 꾸준히 펼쳐가야 합니다. 지금 그리고 여기만이 나의 것이란 생각으로. -최복현 amourcho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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