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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맞이! 동해바다에서 비상하는 청룡(靑龍)을 만나다
2024년 1월 고을학교는 <강원도 속초고을>
2024년 1월, 고을학교(교장 최연. 고을답사전문가) 제105강은 갑진년 ‘청룡(靑龍)의 해’를 맞아 동해바다와 설악산이 어우러진 <속초고을>로 향합니다. 속초는 역사적으로 양양현에 소속되어 있어 읍치구역의 유적은 거의 없고, 고성이나 양양고을과 마찬가지로 한국전쟁의 격전지이면서 수복지구라서 많은 문화재가 소실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번 속초 답사는 읍치구역의 유적 너머, 신라시대의 사찰과 석탑, 동해안의 아름다운 정자, 함경도식 겹집 가옥, 모래가 쌓여 바다가 호수가 된 석호 등을 둘러볼 예정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자연부락인 ‘마을’들이 모여 ‘고을’을 이루며 살아왔습니다. 2013년 10월 개교한 고을학교는 ‘삶의 터전’으로서의 고을을 찾아 나섭니다. 고을마다 지닌 역사적 향기를 음미하며 그곳에서 대대로 뿌리박고 살아온 삶들을 만나보려 합니다. 찾는 고을마다 인문역사지리의 새로운 유람이 되길 기대합니다.
▲동해바다에서 새해맞이! 속초 외옹치 해변은 설악산에서 동쪽으로 달마봉, 주봉산, 청대산을 거쳐온 봉우리가 항포구를 오붓이 감싸는 항아리 모형 같다 해서 외옹치라는 이름을 얻었다.Ⓒ속초시
고을학교 제105강은 2024년 1월 28일(일요일) 열리며 오전 7시 서울을 출발합니다. 정시 출발하니 출발시각 꼭 지켜주세요. 오전 6시 50분까지 서울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6번출구의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서 <고을학교> 버스(온누리여행사)에 탑승바랍니다. 아침식사로 김밥과 식수가 준비돼 있습니다. 답사 일정은 현지사정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제105강 여는 모임에 이어,
이날의 답사 코스는 서울-설악동(신흥사/향성사지삼층석탑)-도문동(상도문돌담마을/학무정/오윤환가옥/김종우가옥/김근수가옥)-점심식사 겸 뒤풀이-노학동(실향민문화촌/속초시립박물관/전망대)-장사동·금호동(영랑호/암각문/범바위/영랑정)-동명동·영랑동(영금정/등대전망대)-서울의 순입니다.
▲<속초고을> 답사 안내도Ⓒ고을학교
*코로나19와 독감 관련, 안전하고 명랑한 답사가 되도록 출발 준비 중입니다. 참가회원님은 자신과 동행자의 건강을 위해 항상 차내·실내 마스크 착용, 손소독, 거리두기를 잘 챙겨주시기 바랍니다. 발열·근육통·호흡기 증상이 있는 경우, 참가를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설악산 신흥사는 세 스님의 현몽으로 세워졌으며 그 후 많은 불사가 이루어졌다.ⓒ속초시
최연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제105강 답사지 설명을 듣습니다.
서쪽으로 설악산, 동쪽으로 동해가 펼쳐진 서고동저의 지형입니다.
속초는 동쪽으로는 동해, 남쪽으로는 쌍천을 경계로 양양과 접하고 있으며, 북으로는 국사봉을 경계로 고성과 접하고, 서쪽으로는 설악산을 경계로 인제와 접하고 있습니다.
속초의 지형은 동해안에 낮은 구릉 사면과 좁은 평지가 있을 뿐, 백두대간의 능선인 설악산(1,708m), 마등령(1,327m) 등의 높은 산이 서부 경계를 이루면서 시의 전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설악산은 그 맥이 동으로 뻗어 화채봉, 금강굴, 울산암, 달마봉에 이르고 여기서 다시 2개의 지맥으로 분열되어, 그중 하나는 주봉산(338m), 청대산(231m) 등 크고 작은 산들을 이루며 속초시의 중앙부를 지나 동해로 들어가고, 다른 하나는 북으로 뻗어 영금정을 이룩하고, 그 여맥이 다시 해저를 지나 해안을 낙하하다가 다시 두각을 해상에 노출하여 조도를 이루었습니다. 남쪽은 설악산의 지맥인 달마봉(635m) 등이 연봉을 이루어 대포동의 외옹치리 해안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하천은 쌍천과 청초천이 있는데, 쌍천은 설악산에서 발원하여 16㎞를 흐르며 도문평야를 이룬 후 마침내 동해로 흘러들고, 청초천은 달마봉서 발원하여 12㎞를 흐르며 좌, 우의 소야평야에 용수를 공급한 후 마침내 청초호에 이르며 울산바위 북쪽에서 발원한 장천은 학사평을 지나 영랑호로 흘러듭니다.
이들 하천의 하구 부근에는 후빙기의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해안사취가 만입(灣入)을 막아 청초호와 영랑호 등의 석호(潟湖)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석호는 선박들이 외해의 풍랑을 피할 수 있는 천연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 청초호는 좋은 항만 구실을 하며, 특히 풍랑 때 어선의 대피 정박지로 이용되어 와서 속초항이 고성, 양양보다 항구로서 크게 발달하였습니다.
고구려의 수성군과 익현현에서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속초는 예(濊)의 관할로 고구려 영토로 편입되어 수성군과 익현현으로 분리되었고 신라 경덕왕 때 수성군은 수성군, 익현현은 익령현으로 개칭되어 수성군의 영현이 되었습니다.
고려시대는 1018년(현종 9) 수성군이 간성현으로 개칭된 후 간성군으로 승격되었고 1221년(고종 8) 거란군을 막아냈다고 익령현이 양주 방어사로 승격되었다가 1257년 덕녕감무로 격하되었습니다. 1260년(원종 1) 지양 주사로 승격되었고 달리 양산(襄山)으로 불렸습니다.
조선시대는 1397년(태조 6) 양주가 임금의 외가 고을이라 하여 부로 승격되었고, 1413년(태종 13) 도호부로 개칭되었으며, 1416년 양양(襄陽)으로 개칭되었습니다. 1618년(광해군 10) 양양현으로 강등되었고, 1623년(인조 1) 다시 양양도호부로 회복되었습니다. 1783년(정조 7) 역모 사건을 주모한 지역이라는 이유로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792년(정조 16) 다시 도호부로 승격되었다가 1895년(고종 32) 양양도호부에서 양양군으로 바뀌었고 속초지역은 간성군의 일부와 양양군의 일부 지역으로 나뉘어 강릉부의 관할을 받게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19년 고성군의 죽왕면, 토성면이 양양군으로 편입되면서 속초지역은 비로소 양양군의 일관된 관할을 받게 되었고 1942년 속초면이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45년 광복이 되자 속초는 38선 이북에 위치하여 북한의 통치를 받다가 1951년 국군이 진주하여 수복되었습니다. 수복과 함께 군정이 실시되고, 1951년 고성군 토성면 장천리와 사진리가 속초읍으로 편입됨으로써 현재의 속초시와 같은 행정구역이 형성되었습니다. 1998년 동, 통의 폐합으로 행정동이 13개 동에서 8개 동으로 조정되어 법정동 13개 동, 행정동 8개 동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속초의 유적은 조양동 선사유적과 축성연대가 불확실한 설악산의 권금성의 성곽이 있으며, 불교문화재는 설악동의 향성사지삼층석탑(보물), 신흥사(강원도 문화재자료), 신흥사 극락보전(강원도 유형문화재), 신흥사 목판(강원도 유형문화재), 신흥사 보제루(강원도 유형문화재) 등이 있고, 건축문화재는 도문동의 김근수 가옥(강원도 문화재자료)과 김종우 가옥(강원도 유형문화재) 등이 있으며 천연기념물은 설악산 천연보호구역, 설악동의 소나무가 있습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양양현에 속했으므로 교육은 양양향교에서 행해졌고, 개화기 근대교육도 양양군의 현산학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나 속초시는 개화기에 근대문화 도입의 입구였던 원산항과 왕래가 잦은 큰 항구였으므로 주민들의 개화 문화의식은 매우 앞서 있어서, 3·1만세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였습니다.
새해맞이! 동해바다에서 비상하는 청룡(靑龍)을 만나다
2024년 1월 고을학교는 <강원도 속초고을>
2024년 1월, 고을학교(교장 최연. 고을답사전문가) 제105강은 갑진년 ‘청룡(靑龍)의 해’를 맞아 동해바다와 설악산이 어우러진 <속초고을>로 향합니다. 속초는 역사적으로 양양현에 소속되어 있어 읍치구역의 유적은 거의 없고, 고성이나 양양고을과 마찬가지로 한국전쟁의 격전지이면서 수복지구라서 많은 문화재가 소실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번 속초 답사는 읍치구역의 유적 너머, 신라시대의 사찰과 석탑, 동해안의 아름다운 정자, 함경도식 겹집 가옥, 모래가 쌓여 바다가 호수가 된 석호 등을 둘러볼 예정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자연부락인 ‘마을’들이 모여 ‘고을’을 이루며 살아왔습니다. 2013년 10월 개교한 고을학교는 ‘삶의 터전’으로서의 고을을 찾아 나섭니다. 고을마다 지닌 역사적 향기를 음미하며 그곳에서 대대로 뿌리박고 살아온 삶들을 만나보려 합니다. 찾는 고을마다 인문역사지리의 새로운 유람이 되길 기대합니다.
▲동해바다에서 새해맞이! 속초 외옹치 해변은 설악산에서 동쪽으로 달마봉, 주봉산, 청대산을 거쳐온 봉우리가 항포구를 오붓이 감싸는 항아리 모형 같다 해서 외옹치라는 이름을 얻었다.Ⓒ속초시
고을학교 제105강은 2024년 1월 28일(일요일) 열리며 오전 7시 서울을 출발합니다. 정시 출발하니 출발시각 꼭 지켜주세요. 오전 6시 50분까지 서울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6번출구의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서 <고을학교> 버스(온누리여행사)에 탑승바랍니다. 아침식사로 김밥과 식수가 준비돼 있습니다. 답사 일정은 현지사정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제105강 여는 모임에 이어,
이날의 답사 코스는 서울-설악동(신흥사/향성사지삼층석탑)-도문동(상도문돌담마을/학무정/오윤환가옥/김종우가옥/김근수가옥)-점심식사 겸 뒤풀이-노학동(실향민문화촌/속초시립박물관/전망대)-장사동·금호동(영랑호/암각문/범바위/영랑정)-동명동·영랑동(영금정/등대전망대)-서울의 순입니다.
▲<속초고을> 답사 안내도Ⓒ고을학교
*코로나19와 독감 관련, 안전하고 명랑한 답사가 되도록 출발 준비 중입니다. 참가회원님은 자신과 동행자의 건강을 위해 항상 차내·실내 마스크 착용, 손소독, 거리두기를 잘 챙겨주시기 바랍니다. 발열·근육통·호흡기 증상이 있는 경우, 참가를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설악산 신흥사는 세 스님의 현몽으로 세워졌으며 그 후 많은 불사가 이루어졌다.ⓒ속초시
최연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제105강 답사지 설명을 듣습니다.
서쪽으로 설악산, 동쪽으로 동해가 펼쳐진 서고동저의 지형입니다.
속초는 동쪽으로는 동해, 남쪽으로는 쌍천을 경계로 양양과 접하고 있으며, 북으로는 국사봉을 경계로 고성과 접하고, 서쪽으로는 설악산을 경계로 인제와 접하고 있습니다.
속초의 지형은 동해안에 낮은 구릉 사면과 좁은 평지가 있을 뿐, 백두대간의 능선인 설악산(1,708m), 마등령(1,327m) 등의 높은 산이 서부 경계를 이루면서 시의 전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설악산은 그 맥이 동으로 뻗어 화채봉, 금강굴, 울산암, 달마봉에 이르고 여기서 다시 2개의 지맥으로 분열되어, 그중 하나는 주봉산(338m), 청대산(231m) 등 크고 작은 산들을 이루며 속초시의 중앙부를 지나 동해로 들어가고, 다른 하나는 북으로 뻗어 영금정을 이룩하고, 그 여맥이 다시 해저를 지나 해안을 낙하하다가 다시 두각을 해상에 노출하여 조도를 이루었습니다. 남쪽은 설악산의 지맥인 달마봉(635m) 등이 연봉을 이루어 대포동의 외옹치리 해안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하천은 쌍천과 청초천이 있는데, 쌍천은 설악산에서 발원하여 16㎞를 흐르며 도문평야를 이룬 후 마침내 동해로 흘러들고, 청초천은 달마봉서 발원하여 12㎞를 흐르며 좌, 우의 소야평야에 용수를 공급한 후 마침내 청초호에 이르며 울산바위 북쪽에서 발원한 장천은 학사평을 지나 영랑호로 흘러듭니다.
이들 하천의 하구 부근에는 후빙기의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해안사취가 만입(灣入)을 막아 청초호와 영랑호 등의 석호(潟湖)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석호는 선박들이 외해의 풍랑을 피할 수 있는 천연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 청초호는 좋은 항만 구실을 하며, 특히 풍랑 때 어선의 대피 정박지로 이용되어 와서 속초항이 고성, 양양보다 항구로서 크게 발달하였습니다.
고구려의 수성군과 익현현에서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속초는 예(濊)의 관할로 고구려 영토로 편입되어 수성군과 익현현으로 분리되었고 신라 경덕왕 때 수성군은 수성군, 익현현은 익령현으로 개칭되어 수성군의 영현이 되었습니다.
고려시대는 1018년(현종 9) 수성군이 간성현으로 개칭된 후 간성군으로 승격되었고 1221년(고종 8) 거란군을 막아냈다고 익령현이 양주 방어사로 승격되었다가 1257년 덕녕감무로 격하되었습니다. 1260년(원종 1) 지양 주사로 승격되었고 달리 양산(襄山)으로 불렸습니다.
조선시대는 1397년(태조 6) 양주가 임금의 외가 고을이라 하여 부로 승격되었고, 1413년(태종 13) 도호부로 개칭되었으며, 1416년 양양(襄陽)으로 개칭되었습니다. 1618년(광해군 10) 양양현으로 강등되었고, 1623년(인조 1) 다시 양양도호부로 회복되었습니다. 1783년(정조 7) 역모 사건을 주모한 지역이라는 이유로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792년(정조 16) 다시 도호부로 승격되었다가 1895년(고종 32) 양양도호부에서 양양군으로 바뀌었고 속초지역은 간성군의 일부와 양양군의 일부 지역으로 나뉘어 강릉부의 관할을 받게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19년 고성군의 죽왕면, 토성면이 양양군으로 편입되면서 속초지역은 비로소 양양군의 일관된 관할을 받게 되었고 1942년 속초면이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45년 광복이 되자 속초는 38선 이북에 위치하여 북한의 통치를 받다가 1951년 국군이 진주하여 수복되었습니다. 수복과 함께 군정이 실시되고, 1951년 고성군 토성면 장천리와 사진리가 속초읍으로 편입됨으로써 현재의 속초시와 같은 행정구역이 형성되었습니다. 1998년 동, 통의 폐합으로 행정동이 13개 동에서 8개 동으로 조정되어 법정동 13개 동, 행정동 8개 동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속초의 유적은 조양동 선사유적과 축성연대가 불확실한 설악산의 권금성의 성곽이 있으며, 불교문화재는 설악동의 향성사지삼층석탑(보물), 신흥사(강원도 문화재자료), 신흥사 극락보전(강원도 유형문화재), 신흥사 목판(강원도 유형문화재), 신흥사 보제루(강원도 유형문화재) 등이 있고, 건축문화재는 도문동의 김근수 가옥(강원도 문화재자료)과 김종우 가옥(강원도 유형문화재) 등이 있으며 천연기념물은 설악산 천연보호구역, 설악동의 소나무가 있습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양양현에 속했으므로 교육은 양양향교에서 행해졌고, 개화기 근대교육도 양양군의 현산학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나 속초시는 개화기에 근대문화 도입의 입구였던 원산항과 왕래가 잦은 큰 항구였으므로 주민들의 개화 문화의식은 매우 앞서 있어서, 3·1만세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였습니다.
새해맞이! 동해바다에서 비상하는 청룡(靑龍)을 만나다
2024년 1월 고을학교는 <강원도 속초고을>
2024년 1월, 고을학교(교장 최연. 고을답사전문가) 제105강은 갑진년 ‘청룡(靑龍)의 해’를 맞아 동해바다와 설악산이 어우러진 <속초고을>로 향합니다. 속초는 역사적으로 양양현에 소속되어 있어 읍치구역의 유적은 거의 없고, 고성이나 양양고을과 마찬가지로 한국전쟁의 격전지이면서 수복지구라서 많은 문화재가 소실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번 속초 답사는 읍치구역의 유적 너머, 신라시대의 사찰과 석탑, 동해안의 아름다운 정자, 함경도식 겹집 가옥, 모래가 쌓여 바다가 호수가 된 석호 등을 둘러볼 예정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자연부락인 ‘마을’들이 모여 ‘고을’을 이루며 살아왔습니다. 2013년 10월 개교한 고을학교는 ‘삶의 터전’으로서의 고을을 찾아 나섭니다. 고을마다 지닌 역사적 향기를 음미하며 그곳에서 대대로 뿌리박고 살아온 삶들을 만나보려 합니다. 찾는 고을마다 인문역사지리의 새로운 유람이 되길 기대합니다.
▲동해바다에서 새해맞이! 속초 외옹치 해변은 설악산에서 동쪽으로 달마봉, 주봉산, 청대산을 거쳐온 봉우리가 항포구를 오붓이 감싸는 항아리 모형 같다 해서 외옹치라는 이름을 얻었다.Ⓒ속초시
고을학교 제105강은 2024년 1월 28일(일요일) 열리며 오전 7시 서울을 출발합니다. 정시 출발하니 출발시각 꼭 지켜주세요. 오전 6시 50분까지 서울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6번출구의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서 <고을학교> 버스(온누리여행사)에 탑승바랍니다. 아침식사로 김밥과 식수가 준비돼 있습니다. 답사 일정은 현지사정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제105강 여는 모임에 이어,
이날의 답사 코스는 서울-설악동(신흥사/향성사지삼층석탑)-도문동(상도문돌담마을/학무정/오윤환가옥/김종우가옥/김근수가옥)-점심식사 겸 뒤풀이-노학동(실향민문화촌/속초시립박물관/전망대)-장사동·금호동(영랑호/암각문/범바위/영랑정)-동명동·영랑동(영금정/등대전망대)-서울의 순입니다.
▲<속초고을> 답사 안내도Ⓒ고을학교
*코로나19와 독감 관련, 안전하고 명랑한 답사가 되도록 출발 준비 중입니다. 참가회원님은 자신과 동행자의 건강을 위해 항상 차내·실내 마스크 착용, 손소독, 거리두기를 잘 챙겨주시기 바랍니다. 발열·근육통·호흡기 증상이 있는 경우, 참가를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설악산 신흥사는 세 스님의 현몽으로 세워졌으며 그 후 많은 불사가 이루어졌다.ⓒ속초시
최연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제105강 답사지 설명을 듣습니다.
서쪽으로 설악산, 동쪽으로 동해가 펼쳐진 서고동저의 지형입니다.
속초는 동쪽으로는 동해, 남쪽으로는 쌍천을 경계로 양양과 접하고 있으며, 북으로는 국사봉을 경계로 고성과 접하고, 서쪽으로는 설악산을 경계로 인제와 접하고 있습니다.
속초의 지형은 동해안에 낮은 구릉 사면과 좁은 평지가 있을 뿐, 백두대간의 능선인 설악산(1,708m), 마등령(1,327m) 등의 높은 산이 서부 경계를 이루면서 시의 전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설악산은 그 맥이 동으로 뻗어 화채봉, 금강굴, 울산암, 달마봉에 이르고 여기서 다시 2개의 지맥으로 분열되어, 그중 하나는 주봉산(338m), 청대산(231m) 등 크고 작은 산들을 이루며 속초시의 중앙부를 지나 동해로 들어가고, 다른 하나는 북으로 뻗어 영금정을 이룩하고, 그 여맥이 다시 해저를 지나 해안을 낙하하다가 다시 두각을 해상에 노출하여 조도를 이루었습니다. 남쪽은 설악산의 지맥인 달마봉(635m) 등이 연봉을 이루어 대포동의 외옹치리 해안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하천은 쌍천과 청초천이 있는데, 쌍천은 설악산에서 발원하여 16㎞를 흐르며 도문평야를 이룬 후 마침내 동해로 흘러들고, 청초천은 달마봉서 발원하여 12㎞를 흐르며 좌, 우의 소야평야에 용수를 공급한 후 마침내 청초호에 이르며 울산바위 북쪽에서 발원한 장천은 학사평을 지나 영랑호로 흘러듭니다.
이들 하천의 하구 부근에는 후빙기의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해안사취가 만입(灣入)을 막아 청초호와 영랑호 등의 석호(潟湖)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석호는 선박들이 외해의 풍랑을 피할 수 있는 천연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 청초호는 좋은 항만 구실을 하며, 특히 풍랑 때 어선의 대피 정박지로 이용되어 와서 속초항이 고성, 양양보다 항구로서 크게 발달하였습니다.
고구려의 수성군과 익현현에서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속초는 예(濊)의 관할로 고구려 영토로 편입되어 수성군과 익현현으로 분리되었고 신라 경덕왕 때 수성군은 수성군, 익현현은 익령현으로 개칭되어 수성군의 영현이 되었습니다.
고려시대는 1018년(현종 9) 수성군이 간성현으로 개칭된 후 간성군으로 승격되었고 1221년(고종 8) 거란군을 막아냈다고 익령현이 양주 방어사로 승격되었다가 1257년 덕녕감무로 격하되었습니다. 1260년(원종 1) 지양 주사로 승격되었고 달리 양산(襄山)으로 불렸습니다.
조선시대는 1397년(태조 6) 양주가 임금의 외가 고을이라 하여 부로 승격되었고, 1413년(태종 13) 도호부로 개칭되었으며, 1416년 양양(襄陽)으로 개칭되었습니다. 1618년(광해군 10) 양양현으로 강등되었고, 1623년(인조 1) 다시 양양도호부로 회복되었습니다. 1783년(정조 7) 역모 사건을 주모한 지역이라는 이유로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792년(정조 16) 다시 도호부로 승격되었다가 1895년(고종 32) 양양도호부에서 양양군으로 바뀌었고 속초지역은 간성군의 일부와 양양군의 일부 지역으로 나뉘어 강릉부의 관할을 받게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19년 고성군의 죽왕면, 토성면이 양양군으로 편입되면서 속초지역은 비로소 양양군의 일관된 관할을 받게 되었고 1942년 속초면이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45년 광복이 되자 속초는 38선 이북에 위치하여 북한의 통치를 받다가 1951년 국군이 진주하여 수복되었습니다. 수복과 함께 군정이 실시되고, 1951년 고성군 토성면 장천리와 사진리가 속초읍으로 편입됨으로써 현재의 속초시와 같은 행정구역이 형성되었습니다. 1998년 동, 통의 폐합으로 행정동이 13개 동에서 8개 동으로 조정되어 법정동 13개 동, 행정동 8개 동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속초의 유적은 조양동 선사유적과 축성연대가 불확실한 설악산의 권금성의 성곽이 있으며, 불교문화재는 설악동의 향성사지삼층석탑(보물), 신흥사(강원도 문화재자료), 신흥사 극락보전(강원도 유형문화재), 신흥사 목판(강원도 유형문화재), 신흥사 보제루(강원도 유형문화재) 등이 있고, 건축문화재는 도문동의 김근수 가옥(강원도 문화재자료)과 김종우 가옥(강원도 유형문화재) 등이 있으며 천연기념물은 설악산 천연보호구역, 설악동의 소나무가 있습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양양현에 속했으므로 교육은 양양향교에서 행해졌고, 개화기 근대교육도 양양군의 현산학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나 속초시는 개화기에 근대문화 도입의 입구였던 원산항과 왕래가 잦은 큰 항구였으므로 주민들의 개화 문화의식은 매우 앞서 있어서, 3·1만세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