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부활이 보증하는 축복들
로마서 1:1~4
요절: 로마서 1:3~4,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찬송가 171장(하나님의 독생자)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자기가 받은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계속 증거해오신 그의 아들에 관한 말씀이라고 얘기함으로써 그의 길지만 논리정연하게 진술된 기독교 교리에 관한 편지인 로마서를 시작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복음의 변증을 위하여 불러 세우셨다고 말하면서 복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으로서,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서의 부활 사실을 통하여 그가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다고 여기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 사실이 가지는 중요한 무게에 대하여 고린도전서 15장 17절 이하의 말씀에서 이렇게 말씀한 바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린도전서 15:17~22)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가 가진 믿음 곧 구원받는다는 믿음은 알맹이 없는 헛것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우리의 많은 죄가 하나도 사해진 것 없이 고스란히 우리 것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저주 아래 있고 심판 아래 있고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진노를 당한 존재로서 지옥불에 떨어지는 신세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사람이 죽은 뒤에 행복한 내세를 맞이하며 죽음 뒤에 다시 영광 중에 살아난다는 것은 언감생심(焉敢生心),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그림의 떡이요 신기루의 백일몽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적 사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복스러운 약속들을 보증해주는 흔들림없는 토대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이르시기를 자기를 믿는 자들은 심판이 없으며, 자기를 믿는 자들은 죄를 사함을 받으며, 자기를 믿는 자들은 죽은 즉시 낙원에 들어가며, 자기와 함께 시험을 감당한 자들은 자기와 함께 장차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는 영광의 자리에 들어가며, 자기를 믿는 의인들은 장차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을 누린다고 약속하신 바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지 않고 그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난 후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러한 주님의 모든 말씀들은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공허한 말잔치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구주 예수님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고하였고 본인 자신이 친히 제자들에게 예고하신 바대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싸늘한 시체로 변하여 돌무덤에 갇힌 지 사흘이 지난 아침 일찍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여인들이 천사들의 전하는 바 그의 부활 소식을 전해 들었고 그 중 막달라 마리아는 직접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그의 말씀을 듣고 전하였습니다. 또 그 날 오후에는 베드로도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직접 보았으며,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 야고보도 주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또 그 부활하신 날 밤 제자들도 예루살렘의 한 집의 방에 모여 있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명백히 보고 그가 생선 한 토막을 드시는 것을 직접 보았습니다. 그 자리에 없던 사도 빌립도 일주일 후에 보았으며, 나중에는 갈릴리 해변에서 제자들이 주님을 함께 보았으며, 500명 되는 갈릴리 성도들이 한 산에서 함께 직접 부활의 주님을 보았으며, 나중에 감람산에서 적어도 120명 되는 성도들이 다시 부활하신 주님을 함께 보았으며 승천을 목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나중에 사도 바울이 된 사울 청년 역시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스런 모습을 직접 보고 그 음성을 듣고 땅 바닥에 엎드려져 눈이 멀었다가 사흘 후에 다시 눈이 떠서 그 후로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충성된 증인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 바울과 동일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사흘만에 부활하신 역사적 사실성을 확실하게 믿기에,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복스러운 복음의 충만한 은혜와 축복들이 다 거짓말이 아니요 허풍이 아니요 다 확실하게 보증된 이루어질 약속들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약속들이 보이는 것처럼 확실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을 분명히 알려주는 주님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배를 타고 가버나움 본 동네로 돌아가셨을 때에 그 동네에 사람들이 몰려왔는데 그 중에 몇 사람이 침상에 누운 한 중풍병자를 들고 와서 지붕으로 올라가서 지붕을 뚫고 방안에 계신 예수님 앞에 그 중풍병자를 내려놓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마음에 감동하셔서 그 사람을 고쳐주시는데 먼저 그 사람을 향하여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 중에 어떤 서기관이 속으로 생각하기를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만이 가지고 계신 죄사함의 권세를 감히 사람 중 하나인 자가 죄를 사해준다는 말을 입술에 올리니까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전권대사요 약속의 그리스도이란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 사람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중풍병자에게 이르시기를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가 곧 일어나 침상을 들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일에서 주님께서 가르쳐주시는 것은 주님께서 입술로 말씀하시는 모든 추상적인 약속들, 선포의 말씀들은 비록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일지라도 그것은 확실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 중풍병자를 당장 일어나 자리를 들고 일어나 집으로 가라고 명하시면 눈앞에서 확실히 이루어진 것처럼, 주님께서 친히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약속과 명령들은 그대로 확실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네 죄가 사하여졌다, 네가 오늘 밤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나를 믿는 자는 장차 해와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내가 다시 오리니 그 때에 무덤에서 의인의 부활이 있을 것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다”라는 모든 약속들은 확실하게 성취되는 보증된 일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죽음과 부활의 사실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주님께서 약속하신 바 그를 믿는 자들이 받는 축복과 은혜를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약속들은 확실히 이루어질 일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우리가 받은 놀라운 축복의 풍성함을 늘 생각하며, 그 복음의 풍성함을 인하여 고난 중에도 기뻐하며 확신 넘치는 활력을 가지고 지상의 순례 길을 날마다 힘차게 걸어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