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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三國志)제43편. ※
장안으로의 천도(遷都)
동탁 민심을 이반하고
낙양에서 장안으로 천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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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이 일단 중지되자 원소는 모든 제후들을 위해 승리 축하연을 베풀었다.
이 자리에서 원소는,
"참으로 통쾌한 승리였소.
무엇보다도 적의 대장군 여포가 우리의 장비와 관우라는 보궁수와 마궁수 같은 졸병을 못 당하고 쫒겨갔으니 이제야말로 우리가 의병을 일으킨 보람이 있는 것 같구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좌중에서는, "한가지, 여포의 목을 놓친게 아깝긴 하지만 말이오."
라는 대꾸조차 들려왔다.
그때, 홀연히 나타난 사람이 있었으
니, 그는 사수관 싸움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손견이었다.
"오, 손견 장군. 무사하셨군요."
"지금 승리의 술잔을 나누던 중이었소. 이리 앉으시오."
좌중에서는 불현듯 나타난 손견을 보자 한 마디씩을 건넸는데, 갑옷이 헤지고 뜯어진 손견은 아랑곳없이 살기가 등등한 채 좌중을 향해 이렇게 일갈하는 것이었다.
"그 전에 원술 장군에게 물어 보고 싶은 말이 있소이다."
그러자 원술이 겸연쩍은 얼굴로
"나한테 ?"
"그렇소, 당신은 나와 무슨 원수를 졌다고, 사수관 싸움에 우리에게 군량을 보내주지 않았던거요?
그 이유를 듣고 싶소.
그때문에 우리 병사들은 싸울 기력을 잃고 맥없이 죽어갔소.
대답여하에 따라 나는 원술 장군 당신을 벨 수도 있소."
원술은 그 소리를 듣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다.
"손 장군! 내가 그만 참소하는 놈의 말을 잘못 듣고 큰 실수를 하였소.
지금 당장 그놈의 목을 베어 올 테니 장군께서는 용서를 해 주시기 바라오."
그리고 원술은 밖에 나가, 휘하 장졸에게 무언가 명령하더니 잠시 후 참소당한 놈의 목을 베어 가지고 들어와 손견에게 재삼 용서를 비는 것이었다.
그러자 손견은 더이상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축하연에서 본진으로 총총히 돌아온 손견에게는 뜻하지 않은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람은 동탁의 심복 부하인 이유였다.
"대체 당신은 무슨 용무로 나를 만나러 왔소?"
손견이 괴이해서 묻자, 이유는 얄궂은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조아린다.
"동 승상께서는 평소부터 손 장군을 존경하고 계셨습니다.
그리하여 승상 댁 따님과 손 장군님의 아드님이 백년가약을 맺어 깊은 인연을 가지고 싶어하시는데, 장군님의 생각은 어떠하신지요?"
손견은 그 말을 듣자 크게 화를 냈다.
"동탁이란 놈이 역천무도(逆天無道)하여 내가 그놈의 구족(九族)을 멸하려는 터인데 역적놈과 사돈을 맺다니 말이 되느냐!
내, 너를 죽이지는 않을 것이니 곧 돌아가서 동탁에게 내가 곧 목을 자르러 갈 것이라고 전하라!"
이유는 도망치듯 돌아와 동탁에게 사실대로 고했다.
동탁은 그 소리를 듣고 크게 화를 내며 물었다.
"그러면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겠나?"
"말씀드리기 죄송하지만, 제가 살펴 본 역도의 세력이 우리보다 월등히 우세합니다.
따라서 낙양을 지키기가 매우 어려울 듯 하오니, 일시 장안으로 천도(遷都)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무엇? 천도를 하자구?"
"그렇습니다. 호뢰관에서 여포가 크게 패한 뒤로는 군사들의 사기가 크게 꺾였습니다.
그러니 일시 천자를 장안으로 모시고 싸움을 피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게다가 요즘 거리에는 이상한 노래가 떠돌고 있습니다.
"그래? 도대체 무슨 노래이기에 그러는가?"
<서쪽 우두머리도 한낱 사내요,
동쪽 우두머리도 한낱 사내다.
사슴이 달려서 장안으로 들어가면,
이런 어려움은 없게 되리라.>
이유는 동탁에게 저자 거리에 떠도는 노랫말을 말한 뒤에,
"서쪽 우두머리란 고조(高祖)께서 장안에 도읍하시어 십이 대(代)를 누린 세월을 뜻한 것이고, 동쪽 우두머리란 광무(光武)께서 낙양에 도읍하시어 오늘 십이 대에 이른 것을 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장안으로 천도를 하신다면 승상께서 틀림없이 영화를 누리시게 되실 것이옵니다."
동탁은 그 말을 듣고 나서, 크게 기뻐하였다.
"음, 그럴 듯한 애기군. 그러면 도읍을 장안으로 옮기게 회군령(回軍令)을 내려라!"
조정에서는 동탁이 장안으로의 천도를 결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놀랐다.
그리하여 만조 백관들이 모인 자리에서 사도 양표(司徒 楊彪)가 동탁에게 이렇게 반대하였다.
"승상! 새로운 천자가 즉위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민심이 아직도 분분한 이때에, 종묘를 버리고 도성을 옮기시면 민심이 크게 동요할 것이니 이 일은 신중하게 결정하셔야 합니다."
동탁은 그 소리에 크게 화를 낸다.
"네가 뉘 앞에서 국가의 백년대계를 막으려 하느냐!"
그러자 이번에는 태위 황완(太尉 黃琬)이 말한다.
"양 사도의 말씀이 옳소이다. 낙양을 버리고 황폐한 장안으로 떠나오면 민심이 크게 흉흉해지옵니다."
"닥쳐라! 국가 대계에 민심이 무슨 걱정이냐!"
동탁이 크게 성을 내며 고함을 질러댔다.
"아니올시다. 백성이 없고서야 무슨 국가라 할 것입니까?"
이번에는 사도 순상(司徒 筍爽)이 말하였다.
"모두들 닥쳐라! .... 여봐라! 저 세 놈의 벼슬을 당장 빼았고 내 쫒아라!"
동탁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 수레에 올라탔다.
그러자 수레 옆으로 상서 주비(尙書 周毖)가 읍하고 달려든다.
"무슨일이냐?"
"승상께서 장안으로 천도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그 일이 옳지 못함을 아뢰러 왔습니다."
"무엇이? 내가 네 놈들의 말을 듣고 원소란 놈을 살려 두었다가 오늘날 이꼴이 된 것을 알기나 하느냐?
네 놈을 도저히 용서치 못하노라!"
동탁은 호위병의 칼을 빼앗아 그자리에서 주비를 향해 세로로 그어버렸다.
이튿날, 드디어 천도령이 내려졌다.
"이유!"
"넷!"
"떠날 준비는 다 되었는가?"
"지금 관아 마다 준비분망이옵니다."
"비용은 넉넉한가?"
"비용은 넉넉지 못하오나, 부자놈들을 군대로 뽑아 들이고 그네들의 돈을 모조리 거두어 들이면 어떨까 하옵니다."
"그대 생각대로 하라!"
이리하여 부자들을 군대로 뽑아 온 뒤에 재물을 빼앗고, 그들의 가족들은 장안으로 강제 이주를 시켰다.
무지막지한 병사들은 어린아이나 부녀자들을 짐승 모양으로 장안으로 끌고 갔던 것이었다.
동탁 일행도 그날로 길을 떠났다.
동탁은 낙양을 떠남과 동시에 모든 궁전과 관아에 불을 지르게 하였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장차 공격해 올 회맹 연합군에 대한 초토화 전술(焦土化戰術)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동탁은 여포를 시켜서 선황(先皇)들의 무덤을 파헤쳐 그 속에 들어있는 부장품(副葬品)을 꺼내게 하였다.
이렇게하여 거두어들인 황금과 보물을 실은 수십 대의 수레는 동탁의 행차 뒤에 따르게 하였으니, 동탁이 저지른 죄악은 실로 말로 다 헤아릴 수 없는 지경이었다.
※ 삼국지(三國志)제44편 ※
조조의 대패 (上)
조조 위기에 빠지다.
그 와중에도 살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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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탁이 낙양을 버리고 장안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원소를 비롯한 제후들이 급거 낙양으로 속속 몰려
들었다.
그리하여 낙양으로 들어오게 되자, 아직도 곳곳에 타고 있는 불을 끄기에 바빴다.
불을 어느정도 끄게되자 조조는 총대장 원소에게 말했다.
"동탁이 지금 장안으로 도망하는 중이니 때를 놓치지 말고 빨리 추격을 합시다."
"군마가 모두 피로해 있으니 이삼 일 쉬어서 추격할 생각이오."
그러자 조조는 제후들을 돌아보며 다시 물었다.
"동탁이 도성에 불을 질러버리는 바람에 민심을 크게 잃었으니 이때를 이용하여 공격하면 이길 것이 명확한데, 제후들의 생각은 어떠하오?"
그러자 몇 사람의 제후들이 이렇게 대꾸한다.
"경솔히 추격하는 것은 삼가는 것이 좋을 것 같소!"
"함부로 동했다가 또 패하면 큰일이오."
"자고로 궁지에 몰린 쥐는 쫒지않는 법이오."
조조는 그런 소리를 듣고 내심 크게 비웃었다.
(쫄장부들하고는 도저히 큰일을 도모할 바가 못되는구나 !....)
조조는 분연히 그 자리를 물러나와, 몸소 자신을 따르는 군사 만여 명을 거느리고 하후돈, 하후연 형제와, 조인, 조홍, 이전, 악진 등이 수하 장수들을 몰고 밤을 도와 가며 동탁의 뒤를 추격하였다.
그무렵, 동탁은 장안의 여정에 있는 형양(滎陽)을 앞두고 협곡을 빠져나와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어느새 조조가 추격해 온다는 급보가 날아들었다.
이 소리를 들은 동탁도 몹시 황급해 했지만, 시종들도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고 특히 시녀들은 몸을 발발 떨며 울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유만은 시종일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동탁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승상 ! 조금도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여기를 보십시오. 여기는 산이 험악해서 이곳에 복병을 숨겨두고 몰려오는 조조군을 공격하면 그들을 간단히 전멸시킬 수가 있습니다."
그러자 동탁은 고개를 들어 눈앞에 펼쳐진 협곡과 암벽을 한바퀴 둘러보고 적이 안심하는 빛을 보였다.
그러면서 형양 태수 서영 (徐榮)을 불러 곧 조조의 군사들이 접근해 올 성싶은 암벽과 절벽 곳곳에 군사들을 매복하게 하였다.
그리고 여포로 하여금 그들의 뒤를 지키게 명령하였다.
동탁 일행이 협곡을 떠난 한참 뒤에 조조는 복병이 있는 줄도 모르고 협곡을 지나 동탁의 후미를 공격하려고 진군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복병들은 조조군의 대열이 중간쯤에 이르자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돌과 바위와 통나무가 협곡 아래로 사정없이 굴러 떨어지고 화살이 빗발 치듯 쏱아져 내렸다.
그러나 협곡을 이미 지나온 조조의 눈에는 언덕위에 서 있는 여포가 먼저 보이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조조는 큰 소리로 외쳤다.
"이 역적놈아! 천자를 겁박해 가지고 어디를 가느냐?"
그러자 여포는 큰소리로 마주 꾸짖는다.
"이 배은망덕한 도둑놈아! 네가 무슨 헛소리를 하는게냐!"
조조는 크게 화를 내며 좌우를 돌아보며 외쳤다.
"뉘 나가서 저놈을 사로잡아라!"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하후돈이 창을 꼬나잡고 말을 달려나갔다.
바로 그때, 홀연 왼편 산 언덕에서 한떼의 군사가 함성을 지르며 내달아 오는 것이었다.
산중에 매복해 있던 이각의 군사였다. 하후연이 그들을 맞서 싸우려는데 이번에는 오른쪽에서 곽사의 복병이 북을 울리고 아우성을 치며 맹렬히 몰려온다.
조조는 조인을 시켜 싸우게 하였다.
어지러운 말굽 아래 먼지는 구름처럼 일어나고, 석양 빛에 무수한 창검이 부딪쳐 번쩍거렸다.
조조가 뒤를 돌아다 보니 뒤쫒던 군사들은 협곡위에 매복한 동탁의 군사들이 내던지는 돌과 바위에 전진을 하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었다.
그런데다가 앞에는 좌우와 정면에서 동탁의 군사와 여포에게 협공을 당하는 처지인지라 난감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하후돈은 십여 합을 싸우다가 자신을 잃고 돌아서자, 여포가 철기(鐵騎)를 몰아 덮쳐온다.
그러면서 조조를 발견하더니,
"조조가 저 놈이다! 저놈을 잡아라!..."하고 고함을 치며 달려오는 것이었다.
이쯤 되다 보니 조조는 갑자기 자신감을 잃었다.
그리하여 하후연의 지원을 받아가며 결사적으로 달려, 간신히 적의 포위망을 벗어났다.
그리하여 날이 캄캄하게 어두웠을 무렵에 어느 산모퉁이에서 안도의 숨을 내쉬며 패잔한 부하들을 수습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 부근에 매복해 있던 형양 태수 서영의 군사가 아우성을 치며 몰려오는 것이었다.
조조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또다시 말을 몰아 도망을 쳤다. 그러자 적장 서영이 많은 부하들을 이끌고 조조의 뒤를 맹렬히 추격해 왔다.
화살이 빗발치는 와중에, 문득 화살 한 대가 <딱!>하고 조조의 등허리에 꽂혔다. 순간 조조는 눈앞이 아찔해 왔다. 조조는 화살을 뽑아 버리면서도 그냥 달려갔다.
남은 힘을 다하여 쫒겨서 겨우 살아났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 이번에는 가까운 숲에서 느닷없이 나타난 군사들이 창검을 휘둘러 조조의 볼기짝과 등허리를 찔렀다.
"으앗!"
조조는 이때만은 비명을 지르며, 달리는 말위에서 떨어질 뻔 하였다.
그러나 다행이 떨어지지는 않았고, 마상위에서 엎드려 버텼다.
등허리와 옆구리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려 말과 사람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이제는 죽었구나 !....)
그렇게 생각하며 본능적으로 도망을 치고 있었는데, 또 하나의 날카로운 시위 소리가 나더니 이번에는 조조가 타고 있던 말이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나가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바람에 조조는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러자 저만치서 적병 서넛이,
"앗 ! 저놈이 조조다!"
하고 외치며 번개같이 달려들었다.
조조는 고함을 치며 달려드는 적병 둘을 때려눕혔다.
그러나 이제는 진이 다해 꼼짝없이 잡히게 된 순간이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장수 하나가 비호같이 나타나며 소리를 지른다.
"이놈들아! 내 칼을 받아라!"
고함과 동시에 적병의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앗 ! 당신은 누구요?"
"아 ! 형님 ! 저올시다. 조홍(曺洪)!. 주상(主上)께서 이게 웬일이십니까!"
달려들어 몸을 잡아 일으켜 주는 사람은 조조의 아우 조홍이었다.
그 역시 적에게 몰려 도망을 치다가 조조를 발견하고 달려온 것이었다.
"아, 홍이냐 !"
"형님! 어서 빨리 정신차리고 도망을 가십시다.
여기에 이러고 있다가는 큰일납니다."
"아아, 나는 이젠 죽은 목숨이다. 내가 무슨 힘으로 도망을 가겠느냐 !"
"형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 약한 생각 하지 마시고 어서 피하기나 하십시다."
"아니야 ! 나는 못 가겠어. 나를 내버려두고, 너나 빨리 도망을 가거라."
조조가 그렇게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전신에 작은 상처는 관두고라도 큰 상처만 이미 네댓 군데나 입어서 전신이 피투성이가 된 데다가 피를 많이 흘리다 보니 도저히 몸을 일으킬 기력조차 없었던 것이었다.
※ 삼국지(三國志)제45편. ※
조조의 대패 (下)
조조 겨우 목숨만을 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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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은 등허리를 들이대고 조조에게 말했다.
"형님! 그만한 상처를 가지고 무슨 약한 소리를 하십니까. 제가 업고 갈테니 어서 업히십시오.
이 조홍이는 죽어도 좋지만 이 난세
에 형님 같은 분은 반드시 살아나셔
야 합니다.
적병이 다시 오기 전에 어서 이 자리를 떠나십시다."
조홍은 조조를 등에 업고 무작정 산기슭을 달려 내려왔다.
바로 그때, 서영의 군사들이 조조를 찾아 헤매는 소리가 들린다.
조홍은 조조를 업고 두 사람은 피투성이가 된 채로 숨죽여 산기슭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정작 산기슭에 내려와 보니 눈앞에는 커다란 강이 가로막혀 있었다.
앞에는 강이 가로막혔고, 뒤에서는 자신들을 찾는 수색이 다가 오고, 게다가 몸에난 상처가 심하여 운신을 할 수 없으니 그야말로 진퇴유곡이었다.
"아아, 나의 운명은 이제 그만인 것 같다.
홍아! 적에게 죽어서 천추에 한을 남기고 싶지 않으니 깨끗이 자결(自決)을 할 수 있도록 나를 내려놓아 다오!"
조조는 숨을 헐떡이며 애걸하듯 중얼거렸다.
"안 됩니다 형님! 자결을 하시다니 형님답지 않게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앞은 강으로 가로 막혔고, 뒤에는 추격대가 있으니, 우리가 무슨 재주로 살아난단 말이냐?"
"궁즉통(窮卽通)이라 하였으니 살아날 길이 있겠지요.... 이 강을 헤엄쳐 건너기로 하겠습니다."
조홍은 조조를 일단 땅에 내려놓고 갑옷을 벗어 버리더니 칼 한자루만을 입에 물고 다시 조조를 등에 업고 강물속으로 들어갔다.
달빛에 번득이는 강물은 유유히 흘렀다. 두 사람은 물결따라 흘러가면서 한 덩어리로 헤엄을 쳤다.
그리고는 서서히 반대편 기슭으로 접근해 갔다.
그리하여 건너편 기슭에 거진 다가와 보니 강 언덕 위에서는 갑자기 횃불을 든 병사들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서영의 병사들이었다.
"앗, 저게 뭐야? 귀신인가, 사람인가?"
그들은 헤엄쳐 오고 있는 조홍과 그에게 업혀있는 조조를 보자 자기들 대장에게 보고한다.
"지금 이 시간에 강을 건너오는 놈이라면 조조의 패잔병이 분명하다. 저놈들을 잡아라!"
대장인 듯한 자의 명령이 떨어졌다.
설마하니, 그들도 적의 대장 조조가 그꼴로 강을 건너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또다시 화살이 연방 날라왔다.
조홍은 조조를 업은 채 죽을 힘을 다해 적들을 피해서 어둠에 뭍힌 강 기슭에 닿았다.
그러나 점점 다가오는 적을 피할 도리가 없어서 절망에 잠겨 있노라니까, 바로 그때 한떼의 군사가 이리로 달려오는 것이 보인다.
"앗! 저건 또 뭐냐?"
조조와 조홍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살펴보니, 그들은 어젯밤부터 대장의 행방을 찾고 있던 하후돈, 하후연과 그들의 군졸이었다.
"오, 대장님이 여기 계셨구나!"
그들은 조조를 발견하자 크게 기뻐하면서 조조를 추격해 오던 적병들과 한바탕 싸워서 물리쳤다.
그리고 나서 조조를 둘러싸고 숲속으로 피신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오백여 기의 군마가 웅성거리며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저건 또 누구냐?"
그들은 숲속에서 숨죽이고 나타난 군마의 행색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적이 아니라 조조의 가신인 조인, 이전, 악진 세 사람과 쫒겨온 그들의 병사들이었다.
"오오, 그대들도 살아 있었는가?"
"대장님 무사하셨습니까?"
조조와 부장들은 손을 마주잡고 감격의 소리를 외쳤다.
싸움은 참패에 참패를 했지만, 살아 남았다는 사실 만으로도 서로가 그지없이 감격하였던 것이다.
조조는 부하들과의 만남을 한없이 기뻐하면서,
"내가 오늘 새벽에 적에게 궁지에 몰려 자결을 하려고 하였는데, 큰 잘못을 저지를 뻔 하였소.
적어도 한 군대의 우두머리 되는 사람은 죽음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될 일이오.
나는 비록 싸움에는 졌지만, 이번 싸움에서 많은 것을 깨달았소.
내가 만약 새벽에 자결을 했더라면 여러 장수들을 못 만났을 것이 아니오?"
하고 감탄하였다.
"대장께서 자결을 하시려 하였다니, 그게 웬 말씀입니까?"
"그러니까 내가 잘못 생각했었다는 말이오. 싸움에는 지면 지는 대로 깨닫는 일이 많은가 보오."
조조는 참패한 것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 아니라, 사실로 그렇게 생각되었다.
돌아보니 일만 여명을 거느리고 떠났던 군대가 지금은 고작 오백여 명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조조는 재기의 희망을 결코 잃지 않았다.
"일단 하내(河內)로 돌아가서 재기를 노리기로 합시다."
조조가 부장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물론 그래야겠지요. 언젠가는 설욕의 날이 있을 것입니다."
하후돈과 조인 등도 조조의 말에 용기를 내어 대답 하였다..
오백여 명의 패잔병들은 새벽 공기를 가르며 처량한 행군을 시작하였다.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소리조차 구슬프게 들리는 그들의 신세였다.
양가에 태어나서 고생을 모르고 자라난 조조도 이번만은 세상 일이 뜻대로 안 된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일찍이 어떤 예언자는 나를 난세
(亂世)의 간웅(姦雄)이 될 것이라고 했었다.
그렇다! 간웅이면 간웅 답게 한번 일어난 이상 백난을 무릅쓰고 끝까지 싸워 보자!)
조조는 새벽 하늘의 별들을 우러러
보며 묵묵히 걸어가면서 속으로는 그런 다짐을 곱씹고 있었다.
다음 제46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