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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말씀이 우리를 살게 만듭니다
사순 제5주일(요한 복음 11장 1~45절)
예전에 유럽여행을 갔을 때, 스위스에서 번지점프를 한 적이 있습니다. 90m 정도 되는 계곡에서 뛰어내리는 거였는데, 처음에는 별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계곡 위를 올라가서 밑을 보니까, 정신도 아찔하고 몸에 매는 줄도 얇아서 끊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걱정을 하면서 뒷줄에 가서 섰는데, 앞에 있는 사람들, 특히 여자들이 너무 신나게 잘 뛰어내리고 있었습니다. 여자들도 뛰는데..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그 때부터 주문을 외기 시작했습니다.
‘하나 둘 셋 하면 뛴다...’ 그 말만 계속 반복하고 밑도 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뛰어내렸는데, 낙하하는 동안 심장의 압박이 굉장했습니다. 처음에는 ‘으으으’ 하다가 나중에는 ‘아~’ 하며 큰 소리를 냈습니다. 그러다가 턱 하는 느낌과 함께 줄이 다해서 걸렸는데, 그 때 ‘휴우’ 하는 안도의 한 숨 소리와 함께 굉장하다는 탄성을 질렀던 적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라자로도 깊은 절망과 죽음의 나락으로 한 없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라자로를 붙들어 준 것이 바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하는 주님의 말씀이 라자로의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어 놓았고, 라자로 가정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 놓았던 겁니다. 이처럼 주님의 말씀은 힘이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믿고 의지하고 신뢰하고 붙든다면, 라자로처럼 희망할 수 있고,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저에게도 주님의 말씀이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던 체험들이 있었는데요.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작년에 복음 묵상 글을 거의 매일 썼었는데요. 글만 쓰는 게 아니라서 시간의 제한이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책상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하면 ‘말이 되는 글을 시간 내에 완성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늘 있었고, 시계를 자주 쳐다보았는데요. 어느 날 부턴가 시계 옆에 무심코 놓아둔 말씀 달력의 말씀 한 구절이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2월 달부터 죽 그 자리에 펴 놓았던 것인데, 한 참이 지나서야 그 말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마르코 복음 5장 36절의 말씀인데요. 그 말씀이 이렇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급하고 쫓기는 마음에 시계를 보게 되면, 동시에 시계 옆에 있는 그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면서 ‘시간 내에 쓸 수 있다.’ 는 잔잔한 신뢰와 믿음이 생기곤 했는데요. 그래서인지 매일 두 가지 감정을 체험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는 복음 앞에 섰을 때 막연한 느낌과 함께 ‘묵상 글을 제 시간에 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의 감정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께서 도와 주시면 쓸 수 있을 거야...’ 하는 믿음의 감정입니다. 결국 완성된 묵상 글을 보며, 믿음이 결실을 맺는 다는 것을 매일 체험 하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작년 8월쯤에 전반기를 마무리 하는 피정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요. 피정 하는 동안상반기에 부족했던 모습들을 되돌아보고, 그것들을 보완하는 일들과 내가 해야 할 일들을 계획해 보았습니다. 예를 들면 아이들 이름 외우기, 청년 모임 활성화하기, 미사 분위기를 좀 더 밝게 하기, 아이들이나 중고등부 학생들, 그리고 청년들에게 들릴 수 있는 강론을 해 보는 것들이었는데요.
나름대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긴 세웠지만, ‘힘들어서 포기하면 어떻게 하나... 아무런 변화도 없으면 어떻게 하나... 사람들이 안 모이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와 중에 ‘아브라함’ 이라는 책을 읽고 있었는데, 거기서 발견한 성경 구절이 저에게 큰 힘을 불어 넣어준 것 같습니다. 하느님이 늙은 사라에게 이사악을 낳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사라가 믿을 수 있도록 확신을 주시기 위해서 들려주신 말씀인데요. 창세기 18장 14절의 말씀입니다.
너무 어려워 주님이 못할 일이라도 있다는 말이냐
그 말씀이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내 마음에 들어와, 희망하고 긍정하고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작년 끝자락에 활동 안 하는 청년들과 냉담자들에게 관심을 많이 가졌었는데요. 냉담자들이 다시 성당에 나오게 하는 일도 쉽지 않고, 활동 안 하는 청년들이 모임이나 활동에 참여하도록 하는 일도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청년 미사 공지 사항 때 활동 안 하는 청년들에게 “활동하라는 게 아니고, 관심을 가지려고 하는 거니까 잠깐만 남아주세요~” 해도 남는 사람이 없고, 특전미사나 주일 오전에 나오는 청년들에게 ‘잠깐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한 3분만 이야기해요~’ 라고 말해도 대부분은 그냥 갔던 것 같습니다.
또 냉담자들에게 전화하다보면 신부한테 전화 받아 본 적도 없고, 보좌 신부라는 명칭을 모르는 사람도 있어서 제가 ‘안녕하세요~ 주안8동 보좌 신부에요~’ 하면 ‘예? 보좌 뭐요?’ 하는 사람도 있고, 냉랭하고 차갑게 전화를 받으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그런 일을 겪으면 때로 자존심도 상하고, 기분이 나쁘기도 하고, ‘뭐하고 있는 건가...’ 하는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는데요. 보통 바쁠 때는 그런 생각이 잘 안 들지만, 월요일같이 쉬는 날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면, 그런 생각들이 밀려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책을 펴 들고, 답을 주실 때까지.. .위로를 주실 때까지.. 성경책을 천천히 읽었는데, 한참을 읽다가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 구절이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2장 20절에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라는 말씀인데요. 그 말씀을 읽으면서, 마음속에서 ‘다시 열심히 해보자... 끝까지 열심히 해보자...’ 라는 마음과 열정이 생기는 것을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말씀은 우리를 살리고 위로하고 희망을 주는 힘과 능력이 있습니다.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붙든다면 위로와 희망을 체험할 뿐 아니라, 주님이 보여주시는 놀라운 기적들을 체험할 수 있을 겁니다. 오늘 하루, 주님의 말씀을 듣고 힘을 내 봅시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어제 술자리에서 냉담하고 계신 형제님이
“신부님이 너무 잘 생긴 것 같아요~
요즘 아이들 말로 훈남이신 것 같애~”
그랬더니 바오로 형제님이
“훈남? 잘생긴 사람보고 ‘동안’ 이라고 하는 거 아닌가?”
하셔서 많이 웃었다.
- 김기현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