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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가해 2월25일 토요일 [(녹) 연중 제7주간 토요일]
[수도회] 행복의 나라로 가기 위한 태도와 마음가짐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집회 17,1-15
† 복음 마르 10,13-16
◈ 오늘의 묵상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으로 어린이를 내세우신 것은 이례적입니다.
어린이는 예나 지금이나 세상을 알아갈수록 먹고 갖는 것에 욕심을
내고, 질투하며 사랑을 독점하려 하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떼를
쓰고 고집을 부리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노출된 요즘 어린이에게 순진함이나 단순함은 어울리지 않는
듯싶습니다.
그런데도 어린이와 같이 되어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 속에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어린이의 숨겨진 마음이
있습니다. 엄마에게 한참을 혼나고도 울면서 다시 엄마에게 안기는
것이 어린이입니다. 욕심을 한껏 부리다가도 이내 잊고 작은 것에 다시
행복해지기도 합니다. 어른들처럼 생각이 많아서 잠을 못 이루는 일도
없고, 누군가를 미워하면 기억 창고에 담아 두고 늘 꺼내 드는
어른들과는 다릅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가 상상하듯 천사 같은 사람들만 가는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느님께서 주신 분별력과 혀와 눈, 그리고 귀와
마음을 통해 “그분의 위대하신 영광을 보고”, “그분의 영광스러운
소리”를 듣는 사람에게 열린 나라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욕심에 매이지
않고 오히려, “인생이란 그 세월 풀과 같아서, 들꽃처럼 그렇게
피어나지만, 바람 한 번 스쳐도 이내 사라져, 그 있던 자리조차 알 길이
없네.”라는 시편 저자의 말씀에 따라 어린이처럼 매 순간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열린 나라입니다. 내가 꿈꾸고 있는 천국이 정말
이런 모습인지 되물어 보면 좋겠습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 매일 미사 -
◈ [인천] 어린이와 같은 순수함을 갖추기 위해서 노력을
2017년 가해 2월25일 연중 제7주간 토요일
제1독서
<주님께서는 당신 모습으로 사람을 만드셨다.>
▥ 집회서의 말씀입니다. 17,1-15
복음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3-16
성지 미사를 끝내고서 미사를 마치고 돌아가시는 분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데, 저 멀리 아이 둘이 재미있게 노는 모습이 보입니다. 둘이
서로 잘 아는 친구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둘은 성지 안에서 처음
만났고, 미사 시간 동안 함께 놀았던 것입니다. 모르는 사이지만 금방
친해서 함께 놀 수 있었던 것은 왜 일까요? 상대방에 대한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저것 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함께 놀 수가 있는 것이지요.
사실 어른들은 그렇지를 못합니다. 며칠 전에 어떤 책에서 본 충격적인
글이 생각납니다. 서울의 한 중산층 학부모가 했다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사교육이 없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사교육에 들어가는
돈이 자신들에게 부담이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 사교육이
없어져서 잘 못사는 아이들에게 내 아들이 뒤쳐진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힘듭니다.”
어른들은 이익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내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그렇지 못한 지를 먼저 판단해보고 함께 할 지를 결정합니다.
그러다보니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게
됩니다. 정말로 도움이 될 사람인지, 내게 유익한 사람인지를 말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도움이 되고, 유익한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의 직업이
대부분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기꾼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부족한 존재이지요. 따라서 부족한 부분이 보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부족한 부분은 전혀 보이지 않고, 내게 도움이 되고
유익한 부분만 보인다면 어떨까요? 자신의 부족함은 속이고
상대방에게 잘 보이려고만 하는 사람으로, 바로 사기꾼입니다.
있는 그대로 모습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사람이 바로 사기꾼을 피하고
진솔한 만남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갖춘 이가 누구일까요?
바로 어린이와 같이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나 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런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일제 강점기에 어떤 사람이 죽을병에
걸렸는데, 아주 용한 의원이 3년 된 홍삼을 먹으면 산다는 것입니다.
그는 5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으로 3년 된 홍삼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찾지 못하고 그만 죽고 말았지요. 이 소식을 들은 동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의원의 말을 들었을 때 홍삼을 밭에 심었으면 3년 만에 먹고 살았을
것을....”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어린이와 같은 사람만을 찾지 마십시오.
중요한 것은 자신이 그런 어린이와 같은 순수함을 갖추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입니다.
작은 것에 감사하지 않는 자는 큰 것에도 감사하지 않는다(에스토니아).
어린이들과 함께.
빌 게이츠의 좋은 습관("독서MBA" 중에서)
1.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일하지 않는다. 돈은 오히려 나를 피곤하게
만들 뿐이다.
2. 돈은 절대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사백억 달러를 가진
사람이 일 달러를 가진 사람보다 행복하지 않을 때도 많다.
3. 나는 이 재산을 잠시 맡아둔 것뿐이다. 최대한 빨리 가장 적당한
용도를 찾아 사용해야 한다.
4. 당신이 일억 달러를 가지고 있다면 돈이란 한낱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돈은 정말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다.
5. 이미 습관적인 향락에 빠진 사람은 다시 평범한 삶을 살 수 없다.
나는 언제나 보통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기를 원한다. 나는 언제나
향락을 경계한다.
6. 나는 옷을 고를 때도 브랜드나 가격을 중요시하지 않는다. 입어서
잘 맞고 편안하면 그것으로 만족하다.
7. 단돈 일 원을 쓰더라도 그 순간 우리는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
8. 나는 중요한 회의가 아니라면 편한 바지에 라운드 티셔츠를 입는다.
그리고 편안한 운동화를 신는다. 물론 이 중에 명품은 단 한 개도 없다.
9. 나는 성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인간관계라고
생각한다. 나는 창업 자금 대부분을 대학 때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충당했다. 부모에게 받은 돈은 한 푼도 없었다.
10. 물론 돈이 자신들의 성공을 상징하기는 하지만 다른 어떤 특별한
의미를 주지는 않는다.
여러분에게 돈은 어떤 의미입니까? 사실 성경을 보면 돈에 대해서
무조건 버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돈의 사용에 대한 경고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조건 벌어들이는 돈이
아니라, 돈에 어떤 의미를 두고서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아닐까요?
빌 게이츠.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수도회] 행복의 나라로 가기 위한 태도와 마음가짐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7년 가해 2월25일 연중 제7주간 토요일 마르 10,13-16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마르 10,15)
행복의 나라로 가기 위한 태도와 마음가짐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외적 태도와
내적 마음가짐에 대해 가르치십니다. 첫 부분(10,13-14)에서
그분께서는 쓰다듬어 달라고 어린이를 데리고 온 이들을 꾸짖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10,14)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회적으로 신분이 낮거나 소외받는
이들을 대하는 태도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권세 있고
부요한 이들의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힘없으며, 굶주리고 슬퍼하는
이들의 차지라 하십니다. 따라서 어린이처럼 그렇게 힘없고 누구에겐가
의지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이들이 예수님과 만나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하느님의 축복과 정의와 자비로 가는 길목을 막는
것이 불의요 폭력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사랑스러운 어린이 몇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보잘것없고 가난한 이들 또한 그 어떤
차별도 없이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복음의 기쁨을 맛보도록
초대되었음을 상기시켜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든 하느님과의
친교, 예수님과의 거룩한 교제를 이루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을 살리고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사회적 사랑’입니다.
다음으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각자의
마음자세를 다음과 같이 알려주십니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10,15)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께서 인간에서 거저 주시는 은총의 선물입니다.
선물이니 어린이와 같은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하십니다.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일 수 있는 ‘어린이와 같은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온전히 신뢰하고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마음, 주어진 것에
기뻐하는 마음, 겸손하게 순종하는 마음, 계산하고 판단하지 않고
순수한 눈으로 바라보는 마음, 사랑을 받기 위해 행동하고 사랑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마음 등을 말할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이런 어린이의 마음을 지녀야 한다
하십니다. 믿지 않고 의심하고, 자신에게 얼마나 이로울지를 따지며,
자신의 공적을 내세우며 보상을 바란다면 참 행복의 나라에 들어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물질주의가 극도로 팽창하고 돈의 힘이 막강해진
오늘날 현세적 성공을 찾는 소경이 되어선 안되겠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한사람 한사람을 극진히 사랑하시기에 끊임없이
은총의 선물을 주심을 압니다. 따라서 마음의 문을 열고, 내 기준으로
이것저것 가려서 받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믿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겠습니다. 심지어 감당하기 힘든 고통과 시련이 다가온다
하여도, 주님께서는 그것을 통해서도 가늠할 수 없는 은총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어떤 처지에서든 하느님을 갈망합시다. 육화의 겸손과
수난의 사랑을 통해 행복의 나라로 가는 길을 가르쳐주신 예수님을
기쁜 마음으로 따라갑시다.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하느님의
마음으로 소중히 여겨 더불어 사랑의 나라에 머물게 하고, 전적인
신뢰와 단순한 수용과 순수한 눈길로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며...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 [수도회] 살아 있는 존재 자체로 사랑받고 대우받는
2017년 가해 2월25일 연중 제7주간 토요일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 마르 10,13-16
살아 있는 존재 자체로 사랑받고 대우받는
새로이 집을 장만한 한 가정에 축복예식을 해주러 갔다가 세 살짜리
꼬마가 노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직 말도 잘 못하는
애기였는데 커다란 태플릿 PC를 자유자재로 다루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한 유치원을 방문했다가 6살짜리 유치원생이 쓴 시를 하나
봤습니다. ‘인생 운운’ 하며 내용이 아주 그럴듯한 시를 한수 잘 지어 또
크게 놀랐습니다.
어른 입장에서 세 살, 여섯 살짜리 아이들 쉽게 무시합니다. ‘아직 사람
되려면 멀었겠지. 녀석들이 무슨 생각이나 하고 살까?’ 하면서 아예
그들 존재 자체를 무시해버립니다. ‘아직 철도 없는 녀석들인지 말귀나
제대로 알아듣겠어?’하면서 투명인간 취급해버립니다. 그러면서
‘너희들은 아직 어리니 어른인 내 말을 들어야지. 내가 원하는 데로
행동해야지.’하면서 어른들의 부속품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유심히 관찰해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아직 어려도 다들 나름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들 나름대로 고민도 있고 상처도 받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도 선호하는 것이 있고 계획도 있었으며, 자신들의
판단 기준에 따라 선택할 줄 알았습니다.
이런 면에서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선구자적인 분이셨습니다.
유아사망률이 아주 높았으며 성인 남성 위주의 사회였던 예수님 시대
당시 어린이들은 인간취급도 못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당시 그런 사회 흐름에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린이들이
예수님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어린이들 사이를 가로막는 제자들을
꾸짖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마르코복음 10장 14절)
예수님 앞에는 모든 인간 존재가 다 소중했던 것입니다. 남자든
여자든, 어른이든 어린이이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건강한
사람이든 임종환자이든, 그 누구든지 생명이 붙어있는 이상 당신
사랑과 구원의 대상이었습니다. 각 개별 인간 존재 자체가 그분에게는
사랑스럽고 소중했던 것입니다. 그 분 앞에 살아있는 한 인간 존재는
다른 그 어떤 대상들보다 가치 있고 의미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가 여러 측면에서 힘겨워지다보니, 또 그로 인해
받게 되는 스트레스가 하늘을 찌릅니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사회적
약자들에게 분풀이를 하게 됩니다. 특별히 가정 안에서 가장 힘없는
어린이들이 피해를 입고 고통을 당합니다. 또 다른 약자들인 노인들과
환우들이 더 큰 소외를 당합니다.
뿐만 아니라 말 못하는 반려동물들이 입는 피해도 만만치 않다고
합니다. 아무런 죄도 없는 그들이 슬슬 주인 눈치를 보고 주인의
기분상태에 민감해서 받게 되는 스트레스가 아주 크답니다. 너무나
쉽게 학대나 유기에 노출된답니다.
얼마 전에 구조시킨 유기견 ‘원철이’를 한 따뜻한 가정에 입양시키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 집 거실에 도착하자마자 그 새 저와 정이 들었던지
제 옆에 꼭 붙어 앉아있는데, 그 모습이 좌불안석이었습니다. 녀석의
눈동자는 잔뜩 겁을 먹은 슬픈 눈동자였습니다. 녀석 머릿속은 아마도
이런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습니다. ‘여기는 대체 어딘가? 내
미래는 또 어떻게 되는 것인가? 내 인생의 종착지는 과연 어디인가?’
극단적 물질만능주의와 천박한 자본주의의 결과가 참담한 오늘 우리의
현실입니다. 극단적 부익부빈익빈 현상과 배금주의로 인해 우리 사회의
약자들이 당하는 피해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뭔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뭔가 큰 기여를 해서가 아니라, 생명 그
자체로 존중받는 사회로 회복되기를 희망합니다. 살아 있는 존재
자체로 사랑받고 대우받는 그런 인간다운 세상의 건설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겠는지 더 많은 고민을 해봐야겠습니다.
- 살레시오회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 [수원] 하늘나라는 어린이와 같은 사람의 것 /
조욱현 토마스 신부|오늘의 강론 묵상
2017년 가해 2월25일 연중 제7주간 토요일:
하늘나라는 어린이와 같은 사람의 것
복음: 마르 10,13-16: 순진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여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어린이들을 놓고 제자들에게 하느님의
나라를 바라는 사람들이 가져야할 자세를 말씀하신다. 하느님의
나라에 갈 수 있는 조건은 아무 것도 없다. 단순히 어린이처럼
처신하는 것임을 말씀하신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갈 수 없다.”(15절). 어린이들이
부모를 바라보듯이 제자들도 하느님을 그렇게 바라보고 그분이
원하시는 뜻을 받아들이고 행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아버지가 아들을, 스승이 제자나 어린이를 축복하는
관습이 있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아이들이 축복을 받도록 예수님께
데려왔던 것 같다. 여기서 제자들은 어린이들을 데리고 온 사람들을
나무랐을 것이다. 어린 아이들 때문에 예수님을 번거롭게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언짢아하시면서 어린이들을
맞아주시고는 하느님의 나라가 이런 이들의 것이라고 하셨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14절)
그 어린이는 하느님을 거슬러 많은 죄를 지은 사람일 수도 있고, 갓
태어난 아이나,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수도 있다. 이 모든 사람들은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로 누구든지 믿음을 갖고 세례를 받는 은총에서
제외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에게 온
아이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셨다.
어린이는 벌어먹지 않고 부모가 주는 대로 받는다. 이처럼 하느님
나라는 벌어들이는 것이 아니다. 율법주의자나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같이 율법을 지키든지 또 다른 방법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벌어들인다고
생각하면 큰 잘못이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
하느님의 뜻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뜻을 따르는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 즉 하느님은 지금 이 순간도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이므로 그분을 맞아들일 생각을 하여야 한다.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이 거저 주시는 선물이다. 그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은 어린이와 같은 순진함과 자신의 마음을 비우는
자세이다. 흔히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지혜에 걸려
넘어진다. 하느님의 자비는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우리에게
주어졌다. 그것은 항상 하느님의 말씀에 온전히 따르는 것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그 선물을 어떻게 샤용 하느냐가 문제이다.
그것은 십자가와 죽음이라는 고통을 통하여 부활의 영광이 있었던 것과
같이 하느님의 나라 역시 세상의 지혜와 명예와 지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느님 나라는 어린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 가난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의탁하는 어린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에 있음을 우리도 알고 언제나 주님의 뜻을 생각하고 주님이 가신
길이 어떠한 길이었는지 묵상하며 순간순간을 살아가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 수원 교구 상하 성모세 성당 조욱현 토마스 신부 -
◈ [서울] 연중 제7주간 토요일
2017년 가해 2월25일 연중 제7주간 토요일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 마르 10,13-16
교우분들을 만나면 본당 신부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본당
신부님은 5년 있으면 임기를 채우고 다른 곳으로 가게 됩니다.
교우분들은 많은 본당 신부님을 만나게 됩니다. 활기차고, 사목에 대한
열정이 있고, 늘 바쁘게 지내는 신부님이 있습니다. 예산을 넉넉하게
지출하기도 하고, 행사가 매달 있어서 정신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늘 분주하고, 정신이 없었는데 과연 나의 신앙이 성장하고,
행복했는가를 돌아보면 아쉬움이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가하면
뜨거운 여름에 냉방을 틀지 않으시고, 추운 겨울에도 난방을 잘 하지
않는 신부님도 있습니다. 성서공부와 특강을 자주 하시고, 교우들과
함께 성무일도를 바치고, 언제나 성당에 계신 신부님이 있습니다.
고지식하고, 답답하고,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함께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분과 함께
했을 때가 영적으로 성장했고, 행복했던 것 같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행복은 성적순도 아니고, 행복은 무언가를 채워야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행복은 많이 알아야만 알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행복은 나누고, 비우고, 감사할 때 바람처럼 우리 곁에 머무는 것
같습니다.
강의를 할 때도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가능하면 쉬운 말을 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말은 강의를 하는 본인도 이해하기 어렵고, 본인도
이해하지 못하는 말을 전하는 것은 더욱 힘들기 때문입니다. 적절한
예화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강의를 듣는 분들은 위로를 받고 싶어
하십니다. 지지를 받고 싶어 하십니다. 그런 분들에게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것은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됩니다.
준비한 강의 자료를 장악해야 합니다. 눈을 감고 생각을 하면서 강의의
순서와 내용을 음미해야 합니다. 보험 설계사들은 자신들이 만나는
고객들에게 막힘없이 보험의 내용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자신감이
있습니다. 강의를 할 때도 그런 자세와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감사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강의를 짐으로 생각하면 잠도
오지 않고, 밥맛도 없어집니다. 그러나 강의를 하게 된 것을
축복이라고 생각하면 준비하기도 쉽고, 재미도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늘 기도하면서 준비해야 합니다. 이렇게 원칙을 알고
있으면서도 역시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많은 능력을 주셨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는 보고, 듣고, 느끼고, 맛보고, 만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이성이 있으며, 예술을
창조할 수 있는 감성이 있습니다. 우주와 세상의 시작을 사유할 수 있는
오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능력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이야기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창조하시고, 사람들의 영혼에 하느님의 숨결을
넣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숨결을 느끼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서 살 때,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지금 이곳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쓰레기를 담으면 쓰레기통이 됩니다. 보석을 담으면 보석상자가
됩니다. ‘우리들 마음에 시기, 질투, 탐욕, 분노, 미움, 원한’의 쓰레기를
담으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하느님 나라가 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신 이 세상이 하느님 나라입니다. 우리 마음에
‘용서, 희생, 나눔, 배려, 인내, 사랑’의 보석을 담으면 지금 내가 사는
이곳이 하느님 나라가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어린이처럼 순수한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신부 -
◈ [청주] 어린이와 같은 사람|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7년 가해 2월25일 연중 제7주간 토요일 (마르10,13-16)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
믿는 이들은 하느님 나라를 희망합니다. 그러나 희망하는 모든 사람이
다 하느님나라를 차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사람은 ‘어린이’가 아니라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린이와 같은 순수함을
회복하여 거듭 태어난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유대사회에서는 12세이하)와 같은 사람이라는 의미는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어린아이는 어른과 달리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취사선택 없이 받아들입니다.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싫은 것은 뿌리치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합니다. 부모를 떠나면 죽는 줄 압니다. 잠시 딴 짓을 하다가도
부모가 안 보이면 놀라고 겁을 내어 다시 부모의 품을 찾게 됩니다.
또한 정직합니다. 잘못을 꾸짖으면 금방 반성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이것이 아이들의 특징입니다. “순진무구,
천진난만!”
가정방문을 하게 되었는데 아직 글을 깨우치지도 못한 어린아이가
있었습니다. 기도를 하라 했더니 ‘식사 전 기도, 주님의 기도,
성모송’을 후딱 외워 내려갔습니다. 내용의 의미를 알지 못하지만 늘
부모와 함께 기도를 하니까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가정에는 18개월이 된 아이였습니다. 어른들이 기도를 하는
중에는 손을 모으고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기도를 마치며 안수를 해
드렸는데 어린아이가 벌떡 일어서더니 자기 할머니에게 가서 두 손을
펴서 머리에 얹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그래서 제가
그를 ‘미래의 신부님’이라고 칭찬하고 왔습니다.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어린이가 되어서 하느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실천할 때 눈이 맑아지고 하느님을 더 깊이 만나게 되고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약삭빠르게 머리를 굴리고 계산을 하면 주님과 점점 더
멀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행할 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분명히 얻게 됩니다.
순수하고 단순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을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어른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어린이들의 축복을 가로막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어린이는 어른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어떤
분들은 “신앙은 자유”라는 이론을 내세워 ‘유아세례’, ‘첫영성체’에
무관심한 분이 계십니다. “나중에 커서 스스로 종교를 선택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 무지한
부모입니다. 신자라면 마땅히 종교교육을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교육의 의무와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의 교육문제를 놓고 “나중에 커서
스스로 공부하게 될 때까지 신나게 놀아라.”하십니까?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중에 커서 스스로 배워가는 것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보여주고 가르치며 신앙의 근본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나중에 커서 신앙의 가치와 필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부모의 기도와 가르침이 큰 역사를 이룹니다. 부모는 자녀들이
하느님의 축복 속에서 자랄 수 있도록 협력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공부할 때, 입시나 먼 길을 떠날 때, 군대 갈 때, 결혼을 할 때....
하느님의 축복을 청해주는 부모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 미룰 수 없는 사랑에 눈뜨기를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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