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미선 인문숲사회적협동조합 대표=추천해준 책이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예요.
김종희 문화공간 빈빈 대표=삶은 여행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 책을 보면서 순간순간 기억, 기록 그리고 나에 대한 성찰, 사유, 세계를 바라보는 눈, 이런 것들이 마치 태어나서 지금까지 삶의 여행길에서 마주했던 풍경처럼 저에게 다가왔어요. 우리가 태어나서 죽음으로 가는 지난한 삶의 여행에서 만날 수 있는 모든 사유를 이 책에서 제시했더라고요. 최근에 만났던 책이고, 또 천천히 아껴서 읽는 책이기도 하고, 어느 때는 간이역에서 기차를 먼저 보내는 느린 마음으로도 보고 싶은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최미선=이 책에서 여러 철학자가 나와요. 간이역에 머물듯이. 가장 인상 깊었던 철학자가 있을까요?
김종희=에피쿠로스가 가장 인상에 남았습니다. 전에 에피쿠로스를 봤을 때는 지식으로 봤는데요. 내가 힘든 것, 내가 괴로운 것은 불필요한 욕망을 추구하기 때문이죠. 모든 괴로움과 모든 삶의 고뇌의 원인이 나인 줄 모른 채로 항상 외부에서 원인을 찾잖아요. 에피쿠로스가 얘기했던 텅 빈 쾌락으로부터의 자유, 텅 빈 쾌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 또 텅 빈 쾌락이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는 그 어떤 힘, 여기에서 야, 진짜 고전은 위대하다, 사람은 물질로서 죽었지만 그가 걸었던 정신은 영원히 흐르는구나. 그래서 어느 시대 어느 시기 어느 집에 어떤 물로 태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구나, 하는 걸 느꼈습니다. 그 텅 빈 쾌락이 제가 가지고 있는 이 감성이라는 우물 또는 이성이라는 이 우물을 끊임없이 첨벙거리는 두레박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저에게 텅 빈 쾌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용기는 바로 제 감각의 우물을 첨벙거리는 두레박처럼 다가왔습니다.
집착에서 오는 고통을 벗어나려면
욕망이 ‘텅 빈 쾌락’임을 알아차리고
객체화, 대상화하는 힘을 길러야
최미선=텅 빈 쾌락은 어떤 걸까요?
김종희=내가 가질 수 없는, 소유할 수 없는 것임에도 그것을 소유하려고 하는 거죠. 사랑을 하게 되면 그 사람이 내 생각 속으로 들어와서 나의 프레임대로 움직여주길 바라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잖아요. 감각적인 욕망.
최미선=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죠.
김종희=그 감각적인 욕망, 프레임에 들어오지 않을 때 우리가 보통 집착한다거나, 서운해한다거나, 아파한다거나, 더 나아가서 원망까지 가서 결국은 갈등하고 상처를 주잖아요. 이게 어쩌면 텅 빈 쾌락의 가장 실례가 되지 않을까, 비근한 예가 되지 않을까. 그 부분을 과감하게 놓을 수 있고 객체, 대상으로 인정하면서 사랑이라는 그 자체만 볼 수 있는 용기, 의식체계로 가는 게 좋은데, 가는 동안은 스스로 돌아 볼 수 있는 힘이 좀 부족하잖아요? 쾌락, 소유, 집착으로부터 내가 얼마만큼 자유로울 수 있는가가 관건인데 에피쿠로스는 그런 소유, 집착을 텅 빈 쾌락으로 본 거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나와 마주하지 않는 욕망, 거대한 정치적 욕망도 놓을 수 있고 거리감을 둘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때 오는 고통, 이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시작이 ‘아, 저것은 텅 빈 쾌락이구나.’ 하는 알아차림입니다.
최미선=선생님에게 텅 빈 쾌락은 뭔가요?
김종희=가장 가까운, 혹은 사랑을 하게 된다면 그 사람을 자기화하려고 하지 않을까, 김종희화하려고 하는 이런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는데 그런 부분을 안 만들려고 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아마 사랑이 오면 그런 마음이 또 생길 것 같아요.
최미선=사랑은 자기와의 투쟁인 것 같아요.
김종희=그것이 남녀 간의 사랑이든 혹은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이든 가족 간의 사랑이든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순간을 마주하기 때문에 에피쿠로스도 쾌락으로부터 쾌락의 층위를 보는 단어들을 만들지 않았을까요?
“그윽하게 보면 더 많이 보인다”
인생이라는 여행에서 만난 간이역
최미선=이 책을 읽어보면 정말 많은 철학자가 등장하거든요? 선생님이 평소에 좋아하는 철학자가 있다면, 그리고 자주 읽는 철학서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김종희=개인적으로 노자를 좋아합니다. 노자가 추구하는 언어 중에서 황홀, 무위자연, 많이 있지만 그윽함이라는 말 ‘현(玄)’을 좋아합니다.
최미선=여기서 현은 ‘검을 현’을 얘기하는 거죠?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 저, 김하현 역, 어크로스, 2021
작년 말에 큰딸 아이 책꽂이에서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를 발견했다. 소크라테스 급행열차? “테스 형”이라는 유명 가수의 노래도 유행했던 터라 책의 내용이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다. 저자인 에릭 와이너는 뉴욕 타임스 기자, 미국 공영라디오 방송인 NPR(National Public Radio)의 해외특파원 등 언론인으로 여러 나라 도시를 돌아다니며 자연재해, 질병, 쿠데타 등에 대한 기사를 썼고 현재는 워싱턴 D.C.에서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강연가로, 그리고 철학적 여행가로 살아가고 있다.
그는 그리스 아테네, 스위스 뇌샤텔, 미국 콩코드, 독일 프랑크푸르트, 영국 런던, 인도 아마다바드, 일본 쿄토, 프랑스 파리 등 자신이 선택한 14명의 위대한 사상가들이 사색에 빠진 곳, 그들의 생애나 그들의 철학적 의미와 관련 있는 지역을 기차로 여행하면서 이 책을 기록했다. 그는 자신이 기차를 이용해 철학 여행을 하는 이유는 기차가 생각의 속도로 자신을 여행 목적지에 데려다주기 때문이며, 그러기에 기차 여행은 자신이 철학을 생각하는데 있어 아주 유용하고 적절한 수단이었다고 말한다.
여행 수단이 다양해져서 기차 타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처럼 요즘 시대 일부러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도 많지 않지만, 그리고 철학이 세상의 모든 문제들에 대한 답을 제공해 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의미에서 기차와 비슷한 철학은 여전히 인류사회에서 중요하고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일반적인 철학 개론서와 달리 철학자들이 인류에게 제공하는 지혜를 유머러스하면서도 쉽게 우리 인생의 모든 단계에 적용해 볼 수 있게 써 내려갔다. 때문에 철학 전공자들이 볼 때엔 철학을 저널리즘화 한 것이 아닌가 비판도 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공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가 아니라 일반인들이 쉽게 철학자들의 요점을 깨닫고 삶에 적용해 볼 수 있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한 마디로 철학서를 읽는데 쉽고 재미있다. 대학마다 철학과가 문을 닫고 있는 현실 속에서 다시금 일상 속에서 철학이 여전히 이야기 되고 거기에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책에 나오는 14명의 철학자들의 사상을 몇 구절로 요약한다는 것은 참으로 많은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어리석은 일이지만 저자의 창조적인 서술 방식을 소개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목차대로 요약해 보려고 한다.
저자는 하루 혹은 인생 여정 전체를 새벽, 정오, 황혼으로 나누고, 각 단계마다 필요한 지혜를 소크라테스부터 보부아르까지, 동서양의 인물들을 망라하는 14명의 사상가들로부터 배울 필요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저자가 이런 방식으로 기록한 이유는 삶의 단계마다 필요한 지혜가 다르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새벽
어느 누구든 하루 혹은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는 단계가 있다. 저자는 이때 필요한 지혜를 다섯 가지를 소개한다. 우선 무언가 하루를 시작하려면 침대에서 나와야 한다. 이런 단계에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라는 자기 계발서의 지혜를 배우라고 한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야 할 이유, 즉 하루의 삶이든 인생 전체든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사명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소크라테스처럼 인간 자신의 행복, 의미 있는 삶, 정의를 실천하는 방법,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 궁금해 하고 질문하는 법을 배우라고 한. 비록 대답을 찾을 수 없을지라도 소크라테스처럼 질문하고 대화하기를 배울 것을 제안한다. 또한 루소처럼 걷는 법, 곧 루소의 자연주의를 배우라고 한다. 또한 소로(월든의 저자)가 간소한 삶, 고독, 자연주의를 지향한 것은 바로 보는 법을 익히기 위함이었다며 소로를 통해 보는 법을 배우라고 한다. 그리고 쇼펜하우어처럼 듣는 법, 곧 누군가를 연민하며 사랑하는 법, 귀를 빌려주고 마음을 빌려주는 법을 배우라고 한다.
정오
하루 혹은 인생을 본격적으로 살아가는 단계에서는 먼저 에피쿠로스처럼 즐기는 법을 배우라고 했다. 저자는 사람들이 흔히 갖고 있는 에피쿠로스에 대한 편견을 내려놓고 그의 쾌락과 단순함, 좋은 삶에 대한 사상으로 오늘날의 삶을 돌아볼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시몬 베유처럼 무언가에 관심을 기울이는 법을 배우라고 한다. 관심은 우리의 삶을 형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치열한 현실 사회 속에서 수단과 목적을 결코 혼돈하지 않도록 간디처럼 비폭력 방식의 싸우는 법을 배우라고 권한다. 그리고 공자를 통해 친절을 베푸는 법을 배우라고 한다. “친절은 전염될 수 있는가? 누군가는 시작을 해야 한다.”(304) 그리고 900년대 일본의 궁녀였던 세이 쇼나곤이 <마쿠라노 소시>(베갯머리 서책)에서 말한 것처럼 사물을 새로운 방식으로 보며 작은 것에 감사하는 법을 배우라고 한다.
황혼
하루 혹은 인생을 마감하는 황혼의 단계에서는 니체처럼 후회하지 않게 어떤 운명이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이상으로 사랑하고 주어진 하루를 활기차게 사는 법을 배우라고 권한다. 그리고 에픽테토스처럼 스스로 절제하고, 검소한 삶을 택하고 때때로 삶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들을 스스로 거부함으로써 역경에 대처할 수 있는 법을 배우라고 한다. 그리고 보부아르처럼 어떻게 늙어가야 할지, 잘 늙는 법을, 몽테뉴처럼 죽는 법, 곧 죽음에 어떻게 맞설지를 배울 것을 제안한다,
이처럼 저자는 인생에 있어 일어나고 묻고 걷고 보고 듣는 것을 배워야 할 새벽 단계, 그리고 가장 왕성한 인생의 황금기 곧 즐기고 무언가를 성취하고 싸우고 모든 관계를 이끌어 가야 하는 정오의 단계, 그리고 인생을 잘 다듬고 아름답게 잘 늙어야 할 황혼의 단계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옛 철학자들의 지혜가 유효함을 보여주었다. 이 책의 부제 “철학이 우리 인생에 스며드는 순간”은 아주 적절하게 그러한 저술 목적을 말해 준다.
김수영 목사(대영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