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절 범부로부터 열반에 이르는 단계
1 아난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삼매를 닦아서 증득하올 적에 열반에 채 이르지 못했을 때, 어떤 것을 건혜지라, 사십사심이라 하오며, 어느 점차까지 이르러야 수행하는 명목을 얻으며, 어디까지 나아가야 지중에 들었다 하며, 어떤 데를 등각보살이라 하나이까?”
“아난아, 착한 남자가 욕심과 애정이 말라 버리고, 육근과 앞엣것이 짝하지 아니하므로, 지금에 남아 있는 이 몸이 다시는 나지 않게 되며, 고집하던 마음이 훤칠하게 밝아져서 순전한 지혜뿐이며, 지혜의 체성이 밝고 뚜렷하여 시방세계가 환하게 맑아서, 마른 지혜만 있게 되는 것을 건혜지라 하니, 애욕의 습기가 처음 말라서, 여래의 법으로 흐르는 물과 어울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2 이 마음으로써 안으로 안으로 점점 들어가서, 뚜렷하고 미묘한 것이 비로소 열리고, 참되게 묘하고 뚜렷한 데서 더욱 참되게 미묘한 것을 발생하여, 묘한 신심이 항상 머물러 있고, 온갖 허망한 생각은 아주 없어져서 중도의 이치가 순전하고 참된 것을 신심주라 한다.
참된 싵심이 분명하여 온갖 것이 원통하여지고, 오음ㆍ 십이처 ㆍ십팔계가 다시 거리끼지 아니하게 되어, 지난 세상 오는 세상 수없는 겁 동안에, 몸을 버리고 몸을 받을 온갖 습기가 모두 앞에 나타나면, 이 사람은 온통으로 기억하여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은 것을 염심주라 한다.
묘하고 뚜렷한 것이 순전히 참되어졌고, 참된 정기가 현화하는 힘을 내어, 예전 습기가 한결같이 정미롭고 밝아졌으면, 이 정미롭고 밝은 것으로써 참되고 깨끗한 데로 나아가는 것을 정진심이라 한다.
정미롭고 밝은 마음이 앞에 나타나서 순전한 지혜뿐인 것을 혜심주라 한다.
지혜의 밝음을 그냥 유지하여 두루하고 고요하면, 고요하고 묘한 것이 항상 엉기어 있는 것을 정심주라 한다.
정심의 빛이 밝아지고 밝은 성품이 깊이 들어갔거든, 그대로 나아가기만 하고 물러가지 않는 것을 불퇴심이라 한다.
마음으로 정진하는 것이 편안해지거든, 보전하여 가지고 잃어버리지 아니하여, 시방 여래의 기분과 서로 어울리는 것을 호법심이라 한다.
각의 밝은 것을 보전하여 가졌거든, 묘한 지혜의 힘으로써 부처님의 자비한 광명을 돌이켜서, 부처님을 향하여 편안히 머무는 것이, 마치 두 거울의 밝은 빛이 서로 대하매, 그 가운데 못한 그림자가 거듭거듭 서로 비치는 것과 같은 것을 회향심이라 한다.
마음 빛이 가만히 회향하여 부처님의 항상 엉김과 위없는 묘하고 깨끗함을 얻고는, 하염없는 도에 편안히 머물러 있어, 잃어버리지 아니하는 것을 계심주라 한다.
계심에 머물러 있어 자재하여지고, 시방으로 다니되 소원대로 가게되는 것을 원심주라 한다.
3 아난아, 이 착한 남자가 진여의 방편으로 이 열 가지 마음을 내었으면, 마음의 정기가 빛을 내어 열 가지 작용을 걷어들여, 한 마음을 원만하게 이루는 것을 발심주라 한다.
마음 가운데서 밝음을 내는 것이, 마치 깨끗한 수정 속에 순금을 담아 둔 듯하여, 앞에 묘한 마음으로 다져서 지정을 닫는 것을 치지주라 한다.
마음과 지정이 서로 알아서 함께 밝아지고, 시방으로 다니되 조금도 거리낌이 없는 것을 수행주라 한다.
수행하는 것이 부처님과 같아져서 부처님의 기분을 받는 것이, 마치 중음신이 부모 될 이를 구할 적에 그윽한 기별이 가만히 통하는 듯이, 여래의 종성에 들어가는 것을 생귀주라 한다.
불도의 태속에 노닐면서, 부처님의 지혜를 받자와 불자 되는 것이, 마치 태 속에서 자라는 아기가 사람의 모양을 갖춘 것 같은 것을 방편구족주라 한다.
용모가 부처님과 같고 마음도 같은 것을 정심주라 한다.
몸과 마음이 함께 이루어져서, 날마다 점점 자라나는 것을 불퇴주라 한다.
십신의 영특한 모양을 한꺼번에 갖추는 것을 동진주라 한다.
형상이 이루어져서 태에서 나와, 친히 부처님의 아들 되는 것을 법왕자주라고 한다.
어른이 되었다고 표시하되, 마치 임금이 나라 정사를 태자에게 맡기며, 크샤트리아 왕이 태자가 자라면 관정식을 하는 것같이 함을 관정주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