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우리는 대학 입시에 입시 요강으로 편법 사항과 규칙을 두어 공개적으로 부정 입학이 진행되어 왔다는 사실이 풍문으로 들었습니다.그런데 사실임이 드러났습니다. 그것도 입시요강에 기재되고 사용한 '표창장, 봉사활동' 등이 가짜였다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고위층인 힘께나 쓰는 사람들은 그와 같은 민정수석과, 법무부장관을 하신 분이 ‘나는 억울하다 입학사정에 필요한 자료를 보탠 것을 가지고 이 잡 듯하여 죄를 주는 것이다고’ 하며 오늘날 상류층 계급의 사람들이 누구나 한번 쯤 시도하는 일을 가지고 이를 잘 보아주지 않는다고 동정하여 말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그야말로 네로남불인 전형을 보는 것 같습니다.'나는 억울하다'를 외치면서 정당을 만들어 형사 피의자로써 국회의원이 되었으니 참으로 온 국민이 볼 때 국회의원 자리가 그렇게 호락 호락하고 허술한 자리인지 몰라도 기가 찰 지경입니다. 내가 남 이야기할때는 엄중한 잣대로 검증을 원하고 내가 나를 보는 잣대는 거두절미하고 무조건 억울하다고 변명을 하며 동일한 사항으로 무난히 넘어간 타인의 행위도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나도 남과 같이 동일하게 넘어갔으면 아무 탈이 없을것을 이 잡듯하여 나만 죄를 주니 억울하지 않으냐고 하니 , 그런 부류에 동정하는 사람은 극소수의 사람들이지만 자신만을 위한 변명의 말만 한다면 누가 보더라도 동정이 가는 언행일치를 주장한다고 말할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우리나라의 고위층의 국민들이 나라를 위한 솔선수범을 해야할 지성인으로 부터 보통 사람의 국민까지 공감하여 애국심을 갖도록 하는 정의를 위한 이런 갈등이 전 국민을 볼때 후안무치(厚顔無恥)로 국민정서상 매우 심각합니다.
프랑스의 나폴레웅에게 국가가 망해 온 국민이 사기가 떨어져있는 독일 국민에게 피히테의 1807년 나폴레옹과 프로이센의 전쟁은 굴욕적인 틸지트의 강화로 끝났다. 종군을 원하였으나 허가되지 않았고, 적의 치하에 있는 것을 불결하게 생각해 아직 점령되지 않은 각지로 전전하였던 피히테는 강화조약이 체결된 이후에 베를린으로 돌아와, 최악의 불행한 상태에서 조금씩 자유와 독립을 되찾으려고 하는 기운이 고조되어 가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1807년 12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 매주 일요일의 저녁 때 프러시아 학사원의 대강당에서 연속 강연을 하여 '독일인의 고함'이라는 국민의 애국심을 환기시켰는데, 그 강연 내용이 바로 이 저서입니다. 프랑스군의 엄격한 점령하에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목숨을 건 일이었고 출판업자인 파름은 피히테에게 공감하여 반불적(反佛的) 서적을 펴냈다는 이유로 총살을 당하였습니다. 이런 서적으로 애국심을 피히테의 애국심을 이끄는 불온 서적을 출판하였다는 이유로 숨어살아야 했다. 우리는영국 프랑스간 백년전쟁을 마감한 쟌다르크의 애국심을 바라는 것도 아니지요.
자기 집안의 세세대대로 권력과 재력을 이끌려는 최상위 지도층에서 계시는 분이 명분없는 대학입시의 필요한 허위 표창장과 실습봉사자료 등으로 국민들의 허탈감을 주는 수작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전 국민에게 그릇된 이념을 전하려는 의도가 얼마나 계속될지 걱정될 뿐이다. 실제로 나는 ' 억울하다. 아 실제로 나는 억울하다' 하고 떠벌리지 말고 국가관과 지도층에 솔선수범하는 책임감이 막중한 행위에 데하여 자신이 자숙하여 겸손한 행위를 반성하고 성찰해야 함을 자각하여야 할 것입니다.
지금 국정이 마비되어 남북이 갈려있는 현실에 국가가 한 사람의 대통령 만들기 위해 즉 다른 이념의 국가를 공산화 하기 위해 벌려 놓은 치밀하고 상세한 계획임을 자세하게 알게 되어습니다. 그리고 이대로 가면 자유 민주주의의 국정이 파괴될 것이 발견됩니다. 왜 저같은 범부가 나설 사상이 아님을 알고 있으나 명약관화(明若觀火)한 현실에서 우리나라 존립이 하도 위태스러함을 알고 있기에 졸부가 나섭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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