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알림
정부는 재난발생에 대해 신속한 정보제공및 안전대응이라는 필요성 때문에 모든 스마트폰에 재난문자를 받게 한다. 그런데 이 재난문자가 때로는 너무 먼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도 알림음이 울리다보니 사용자는 아예 경고음을 차단하게 된다. 그러면 더이상 재난경보는 접할수 없게 된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가 정도를 벗어나거나 잘못된 길로 방향을 향할 때 경고를 하신다. 하지만 문제는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경고도 받는 쪽에서 수신거부를 하게되면 무력화 된다는 안타까움이다. 재난의 결과는 비참함이다.
2017년 년말 선교지에서 재정악화로 일시귀국을 한 이후 18년도 부터 시작한 텃밭농사는 나에게 새로운 취미를 안겨주었다. 시에서 분양하는 농지는 겨우 3.5평. 말로는 5평이지만 공유면적을 제외하면 매우 적다. 하다보면 주변분들에 의해 2~3개 까지 경작지가 늘어나기도 한다.
본격적인 농사취미를 확장하게 된것은 20년도 부터. 우연치않게 아는 분의 무덤입구에 방치된 50여평의 야산자락을 개간했고,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옥토만들기 프로젝트를 실천했다. 토양자체가 점성이 매우 강한 황토잘이라서 농사로는 부적합한 토양이다. 황토벽돌을 만들기에 가장 적합한 토양이다.
마침 근처의 도시농장 2천여평에 빌딩 건립이 결정되면서 휴경지로 방치된 토지의 흙을 개간한 밭으로 퍼올리기로 하였다. 처음에는 20리터 페인트통을 이용하다가 도저히 힘들어 감당이 어렵던 차에 아파트 지하주차장 귀퉁이에 몇년 전부터 방치돼있던 건설현장 모래운반용 등짐통을 이용해 40킬로씩 700번 이상을 져올려 밭 전체를 복토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하루에 10번씩 시작한 일이 갈수록 횟수가 늘어나 나중에는 오전 오후 50여번을 져날랐으니 나 자신도 믿어지지 않는 집념이다. 그리고 농사에 필요한 빗물을 수집하기 위해 비닐을 이용해 경사지붕을 만들고 pvc물통을 구입해 비가 올때마다 빗물을 수집했고 물탱크도 처음에는 500리터에서 1톤, 1.2톤 4톤짜리를 추가 구매하며 빗물 수집을 늘려나갔다.
유투브에 보면 산비탈에서 흘러내리는 빗물을 수집하기 위해 땅을 파고 웅덩이를 만들었다는 영상을 보고 한주간에 걸쳐 웅덩이를 파 5톤 정도를 수집할 수 있는 웅덩이도 만들고 비닐을 이용해 방수장치도 만들었다.
처음에는 빗물수집용 비닐로 시작한 지붕은 발전해 농자재 보관용 창고가 되었고, 창고에는 각종 농기구와 비료,퇴비,농약 등등의 자재가 쌓여지게 되었다. 그리고 차에서 필요한 용품들 중 당장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까지 보관하는 그야말로 개인작업실로 발전을 하였다.
그런데, 병원부지에 공사가 시작되면서 생각지 못하던 방해가 시작되었다. 지형상 병원부지와 인접한 야산자락이 옹벽으로 구분되있고, 경계부분에 하수도가 설치돼있는데, 현장소장의 생각에는 혹여라도 농지에서 유출된 토사가 하수도를 막으면 자신이 시공하는 공사장으로 덮칠수도 있다는 우려에서 계속해서 지자체에 민원을 제기했던 것.
민원을 접수한 부서에서 출동해 "울타리 부분을 잘 정비해 토사유출이 없도록 해달라"는 당부와 더불어 금년까지만 농사를 하고 앞으로는 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권유로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현장 소장은 여기에 족하지 않고 우리가 밭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기만하면 드론을 띄워 우리를 감시하며 우리를 심리적으로 압박을 하였다.
어쩔 수 없이 밭에가는 횟수는 줄어들게 된다. 더군다나 본격적인 농사철도 아니니 주말에만 가기로 하던차에 창고에 화재가 발생했다. 공사현장 직원들이 점심먹으러가는 11시반쯤 밭에가다가 산밑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목격하고 "혹시나?"하는 생각에 달려가 보니 소방차가 출동해 불을 끄고 있었다. 가슴이 철렁하는 순간을 경험하며 그야말로 공든탑이 무너지는 참담함을 경험해야 했다.
구입후 한번도 사용안한 야외용품과 각종 공구들의 가격은 너무 참담해 아예 생각도 하기 싫을 정도가 된다. 더 큰 문제는 내 물건만 탄게 아니고 붙어있는 공사현장 차단용 pvc칸막이도 10미터 정도가 타버렸다. 어떻든 남에게 피해를 입힌 셈이다. 아내는 "혹시 저쪽에서 일부러 그런게 아니냐"라고 생각할 정도로 우리는 그들에게 시달리고 있었다.
그 일은 나를 되찾게 해준 사건이다.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그동안 나는 무엇에 빠져 있었고, 무엇에 우선순위를 두었던가를 묵상하게 되었다. 환경에 떠밀려 시작하게된 목회자의 길이었고, 선교결단이었다. 하지만 선교사 15년만에 굳게 닫혀버린 재정후원을 돌파하고자 스스로 재정마련을 위해 접근이 쉬운 공공일자리에 참여하며 채무문제와 생활비를 해결했다.
더군다나 코로나19 봉쇄로 인해 어차피 선교지 복귀도 요원했기에 농사라는 새로운 취미로 세월을 보냈던 것. 년초부터 하나님의 신호가 다가옴을 느낄 수 있었다. 리어카에 짐을 실고 운반하던중 주머니에 들어있던 스마트폰이 꺽이며 액정이 나가 30여만원의 수리비가 필요했다. 마침 상위버전 제품을 구입만 해놓고 휴대가 불편해 집에 보관중이던 폴더폰을 사용하는 것으로 대체를 했지만, 그것이 "더 큰 피해의 시작"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우리가 상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상대의 불편을 느끼지 못함은 그만큼 나의 욕망이 강했기 때문이다. 자기만을 위하는 자는 심지어는 사랑하는 배우자의 불편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다.
소방서는 화재의 원인으로 마땅한 규명을 할 수 없었던가 보다. 그래서 화재현장에서 수거한 배터리를 근거로 배터리누전일 것이라는 추정을 하였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파워뱅크는 인산철이었고, 전원차단용 스위치가 부착돼 있을 뿐 아니라 지난해 가을 모터펌프 사용후 충전을 안해 거의 방전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근거가 없으니 화재의 정확한 원인은 밝힐 길이 없다.그야말로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다. 바로 옆에서 농사하는 노인은 평소에 우리에게 시기 질투가 많았다. 그리고 울타리 경계를 임의로 훼손해 우리밭으로 토지를 야금 야금 차지해오던 차였다. 그 일로 우리 부부와 다투기도 하였다. 화재 2주후 우연히 밭을 방문했다가 그 노인을 보는 순간, 내 속에서 "혹시 당신?"이란 의혹이 강하게 일었지만, 그냥 추정일 뿐이다.
오래전 어떤 사이비는 자신의 신자들에게 종아리라는 교훈을 강요했다고 한다. 나중 종 나 아 옳을 리, 그러면서 자신의 가르침을 따르지않는 신자들을 앞으로 불러내 공개적으로 회차리로 종아리를 때리는 체벌을 했다고 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던 사건이 떠오른다.
화재로 수백만원의 물질피해와 그 이상의 말로 다 못할 심리적 타격을 입었지만, 그동안 멀리 빗나가있던 본질을 찾아갈 길을 찾았다는 점은 그 무엇보다 가치가 크다. 그까짓 물질은 다시 복구가 가능하지만 헛된 욕망에 사로잡힌 가치관은 치료가 어렵다. 자칫 불치병으로 끝날수도 있다. 그래서 감사할 뿐이다. 종아리가 아니라 전화위복이다.
전광훈목사는 동문수학한 친구이다. 하나님으로 부터 남이 이해할 수 없고 알지 못하는 많은 은사를 체험한 세상에서 보기드문 목회자이다. 그래서 이미 학생때부터 부흥사로 인기가 있었다. 적어도 그가 18년도 청와대 사랑채에서 "대통령은 하야하라"고 외칠때 까지만해도 "이 시대의 대단한 선구자"라는 칭찬을 들을만 했다.
하지만 그는 많은 과오를 남겼다. 주변의 부화뇌동에 떠밀려 교단 총회장이 되었지만 무리한 결정으로 교단을 풍지박산내고 말았다. 그의 본의가 아닌 주변의 부화뇌동에 의한 결정이었다. 역시나 총회장 시절 주변의 충동으로 한기총회장이 되었지만 그로 하여금 엉뚱한 결정을 내리도록 부화뇌동한 시작이 되었으니 참으로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정권이 바뀌었고, 그리고 그가 바라던대로 우파정권이 새워졌으니 현실정치에서 거리를 둬야 했음에도 주변의 부화뇌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 때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주변을 깜짝놀라게하는 메세지를 선포하던 위치에서 세상의 헛된 충동에 움직이는 위치로 자기 스스로를 격하한 셈이다.
악마의 상징인 루시퍼는 원래 천사장이다. 그러나 자신의 위치를 벗어났기 때문에 악마로 변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자가 없다. 자신이 과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대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