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래를 보다(104쪽~)
『모슨 상이 다 허망한 것이다.
이것은 내가 공하고 법이 공하고
아와 법이 함께 공한 것도
또한 공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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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몸 형상으로 여래를 볼 수 있겠느냐?“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몸 형상으로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몸 형상은 몸 형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상이 있는 바는 다 허망하니 만일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본다면 여래를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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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을 벗고 세상을 보다
젊은 시절 경주 포교당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사시 예불을 드리고 있는데 누군가 법당 문을 마구 두드려댔습니다. 가볍게 똑똑 두드리는 게 아니라 문을 때려 부수듯이 두드려대는 것이었습니다. 그만 두드리겠지 하며 기도를 계속하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는 영 그칠 기미가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장난을 치는구나 싶어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일어나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문 앞에는 뜻밖에도 한쪽 다리와 손이 없는 상이군인 남자가 잔뜩 부은 얼굴로 서 있었습니다.
그 남자를 보는 순간, "돈을 얻으러 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기도 중이니 잠깐만 기다리라고 해놓고는 다시 돌아와 예불을 계속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아까보다 더 세차게 문을 두드려댔습니다. 저는 다시 나가 퉁명스런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니, 보시다시피 제가 지금 바쁘지 않습니까. 좀 기다리세요."
"당신만 바빠? 나도 바빠."
"아무리 바쁘시더라도 제가 예불 중이잖아요. 또 지금 돈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예불 마치고 요사에 가서 돈을 가져와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자 그 남자가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내가 언제 돈 얻으로 왔다 그랬어?"
그제야 저는 아차 싶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때까지 남자에게 찾아온 이유를 묻지 않았던 겁니다. 그저 그의 겉모습만 보고 동냥 얻으러 온 사람이라고 판단해 버렸던 것이지요.
"그러면 여기에 왜 오셨나요?"
"나, 중 되려고 왔소."
"여기는 포교당이라 안 됩니다. 다른 절에 가서 알아보세요."
"내가 몇 군데 가봤는데 가는 데마다 다 딴 데로 가라고 합디다."
몸이 불편한 사람이니 가는 곳마다 핑계를 대며 다른 절에 가보라고 한 게 분명했습니다. 저 또한 어린 학생들만 가르치는 포교당이라는 핑계를 대고 다른 절에 가보라고 했기에 속으로 뜨끔했습니다.
"왜 중이 되려고 합니까?"
"내가 지금 마음이 답답해서 그래요."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월남전에 자원했다가 부상을 입고 귀국한 상이군인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는 얼마 되지 않는 연금으로 생계를 꾸려가기가 어려워 부인이 보따리장사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부인이 장사를 하느라 늦게 들어오는 날이 잦아지자 부인을 의심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내가 몸이 이러니까 나를 무시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분하고 억울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술주정을 하게 되었고, 부인을 때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가정은 점점 엉망이 되어갔습니다. 부인은 집을 나갔다가 아이들 생각에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몇 년을 살다보니 이건 도저히 사람 살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죽어보려고도 했지만 차마 그러지도 못하고, 그래서 중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그 남자가 어떻게 이 조그만 포교당을 알고 찾아왔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여기는 어떻게 알고 찾아오셨어요?"
"누가 소개해 주던데요."
그러면서 그는 호주머니에서 구겨진 종이 한 장을 꺼냈습니다. 받아서 펼쳐보니 제가 시내에 뿌린 포교당 전단지였습니다. 그걸 보는 순간, 저는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멍해졌습니다. 그 전단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마음이 불안하고 답답한 자여! 여기 부처님께서 마련한 좋은 안식처가 있으니 이리로 오십시요."
그는 내가 뿌린 초청장을 받고는 포교당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그를 본 순간부터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을 빨리 내 보낼까?’ 그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동안 저는 제가 굉장히 양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정말 '괴롭다" 하는 당사자가 오니까 시종일관 쫓아내기에 급급했습니다. 오히려 인생이 괴로운 줄도 모르는 어린이, 중.고등학생.대학생.청년들은 불러 모아서 저 없으면 마치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인생이 고다, 고의 원인이 뭐냐? 하면서 교리를 가르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산다고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지요. 그랬기 때문에 부처님 법에 어긋난 행동을 한다고 남을 비난하고 비판하고 잘못된 한국 불교를 개혁한다고 데모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내 모습은 내가 비판해 왔던 다른 누구보다도 더한 모순을 갖고 있었습니다. 나 혼자 청정한 척하고, 나 혼자 정법을 하는 양 지금껏 살았는데 알고 봤더니 내 스스로가 모순투성이었던 것이지요.
불법은 산에 있는 것도 아니고 책 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삶 속에 있다고 생활 불교를 주장해 놓고는 괴롭다고 온 사람을 쫓아내기 위해 불법이 산속에 있다는 듯이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기 산에 있는 절에 가서 출가하라고, 여기는 젊은이를 포교하는 곳이라 안 된다고 말입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순간, 말 할 수 없는 충격에 정신이 멍해지고 넋이 나가버렸습니다.
그 뒤 무슨 정신으로 어떻게 포교당을 나왔는지도 모릅니다. 발길 닿는 대로 가다 보니 경주 남산 칠불암에 와 있었습니다. 칠불암은 고등학생 시절에 스승이신 불심도문 큰스님을 따라 들어가 참선하고 정진하던 곳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저잣거리에서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후회가 들었습니다. 이제 깨달음이 있기 전까지는 절대로 이곳에서 나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눈물이 한없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칠불암 부처님 앞에 엎드려 사흘 밤낮을 눈물 흘리며 지낸 뒤에야 비로소 차츰 정신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지난 10년의 세월이 바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정법을 행하는 자다"라는 교만을 가지고 내 식대로 포교한 시간이었습니다. "내가 정말 별 볼일 없는 인간이구나. 모순 속에 살았구나!" 하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위선적인 마음이었다 해도 포교 전단지를 만들어 뿌렸기에 그 남자를 만나게 되었고, 그 남자를 만나고 나서야 내가 가진 모순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나는 내가 모순덩어리라는 사실도 모르고 죽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니 지난 10년은 어떻게 보면 허송세월이었지만, 또 어떻게 보면 내가 얼마나 어리석고 무지몽매한지를 깨달을 수 있게 해준 10년이었습니다. 오늘 비로소 그러한 나를 알아차렸다는 것이지요.
그 뒤 다시 포교당으로 돌아와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에는 그 전과 후 내 모습에는 아무 변화가 없어 보였겠지만 나에게는 그 전과는 다른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자기 나름대로의 안경을 쓰고 세상을 봅니다. "아니. 나는 안경을 쓰고 있지 않아.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게 객관적 실제의 모습이야" 라고 말합니다. 지금 꿈을 꾸고 있는 사람도 꿈속에서 보이는 세계가 현실이라고 장담합니다. 꿈에서 깨어나야만 그때까지 꿈속에서 헤맸다는 걸 알게 되듯이, 안경을 벗어야만 그때까지 안경을 끼고 살았음을 알게 됩니다.
상에 집착했을 때 "내가 지금 상에 집착하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이 바로 상이 상 아닌 줄을 아는 것입니다. 모든 상이 상아님을 알고, 상이 있는 모든 것이 허망함을 알면 그때 비로소 세계의 참모습이 드러납니다.
지금 사로잡힌 생각에서 벗어나 "내가 정말 내 식대로 사람을 보고, 내 식대로 세상을 봤구나!" 하고 알게 되면 참회와 기쁨의 눈물을 함께 흘리게 됩니다. 그렇게 진실을 깨친 눈으로 인생을 보면 온갖 괴로움이 사라집니다. 행복한 사람, 자유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 세상에 도움이 되는 보살의 삶을 살게 됩니다.
<법륜 스님의 금강경 강의 7-2 : 제5 여리실견분[4구게] - 여래를 보다(10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