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語集註大全卷之十四
憲問第十四
胡氏曰 此篇疑原憲所記 호씨가 말하길, “이 편은 원헌이 기록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하였다.
趙氏曰 憲問恥不書姓而直書名 其爲自記之證 一也 他章夫子稱弟子 則名之 曾子有子冉子門人之所記 則以子稱 非其師者皆稱字 如原思爲之宰亦以此稱而此書名 其爲自記之證 二也 下章問克伐怨欲不行 不別起端而聯書之 其爲自記之證 三也 조씨가 말하길, “헌이 부끄러움을 물었다는 글에서 성을 쓰지 않고 그냥 이름만 썼는데, 이는 원헌이 이 편을 스스로 기록하였다는 증거가 되는 것 중의 그 하나다. 다른 장에서 공자께서 제자를 칭할 경우에는 이름을 불렀고, 증자와 유자, 염자의 문인들이 기록한 경우에는 이들을 子로서 칭하되 자기 스승이 아닌 사람에게는 모두 字로써 호칭하였다. 예컨대 ‘原思(원헌의 字)가 그를 위해 家宰가 되었다.’와 같이 역시 자로써 호칭하였지만 여기서는 이름을 썼다. 이것이 원헌 스스로 이 편을 기록하였다는 증거가 되는 것 중의 그 둘이다. 아래 장에서 ‘남을 이기려 하고, 자랑하고, 원망하며, 사욕을 부리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을 질문할 때, 단서를 달리 세우지 않고 그냥 이어서 썼는데, 이것이 원헌 스스로 이 편을 기록하였다는 증거가 되는 것 중의 셋이다.”라고 하였다. 勿軒熊氏曰 多記孔門出處言行 內雜論春秋人物 물헌웅씨가 말하길, “대부분 공문제자들의 출처(出處: 벼슬에 나가고 안 나감)와 언행을 기록하였는데, 그 안에 춘추시대 인물을 섞어서 논하였다.”
凡四十七章 모두 47장이다.
헌문 제1장. 憲問恥 원헌이 부끄러움에 대해 물었다.
憲 原思名 헌은 원사(원헌의 字)의 이름이다. 子曰 邦有道穀 邦無道穀 恥也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라에 도가 있을 때 녹봉을 타 먹고,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도 녹봉을 타 먹는 것이 수치니라.”고 하셨다.
穀 祿也 邦有道不能有爲 邦無道不能獨善而但知食祿 皆可恥也 憲之狷介 其於邦無道穀之可恥 固知之矣 至於邦有道穀之可恥 則未必知也 故夫子因其問而竝言之 以廣其志 使知所以自勉而進於有爲也 穀은 녹봉이다. 나라에 도가 있어도 훌륭한 일을 도모하지 못하고, 나라에 도가 없는데도 홀로 선을 행하지 못하고서 그저 녹만 먹을 줄 아는 것은 모두 부끄러워할 만한 일이다. 원헌의 견자 기개로 보아, 나라에 도가 없음에도 녹을 먹는 것이 부끄러워할 만한 일이라는 것쯤은 본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라에 도가 있어 녹을 먹는 것도 부끄러워할 만한 일이 된다는 것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알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공자께서 그 물음으로 인해 그것을 나란히 말함으로써 그 뜻을 넓혀주어 스스로 열심히 할 바를 알아서 훌륭한 일을 도모하는 것에 나아가도록 하신 것이다.
雙峯饒氏曰 狷是有執守 介是有分辨 쌍봉요씨가 말하길, “狷은 붙잡아 지키는 것이 있고, 介는 구분하고 분별함이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穀之一字有食祿之義 言有道無道只會食祿 略無建明 豈不可深恥 주자가 말하길, “穀이라는 한 글자에는 녹봉을 먹는다는 의미가 있다. 나라에 도가 있든 없든 그저 녹봉을 먹을 줄만 안다면, 대략 정사를 밝게 일으켜 세움이 없는 것이니, 어찌 깊이 부끄러워할 만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問憲之狷介安貧 豈不知邦有道穀之可恥 曰 未可知也 人到用處方見 族黨稱其孝弟 夫子未以爲士之至行者 僅能持身於無過 而無益於人國 不足深貴也 邦有道而不能有爲 只小廉曲謹 濟得甚事 邦無道而受祿固不可 有道而苟祿 亦不可也 누군가 묻기를, “원헌은 견자의 기개를 갖고서 安貧하였는데, 어찌 나라에 도가 있을 적에 녹봉만 먹는 것이 부끄러워할만한 것임을 알지 못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미처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 사람은 기용되는 곳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드러나 보이는 것이다. 가족과 향당 사람들이 그 효제를 칭찬하여도, 공자께서는 아직 선비 중에 지극한 행실을 하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저 능히 허물 없는 지경에 제 몸을 붙잡고 있을 뿐 남의 나라에 유익함이 없다면, 엄청 귀하게 여기기에는 부족한 것이다. 나라에 도가 있지만 훌륭한 일을 할 수 없고, 그저 작은 청렴이나 하면서 작은 일에 삼간다면, 무슨 일을 이룰 수 있단 말인가? 나라에 도가 없음에도 녹봉을 받는 것은 본디 안 되는 것이지만, 도가 있음에도 구차하게 녹봉이나 받아 먹기만 하는 것 또한 안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原憲甘貧守道 其志卓然 能有不爲者也 其爲此問 固知邦無道而枉道得祿之爲恥矣 特欲質諸夫子以言其志耳 夫子深知其然而亦知其學之未足以有爲也 則恐其或當有道之時 雖無枉道之羞而未免於素餐之愧 故以是而幷告之 使因其所已知而推之 以及其所未知者 庶乎其有以廣其業而益充其所爲耳 或乃以謂夫子之意 止於無道得祿之可恥 以憲能安貧而告之 然則 是徒以其已能者而瀆告焉 豈所以進之於日新耶 원헌은 가난을 달게 여기고 도를 지켰는데, 그 의지가 높았고 능히 하지 않는 바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이 질문을 할 적에, 본디 나라에 도가 없는데도 도를 구부려 녹봉을 얻는 것은 부끄럽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단지 공자님께 그것을 質正받고자 하여 그 뜻을 말했을 따름이다. 공자께서는 그가 그렇다는 것을 잘 아셨고, 또한 그 배움이 훌륭한 일을 도모하기에 부족하다는 것도 아셨으니, 곧 그가 혹여 나라에 도가 있을 때를 당하여 비록 도를 구부리는 부끄러움은 없다 할지라도, 하는 일 없이 녹봉만 받아먹음의 부끄러움을 모면하지 못할까 걱정하였기 때문에 이로써 아울러 알려준 것이다. 만약 그가 이미 아는 바를 바탕으로 미루어나가서 그가 아직 알지 못하는 것에 이른다면, 거의 자기 功業을 넓혀서 자기가 하는 바를 더욱 확충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 혹자는 도리어 공자님의 뜻은 도가 없을 때 녹봉을 얻는 것이 부끄러워할만한 것이라는 것에 그치고, 원헌이 능히 安貧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알려준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이는 그냥 자기가 이미 잘하는 것을 또 번거롭게 알려준 것이니, 이것이 어찌 그로 하여금 날마다 새롭게 함에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겠는가? 梅巖胡氏曰 論語中 說有道無道凡八出 泛論者三 指其人而論者五 南容伯玉武子史魚原憲 是也 世有道 如南容之不廢 武子之知 伯玉之仕 史魚之直 可也 如欲志於穀而不能有爲 不可也 매암호씨가 말하길, “논어 안에서 有道와 無道를 말한 것이 모두 8번 나오는데, 일반적으로 논한 것은 3번이고, 그 사람을 가리켜서 논한 것이 5번인데, 남용과 거백옥, 영무자, 사어, 원헌이 바로 그 사람들이다. 세상에 도가 있는 경우, 예컨대 남용이 버려지지 않고, 영무자가 지혜롭고, 거백옥이 벼슬하며, 사어가 올곧은 것은 옳은 것이나, 예컨대 녹봉에 뜻을 두고자 하면서도 훌륭한 일을 도모할 수 없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邦有道貧且賤焉 恥也 邦無道富且貴焉 恥也 集註云 世治而無可行之道 世亂而無能守之節 其意正與此章同 但彼全是平說 此亦雖是平說 然就原憲分上觀之 則重在邦有道穀 微不同耳 雲峯謂憲爲夫子之宰 猶辭其所當得之粟 其恥於無道之穀 可知 然狷介者自守常有餘而見於事爲常不足 故夫子猶告之以有道穀之可恥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나라에 도가 있음에도 가난하고 또 지위가 미천하다면 부끄러운 짓이고, 나라에 도가 없음에도 부유하고 또 지위가 존귀하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집주에서 이르길, 세상이 잘 다스려지고 있음에도 행할만한 도가 없고, 세상이 혼란스러운데도 능히 지킬만한 절개가 없다고 하였는데, 그 뜻은 바로 이 장과 같은 것이지만, 단지 저것은 온전히 공평하게 말한 것이다. 여기서도 또한 비록 공평하게 말하였지만, 그러나 원헌의 분수 위로 나아가 살펴본다면, 나라에 도가 있음에도 녹봉만 받아먹는다는 것에 중점이 있어서, 미세하게 다를 뿐이다. 운봉이 말하길, 원헌은 공자님의 가재가 되었음에도 오히려 그가 마땅히 가져야 할 쌀을 사양하였으니, 그가 무도한 녹봉에 대하여 부끄럽게 여겼음을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狷者의 기개란 스스로를 지킴에는 항상 남음이 있지만, 일과 행위에 보이는 것에는 항상 부족한 것이기 때문에, 공자께서 도리어 도가 있음에도 녹봉만 받아먹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가지고 알려주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