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7일(수) 시편 139:1-24 찬송 179장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2.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3.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5.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6.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7.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10.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11.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반드시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12.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
13.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14.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15.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16.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17.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18.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19. 하나님이여 주께서 반드시 악인을 죽이시리이다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들아 나를 떠날지어다
20. 그들이 주를 대하여 악하게 말하며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으로 헛되이 맹세하나이다
21. 여호와여 내가 주를 미워하는 자들을 미워하지 아니하오며 주를 치러
일어나는 자들을 미워하지 아니하나이까
22. 내가 그들을 심히 미워하니 그들은 나의 원수들이니이다
23.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24.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개역 개정)
-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는 주 -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찬양과 함께,
그렇듯 위대하신 하나님의 공의 실현과 인도하심을
간절히 호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본시는 다윗이 지은 것으로
그의 인생의 여정 속에서 체험하였던
하나님에 대한 신앙적인 요소들이 함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의 인생 말년에 쓰여진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본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속성에 대한
경험적인 신앙 고백이 돋보이는 ‘찬양시’이다.
한편 본시에는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다양한 묘사가 언급되는데
이는 이론에 의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
그의 삶 전반에 걸쳐 하나님과 진실된 교제를 통한 경험에 의해서 얻어진 지식이다.
이러한 본시는 각 연이 여섯 행으로 구성된 네 연으로 이루어졌다.
먼저 1-6절에서는 하나님의 전지성(全知性)이 찬양되고 있다.
즉 모든 것을 감찰하시고 낱낱이 알고 계시는
하나님의 오묘하시고 높으신 지식에 대해
시인은 체험적인 신앙 고백의 형태로 찬양하고 있다.
이어 7-12절에서는 안계신 데 없이 계시는 하나님의 편재성(遍在性)을 찬양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는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으며
그 어떠한 것들도 밝히 드러날 수밖에 없는 사실을 보여 준다.
다음으로 13-18절에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전지성과 편재성을 증명할 수 있는
창조자 하나님의 전능성(全能性)을 찬양하고 있는데
특히 여기에서 시인은 피조물로서 창조자의 완전한 주권적 능력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신앙 고백을 하고 있다.
끝으로 19-24절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진노를 살 수밖에 없는 악을 철저히 배격하며
하나님으로만 얻을 수 있는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간절히 염원하고 있다.
이러한 본시에는 시인과 하나님의 관계가 ‘안다’, ‘살펴본다’ ‘살다’
‘시험한다’ ‘충족하다’는 등이 단어들로 잘 묘사되어 나타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시인에 대해서는 무엇이나 다 ‘아신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하나님께서 다 아신다’는 것,
이 사실은 시인의 전생애를 통하여 입증되어진 놀랍고 엄청난 사실이다.
이 사실이 시인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겸비하게 했고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게 했는데
이처럼 시인의 모든 것을 아신 주님은 오늘날의 우리를 아시되
일거수 일투족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실로 하나님 앞에서는 피할 자도 숨을 자도 없다.(렘23:24)
인생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인생 그 자신보다 더 잘 그를 아신다.(요2:25; 행15:8)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진실해야 하며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나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3-24절)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19-22절에서 시인은 하나님에 대한 악인들의 가증스러운 행위에 대해
극도의 중오심을 나타내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임하기를 간구하였다.
그리고 스스로를 그러한 악인들과 구별하면서
그들을 심히 미워한다고 말하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시인은 다시 그 말을 바꾸어 자신을 살피시고 시험하셔서
자기 안에 무슨 악한 행위가 있는지 살펴주시고
그러한 길로 가지 않도록 인도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이러한 시인의 간구는 죄를 범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연약함을 직시한 데서 나온 것으로,
인간은 누구나 쓰러질 수 있고 넘어질 수 있음을 아는 데서 비롯된 고백이다.
사실 누구나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종종 그것이 너무나 지나쳐 실패와 넘어짐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마땅히 자신 또한 실패할 수 있고 넘어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함에도
자기 자신 만큼은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교만함에 사로잡힘으로
부지불식간에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일례로 주변에서 흔히 발견하는 사람들 중에
자신의 건강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자신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지금껏 감기 한번 걸려보지 않았고 병원신세 한 번 져본적이 없다 하면서
항상 건강만큼은 자신한다고 공언한다.
그러나 그들의 공언은 얼마가지 않아
그야말로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지게 하는 일들이 있게 됨을 종종 보게 된다.
그토록 건강을 장담하는 자에게 홀연히 혹독한 질병이 찾아들거나
부지불식간에 벌어진 심각한 사고를 인해 거동조차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 세상에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자만심을 가지고
헛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런데 건강이나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만심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이것은 영적인 자만심이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느 순간 자신에 대해
이런 잘못된 자만심을 가지고 살다가
결국 교만에 빠져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그들 자신을 악으로 치닫도록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렇기에 하나님 앞에서 그토록 순전했던 다윗도
날마다 자신을 하나님의 시험과 연단을 통해서 검증하시고
온전한 길로 인도해 달라고 기도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순간에 악의 길로 들어설 것을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철저한 시험과 연단을 통해 구원의 길로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 자만으로 안이하고 나태한 신앙 생활을 하다가
올무에 걸리고 수치를 당할 수 있음을 늘 기억해야 한다.
어디에 이르렀든지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 안에서 바르게 스스로를 세워나가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로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첩경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벧전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