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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화선 (看話禪)
선 수행방법 중 화두를 들고 수행하는 참선법을 가리키는 불교수행법.
내용
우리 나라 불교 역사 속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선수행법이다. 중국의 선종(禪宗)은 달마(達磨)로부터 시작되어 혜능(慧能)의 남종(南宗)과 신수(神秀)의 북종(北宗)으로 갈라진 뒤, 남종의 남돈선(南頓禪)이 크게 성하였다.
그 이유는 중국인의 사유와 의식구조의 특징이 논리적 정합성(正合性)을 중요시하기보다는 직관적 사유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화두란 깨달음의 세계를 총체적으로 드러내 보인 본래의 모습이다. 그 수행에 있어 화두를 간(看:그 화두가 뜻하는 바로 추구함.)하는 간화선은 남돈선에서 파생한 것이다.
그러한 간화선은 임제종(臨濟宗)에서 주창했으며, 특히 대혜(大慧)에 이르러 크게 일어났다. 그는 묵조선(默照禪:화두를 갖지 않은 채 모든 생각을 끊고 행하는 참선법)과 이전의 선행(禪行)에 대한 비판 위에서 간화선을 주창하였다.
대혜는 그러한 간화선을 조주(趙州)의 ‘무(無)’ 자 화두를 통해 가르쳤고, 고려의 지눌(知訥)이 대혜의 간화선을 받아들였다.
지눌의 사상은 선(禪)과 교(敎)가 복합된 다양성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그는 ≪간화결의론 看話決疑論≫을 통하여 간화선사상을 천명하였다. ≪간화결의론≫에서 선과 교의 대비를 통해 간화선의 우수함을 말하고 있으며, 동시에 우리 나라 선의 사상적 맥락이 되고 있는 사교입선(捨敎入禪)의 원류를 제시하였다.
특히, 간화선을 행할 때는 활구(活句)를 참구하여 보리(菩提)를 속히 증득하는 것이 최상의 목표이며, 지눌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지눌은 활구 화두로서, 특히 ‘구자무불성화(狗子無佛性話:개에게는 불성이 없다는 화두)’를 중요시하였고, 이 무자 화두는 불덩어리 같아 불법의 알음알이와 나쁜 지식을 파하는 연장이라고 하였다.
오직 활구를 참구할 때만 깨달음은 보장되어 있다고 본 것이며, 말 가운데 말이 없으면 활구이고, 말 가운데 말이 있으면 사구(死句)라고 규정지었다. 즉, 지눌은 ‘무’자를 들어 공부하되 간절한 의정(疑情:의심)을 끌고 나갈 뿐, 어떤 정식(情識:알음알이)에 빠져서도 안 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공부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활구를 참구할 것이며 사구를 참구하지 말라. 활구에서 깨달으면 영겁토록 잊지 않고 사구에 빠지면 자신조차 구하지 못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간화선을 들어 공부하는 길에는 참의문(參意門)과 참구문(參句門)의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참다운 공부를 하는 사람은 마땅히 참구문에 의지해야 할 것이나 근기가 하열한 관행자(觀行者)에게는 참의를 거쳐 참구에 들어가라고 가르쳤다. 참의는 화두를 참구함에 생각으로 헤아리는 것이며, 참구는 생각을 초월하여 철저히 사무침을 말한다.
한 생각이라도 전제(全提:조사의 으뜸가는 뜻이라고 주장함.)니 파병(破病:잘못된 견해를 깨뜨림.)이니를 헤아리면 곧 의식 아래 헤아리는 병에 떨어지게 되며, 그것은 활구를 참선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게 된다. 지눌의 간화선은 그의 제자 혜심(慧諶)에 의해 계승, 발전되어 오늘에 이어지고 있다.
혜심은 <구자무불성화간병론 狗子無佛性話揀病論>을 지어 간화선을 더욱 깊이 있게 펴나갔다. 지눌이 삼문(三門)을 열어 선·교를 융섭하려 한 데 대해 혜심은 오로지 간화선법에 주력하였다. 따라서 간화선은 혜심에 의해 더욱 심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혜심은 간화선에서 일어날 수 있는 십종병(十種病)에 관해 자세히 설명하여 공부하는 사람을 가르치고 있으며, 조선 초기의 지엄(智儼)은 간화선을 확립시켰다.
그 뒤 휴정(休靜)은 ≪선가귀감≫에서 간화선을 경절문사상(徑截門思想)과 일치시켰으며, 그러한 맥은 근대에까지 그대로 이어져 경허(鏡虛)와 만공(滿空), 그리고 현재의 선원(禪院)에서도 그 전통을 잇고 있다.
우리 나라의 선 수행자들은 간화선을 삶과 지혜의 으뜸가는 목표로 삼고 있으며, 간화선을 통한 활구참선이야말로 최상의 근기(根機:깨달을 수 있는 능력)만이 들어갈 수 있는 위 없는 대도(大道)로 보고 있다.
참고문헌
『간화결의론(知訥)』
『선가구감(休靜)』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64314
간화선 ③-화두란 무엇인가
화두(話頭)를 한자로 풀이하면 화(話)는 말이자 이야기이며, 두(頭)는 화자 뒤에 붙은 접미사로 그저 ‘말’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그 ‘말’에는 옛 선사들의 숨결과 세월의 두께가 덧붙어져 있어 다시 말하면 ‘옛 선사 스님들이 쓰던 독특한 언어’로 풀이된다. 선사들의 말이다 보니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언어이다. 그래서 화두를 대표적 공안집인 〈무문관〉에서는 “말 길과 생각의 길이 끊어진 말”이라고 기록하고 있기도 한다. 또 일상적인 격에서 벗어났다는 의미에서 격외어(格外語)라는 말로도 쓰며, 화두의 ‘두’를 어조사가 아닌 머리 두(頭)로 풀이해 ‘말이 나오기 이전의 근본 자리’나 ‘근원적인 말’이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화두는 ‘공안(公案)’ ‘고칙(古則)’이라는 말로도 쓰인다.
원래 공안은 ‘관청의 공문서(공부안독, 公府案牘)’와 같이 판결의 시비를 가리는 규범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화두가 참선수행에서 수행자들을 깨달음으로 이끄는 참말이며, 절대적 규범이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불렸다.
〈벽암록〉의 서문을 쓴 삼교노인(三敎老人)은 “조사스님들이 가르쳐 보이신 바를 공안이라 한다(祖敎之書 爲之公案)”고 말하고 있다. 다른 한편 고칙이라는 말도 고덕(古德)들이 인정한 법(法)이란 뜻으로, 옛 조사들의 법칙을 말한다. 수행자들 깨달음으로 이끄는 참말 ‘뜰앞의 잣나무’등 1700공안 유명화두는 선지식과 수행자 사이의 문답에서 기원한 것으로, 수행자가 스승에게 간절한 의문점을 물었을 때 이를 깨치라고 제시하는 언어이다. 수행자가 “불법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스승이 “뜰 앞에 잣나무 이니라”하거나 “차나 한잔하게” “마른 똥막대기이니라” 라고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답하면, 공부가 무르익은 수행자는 그 말을 듣고도 그 자리에서 바로 깨달음을 얻지만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는 알기 위해 화두를 안고 의심하는 수행법이 바로 ‘화두선(話頭禪)’ 즉 ‘간화선(看話禪)’이다.
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의 ‘간화선 수행지침서’에 따르면 화두는 “참선 수행자에게 모든 사유의 길을 끊고 의심을 불러일으켜, 궁극에 가서는 수행자의 마음이 의심으로 가득 차게 하여 끝내 그 의심이 툭 터지게 되는 경지로 이끄는 것”이라고 밝힌다. 이편도 저편도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부정해서도 긍정해서도 안되는 분별의 양변을 여읜 말이다. 화두는 매우 많아서 보통 1700공안으로 일컫는데, 〈전등록〉에 등장하는 1701분의 선사들이 보여준 기연(機緣)과 언행에서 유래됐다. 그러나 대표적 공안집인 〈무문관〉 〈벽암록〉 〈선문염송(禪門拈頌)〉등을 보면 실제 1650여 가지의 공안이 나와 있다고 불학연구소의 ‘간화선 수행지침서’는 밝힌다. 공안으로 채택된 선사들의 문답 내용은 특별한 형식이나 법칙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마른 똥 막대기다’ ‘뜰 앞에 잣나무다’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 등등의 공안은 사람들의 본래 마음자리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마음이란 도대체 뭡니까”하고 제자가 질문하자 중국의 임제 선사는 ‘억’하고 할을 했으며, 덕산 선사는 방망이질을, 조주선사는 ‘차나 한잔 해라’고 말했다. 이런 행위는 제자가 바로 그 자리에서 깨치라는 선사들의 극진한 행위이다. 간화선 수행자들은 경전의 내용이나 조사의 어록, 그리고 선사들이 보여준 언행 심지어 새소리나 물소리조차도 한결같이 화두의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공부의 소재로 삼았다. 또 선사들은 사람들마다의 근기와 성격 혹은 만나는 시간과 장소의 특징에 따라 그때그때 적절한 소재를 통해 화두를 주었다. 화두의 소재는 다양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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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의 덩어리 (1)
간화看話란 말 그대로 이야기(話)를 지켜본다(看)는 뜻이다. ‘이야기를 지켜본다’고 하는 간화선看話禪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불조가 도에 들어간 이야기인 선문답의 존재가 전제된다. 이야기를 지켜보기 위해서는, 지켜보는 대상으로서의 이야기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고인의 공안公案을 지켜본다고 하는 것은 바로 고인의 언구 상에서 의심하는 탐구적인 태도를 말한다.
당말唐末에는 이 같은 조사의 고칙공안古則公案을 공부하는 숙제로서 혹은 성취한 수행의 정도를 검증하는 척도로 삼는 경향이 있었다. 당말에서 오대의 혼란된 시기를 살았던 법안문익法眼文益(885~958)이 쓴, 당시 수행승들의 병폐를 10가지로 나누어서 경책하는 《종문십규론宗門十規論》에는, 당시의 납자들이 선대의 공안을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옛 스님들은 (도를 위하여) 산을 오르고 바다를 건너면서 생사를 피하지 않았다. (수행에) 한 번의 전환을 이루는 (옛 조사의) 기연機緣에 조금이라도 의심이 있으면, 일로 삼아 반드시 결택決擇하여 분명하게 하는 것을 귀중히 여겼다. 그래서 참과 거짓의 기준이 되고 인천의 안목을 이루었다. 그런 뒤에야 비로소 종지를 높이 제창하고 진실한 가풍을 널리 떨쳤다. 선대의 논의를 인용하여 따져 묻고 깨닫지 못한 공안으로 채찍질했다. 만일 수행을 거치지 않고 고금을 억측으로 단정한다면, 그것은 마치 검술을 배우지 않고 억지로 태아의 보검으로 춤을 추는 것과 같다.
이것은 열 개의 경책 가운데, 여섯 번째이다. 여기에 의하면 당시의 납자들은 송 태조(960~976)가 나라 건립하기 전에 이미 옛 조사의 기연인 공안을 공부의 길잡이로 삼았음이 분명하다. 그들은 옛 조사가 도에 들어가는 <기연에 조금이라도 의심이 있으면>, 그것을 <일로 삼아 반드시 결택하여 분명하게 하는 것을 귀중히 여겼고>, <공안으로써 공부의 길을 채찍질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부하는 이들 가운데는 불조의 공안상에서 의심하지 않고 억측으로 단정하는 것으로써 만족하는 경향도 있었던 같다. 원오悟가 <조사의 어구에서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통이라>고 말하고, <백수자栢樹子, 수미산須彌山, 끽다거喫茶去> 같은 조사의 공안도 모두 풀이나 나무에 달겨붙는 도깨비 정령들이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런 공부태도를 염두에 두고 한 발언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의심을 화두의 중요한 핵심으로 파악하여, 화두를 하나의 공부법으로 정착시킨 것은 바로 남송의 대혜종고의 공헌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천만 가지의 의심이든 다만 하나의 의심이다. 화두 위에서 의심을 타파하면, 천만 의심이 일시에 무너진다. 설사 화두를 타파하지 못했더라도, 그 화두 위에서 의심과 더불어 겨누어 가라.
만약 화두를 버려버리고 문자상에서 의심을 한다든지, 경전의 가르침에서 의심을 일으킨다든지, 옛 조사의 공안상에서 의심을 일으킨다든지, 일상 번뇌 속에서 의심을 일으키는 것은 모두 삿된 권속이다.
위 편지 내용에서 중요한 것은 중국의 간화선 사상사에 중요한 두 가지의 의미를 첨가했다는 점이다. 하나는 화두의 본질을 의심으로 파악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설사 의심을 타파하지 못했다고 하여도 그 화두의 의심과 더불어 (주체적으로) 밀고 가는,> 말하자면 화두를 수행의 한 양식으로 인식했다는 점이다.
먼저 <천만 가지의 의심이든 다 하나의 의심이고 화두에서 의심을 타파하면, 천만의 의심이 일시에 무너진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대혜가 말하는 화두의 의미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것은 원오가 말한 <일구를 뚫으면, 천구 백구가 일시에 뚫린다>는 법문의 ‘일구一句’라는 용어를 ‘의심疑心’이라는 낱말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천만 가지의 의심도 그것이 참된 의심이라면, 결국은 하나의 구, 곧 일구에 대한 의심이기 때문이다.
화두란 온갖 종류의 다양한 의심이 하나의 의심으로 통합된 의심이다. 즉 대혜에게 있어 화두는 ‘하나의 집중된 의심 덩어리’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의심에는 수많은 종류가 있을 수 있다. 일상 생활에서도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일 수도 있고, 경전의 가르침이나 이해되지 않는 문자에서도 문득 생겨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대혜가 의미하는 화두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발적인 사량분별에 기초한, 아니면 지적인 호기심의 발로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의심은 사량분별의 일부이기 때문에, 사량분별을 타파하는 집중된 의심 덩어리라 할 수 없다.
하나로 집중된 의심은 개인의 가슴에 내재된 일구이다. 만약 궁극을 지향하고 있는 일구가 다만 저기 선종사에 객관적으로 던져져 있다면, 그것은 형이상학적인 실체이거나 하나의 기호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일구가 의심으로 개인에게 내면화될 때, 그것은 비로소 실존의 문제가 된다. 그럼으로써 개인의 삶 속에서 사량분별을 끊어내는, 살아 있는 칼날이 되고 불꽃이 된다.
위의 인용문에서 다음으로 주목되는 점은 <옛 조사의 공안에서도 의심을 일으키는 것도 삿되다>고 한 점이다. 공안은 그 개수를 따지자면 천만 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의심은 하나의 화두로 귀착된다. 그러므로 개인의 내면에 자리잡은 화두는 오직 한 개일 수밖에 없다. 옛 조사의 공안들을 조사해 보고 이해하고자 하나, 그 속에서 주체적으로 자기 실존의 문제로서 의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지식을 첨가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대혜는 당시 사대부와 납자들이 조사의 공안을 과거시험 과목처럼 각 칙을 암기하고 분별로 공부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의심 없는 단순한 공안집의 병폐를 통절하게 느꼈다. 그래서 마침내 스승의 저술인 《벽암록碧巖錄》을 불태워 버렸다.
대혜에 의해서 간화선이 확립되었다고 평가한다면, 그것은 곧 선문답의 언구에서 집중된 의심을 일으키는 그 자체를, 깨달음에 나아가는 수행의 한 형태로 인식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선문답으로서의 공안과 개인의 내면 속에 의심으로 자리잡은 화두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물론 대혜는 공안과 화두라는 용어를 구별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혜에게 있어 조주의 무자無字는 <삼백육십의 골절과 팔만사천의 털구멍으로> 이루어진 의심의 덩어리로 개인의 가슴에 각인되어 살아 있는 구(活句)로서 존재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중국 선종사에서 ‘조주의 무자’는 그냥 저기에 공안의 일부로 놓여 있을 뿐이다. 어쩌면 문답의 형태로서 단순한 잉크 자국이고, 지나가는 언구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혜가 발견한 무자無字는 <뚫고 지나가야(透過)> 하는 선종의 과제로서 분명하게 방법론적인 자각을 수반한다. 말하자면 <역대 조사와 더불어 함께 손을 잡고 눈썹을 맞대고 같은 눈으로 보고, 같은 귀로 듣기 위해서>는 밤낮으로 내걸어 탐구해야 하는 문제이다. 그러므로 특별하게 화두를 공안과 구별하여 정의할 필요가 생겨난다. 즉 화두는 ‘선대의 고칙공안에 대한 주체적인 자기 의심’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것은 깨달음에 나아가기 위한 ‘방법적 의심’으로 이해된다. 만약 공안에 의심이 없다면, 그것은 지나가는 선문답 정도로, 나와는 관계가 없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 순수하게 의심이 있다면, 그것은 집중된 불꽃이고 온갖 사량을 잘라내는 칼날로서 커다란 의심의 덩어리가 된다. 그런 까닭에 몽산덕이蒙山德異는 <큰 의심이 있는 곳에, 큰 깨달음이 있다>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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