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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록 실중어요(室中語要) 31. 그 곳에서도 이것을 말하더냐?
[본문]앙산 스님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요즈음 어디서 왔느냐?"
"남쪽에서 왔습니다."
앙산 스님은 주장자를 잡아 세우면서 말씀하셨다.
"그 곳에서도 이것을 말하더냐?"
"말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말하지 않으면 저것은 말하더냐?"
"말하지 않습니다."
앙산 스님이 "스님!" 하고 부르더니 "법당에 참배나 하시오" 하였다.
그 스님이 떠나려 하자 앙산 스님이 다시 불렀다. 그 스님이 "네" 하자 "이리 가까이 오너라." 하여 그 스님이 가까이 가자 별안간 후려쳤다.
스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말씀하셨다.
"앙산 스님이 마지막 한마디를 하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 분임을 알 수 있으랴."
[원오 보설]
[앙산 스님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요즈음 어디서 왔느냐?" "남쪽에서 왔습니다."]
운문선사가 지금 여기에 인용한 향상일구는 바로 앙산 혜적(仰山慧寂, 814~890) 선사입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전 앙산스님에 대한여 좀 알아보고 가겠습니다.
앙산 혜적(仰山慧寂, 814~890) 선사는
당나라 말기의 선승. 법명은 혜적(慧寂), 속성은 섭(葉)씨, 광동성 회화현(懷化縣) 출신이다. 어려서 출가하려 했으나 부모가 허락하지 않으므로 손가락을 두 개나 끊어 17세에 비로소 뜻을 이루었다.
삭발한 뒤 큰 구슬 하나를 얻는 꿈을 꾸었는데, 그 빛이 사람을 쏘는 듯했다. 꿈을 깨고 나서 말했다.
“이는 더할 수 없는 마음의 보배인데 내가 얻었으니, 이것으로 내 마음 자리를 밝혀야겠다.”고 하고는 제방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혜적이 사미시절, 석상산(石霜山) 성공(性空) 선사의 시자를 할 때였다. 어느 날 한 수행승이 성공 스님을 찾아와서 물었다.
“달마대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성공 스님이 답했다.
“어떤 사람이 천 길 우물 속에 빠졌다. 한 치의 노끈도 쓰지 않고 그 사람을 건져낼 수 있다면, 그때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을 대답해 주리라.”
그 수행승은 성공 스님의 대답이 영 마뜩치 않았나보다.
“요새 창(暢) 화상이란 분이 호남에서 거창하게 법회를 한다기에 가봤더니, 그 분도 역시나 횡설수설합디다.”
그런데 성공 스님의 말이 엉뚱하게도 혜적에게서 그 공덕이 발휘됐다. 이 광경을 곁에서 목격한 혜적은 그 한마디를 품고 성공 스님 곁을 떠난 후, 선지식을 찾아 행각하며 묻고 또 물었다. 먼저 남양 혜충(南陽慧忠, 675~775) 국사의 제자인 탐원 응진(眈源應眞) 선사를 찾아갔다.
“어떻게 해야 우물 속의 사람을 건져내겠습니까?”
그러자 탐원 스님이 인상을 쓰며 혀를 찼다.
“으이그, 이 바보야, 누가 우물 속에 있단 말이냐?”
그러게 말이다. 오온이 본래 공한데 누가 고뇌의 우물에 빠지고 누가 고뇌의 우물에서 벗어난단 말인가? 빠지고 벗어나는 주체가 있다고 여기는 게 바로 고뇌의 깊은 우물이다. 허나 이건 도리(道理), 즉 이론일 뿐이다. 혜적은 ‘그래도 고뇌하고 있다’는 자명한 사실을 ‘무아(無我)’니 ‘공(空)’이니 하는 말로 얼렁뚱땅 덮어버리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이번에는 위산(潙山靈祐, 771-853) 스님을 찾아가 또 물었다.
“어떻게 해야 우물 속의 사람을 건져내겠습니까?”
위산 스님이 나긋한 목소리로 혜적을 불렀다.
“혜적아.”하고 불럿다 그 때 혜적이 “네.”라고 대답하니
위산 스님이 가만히 웃으며 말씀하셨다.
“건졌다.”
구구절절 설명할 것도 없이 가만히 이름 한 번 불러준 위산의 솜씨가 그저 놀랍기만 한다. 그 한마디에 혜적은 몰록 알아차리고 깊은 우물에서 쑥 빠져나온 것이다. 혜적의 영특함이 여기서 드러났다.
그리하여 위산 영우(潙山靈祐) 선사에게 사사(師事)해 사자상승(師資相承)으로 그의 법을 이어받음으로써 위산과 함께 위앙종(潙仰宗)의 개조가 됐으며, ‘조사선(祖師禪)’이란 말을 그가 최초로 썼다고 전한다.
어느 날 혜적이 위산 영우(潙山靈祐) 선사께 물었다.
“어디가 참 부처가 머무는 곳입니까?”
위산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사무사[思無思]는 「생각해도 생각함이 없는 묘한 이치로써
[이사무사지묘(以思無思之妙)]라 했다. 생각해도 생각함이 없는 묘한 이치로써 생각함이 없는 생각이 바로 신묘함이라고 했다.
[반사영염무궁(返思靈炎無窮)].이라 불꽃같은 신령의 무궁함을 돌이켜 생각하라
[사진환원(思盡還源)]이라 그 생각이 다하여 근원으로 돌아오면
[성상상주(性相常住)]라. 성품과 모습이 항상하고
[사리불이(事理不二)] 일(현상)과 이치가 둘이 아니어서
[진불여여(眞佛如如)]. 참 부처가 여여(如如)할 것이다」
혜적은 이 말끝에 활짝 깨쳐 비밀스런 인가를 받았다.
그 뒤 강서성 왕망산(王莽山)에 자리를 잡으려 했으나 교화할 인연이 맞지 않아 원주(袁州)에 이르러 앙산(仰山)을 찾아갔다.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두 산신이 맞이하면서 물었다.
“깊고 험한 이 산에 어찌 오셨습니까?”
“암자 터를 하나 보러 왔소.”
“저희들은 복이 있어 스님을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이 산을 시주해 스님께 드리겠으니 여기 머물러 사십시오.”
“그대들이 이미 나에게 시주했으니 필시 넓은 마음을 가졌겠구나. 다른 스님이 없다면 내가 그대들의 시주를 받겠다.”
산신이 좋다하고 집운봉(集雲峰) 아래를 가리키며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고 했다. 혜적은 마침내 그곳에 초암을 짓고 살면서 나무열매를 따먹고 개울물을 마시며 종일 꼿꼿하게 앉아 좌선했다.
그런지 얼마 되지 않아서 두 산신이 나타나 말했다.
“앞으로 대중이 많아지면 이 제자들은 살 곳이 불편할 것이니 거처를 옮겨야 하겠습니다.”
밤이 되자 바람과 우뢰가 크게 일더니 산신당이 30리 바깥 도전(堵田)으로 옮겨가고 옛 산신상과 큰 소나무들도 모두 그곳으로 옮겨 갔다. 회창(會昌) 3년(844년) 4월의 일이었다.
그리하여 강서성 앙산(仰山)에서 가르침을 폈는데, 그의 제자 중에는 신라의 오관산(五觀山) 순지(順支) 선사도 있었다.
대순(大順) 1년(890년) 소주(韶州) 동평산(東平山)으로 옮겼다가 그 해 입적했는데, 세수(世壽) 77세였다. 중화(中和) 2년(883) 또는 대순(大順) 2년(891) 입적했다고도 한다. 시호는 지통선사(智通禪師)다. 저서로 <앙산법시성도상(仰山法示成圖相)>이 전한다.
<앙산 혜적 선사 임종게>
늙어 오늘에 이르렀구나. 성품 따라 오르락내리락 하니
두 손으로 잡아 두 무릎을 굽히네.
(앙산은 77세에 무릎을 껴안고 임종했다.)
선사가 입적하려 할 때 산신이 찾아와 남길 말씀이 있느냐고 물으니 선사가 말했다.
“내 몸은 허깨비나 물거품 같아서 인연 따라 일어났다 사라질 뿐이다. 올 때도 아무 것도 없었는데 갈 때인들 더 무엇을 구하겠는가?” “모든 부처님이 입멸하실 때 천룡(天龍)이 나타나 남기실 말씀을 청했습니다. 저도 이를 어기지 않게 해 주십시오.”
선사는 법통을 얻은 스승 위산 영우(潙山靈祐) 선사의 기일(忌日)이 정월 8일이니 재를 지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감히 그 날을 어기지 못하고 있다.
후세에 스승과 제자 두 분이 머물던 곳의 두 글자를 따서 위앙종(潙仰宗)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앙산 혜적(仰山慧寂) 선사는 원상(圓相)을 그려 선지(禪旨)를 나타냈으며, 학인에게는 늘 회향반조(回向返照)를 가르쳐서 여실히 닦을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앙산은 말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자기 몸과 행동의 주인이 있다. 우리의 진정한 주인은 ‘불성(佛性)’이라고도 하고 ‘진여(眞如)’라고도 부른다. 반면 몸은 객(客)이다. 객은 무상한 것이다. 주인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즉, 불성이 주인이 돼 객인 몸을 마음대로 부려야 하는 것이다.”
어느 날 한 인도 승이 중국에 와서 하는 말이, “중국에 와서 문수보살을 친견하려 했는데, 뜻밖에도 작은 석가모니를 만났다
특래동토례문수(特來東土禮文殊) 각우소석가(卻遇小釋迦)”라고 말해, 이것에 연유해 ‘앙산 소석가(仰山小釋迦)’라 불리게 됐다. 흔히 스승 위산(潙山)이 혜적(慧寂)을 부를 때, 그 이름의 끝 글자 적(寂)자를 따서 ‘적자(寂子)’야 라고 불렀다. 이로부터 위산 선사와 앙산 선사의 종풍이 크게 세상에 떨쳤다.
앙상 문삼성(仰山問三聖)이 있었으니
세상에서 굳게 믿고 있는 상식 따위를 단번에 무너뜨리고, 모든 사람들이 목숨보다 귀하게 여기는 것을 돌처럼 버리는 사람이 있다. 모두가 벌벌 떨며 두려워하는 일을 단숨에 처리해 버리고, 세상이 다 속는 사기꾼을 단번에 가려내는 사람이 있다.
이렇게 되려면 어떤 사상이나 가치관에도 휩쓸리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어야 하고, 논리나 체계에 갇히지 않고 곧바로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런 사람은 어떤 말을 해도 곧바로 핵심을 파악하여 알맞게 답을 하고, 어떤 행위를 만나더라도 한 치도 어긋남이 없이 대응한다.
자, 누가 과연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앙산 혜적(仰山 慧寂, 803~887) 선사는 당대의 걸승으로 앙산에 주석했기에 법호가 되었다. 소주(韶州) 출신으로 17세에 출가하면서 손가락 두 개를 자르며 서원을 세우고 삭발했다. 위산 영우(山靈祐) 선사의 지도를 받았으며, 위산 선사의 법을 이었다. 위산 선사와 앙산 선사를 잇는 문파를 위앙종이라고도 한다. 원주(袁州)의 대앙산(大仰山)에 오래 주석하셨고, 동평산(東平山)에서 입적하셨다.
삼성(三聖) 화상이라는 스님이 계셨다. 진주(鎭州) 삼성원(三聖院)의 혜연(慧然) 화상을 말한다. 임제(臨濟, ?~867) 선사의 법제자이다. 임제 선사를 17년간 모셨으며, <임제록(臨濟錄)>을 편집했다. 임제 선사께서 입적(入寂)하려 하실 때에 “내가 간 뒤 나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이 없어지지 않게 하라”고 하시자, 꽥 고함을 질렀다고 전한다. 생몰연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런 얘기가 있다.
앙산 선사께서 삼성 스님에게 물었다. “자네 이름이 무엇인가?”
삼성 스님이 답했다. “혜적입니다.”
앙산 선사께서 말씀하셨다. “혜적은 내 이름이야.”
삼성 스님이 말했다. “제 이름은 혜연입니다.”
앙산 선사께서 껄껄대며 크게 웃으셨다.
무심한 듯 던지는 말이 때로는 털을 자르는 검이 되기도 하고 용을 잡는 그물이 되기도 한다. 앙산 선사의 질문이 바로 그러하다.
“자네 이름이 무엇인가?” 여기에 걸려들면 큰 낭패를 당한다. 최고의 방어는 곧 공격이다. 삼성 스님은 앙산 선사의 칼자루와 그물을 잽싸게 낚아채버렸다. 그리하여 이름을 묻는데, 앙산 선사의 법명을 댄 것이다. 공격이 용이치 않자 헛다리짚듯이 상대를 유인하는 앙산 선사의 솜씨가 놀랍다.
하지만 삼성 스님은 운이 좋아 칼과 그물을 뺏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헛다리짚는 것을 대응하는 것은 자신도 헛다리짚는 솜씨를 보이는 것이다. 앙산 선사가 ‘혜적’이 자기 이름이라고 밝히자 삼성 스님도 자기 이름 혜연을 밝혔다.
어느 순간 먹구름이 몰려오고 광풍이 이는 듯 했으나 앙산 선사의 껄껄대며 웃으시는 큰 소리에 하늘은 어느 듯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다.
참 좋다. 세상에는 이런 맛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 맛보는 것은 아니다.라고 송강 스님을 읊었다.라고 아미산은 논하고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보설토록 하겠습니다.
[앙산 스님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요즈음 어디서 왔느냐?" "남쪽에서 왔습니다."]
“여기서 앙산 스님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라고 할 때 앙산스님은 주가 되고 어떤 스님은 객이 됩니다.
즉 주객(主客)의 도리(道理)에서 체용(體用)의 도리도 되고 상대적 관계를 설정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말은 상대성이나 인연(因緣)의 법칙을 적용하지 않으면 말이 되지를 않습니다.
이것을 양변(兩邊) 또는 대대법(對對法)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양변을 통하여 상대성논리가 적용되는 것이니 이 양변을 벗어나야만 즉 말에 끌려가면 바로 말에 떨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화타(話墮)라고 합니다.
궁국적으로 앙산스님이 물은 것은 그대는 누구인가?라고 물었다고 보아야 한다. 즉 양변을 벗어난 중도정견에서 나라 할 것도 없고 너라 할 것도 없는데 그대는 어디서 나타난 이것이 무엇인가?라고 물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한 스님은 “남쪽에서 왔습니다”라고 말을 한다.
지금 여기를 떠나 왜 말에 실성이 없는 것인데 이 말꼬리를 잡고 그 말에 집착하여 대답을 하였으니 말에 벌써 떨어져 버린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대답 또한 앙산스님의 말에 따라 남쪽에서 왔습니다.라고 하시니 앙산스님은 이 학승은 아직 그 어떻한 견처나 안목이 없음을 파악하고 나서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앙산 스님은 주장자를 잡아 세우면서 말씀하셨다.
"그 곳에서도 이것을 말하더냐?"]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앙산스님이 물은 것은 무엇입니까?
주장자를 잡아세웠다는 것은 한 마음의 일으남을 보여주는 형상이지요. 그러면서 그 곳에서도라고하신 것은 여기 오기전 있든 곳에서도 선사가 이렇게 주장자를 잡아 세우는 것을 보여 주든가라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 주장자를 잡아 세우는 것은 이 형상을 통하여 마음의 작용이 일으남을 방편으로 진리를 지금 여기서 화현시키는 것입니다. 이 형상을 통하여 마음의 작용과 그 작용을 일으키는 당체를 파악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학인은 무슨 말인지 조차 파악이 안되는 일천제인가 봅니다. 아주 말에만 집착하여 말꼬리만 잡고 놀고 있습니댜.
이렇게 또 말을 합니다.
["말하지 않습니다."]라고 하니 앙상스님은 그 학승의 말을 흉내를 내며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이것을 말하지 않으면 저것은 말하더냐?"}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지것과 저것은 상대성입니다. 이 양변을 아주 주객의 보리인 것도 모르는 견처인지라 또 말에 집착하여 따라 옵니다.
["말하지 않습니다."]라고 하시는 것을 본 앙산스님은 도져히 아직 선문답 자체가 안되는 것을 알아체고는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앙산 스님이 "스님!" 하고 부르더니 "법당에 참배나 하시오" 하였다.] “법당에가서 참배나 하시오”라고 하신 것은 아직 선문답을 할 스님은 아니니 아주 예불이나 올리는 율승이나 되어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스님은 벌떡일으나 법당으로 정말 가려고 일어나니 꼭두각시가 주인이 시키는 데로 따라하는 헛깨비 같다고 보고는 다시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그 스님이 떠나려 하자 앙산 스님이 다시 불렀다. 그 스님이 "네" 하자 "이리 가까이 오너라." 하여 그 스님이 가까이 가자 별안간 후려쳤다.] 그 스님이 꼭두각시처럼 행동하자 앙산스님을 다시불렸다.
그런데 시키는데로 말을 잘 듣는다. 그스님이 “네”하고 대답하자
이리 가까이 오라고하여 부름니다. 그 스님이 가까이가자 별안간 후려쳤다. 즉 한 방망이를 내린 것입니다.
왜 쳤을까요 정신차리라는 것입니다. 이른 천방지축을 한 방망이 짓을 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왜 주위에 많은 사부대중이 있었으니
이런 납승은 그 때 아야 하면서 바로 직감적으로 회광반조 하지 못하고 쫓겨 나가 버렸을 것입니다.
이렇게 선문답이란 자기적 견처가 없는 납승은 질문할 것도 없고 자기적 관념이 없는 사람은 의심조차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운문선사는 이 앙상스님의 선문답을 들려주시고는 이렇게 한 마디 향상일구를 하십니다.
[스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말씀하셨다.
"앙산 스님이 마지막 한마디를 하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 분임을 알 수 있으랴."]라고 하십니다. 이 말후구에서 앙산스님이 마지막 말후구에서 후려쳤다는 것을 왜 쳤을까?
이것이 선사의 대자비심인 것입니다. 그 때 그냥 법당으로 갔다면 선문답으로써의 기본 선기방편(禪機方便)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앙상스님이 그 스님을 불러 몽둥이 짓을 한 것을 보고는 아 그대로 앙상스님은 선사임을 바로 알아 보았다고 운문선는 앙산스님을 선기방편이 바르게 행한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짓을 제대로 하였음을 대중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성불인연 맺으소서 옴 바아라 믹~~!!!!!!!!!!!!!!!!!
조사선(祖師禪) 운문록(雲門錄)을 들어시어
인연성불(因緣成佛) 하시어서 붓다(佛陀) 같이 살아가소!
일승법문을 시절인연삼아 인연성불 하옵시고 대원성취 하옵소서 !
원오선원 명상쉼터 천안시 두정동 611_1번지 5층(041)551 8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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