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길을 찾아, 스스로 조화 속으로 녹아들어,
영원한 윤회를 되풀이하고 있다.
그것이 물이다.
인간이 만들어 낸 대기의 오염 때문에,
그 깨끗한 물이 지상을 오염시키는 사태를 맞고 있다.
우리도 마음을 잃으면,
그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행동이 없는 실천은,
가공(架空)의 원칙으로 흐르기 쉬운 것이다.
자연의 흐름에 거역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진로를 정하여,
대조화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물의 모습을 볼 때,
인간의 모습은 어떠한가, 하고 생각한다.
인간은, 물과 같은,
용기도 지혜도 노력도 없는 것은 아닌가.
왜냐하면 인간은, 스스로의 결점에는 눈이 무르고,
타인의 결점에 대해서만은, 유독 눈에 심지를 세우기 쉽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이기는 극기야말로, 중요한 일이 아닐까.
스스로의 눈에 비치는 부조화한 모든 현상을 제어하고,
스스로의 귀에 들어오는 잡된 소리를 제어하고,
자기의 편의만을 입에 담는 것을 억누르고,
후각과 미각의 유혹을 제어하고,
일체의 집착을 끊고, 족함을 안다면,
인생항로의 거친 파도는 부드러워지고,
평안이 깃든 광명에 찬 대해 속으로, 조화되어 갈 것이다.
그리고 예로 대해(大海)에 대조화되는 물도,
그 개(個)의 물의 본성은 변함이 없는 것과 같이,
우리들, 각자(個)의 생명의 존재도 변함이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물의 흐름마저도,
우리에게 길을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대 인도시절 고타마 붓다가 설법한 올바른 마음의 가르침을,
강가강의 흐름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처럼,
내재된 의식을 열었을 때,
“올바른” 마음의 가르침으로서,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 터이다.
물에 대해서는 말했는데, NaCl(소금)은 또 어떠한가.
이것도, 생물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것이다.
서로 양극단에 있는 NaOH(수산화나트륨)의 염기성분과,
HCl의 강산성의 염산이 화합하여,
중화되어 조화된 소금이 만들어진다.
우리에게 단맛과 매운맛도 소금넣기 나름,,,
이라는 속담이 있듯이,
단맛과 매운맛의 양극단도, 소금에 의해서 중화되어 버린다.
고기나 야채 따위가 썩지 않도록 이용되며,
우리와 끊으려해도 끊을 수없는 연(緣)의 의하여, 묶여 있는 것이 소금이다.
또 악귀를 쫓고 액을 물리치기 위해서, 소금을 뿌리는 습관도 있다.
이와 같은 습관은,
중화(中和), 조화가 근본이지만 최근에는,
자기에게 이롭지 못한 사람한테도 소금을 뿌리곤 한다.
뿌리는 형식보다, 마음가짐 쪽이 더 반발하고 있는데,
소금을 뿌리는 사람은, 좀체로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맑게 한다는 것은, 조화한다는 뜻이다.
이 뜻을 알고 있다면, 소금을 뿌리기 전에,
사람끼리 서로 마음을 터 놓고 대화함으로써,
상호간에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선결일 터이다.
마음을 터 놓고 대화하기 위해서는,
자기 중심의 생각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탐지하려 들거나,
자기에게 유리한 생각만을 가지고 있어서는, 불가능한 노릇이다.
자기의 결점도 장점도 드러내 놓고,
중도의 마음으로,
상대방도 자기 자신도 올바르게 보는 것이,
조화로 가는 첫걸음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쌍방이 편협되지 않는 판단과 행동,
이것이 중도이며,
대조화에로의 길로 통한다.
하물며 권력이나 무력으로 상대방을 지배하여도,
한때의 허울뿐인 조화만 생길 뿐, 혼란만 낳을 뿐이다.
육체적인 행동에 제한을 가하더라도,
중도의, 조화된 환경은 이루지 못한다.
즉 육체적으로 아무리 제약이 가해지더라도,
선장인 그 마음까지 지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음속에서 납득 된 것이,
외면적인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으면
참된 조화와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신의 의사(意思)인 대조화는,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열, 빛의 일체, 대자연의 조화로서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은 자비의 모습이고 사랑의 모습이며
신의 마음의 현현이다.
고타마 붓다가 설법한,
법화경의 방편에도 진흙의 늪에 피는 연꽃이 인용된 것처럼,
대자연은 항상 우리의 스승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스승은,
소금의 상태를 통해서도, 중도의 조화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주;
연꽃의 비유;
‘진흙 속에서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의 깨끗함을 배우라,’
진흙은 육체이며,
연꽃은 혼.
진흙 속에는, (코딱지, 눈꼽처럼 더럽지만)
연꽃의 성장에 필요한 성분과, 필요하지 않은 성분이 있다.
그 속에서 필요한 성분(=올바른 기준)을 흡수하여,
성장하고, 연꽃의 향기를 만들어 내고.
(올바른 기준으로 마음이 아름다운) 그리고 살 수 있는 환경을 주는,
진흙에 감사하는, (진흙이 없으면 연꽃이 살 수 없지 아니한가.)
육체는 코딱지, 눈꼽처럼 더럽지만,
육체가 없으면, 우리의 영은 저승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는가.
육체에 감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육체의 유지를 도와주는
주변의 만생만물들에게도 감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
내가 태어났을 때의 지구상의 인구는, 수십억이었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오십여년이 지난, 지금은 지구상의 인구중에,
약 70%이상이 저세상으로 돌아갔지요.
앞으로 20~30년이면,
거의 모든,(내가 태어났을 때, 지구상에 있었던) 사람들
거의 모두 저승으로 돌아가 있을 것입니다.
육신을 가지고 있는 동안.
육신에게 감사하며, 열심히 수행하여, 저세상에서,
(어느 누구도 예외없이 돌아가야 할, 그래서 서두를 필요는 없는)
다시 만납시다.
물론 만나려면, 밝은 세계로 가야 하지요,
어두운 세계에서는
생각이 나지도 않거니와,
만날 수도 없답니다.
어두운 세계에서는
행동의 폭이 좁아서,,,
(자살자가 가는 세계는 완전 암흑이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괴로움의 세계라고 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의 이유와,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 . . .
어렴풋하게 느낌이 오네요. . . .
인연있는 이여,
P109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