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파블로
원제 : The Sand Pebbles
1966년 미국영화
감독 : 로버트 와이즈
각본 : 로버트 앤더슨
원작 : 리처드 맥켄나
음악 : 제리 골드스미스
출연 : 스티브 맥퀸, 캔디스 버겐, 리처드 아텐보로
리처드 크레나, 엠마뉴엘 아르상, 마코
래리 게이츠, 찰스 로빈슨, 사이먼 오클랜드
'산파블로'는 1966년에 발표된 3시간 대작입니다. 인기배우 스티브 맥퀸이 주연이고, 지성파 배우 캔디스 버겐이 등장한 영화입니다. 캔디스 버겐은 1966년 20세의 나이로 영화에 데뷔했는데 이해 시드니 루멧의 '그룹'이라는 영화와 '산파블로'에 출연했습니다. 감독은 로버트 와이즈, 1940년대 부터 이미 흑백 수작들을 내놓은 실력파 감독인데 1961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와 1965년 '사운드 오브 뮤직' 두 대작으로 아카데미 작품, 감독상을 연이어 수상했고 대작 재미가 들렸는지 다시 '산파블로'라는 거대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2시간 33분, '사운드 오브 뮤직'이 2시간 52분, 그리고 '산파블로'는 무려 3시간 2분 입니다. 여러가지 할 말이 많은 영화, 오늘은 그 '산파블로'에 대한 소개입니다.
'산파블로' 라는 제목은 거대한 포선의 이름입니다. 미 해군들이 중국에 정박하여 있는 상황을 다루고 있지요. 그 배의 이름이 산파블로 입니다. 그런데 왜 원제가 'The Sand Pebbles' 일까요? 그 이유는 영화 초반부에 대사로 나옵니다. Sand Pebbles 란 모래 자갈들 이라는 뜻인데 산파블로와 발음이 비슷한 샌드 페블스 라는 단어를 장난하듯 붙인 비유적 표현입니다. 즉 산파블로 함선의 승무원들을 지칭한 유사발음 말장난 인 셈이지요.
짧은 머리 군인 연기가 잘 어울리는 스티브 맥퀸
청순하고 풋풋한 미모의 캔디스 버겐
미해군 기계 전문가로 등장한 스티브 맥퀸
중국 의화단의 난에 맞서는 11개국 열강 병사들의 55일간의 대치를 다룬 '북경의 55일'이 나온 것은 1963년 이였습니다. 그후 3년뒤, 역시 중국을 배경으로 서구 주둔군에 반기를 드는 중국인들과의 갈등을 다룬 '산파블로'의 시대적 배경은 1926년, 그동안 중국의 상황은 많이 변했습니다. 마지막 황제 푸이를 끝으로 청나라 제국은 무너지고, 대신 장개석의 민주당과 중국공산당으로 양분되어 혼란기를 겪는 상황이었습니다.(언제 중국이 혼란스럽지 않은 시대가 있었냐만은) 중국 상하이에 주둔한 미군 전함 산파블로 호는 말이 전함이지 오래된 낡은 배에 포를 장착하고 있을 뿐입니다. 여기에 새로 발령되어 온 제이크 홀맨(스티브 맥퀸)은 9년간 복무를 한 베테랑이지만 한 군데 오래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아 이기도 합니다. 그는 산파블로호에 탑승하고 배의 상황을 보고 놀랍니다. 배에는 여러 중국 부랑자들이 비공식적으로 두둔하면서 엔진실, 세탁실, 식당 등에서 노동을 하면서 지내고 있었고, 해군들은 빈둥거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비 전문가들에게 배를 맡긴 상태라서 엔진의 상태도 좋지 않았고 여러 문제가 많았지만 선장 콜린스(리처드 크레나)는 중국의 바닥조직과의 공생을 위하여 묵인하고 있었습니다. 홀맨이 오고나서 이런 중국십장이 좌우하는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게 되고 이로 인하여 갈등도 빚게 됩니다. 그런 와중에 중국 인민들이 반미의 깃발아래 미군의 퇴거를 외치게 되고 점점 산파블로호에는 전운의 그림자가 드리웁니다. 급기야 중국 각지에서 서구세력과의 충돌이 발생하고 산파블로호에도 전투태세가 갖추어지는데 콜린스 선장은 '중국의 빛'이라는 선교원의 선교사 부녀를 구출하려는 미션을 진행합니다.
스티브 맥퀸(왼쪽)과 리처드 아텐보로
'엠마뉴엘 부인'의 원작자이자 실제 인물
엠마뉴엘 아르상
엠마뉴엘 아르상이 비중있는 배역으로 출연한다.
로버트 와이즈 감독은 이미 1958년 '전우여 다시 한번'이라는 잠수함 영화를 통해서 배에서 주둔하는 군인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는데 8년만에 다시 미 해군 함선의 중심에서 펼쳐지는 3시간 대작을 만들었습니다. '전쟁과 애욕' '대탈주' '돌격대' 순간에서 영원으로' '빗속의 군인' 등 군인연기에 익숙한 스티브 맥퀸이 노련한 해군병사 역으로 주인공 캐릭터를 소화하며 장렬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그와 만나 풋풋한 사랑을 키우는 아리따운 교사이자 선교사의 딸 역으로 캔디스 버겐이 20세의 싱그러운 모습을 보입니다. 캔디스 버겐은 영화 전체에서의 비중으로 따지면 조연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이후 '솔저 블루' '헌팅파티' '바람과 라이온' '파리의 정사' 등의 영화를 통해서 지적인 미모를 과시하며 인기를 얻지요. 그 외에 배의 선장으로 ''어두워질때까지' '람보' 의 리처드 크레나가 중후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지금은 감독 겸 배우로 많이 알려진 리처드 아텐보로가 스티브 맥퀸과 절친한 동료 병사 프렌치 역으로 비중이 높게 등장합니다.
중국에서 의화단의 난이 발생한게 1900년이고 '북경의 55일'에서 결국 55일간의 대치 끝에 11개국 열강들에 의해서 진압되었는데 1926년 당시에도 의화단 세력들이 존재했는지 이 영화에서도 언급이 되고 있습니다. 영화의 내용이 점점 미해군과 중국간의 갈등으로 치닫고 있는데 그럼에도 다소 어이없는 후반부로 느껴지는 이유가 선교사 가족을 구출하기 위해서 위험 천만의 임무를 수행하는데 정작 선교사는 미군으로의 합류를 거절합니다. '선교사는 무국적이다' 라는 기치로.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아무리 예수의 사랑을 온 세계에 전파시킨다는 목적이 있어도 때와 상황을 가려가면서 해야지, 그렇게 무대포 정신으로 버티는 건 좀 어이가 없습니다.(이 장면에서 샘물교회가 생각나더군요) 영화 초반에 캔디스 버겐의 아버지로 등장한 선교사가 다른 서구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강대국들이 중국을 괴롭힌다고 주장하면서 심한 언쟁을 벌이는데 중국의 20세기 초 역사를 보면 서구세력과의 갈등이 많고 어느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의견이 분분한데, 이 선교사 입장은 중국의 편을 들어주고 있습니다. 반면 다른 미국인들은 중국인들을 미개인 취급하면서 비하하는 장면도 많이 나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노동력을 활용하여 공생하고자 하고 아편과 관련된 이권등이 언급되기도 하지요.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마코(오른쪽)
일본인 이지만 중국인을 연기한다.
스티브 맥퀸과 캔디스 버겐의
풋풋한 사랑이 영화의 감미로운 분위기를 더한다.
이러한 20세기 초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두 개의 사랑이 펼쳐지는데, 그래서 영화가 많이 길어집니다. 스티브 맥퀸과 캔디스 버겐이 펼치는 사랑은 같은 백인 젊은이들끼리 이국에서 만나 동질감을 느끼면서 나누는 사랑입니다. 반면 리처드 아텐보로와 엠마뉴엘 아르상이 펼치는 사랑은 타국에서 외로운 군인으로 사는 병사와 호스티스의 삶을 청산하고 싶어하는 중국 여인과의 국경을 초월한 위험한 사랑이지요. 안타깝게도 이 두 개의 사랑은 영화속에서 모두 비극적인 엔딩으로 끝납니다.
'산파블로'는 1968년 우리나라에 개봉되어 장기간 절찬리에 상영했고 공중파 TV, 케이블 TV 방영 등 접할 기회가 참 많았던 고전영화 중 한 편인데 이번에 시네마스코프 원 비율에 HD급 화질로 본 것은 처음이라서 가장 제대로 된 감상을 한 느낌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이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별로 언급되지 않았던 엠마뉴엘 아르상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엠마뉴엘 아르상, 너무너무 유명한 인물이지요. 그녀가 누군지는 모르더라도 실비아 크리스텔이 주연한 '엠마뉴엘 부인' 이라는 에로영화는 다들 들어봤을 겁니다. '엠마뉴엘 부인'은 시리즈로 계속 만들어졌고, 실비아 크리스텔만 세 편의 영화에서 주연을 했지요. 그 엠마뉴엘 본인이 바로 엠마뉴엘 아르상이고 놀랍게도 '산파블로' 에서 비중이 매우 높습니다. 거의 캔디스 버겐과 비슷한 비중이지요. 소설 '엠마뉴엘'의 작가인데 자전적 소설이었고, 그게 영화화 되어 소설보다 영화가 훨씬 유명하고 무명 배우였던 실비아 크리스텔을 일약 스타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엠마뉴엘 아르상은 영화속의 퇴폐적인 캐릭터와는 너무 달랐습니다. 우선 실비아 크리스텔 같은 8등신의 서구미녀가 아니라 아시아 여성이지요. 영화에서는 중국여인으로 등장했고, 태생은 태국인이지요. 태국주둔 프랑스인 외교관과 결혼했고 놀랍게도 24세인 1956년부터 2005년 73세로 사망할 때까지 함께 살았습니다. 두 아이의 어머니이기도 했고. 영화속 자유분방한 묘사와 달리 해로를 한 부부였지요.
전형적인 동양적 외모를 지녔고, 평생 영화는 딱 2편 출연했는데 그중 한 편이 '산파블로' 입니다. 34살의 나이에 데뷔한 것인데 미 해군 병사와의 비극적 로맨스를 이루는 비련의 여인 역할입니다. 영화속에서 벌어지는 두 축의 사랑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지요. 돈에 묶여 어쩔 수 없이 호스티스로 살아가지만 그를 딱하게 본 리처드 아텐보로가 어렵게 2백달러를 구해서 빼내주고 서로 사랑하게 되지만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되지요.
리처드 아텐보로와 엠마뉴엘 아르상의 로맨스도
영화의 한 축을 담당한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스티브 맥퀸의 열연
'산파블로'는 비극적 내용입니다. 대체 뭘 위해서 왜? 라는 느낌이 들고 이건 스티브 맥퀸의 마지막 대사가 마치 그런 느낌이기도 합니다. 중국과 서구 열강과의 갈등에서 단지 복무를 위해서 명령대로 해군근무를 한 애꿎은 여러 군인이 희생되고 있지요. 물론 중국인들의 피해는 더 컸고, 그래서 얻은게 뭘까요? 본국의 보호를 강력하게 거부하는 선교사 하나 구하려고 얼마나 많은 중국인, 미군병사가 죽는지.... 참 씁쓸한 내용입니다. 스티브 맥퀸은 전쟁영화에 출연할 때마다 잘 되고 끝나는 경우가 참 없네요.
3시간이 넘는 대작이고 준수한 재미와 규모를 가진 영화지만 아무래도 1년전 만든 '사운드 오브 뮤직'의 레벨에는 미치지 못하는 작품입니다.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스티브 맥퀸의 남우주연상 후보를 비롯해서 8개부문에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하지는 못했습니다. 전미 흥행에서는 그 해 10위권에 드는 준수한 성적을 올려서 로버트 와이즈 감독은 '사운드 오브 뮤직'에 이어서 2년 연속 흥행작을 만드는데 성공했는데 아쉽게도 이후 크게 주목받은 영화는 내놓지 못했습니다.
ps1 : 폴 뉴만과 줄리 크리스티가 각각 남녀주연 물망에 올랐었다고 합니다. 줄리 크리스티는 본인이 거절했는데 비중이 좀 적어서였겠죠.
ps2 : 일본 배우 '마코'가 아시아권 배우로 드물게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는데 수상하지 못합니다. 일본 배우인데 중국인 역할이었지요. 좀 희화화 된 캐릭터였습니다.
ps3 : 이 영화가 10년 일찍 등장했다면 딱 윌리암 홀덴이 적역이었을 겁니다.
ps4 : 전혀 닮은 구석이라고는 1도 없는 실비아 크리스텔과 엠마뉴엘 아르상의 비교사진 입니다.
[출처] 산파블로(The Sand Pebbles, 66년) 스티브 맥퀸 주연 대작|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