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철 푸른 소나무의 효험
조선 4대 왕 세종대왕의 평소 건강 상태에 대해 실록은 ‘비중(肥重)’ ‘건습(蹇濕)’이라고 표현했다. 요즘 말로 하면 비만이거나 과체중이었고, 다리를 절었다(蹇)는 뜻이다. 세종은 한쪽 다리를 저는 관절염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노루 뼈가 든 법주를 내의원으로부터 처방받아 자주 먹었다. 하지만 세종은 얼마 안 가 노루 뼈 술 제조를 금지시킨다. 노루 사냥에 나간 관원이 멧돼지에게 받혀 죽는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 실록 기록으로 미뤄 보면 조선 전기 관절염 증상 치료에 노루 뼈가 대표적으로 사용됐음을 알 수 있다.
각종 한의서에 따르면 노루 뼈 외에도 여러 가지 약재가 증상에 따라 다리 질환 치료에 사용됐는데, 특히 다리에 힘이 없거나 무릎이 약한 하지무력증에는 소나무 뿌리와 솔 마디가 처방됐다. 이 처방에 큰 효험을 본 주인공은 조선 최장수 임금이었던 영조. 그는 노년에 다리에 힘이 없고 무릎이 아파오자 솔 마디를 이용한 송절차를 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102회 복용했다. 영조는 늘 “송절차가 입맛에 맞지 않다”고 불평을 했지만 “그 신묘한 효험” 때문에 송절차를 끊을 수 없었다.
실제 영조 재위 42년의 승정원일기에는 “송절차를 복용하고 나니 기운이 깨어나는 듯하고 소변도 시원하게 보았다. 건중탕을 복용하는 것보다 효험이 컸다”고 쓰인 부분이 있다. 건중탕에 인삼과 녹용이 들어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 기사의 표현이 얼마나 큰 칭찬인지 알 수 있다.
조선 후기 생활지침서였던 ‘규합총서’나 백과사전인 ‘임원십육지’에도 “송절차가 원기를 보충하고 무릎을 튼튼하게 한다”고 소개돼 있다. 송절차에는 단순히 솔 마디만 들어가는 게 아니다. 쇠무릎처럼 무릎을 강하게 만든다는 우슬과 오가피도 조금 넣어 함께 달인다.
솔뿌리(소나무 뿌리)에는 ‘소나무의 뼈’라고 할 정도로 강력한 힘이 내재돼 있다. 중국의 약학서 ‘본초강목’엔 “솔뿌리가 풍습병을 치료한다”고 돼 있다. ‘풍습병’은 지금으로 말하면 관절염이다. 솔뿌리를 오래 달여 먹거나 감주로 만들어 마시면 신경통과 산후풍에 효과가 크다. 황토에서 자란 10∼15년산, 그중에서도 동쪽으로 난 뿌리의 약효가 뛰어나다.
솔잎은 양생의 명약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의병장 곽재우 장군이 ‘임진왜란이 끝나자 솔잎을 먹고 신선이 되었다’거나 통일신라의 대학자였던 최치원 선생이 ‘솔잎을 먹으며 가야산에 은거했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현대 의학도 솔잎의 옥시팔라민 성분이 젊음을 유지시키고 혈관 벽을 튼튼하게 하며 심장병이나 고혈압 치료에 효과가 있음을 증명했다. 실록에도 역병의 예방약으로 솔잎을 거론하면서 자주 끓여 먹도록 권장한 기사가 곳곳에 보인다. 실제 솔잎에는 항바이러스제제인 타미플루의 주성분 시킴산이 많이 함유돼 있다.
솔잎의 품질도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깊은 산속의 겨울철 적송이 가장 좋다. 오죽하면 추사 김정희 선생이 “겨울이 오고서야 송백의 푸름을 알았다”고 되뇌었을까. 사시사철 푸른 솔잎의 강한 양기(陽氣)는 몸의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도록 돕는다. 무릎이 시리거나 차갑게 굳는 증상을 치료하는 데 솔잎을 처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