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349 ]
불행과 다행
백영옥 (소설가)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는, 편의점 리테일 본부에서 일하는 주인공이 자기가 관리하는 알짜 점포를 가로챈 선배 일로 부아가 나 있는데, ATM 기계를 독차지한 남자 때문에 분을 삭이는 장면이 나온다. 설상가상 뒤에 서 있던 아저씨가 버스 시간을 놓칠 것 같다며 양보를 부탁하자 주인공은 짜증을 누르고 양보하는데 그가 사라진 후 반전이 펼쳐진다.
“잔액이 부족해 5만원을 인출할 수 없습니다!” 계약금 3억을 구할 수 없어 월 순이익 천만원짜리 점포를 놓치고 억울한 마음뿐이었는데 5만원, 단돈 5만원이 없는 사람이 자기 앞에 있다는 걸 깨달은 주인공은 그 순간 구겨진 마음이 펴졌다고 고백한다. 가뜩이나 힘들었을 아저씨가 자신의 양보로 버스를 놓치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말이다.
최근 20·30대의 우울증 증가 원인을 SNS에서 찾는 기사를 보며 나는 이 장면을 떠올렸다. 내 할머니는 평생 고향에 머물며 고작 이웃들이 비교 대상이었다. 하지만 국제화한 요즘 세대는 세계 최고와 비교하며 스스로 초라해지는 순간을 수시로 경험한다. 그런 이유로 평범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내면화했다. 야근에 찌든 내가 발리를 여행하는 친구의 SNS를 보는 건 부러움을 넘어 자기 비하의 원인이 된다. 내면의 수치심을 감추기 위해 찾는 가장 쉬운 방법은 좁고 지저분한 내 방 대신 5성급 호텔의 침대를 찍어 올리는 것이다. 이런 경쟁적 상향식 비교는 우리 안의 불안을 자극해 이 시대 평범함의 기준을 높여 놓았다. 우리 사회는 실제 바쁜 것과 무관한 바빠 보이는 이미지에 더 열광한 지 오래다.
세상에서 가장 끈끈한 공동체는 뭘까. 환우회다. 나만 환자 같았는데 나보다 더 아픈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아는 순간, 나만의 불행이 보편적 불행으로 변한다. 먼저 아팠던 사람이 새로 아프기 시작한 사람에게 자신의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세계. 위만 존재할 것 같은 세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때, 우리는 비로소 앞과 옆을 함께 볼 수 있다. 우리의 불행이 다행으로 바뀜을 감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