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수상(隨想)/슬픈 쑥 떡
"허허 천벌을 받겠어, 천벌을. 쯧쯧.”
환경미화원의 혀 차는 소리가 들린다.
마을 입구 쓰레기장에는 쑥 떡이 버려져 있었다. 노란 콩고물을 묻힌 쑥 떡이다.
그 옆에는 노끈이 풀어진 허접스러운 택배 상자도 보인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시골 노 부모가 보낸 쑥 떡을 통째로 내다 버린 모양이다.
언젠가 모임에서
“요새 젊은이들은 촌에서 보낸 음식물은 뜯어보지도 않고 쓰레기통에 버린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지만, 이렇게 눈으로 보기는 처음이다.
어릴 적 보리누름 무렵이면 시골에는 누구네 집 할 것 없이 먹을 것이 부족했다.
점심 한 끼 정도는 너무 칙칙한 쑥 떡이나 개떡으로 때웠다.
오죽했으면 주고받는 인사도 ‘식사하셨어요?’나 ‘점심 먹었는가’였을까?.
아지랑이 가물가물 피어오르는 봄 날이면
바구니를 옆에 낀 어머니들은 쑥이나 냉이를 캐러 다녔다.
어린 자식 굶기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하던 어머니 얼굴에는 늘 부황(浮黃)이 나 있었다.
불과 삼사십 년 전 우리 부모님들은 이렇게 고된 삶을 이어 왔다.
아무리 먹을 것이 풍족하고 인스턴트식품에 길든 젊은 세대지만,
늙은 부모님의 정성이 담긴 쑥 떡을 쓰레기장에 버리다니,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문득 몇 해 전 체조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딴 양 학 선 선수가 생각난다.
‘도마의 신(神)’이라 불리는 양 선수 부모는 비닐하우스를 개조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
공사장 미장 기술자였던 양 선수 아버지가 수년 전 어깨를 다쳐 일을 못 하자,
도회지에서 산골 마을로 이사를 왔다.
양 선수는 효자다.
태릉 선수 촌에서 하루 4만 원씩 받는 훈련 비를 모아
하우스 단칸방에 사는 부모에게 매달 80만 원씩 보냈다고 한다.
이십 대 초반의 젊디 젊은 나이에 그런 효심이 있다니.
지옥 같은 훈련을 받으면서도 고향의 부모님을 생각하다니.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난다.
양 선수의 금메달이 확정되던 날,
TV 앞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는 양 선수 어머니에게 기자가 마이크를 들이댄다.
“아들이 오면 제일 먼저 해 주고 싶은 것은?”
“아들에게 제일 먼저 뭘 먹일까. ♤♡라면입니다.” 울면서 대답했다.
고기도 아니고 그 흔한 라면이라니.
쓰레기장에 버려진 저 쑥 떡,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골집 툇마루에서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던 쑥 떡일 게다.
그 가파른 보리 고개를 넘은 사람이라면,
라면을 아들에게 먹이고 싶다는 양 선수의 어머니라면
감히 쑥 떡을 버릴 생각이나 했을까.
시골 부모님의 살뜰한 정을 쓰레기장에 내다 버린 어느 젊은 새댁도
양 선수 어머니의 울음 섞인 ‘○○○라면’ 소리를 들었을까.
쓰레기장에 버려진 저 쑥 떡,
참 슬퍼 보인다.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