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난아, 이 착한 남자가 부처님의 아들이 된 뒤에는, 여래의 한량없는 묘한 공덕을 두루 갖추어서, 시방으로 다니면서 수순하는 것을 환희행이라 한다.
온갖 중생들을 잘 이익하게 하는 것을 요익행이라 한다.
제가 깨닫고 남을 깨닫게 하는 일에 조금도 거스리지 아니하는 것을 무진한행이라 한다.
여러 종류들을 다 벗어나게 하되, 오는 세상의 끝까지 하여, 삼세가 평등하고 시방에 통달하는 것을 무진행이라 한다.
온갖 것이 합하여 같아지는 종종 법문에 잘못되지 않는 것을 이치난행이라 한다.
같은 가운데 여러 가지 다른 것을 나타내고, 낱낱이 다른 데서 제각기 같음을 보는 것을 선현행이라 한다.
이리하여, 시방 허공에 티끌을 채우고, 낱낱 티끌 속에 시방세계를 나타내어, 티끌을 나타내거나 세계를 나타내는데 서로 거리끼지 아니함을 무착행이라 한다.
가지가지가 앞에 나타나되, 모두가 제일 바라밀인 것을 존중행이라 한다.
이렇게 원융하여져서 시방 부처님의 규모를 이루는 것을 선법행이라 한다.
낱낱 것이 모두 청정하여 누가 없어지고, 한결같이 참되고 하염없이 본래 그러한 성품인 것을 진실행이라 한다.
5 아난아, 이 착한 남자가 신통을 구족하고 불사를 성취하며, 순전하게 깨끗하고 정미롭고 참되어, 모든 거리낌을 여의었다면, 당연히 중생을 제도한다는 상이 없어졌고, 하염없는 마음을 돌이켜 열반으로 향하는 것을 '온갖 중생을 제도하면서도 중생이라는 상을 여읜 회향'이라 한다.
부술 것을 모두 부수고 여러 가지 여읠 것을 멀리 여읜 것을 불괴회향이라 한다
본래의 각이 고요하고 맑아 깨달은 것이, 부처님의 깨달음과 같은 것을 등일체불회향이라 한다.
정미롭고 참된 것이 밝은 빛을 내어, 경지가 부처님 경지와 같은 것을 지일체처회향이라 한다.
세계와 여래가 서로서로 들어가되 걸림이 없는 것을 무진공덕장회향이라 한다.
부처님 경지와 같은 데서 경지 속마다 제각기 청정한 인을 내고, 인을 의지하여 빛을 드러내어서 열반을 취하는 것을 수순평등선근회향이라 한다.
청정한 선근이 이루어졌으면, 시방 중생이 모두 나의 본 성품이요, 성품이 원융하게 성취하면서도 중생을 잃지 않는 것을, 수순등관일체중생회향이라 한다.
온갖 법에 즉하면서 온갖 상을 여의어서, 즉하는 것이나 여의는 것이나 두 가지에 모두 집착하지 않는 것을 진여상회향이라 한다.
참으로 같은 이치를 얻어서, 시방에 거리낌이 없는 것을 무박해탈회향이라 한다. 성품인 공덕이 원만하게 성취되어, 법계의 한량이 없어진 것을 법계무량회향이라 한다.
6 아난아, 이 착한 남자는 이 청정한 사십일심을 끝까지 닦고는, 다시 네 가지 묘하고 뚜렷한 가행을 이룬다.
부처님의 각으로써 내 마음을 삼았으나, 날듯 날듯 하면서도 나지 않는 것이, 마치 나무를 비비어 불을 낼 적에. 나무를 태울 듯이 하는 것과 같은 것을 난지라 한다.
또 자기의 마음으로 부처님의 밟으시던 바를 이루었으나, 의지한 듯하면서도 의지한 것이 아닌 것이, 마치 높은 산에 올라가서 몸이 허공에 들어갔으나, 아래는 조금 걸림이 있는 듯한 것을 정지라 한다.
마음과 부처님이 둘이 같아서 중도를 얻은 것이, 마치 일을 참는 사람이 품어 두는 것도 아니요 내어버리는 것도 아닌 것 같은 것을 인지라 한다.
셈으로 요량하는 것이 소멸하여져서, 아득한 중도나 깨달은 중도나, 둘에 지목할 바 없는 것을 세제일지라 한다.
7 아난아, 이 착한 남자가 보리를 잘 통달하되, 깨달음이 여래와 융통하여 부처님의 경계를 극진한 것을 환희지라 한다.
다른 성품이 같아지게 되고, 나아가 같은 성품까지 없어진 것을 이구지라 한다.
깨끗한 것이 지극하여 밝은 빛이 나는 것을 발광지라 한다.
밝은 것이 지극하여 각이 원만한 것을 염혜지라 한다.
일체의 같다 다르다 하는 것으로 미칠 수 없게 된 것을 난승지라 한다.
하염없는 진여의 성품이 밝고 깨끗하게 드러나는 것을 현전지라 한다.
진여가 끝까지 다한 것을 원행지라 한다.
한결같이 진여의 마음뿐인 것을 부동지라 한다.
진여의 작용을 내는 것을 선혜지라 한다.
아난아, 이 보살들이 이제부터는 닦는 공부를 마치고 공덕이 원만하였으므로, 여기까지를 수습하는 자리라 한다.
자비로운 그늘과 묘한 구름이 열반 바다에 덮인 것을 법운지라 한다.
여래가 흐르는 것을 거슬러 올라오면, 이 보살은 흐름을 따라 내려가서, 각의 경계선에 들어가 어울린 것을 등각이라 한다.
아난아, 건혜지로부터 등각까지 이르러서는 이 각이 비로소 금강심 가운데의 초건혜지를 얻나니, 이렇게 홑으로 겹으로 열두 번을 거듭거듭하여야, 비로소 묘각이 극진하여 위없는 도를 이루는 것이다.
이 여러 가지 계단은, 모두 환술 같은 열 가지로 비유하는 금강처럼 관찰하는 사마타 가운데서, 여래의 위파사나로서 깨끗하게 닦아 증하여 차례차례로 깊이 들어가는 것이다.
아난아, 이것들은 모두 세 가지 차례로 닦아 모아가는 것으로써, 오십오위의 참된 보리 길을 성취하는 것이니, 이렇게 보는 것을 올바른 관이라 하고, 다르게 보는 것을 잘못된 관이라 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