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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가지 스크랩 오바마와 인순이. 그리고 마틴 루터 킹의 꿈
김형식 추천 0 조회 140 09.08.04 01:53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미국의 제 44대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당선이 이래저래 큰 화제들을 낳고 있습니다. 그런 화제들 중에는 오바마가 ‘아프리칸 아메리칸’이지만 순수한 흑인은 아니라는 점도 있을 것입니다. 버락 오바마를 미국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인종주의자들은 아마도 ‘오바마의 어머니가 백인이다’라는 점으로 위안을 삼고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국의 흑인 혼혈 대통령 오바마가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는 동안, 국내에서는 가수 ‘인순이’ 씨의 예술의 전당 콘서트 문제로 많은 설왕설래가 있습니다. 물론 예술의 전당 측에서 공연을 불허하는 원인 중에 어떤 인종적인 편견이 있다고 믿고 싶지는 않습니다. 가수 ‘인순이’ 씨가 대중 가수라는 이유가 제일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고, 예술의 전당을 대관할 수 있을 만큼 대(大)가수는 아니라는 판단도 있었겠지요.

 

  초등학교 시절 처음 가수 인순이 씨를 텔레비전으로 보았을 때, 어린 저로서는 여러 가지로 혼란스러웠습니다. 처음에는 ‘왜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가수를 하지?’ 하는 의문을 갖다가, 나중에는 ‘어떻게 흑인이 한국말을 하고 한국 이름을 갖고 있지?’하는 의문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른들이 주고받는 말을 주워들으며 대충 ‘그렇구나.’ 하고 이해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인순이 씨를 본 기억 자체가 없습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난 인순이 씨의 노래를 다시 들으며 저는 솔직히 충격에 빠졌습니다. ‘아니 인순이가 저렇게 노래를 잘 했단 말이야?’ 하고 마음속으로 말했죠. 어린 시절, 저는 ‘밤이면 밤마다’를 열창하는 가수 인순이가 아니라, 얼굴이 까만 신기한 혼혈인을 쳐다보고만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거위의 꿈’을 부르는 가수 인순이 씨의 얼굴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아름답고 성량이 풍부한 목소리를 듣고 있으며 그를 가수로서 좋아하고 응원합니다.

 

  오바마의 당선을 지켜보다가, 문득 마틴 루터 킹 목사가 1963년 8월 29일 워싱턴 D. C 링컨 기념관 앞에서 했던 그 유명한 연설 ‘I have a dream’을 떠올리게 됩니다. 저는 고등학교 시절 성문 종합 영어 책에서 그 연설문을 처음 읽었었습니다. 그의 연설문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문과 함께 아직까지도 저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명문입니다. 올 해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가 살해된 지 40년이 지난 해입니다. 하늘에 있는 마틴 루터가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을 지켜보며, 자신이 가졌던 그 꿈이 실현된 것을 무척 기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미국은 ‘인종 차별’이라는 무거운 인간 사회의 죄악을 한 꺼풀 정도 벗겨내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 치유해야 하고 바로 잡아야 할 것들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불과 10년, 20년 전의 흑인 인권을 생각한다면 정말 격세지감이겠지요. 그런데, 슬프게도 한국에 살고 있는 혼혈 가수 ‘인순이’ 씨의 꿈은 아직 미래형인 것 같습니다. 물론 그녀의 예술의 전당 공연이 무산되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한국 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깜둥이’니 ‘튀기’니 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고 있으며, 혼혈인들에 대한 냉대와 차별이 사라지지 않았기에 하는 말입니다.

 

 

 

  사회는 언제나 변화를 위한 몸살을 앓기 마련입니다. 누군가 희생을 하고 두려움 없이 앞장서야 사회는 변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링컨은 자신을 희생해 바닥을 다졌고, 마틴 루터 킹 같은 선구자는 목숨을 걸고 인부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콜린 파월이나 마이클 조던, 댄젤 워싱턴 같은 흑인들이 하나 둘 씩 기둥을 세웠습니다. 특히 흑인 아버지를 두었고 태국인 어머니를 둔 혼혈 흑인 타이거 우즈의 존재야 말로 혼혈인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는 데 보이지 않는 큰 기여를 했다는 생각도 나름 해봅니다.

 

  한국 사회도 다문화 사회라는 시대의 격변의 앞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런데 다인종 사회, 다민족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한국 사회는, 오히려 뒤늦게 인종과 국적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부활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저 신기함의 대상이었던 한국의 ‘인순이’는 시대가 흘러 오히려 편견과 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미국 백인들의 인종 차별을 비난하던 우리지만, 이제는 우리 사회가 그 시험대 앞에 섰습니다. 가수 인순이 씨가 ‘흑인 아버지’를 두지 않았다면, 솔직히 그녀는 지금보다 훨씬 더 인정받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엄연한 한국 사회의 현실입니다.

 

  그렇지만 이제 인순이 씨의 꿈도 우리 사회에서 현실이 되는 날이 와야하지 않을까요? 그녀의 피부색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재능과 열정을 볼 수 있다면, 그녀는 더 이상 ‘미운 거위 새끼’가 아니라 ‘백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또 반대로 생각해 볼 일도 있습니다. 인순이 씨가 흑인 아버지를 두지 않았다면 그토록 훌륭한 목소리와 힘있는 성량을 지닐 수 있었을까요? 하인스 워드가 흑인 아버지를 두지 않았다면 그의 뛰어난 운동 신경과 근력은 생겨날 수 있었을까요?

 

  타이거 우즈의 아버지가 흑인이 아니었다면, 타이거 우즈는 골프 신동이 될 수 있었을까요? 댄젤 워싱턴의 아버지가 흑인이 아니었다면, 그의 멋진 입술은 존재했을까요? 버락 오바마의 아버지가 흑인이 아니었다면, 버락 오바마는 사회를 바라보는 따스한 눈을 지닐 수 있었을까요? ‘흑인도 사람이다.’라는 인식만으로 편견은 끝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다른 인종과 민족들도 나름대로 훌륭한 재능과 가치와 힘을 가졌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혼혈이나 이민족임에도 불구하고'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고, 그로 인한 차별이나 특별대우도 없는 그런 사회가 실현되어야 하겠지요. 특히나 세계 도처에서 아시안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겪었고 겪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인종적인 편견이나 차별에 맞서 그 누구보다 더 열심히 싸워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인종이나 민족을 차별하는 것은 상민이 천민을 차별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가 흑인이나 기타 다른 인종들을 무시한다면, 우리가 백인들로부터 받는 멸시 역시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버락 오바마의 이루어진 꿈은 흑인들의 기쁨이기도 하며, 인순이 씨의 기쁨이기도 하며 한국인들의 기쁨이기도 해야 합니다. 오바마는 '아메리칸 드림'이 유색인종과 이민족, 혼혈에게도 공평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인순이 씨가 그 어떤 이유로든 특별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가수로서 당당히 실력을 인정받고 예술의 전당 무대에 서는 날도 언젠가는 오길 바랍니다. 그렇게 그녀가 당당히 대한민국이라는 무대에서 성공한 인물로 평가받길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차별 당하고 편견에 시달리는 많은 '인순이'들이 '코리안 드림'의 공평함에 기뻐할 수 있을 테니까요. 

 

 

 

 

Martin Luther King Jr.’s “I have a dream.” Speech

(delivered 28, August 1963 at the Lincoln Memorial, Washington DC)    

 

I am happy to join with you today in what will go down in history as the greatest demonstration for freedom in the history of our nation. Five score years ago, a great American, in whose symbolic shadow we stand today, signed the Emancipation Proclamation. This momentous decree came as a great beacon light of hope to millions of Negro slaves who had been seared in the flames of withering injustice.  It came as a joyous daybreak to end the long night of captivity.  

 

우리 역사에서 자유를 위한 가장 훌륭한 시위가 있던 날로 기록될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과 함께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백년 전, 한 위대 한 미국인이 노예해방령에 사인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이 바로 그 상징적인 자리입니다. 그 중대한 선언은 불의의 불길에 시들어가고 있던 수백만 흑인 노예들에게 희망의 횃불로 다가왔습니다. 그 선언은 오 랜 노예 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즐겁고 새로운 날들의 시작으로 다가왔습니다.  

 

But one hundred years later, the Negro still is not free. One hundred years later, the life of the Negro is still sadly rippled by the manacles of segregation and the chains of discrimination. One hundred years later, the Negro lives on a lonely island of poverty in the midst of a vast ocean of material prosperity. One hundred years later the Negro is still anguishing in the corners of American society and finds himself an exile in his own land. And so we've come here today to ramatize a shamful condition.

 

그러나 그로부터 백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흑인들이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 다는 비극적인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백년 후에도 흑인들은 여전히 인종 차별이라는 속박과 굴레 속에서 비참하고 불우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백년 후에도 흑인들은, 이 거대한 물질적 풍요의 바다 한가운데 있는 빈곤 의 섬에서 외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백년 후에도 흑인들은 여전히 미국 사회의 한 귀퉁이에서 고달프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이 끔찍한 현실을 알리기 위해 이 자리에 나온 것입니다.

   

In a sense we've come to our nation’s capital to cash a check.  When the architects of our republic wrote the magnificent words of the Constitution and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they were signing a promissory note to which every American was to fall heir. This note was a promise that all men, yes, black man as well as white man, would be guaranteed the "unalienable rights" of "Life", "Liberty, and the pursuit of Happiness." It is obvious today that America has defaulted on this promissory note insofar as her citizens of color are concerned. Instead of honoring this sacred obligation, America has given the Negro people a bad check; a check which has come back marked “insufficient funds.”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국가로부터 받은 수표를 현금으로 바꿔야 할 시기에 온 것입니다. 미국을 건국한 사람들은, 헌법과 독립선언에 훌륭한 표현들 을 써 넣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미국인들이 상속하게 되어 있는 약속어음 에 사인을 했습니다. 그 약속어음이란, 모든 인간에게 삶과 자유, 행복 추 구라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보장한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이, 시민들의 피부색에 관한 한, 이 약속어음이 보장하 는 바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미국은, 이 신성한 의무를 존중하지 않고, 흑인들에게 부도수표를 주었습니다. 이 부 도수표는 자금이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되돌아옵니다.  

 

But we refuse to believe that the bank of justice is bankrupt. We refuse to believe that there are insufficient funds in the great vaults of opportunity of this nation. So we've come to cash this check―a check that will give us upon demand the riches of freedom and the security of justice.  

 

그러나 우리는 정의의 은행이 파산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나라에 있는 기회의 금고에 자본이 충분치 않다는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이 수표를 현금으로 바꿔야 할 때에 다다른 것입니다. 이 수표는 우리가 요구하는 바에 따라 충분한 자유와 정의에 의한 보호를 우리에게 줄 것입니다.  

 

We have also come to this hallowed spot to remind America of the fierce urgency of now. This is no time to engage in the luxury of cooling off or to take the tranquilizing drug of gradualism. Now is the time to make real the promises of democracy. Now is the time to rise from the dark and desolate valley of segregation to the sunlit path of racial justice. Now is the time to lift our nation from the quicksands of racial injustice to the solid rock of brotherhood.

 

또한 우리는 「바로 지금」이라고 하는 이 순간의 긴박성을 미국인들에게 일깨우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선 냉정을 되찾으라는 사치스러운 말을 들을 여유도, 점진주의라는 이름의 진정제를 먹을 시간도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바로 민주주의의 약속을 실현할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어 둡고 외진 인종 차별의 계곡에서 벗어나 햇살 환히 비치는 인종간의 정의의 길에 들어설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신의 모든 자손들에게 기회의 문을 열 어줄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인종간의 불의라는 모래 위에서 형제애라는 단 단한 바위 위로 올라서야 할 때입니다.  

 

Now is the time to make justice a reality for all of God’s children. It would be fatal for the nation to overlook the urgency of the moment. This sweltering summer of the Negro’s legitimate discontent will not pass until there is an invigorating autumn of freedom and equality. Nineteen sixty-three is not an end, but a beginning. And those who hope that the Negro needed to blow off steam and will now be content will have a rude awakening if the nation returns to business as usual. And there will be neither rest nor tranquillity in America until the Negro is granted his citizenship rights. The whirlwinds of revolt will continue to shake the foundations of our nation until the bright day of justice emerges.  

 

지금 이 순간의 긴박성을 간과하고, 흑인들의 결의를 과소 평가한다면, 그 것은 이 나라에 치명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흑인들의 정당한 불만이 표출 되는 이 무더운 여름은 자유와 평등의 상쾌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찾아올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1963년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만일 이 나라 가 다시 예전 상태로 돌아간다면, 흑인들이 좀 진정을 하고 自足해야 할 필 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친 방식으로 깨달음을 얻게 될 것입니다 . 흑인들이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부여받기 전에는 미국에 휴식도 평온도 없 을 것입니다. 정의가 실현되는 밝은 날들이 오기 전까지는 이 나라의 기반 을 뒤흔드는 폭동의 소용돌이가 계속될 것입니다.  

 

But there is something that I must say to my people, who stand on the warm threshold which leads into the palace of justice: In the process of gaining our rightful place, we must not be guilty of wrongful deeds. Let us not seek to satisfy our thirst for freedom by drinking from the cup of bitterness and hatred. We must forever conduct our struggle on the high plane of dignity and discipline. We must not allow our creative protest to degenerate into physical violence. Again and again, we must rise to the majestic heights of meeting physical force with soul force.  

 

정의의 궁전으로 이르는 출발점에 선 여러분들에게 꼭 드리고 싶은 이야기 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정당한 위치를 찾을 때까지는, 나쁜 행동을 해서 죄인이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점입니다. 비탄과 증오로 가득 찬 술잔을 들 이키는 것으로 자유를 향한 갈증을 달래려 하지 맙시다. 위엄과 원칙이 있는 높은 곳을 향한 투쟁을 영원히 계속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창의적 인 항거가 폭력으로 변질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 또다시, 우리의 힘 이 영혼의 힘과 맞닿을 수 있는 저 높은 곳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The marvelous new militancy which has engulfed the Negro community must not lead us to a distrust of all white people, for many of our white brothers, as evidenced by their presence here today, have come to realize that their destiny is tied up with our destiny. And they have come to realize that their freedom is inextricably bound to our freedom. We cannot walk alone.  And as we walk, we must make the pledge that we shall march ahead. We cannot turn back.  

 

우리 흑인 사회를 휩쓸고 있는 저 새롭고도 훌륭한 투쟁 정신이 백인들의 불신을 받는 데로 이어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서 있는 백인들이 증명하듯이, 우리의 많은 백인 동지들은 그들의 운명이 우리의 운명과 이 어져 있으며, 그들의 자유가 우리의 자유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깨 닫고 있습니다. 우리 혼자서만 걸어갈 수는 없습니다.  이제 우리, 앞으로 나아가면서, 더 전진해야 한다는 맹세를 해야 합니다. 되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There are those who are asking the devotees of civil rights, “When will you be satisfied?” We can never be satisfied as long as the Negro is the victim of the unspeakable horrors of police brutality. We can never be satisfied as long as our bodies, heavy with the fatigue of travel, cannot gain lodging in the motels of the highways and the hotels of the cities. We cannot be satisfied as long as the Negro’s basic mobility is from a smaller ghetto to a larger one. We can never be satisfied as long as our children are stripped of their selfhood and robbed of their dignity by a sign stating: "For Whites Only". We cannot be satisfied as long as a Negro in Mississippi cannot vote and a Negro in New York believes he has nothing for which to vote. No, no, we are not satisfied, and we will not be satisfied until "justice rolls down like waters and righteousness like a mighty stream."

 

인권운동가들에게 『언제가 되면 만족하겠느냐』 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흑인들이 경찰의 무지막지한 폭력의 공포에 희 생되고 있는 한, 우리에게 만족이란 없습니다. 흑인들이 여행하다가 피곤 에 지쳤을 때 고속도로 근처의 여관이나 시내의 호텔에 잠자리를 얻을 수 없는 한은 우리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흑인이 이주한다고 해야, 고작 작 은 흑인 거주지에서 더 큰 흑인 거주지로 가는 것이 전부일 때, 우리는 만 족하지 못합니다. 미시시피의 흑인들이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뉴욕의 흑인들이 마땅히 투표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한, 우리는 만족할 수 없 습니다. 안 됩니다. 안 됩니다. 우리는 만족하지 않습니다. 정의가 강물처 럼 흐르고, 정당성이 힘찬 흐름이 될 때까지 우리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I am not unmindful that some of you have come here out of great trials and tribulations. Some of you have come fresh from narrow jail cells. And some of you have come from areas where your quest -- quest for freedom left you battered by the storms of persecution and staggered by the winds of police brutality. You have been the veterans of creative suffering. Continue to work with the faith that unearned suffering is redemptive. Go back to Mississippi, go back to Alabama, go back to South Carolina, go back to Georgia, go back to Louisiana, go back to the slums and ghettos of our northern cities, knowing that somehow this situation can and will be changed.

 

저는 여러분들 중 어떤 사람이 재판을 받다가 여기 오게 되었다는 것에 신 경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좁은 감옥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사람 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유를 추구하다가 도리어 기소되어 두들겨 맞거나, 경찰의 야만스런 폭력에 고통받는 지역에서 오기도 했습니다. 여 러분들은 모두 그 새로운 방식으로 다가오는 갖가지 고통을 겪는 데는 베테 랑들입니다. 그런 고생들이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계속 일하십시오. 미시시피로 돌아가십시오. 앨라배마로, 사우스 캐롤라이나로, 조지아로, 루 이지애나로 돌아가십시오. 우리들의 현대적인 도시인 빈민가로, 흑인 거주 지로 돌아가십시오. 상황이 달라질 수 있고, 달라질 것이라는 점은 명심하 고 계십시오.  

 

Let us not wallow in the valley of despair, I say to you today, my friends. And so even though we face the difficulties of today and tomorrow, I still have a dream. It is a dream deeply rooted in the American dream. I have a dream that one day this nation will rise up and live out the true meaning of its creed: “We hold these truths to be self-evident,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I have a dream that one day on the red hills of Georgia, the sons of former slaves and the sons of former slave owners will be able to sit down together at the table of brotherhood.  

 

이제 절망의 계곡에서 뒹굴지는 맙시다. 나의 친구인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고난과 좌절의 순간에도, 저는 꿈 을 가지고 있다고. 이 꿈은 아메리칸 드림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꿈입니다.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 는 것을 자명한 진실로 받아들이고, 그 진정한 의미를 신조로 살아가게 되 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언젠가는 조지아의 붉은 언덕 위에 예전에 노예였던 부모의 자식과 그 노예 의 주인이었던 부모의 자식들이 형제애의 식탁에 함께 둘러앉는 날이 오리 라는 꿈입니다.  

 

I have a dream that one day even the state of Mississippi, a state sweltering with the heat of injustice, sweltering with the heat of oppression, will be transformed into an oasis of freedom and justice. I have a dream that my four little children will one day live in a nation where they will not be judged by the color of their skin but by the content of their character. I have a dream today. I have a dream that one day, down in Alabama, with its racists, with its governor having his lips dripping with the words of "interposition" and "nullification" -- one day right there in Alabama little black boys and black girls will be able to join hands with little white boys and white girls and walk together as sisters and brothers.

 

언젠가는 불의와 억압의 열기에 신음하던 저 황폐한 미시시피주가 자유와 평등의 오아시스가 될 것이라는 꿈입니다. 나의 네 자녀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 살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오늘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주지사가 늘 연방 정부의 조처에 반대할 수 있다느니, 연방법의 실시를 거 부한다느니 하는 말만 하는 앨라배마주가 변하여, 흑인 소년 소녀들이 백인 소년 소녀들과 손을 잡고 형제 자매처럼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꿈입니다.

 

I have a dream today. I have a dream that one day every valley shall be exalted, every hill and mountain shall be made low, the rough places will be made plains, and the crooked places will be made straight; "and the glory of the Lord shall be revealed and all flesh shall see it together." This is our hope. This is the faith that I go back to the South with.

 

오늘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어느 날 모든 계곡이 높이 솟아오르고, 모든 언덕과 산은 낮아지고, 거친 곳은 평평해지고, 굽은 곳은 곧게 펴지고, 하느님의 영광이 나타나 모든 사 람들이 함께 그 광경을 지켜보는 꿈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이것이 제가 남부로 돌아갈 때 가지고 가는 신 념입니다.  

 

With this faith, we will be able to hew out of the mountain of despair a stone of hope. With this faith, we will be able to transform the jangling discords of our nation into a beautiful symphony of brotherhood. With this faith, we will be able to work together, to pray together, to struggle together, to go to jail together, to stand up for freedom together, knowing that we will be free one day. And this will be the day -- this will be the day when all of God’s children will be able to sing with new meaning: 'My country’tis of thee, sweet land of liberty, of thee I sing. Land where my fathers died, land of the pilgrim’s pride, From every mountainside, let freedom ring.'

 

이런 신념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절망의 산을 개척하여 희망의 돌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희망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이 나 라의 이 소란스러운 불협 화음을 형제애로 가득 찬 아름다운 음악으로 변화 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신념이 있으면 우리는 함께 일하고 함께 기도 하며 함께 투쟁하고 함께 감옥에 가며, 함께 자유를 위해 싸울 수 있을 것 입니다. 우리가 언젠가 자유로워지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날은 신의 모든 자식들이 새로운 의미로 노래부를 수 있는 날이 될 것입니다. '나의 조국은 자유의 땅, 나의 부모가 살다 죽은 땅, 개척자들의 자부심이 있는 땅, 모든 산에서 자유가 노래하게 하라'  

 

And if America is to be a great nation, this must become true.  And so let freedom ring from the prodigious hilltops of New Hampshire. Let freedom ring from the mighty mountains of New York. Let freedom ring from the heightening Alleghenies of Pennsylvania!  Let freedom ring from the snowcapped Rockies of Colorado. Let freedom ring from the curvaceous peaks of California. But not only that, Let freedom ring from Stone Mountain of Georgia. Let freedom ring from Lookout Mountain of Tennessee. Let freedom ring from every hill and molehill of Mississippi. From every mountainside, let freedom ring.

 

미국이 위대한 국가가 되려면, 이것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유가 뉴 햄프셔의 거대한 언덕에서 울려 퍼지게 합시다. 자유가 뉴욕의 큰 산에서 울려 퍼지게 합시다. 자유가 펜실베이니아의 앨러게니 산맥에서 울려 퍼지게 합시다. 콜로라도의 눈 덮인 로키 산맥에서도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캘리포니아의 굽이진 산에서도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뿐만 아니라, 조지아의 스톤 산에서도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테네시의 룩아웃 산에서도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미시시피의 모든 언덕에서도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모든 산으로부터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And when we allow freedom ring, when we let it ring from every village and every hamlet, from every state and every city, we will be able to speed up that day when all of God’s children, black men and white men, Jews and Gentiles, rotestants and Catholics, will be able to join hands and sing in the words of the old Negro spiritual.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할 때, 모든 마을, 모든 부락, 모든 주와 도시에서 자 유가 울려 퍼지게 할 때, 우리는 더 빨리 그 날을 향해 갈 수 있을 것입니 다. 신의 모든 자손들, 흑인과 백인, 유태인과 이교도들, 개신교도와 가톨 릭 교도들이 손에 손을 잡고, 옛 흑인 영가를 함께 부르는 그 날이 말입니다.  

 

'Free at last! Free at last! Thank God Almighty, we are free at last!'

'드디어 자유, 드디어 자유, 전지전능하신 신이여, 우리가 마침내 자유로워졌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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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8.08 09:13

    첫댓글 감동입니다~잘보고 갑니다~

  • 09.08.10 13:53

    동감합니다. 한 세대(30년) 후 한국인구의 절반이상이 다인종일 텐데 왜 이리 답답한 사람들이 많은지 한심할 뿐이고. 세계로 지속적으로 확산해 나가는 한국이 되기 위해 불교, 유교, 기독교, 카톨릭, 이슬람, 천도교.... 종교단체들이 먼저 국민들한테 석고사죄하고 빈부, 인종, 학벌, 인맥 차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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