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눈
원제 : Eye of the Cat
1969년 미국영화
감독 : 데이비드 로웰 리치
각본 : 조셉 스테파노
출연 : 마이클 사라진, 게일 허니켓, 엘레노어 파커
팀 헨리, 로렌스 레이스미스, 제니퍼 리크
고양이는 요즘 개와 함께 가장 많이 길러지는 반려동물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고양이 숫자가 무척 증가했고, 번식이 빠른 동물이라 길냥이들도 요즘 굉장히 많이 보입니다. 그런데 요즘 그런 것이지 십수년전만 해도 개를 기르는 집에 비해서 고양이를 기르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고양이를 꽤 많이 길렀고, 영화에서 고양이를 기르는 집은 흔하게 등장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오히려 공포영화의 소재로 고양이가 쓰이기도 했는데 60년대 고전인 '살인마'도 그렇고 과거 동화책 속에서 고양이 귀신이 등장하곤 했습니다. 고양이를 공포의 상징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죠.
뭐 이건 서구에서도 그런 경우가 가끔 있는데 에드가 알란 포의 '검은 고양이'라는 단편이 있었고, 그걸 빌려와서 영화로 만든 작품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고양이를 공포의 소재로 쓰는게 흔한 경우는 아니었지만.
1969년 발표된 '고양이의 눈'은 미국영화인데 고양이를 소재로 한 공포물입니다. 고양이가 공포의 대상으로 이용되지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고양이가 사람을 습격하고 공격하는 내용이 있고, 꽤 많은 고양이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고양이 공포영화라기 보다는 범죄물에 더 가깝습니다. 제목에 비해서는 생각보다 고양이의 활약(?)이 많지 않지요. 물론 결정적일 때 등장하곤 하지만.
막대한 재산을 가진 중년부인의 유산을 노리는 젊은이들의 암투를 다룬 이야기입니다. 배경은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로 유명한 도시이고, 스티브 맥퀸의 대표작 '불리트' 에서 카 체이싱을 벌인 장소로 유명한 곳입니다. '불리트'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영화지요.
중년의 귀부인 대니(엘레노어 파커)는 폐 질환으로 폐를 2/3나 잘라내고 호흡에 문제를 가진 여인입니다. 그래서 늘 조심하기 위해서 휠체어를 타고 다니고 집안에는 큰 온실을 꾸며 놓았으며 공원에서 맑은 공기와 일광욕을 즐기고, 침대에는 산소텐트를 설치해 놓았습니다. 대니를 돌보는 것은 조카인 루크(팀 헨리), 하지만 대니는 루크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오래전에 집을 나간 큰 조카 와일리(마이클 사라진)를 그리워합니다. 대니는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유언장을 많들어 놓았지만 와일리가 나타날 경우 그에게 전 재산을 물려줄 생각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대니의 단골 미용사 카시아(게일 허니켓)는 와일리를 찾아서 대니에게 데려다주고 유산을 나눌 계획을 세웁니다. 카시아는 미모와 관능미를 앞세워 와일리를 부추켜서 범죄를 공모하는데 새 유언장이 작성되면 대니를 살해하고 재산을 차지하자고 제안합니다. 와일리는 속물이긴 해도 그런 범죄적 인간은 아니었지만 카시아의 매력에 동해서 그녀의 계획을 따릅니다. 하지만 와일리에게는 고양이 공포증이라는 증상이 있었고, 대니의 집에서 엄청난 고양이들이 길러지고 있다는 것에 겁을 먹고 뛰쳐 나옵니다. 하지만 이렇게 쉽게 포기할 카시아가 아니죠. 그녀는 대니가 루크와 함께 공원에 산책나온 시간에 맞춰 와일리를 나타나게 하고 와일리를 보고 반긴 대니는 와일리가 집에 올 수 있게 루크를 시켜 고양이들을 다 길에 버리고 오게 합니다. 이렇게 해서 성공적으로 고모의 집에 다시 들어가게 된 와일리. 그와 함께 카시아도 몰래 들어와 대니가 올라올 수 없는 윗층에 자리잡고 와일리에게 갈 유언장이 제대로 작성되는 지를 지켜봅니다. 대니는 결국 변호사에게 연락하여 와일리에게 전 재산이 돌아가도록 새 유언장을 작성하는데.....
사실 굳이 고양이에게 비중을 두지 않아도 충분히 고모의 유산을 노리는 범죄극으로 재미있게 꾸밀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범죄 치정극에 고양이 공포증을 덧붙여서 범죄물과 공포물의 경계를 오가면서 만들었습니다. 영화 초반에 고양이에 대한 끔찍한 상황을 연출했고, 고양이의 본격적인 활약은 후반부에 펼쳐집니다.
굉장히 많은 고양이들을 등장시켰는데 주축이 되는 갈색 무늬 고양이 외에도 백 마리는 족히 될듯한 고양이가 집안에 득실거리며 어슬렁거리고 뛰어다니는 장면은 CG가 없던 당시를 감안하면 꽤 애써서 촬영했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 고양이가 사람이 길들이기 쉽고 영리한 동물이긴 하지만. 이렇게 고양이들이 많이 등장하는 영화도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돈 많은 귀부인 대니 역에는 비운의 배우 엘레노어 파커가 등장하는데 비운의 배우라고 한 이유는 1965년 등장한 '사운드 오브 뮤직' 때문입니다. 원래 엘레노어 파커는 40-50년대 상당히 인기가 높았던 미인 배우입니다. 외모만 평가한다면 에바 가드너에 뒤지지 않을 정도인데 우리나라에는 '스카라무슈' '마라푼다(네이키드 정글)' '탐정야화(형사 이야기)' '브라보 요새의 탈출' '황금의 팔을 가진 사나이' 등 주로 50년대 영화들이 알려졌지만 사실 전성기는 20대 시절인 1940년대 였습니다. 1946년 그녀 나이 24세에 출연한 '네버 세이 굿바이' 같은 영화에서는 정말 눈부신 미모를 보여주었죠. 이런 그녀였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많은 팬들은 이 배우를 '사운드 오브 뮤직' 에서 폰 트랍 대령에게 딱지맞는 중년의 백작부인으로 기억합니다. 그 영화에서 엘레노어 파커는 40대 초반에 접어들었지만 30세의 줄리 앤드류스 보다 훨씬 세련되고 미인이었는데 역할은 비참하게 차이는 비운의 배역이었고, '사운드 오브 뮤직'이 세계적인 대 흥행을 하는 바람에 그녀의 흑역사로 남게 됩니다. 즉 그녀가 등장한 가장 유명한 영화가 바로 '사운드 오브 뮤직' 이 되버린 것이죠.
아무튼 그 '사운드 오브 뮤직' 보다 4년뒤에 등장한 것이 '고양이의 눈' 인데 40대 후반의 엘레노어 파커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참 반가웠던 작품입니다. 곱게 나이 든 모습이었고, 여전히 품위있고 세련된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이 영화 이후 엘레노어 파커는 영화에 거의 출연하지 않고 TV에서 활동을 주로 하게 됩니다. 그녀의 조카 와일리로 등장한 배우는 마이클 사라진 인데 이름처럼 반짝 등장했다 '사라진' 배우입니다. '고양이의 눈'과 같은 해 '그들은 말을 쏘았다' 같은 수준높은 작품에 주인공으로 등장하긴 했지만 그다지 큰 배우로 이력을 남기지 못합니다. 1982년 출연한 '시덕션' 이라는 그냥 그런 범죄 스릴러가 우리나라 마이너 개봉관에서 개봉한 정도입니다. '그들은 말을 쏘았다'에서는 훤칠하고 잘생긴 청년 이미지였는데 '고양이의 눈'에서는 역할 때문이지 몰라도 한량기 다분한 모습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외 악녀 카시아를 연기한 게일 허니켓 등 그다지 이름 높지 않은 배우들이 공연합니다.
두 조카 형제가 있는데 자신을 옆에서 정성껏 보필한 둘째 조카는 등한시하고 수 년동안 사라졌다가 불쑥 나타난 큰 조카에게 서슴없이 재산을 물려주려고 하는 설정부터 뭔가 불길한 느낌을 준 영화입니다. 그 사이에 어떤 악녀가 끼어들이 이 집안을 사실상 조종하려고 하지요. 그런 상황에 고양이가 또 끼어들고. 후반부에 뜻밖의 반전이 있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개봉되지 않았고, 1981년 TV에서 '고양이의 눈' 이라는 제목으로 방영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지요. 수준 높은 수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가족 범죄극의 묘미와 고양이를 잘 활용한 내용이 오락적으로는 쏠쏠한 재미를 줍니다. 다소 치밀하던 초중반부와 달리 후반부에 이야기를 좀 흐지부지 끝낸 느낌이 있는 것이 단점입니다.
평점 : ★★☆ (4개 만점)
ps1 : 이 영화에서 엘레노어 파커는 휠체어를 타고 등장하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휠체어의 유용한 활용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영화 속 대니는 걸어다닐 수 있는 여자로 하반신 마비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전동 휠체어를 이용하는데 폐에 무리가 있어서 금방 숨이 찰 수 있기 때문에 휠체어를 이용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휠체어는 일종의 '자전거' 같은 이동식 도구로 활용될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걸을 수 없는 사람만 사용을 하는 것 같습니다. 다리가 불편하던가 지팡이에 의존하는 사람이라면 전동 휠체어를 이용하면 훨씬 편할텐데. 걸어다닐 수 있는 사람이 휠체어를 타는 모습이 좀 생소했는데 영화를 보면 많이 이해하게 되고 오히려 권장하고 싶어지더군요.
ps2 : 고양이를 생선이 아닌 생고기(날고기)를 이용해서 움직인다 라는 설정이 눈에 띄었습니다. 저도 고양이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 생선이 아닌 생고기를 좋아한다는 건 이 영화를 보고 알았네요.
ps3 : 영화에서 대니와 와일리, 그리고 와일리의 부모에 대한 내용이 슬쩍 언급이 되는데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흐지부지 됩니다. 이런게 좀 아쉬운 부분이지요.
[출처] 고양이의 눈(Eye of the Cat, 69년) 유산상속을 다룬 범죄극과 고양이 공포|작성자 이규웅